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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 고생한 날의 오후: 신동일의 [반두비]를 기다리며

2008.09.26 17:07 | 그리고... | 우디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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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건영


아무래도 촬영장을 한 번 다녀와야 될 것 같았다. 이미 다른 매체들이 취재해 기사화되었고 우리 역시 꽤 많은 분량의 원고를 준비해놓은 상태였음에도 직접 눈으로 봐야 속이 시원할 것만 같았다는 말이다. 혹여 방해가 되지나 않을까 걱정되어 완곡하게 의사를 타진하니 뜻밖의 답이 날아왔다. “거두절미하고, 일요일 날 아예 (카메오)출연하시죠....신 대표의 비즈니스 파트너가 필요합니다.” 젠장. 난 그냥 촬영장에 찾아가 덕담이나 몇 마디 던지고 오려고 했는데, 이게 웬 날벼락이람. 일찍이 김훈의 『칼의 노래』가 「한국문학의 벼락같은 축복」이라는 문단의 평가를 받았듯이, 까짓것 나라고 ‘한국영화 카메오계의 벼락같은 축복’이 되지 말란 법이 있겠느냐는(그러니까 제 정신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말도 안 되는 호기를 부리며 촬영장소인 대학로의 어느 카페로 향했다. 그로부터 4시간 쯤 흐른 후.

이런 경우를 두고 사서 고생한다고 말하던가? “배우가 너무 컵을 일찍 잡은 것 같아. 애초에 컵을 깨기로 작심한 것처럼 보이면 곤란할 텐데.” 진짜로 무심코 던진 말이었다. 하지만 그 장면이 허술해 보이는 것은 분명했다. 극의 흐름 상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았다. 모니터를 보던 감독이 조감독을 호출해 다시 찍을 것을 지시하는 순간, 아차! 싶었다. 준비한 소품용 설탕 컵이 3개라고 하지 않았던가. 하필 세 번째 테이크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다니. 스태프의 움직임이 분주해질수록 나는 ‘이게 다 좋은 영화를 위해서야. 귀찮아도 다시 찍으면 훨씬 그럴싸한 그림이 잡힐게 틀림없어’라 자꾸 되뇌고 있었다. 비록 내 발언으로 인해 벌어진 일이지만 눈총이 두렵지도 않았고 눈총을 주는 사람도 없었다. 누구하나 불평 없이 자기자리를 잡고 재촬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컵 대신 주먹으로 치는 것으로 설정을 바꾸자 소품 걱정은 사라졌다. 하지만 바뀐 설정에 따라 몇 차례의 테스트가 다시 이어져야 했다.

곧이어 재개된 촬영. 그런데 도무지 감독은 오케이 사인을 낼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몇 번의 리허설을 거친 후 슛에 들어가도 만족할 만한 장면 하나를 얻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닌 마당에, 다 찍었다 싶은 신을 처음부터 다시 찍어야 하는 배우와 스태프, 또 감독의 심정이야 오죽할까. 배우의 동선이 맞지 않아 한 번, 배우 배에 그림자가 비춰서 또 한 번, 오버액션 때문에 다시 한 번. “다시 가겠습니다” 조감독의 목소리가 이어질 때마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스태프들. 그럼에도 감독은 직접 나서는 법이 거의 없었다. 그저 모니터를 주시하다가 가끔 한 번씩 나타나서는 연기에 대해 몇 마디 의견을 내놓거나 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는 하루 종일 그랬다. 현장은 전적으로 조감독에 맡겨져 있었다. 조급해하기는커녕 무엇을 하고 무엇을 말아야 할지를 명확하게 알고 있다는 것, 이것만큼 감독에게 필요한 덕목은 또 없을 터이다. 일찍이 이탈리아의 감독들, 그러니까 비스콘티와 파솔리니가 그랬고 그리고 베르톨루치가 배우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그는 배우에게 어떤 지시도 주문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번 신이 어떤 연유로 해서 벌어진 것이고 어떤 이야기로 연결될 것인지를 이해시키는 데 주력했다. 촬영감독과도 프레임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정도면 족해보였다. 반복촬영을 최대한 절제한 채 촬영감독의 의견을 절대적으로 존중하는 태도에서, 무표정함으로 일관하는 그의 카리스마에서 나는 기타노 다케시를 떠올렸다.

끝이 보이지 않던 촬영에 제동을 건 건 엉뚱하게도 빛이었다. 해가 저물어가기 시작하면서 조명등으로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영화에서 빛이란 얼마나 중요한가. 결국 5번의 테이크 만에 오케이 사인이 나왔다. 그러나 감독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왜 안 그렇겠는가. 묵묵히 담배를 입에 문 감독의 지친 표정 위로 고뇌가 배어나온다. 돈과 시간과의 싸움을 지배하지 못하고 타협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아쉬움의 다름 아닐 테다. 곁에서 눈치를 챘는지 “한 번 더 가시 던지요”라고 촬영감독이 거든다. 말만으로도 고맙기 그지없지만 말처럼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촬영, 분장, 조명, 동시녹음, 편집 등등의 분업화된 스태프의 협조와 4시간 가깝게 숨소리도 내지 못하고 자리를 지켜야 했던 보조출연자와 배우들을 생각하면 감독 욕심을 앞세우기가 쉽지만은 않을 터. 연출부의 촬영 정리에 이어 기계와 장비들이 하나 둘씩 엘리베이터에 오르면서 하루는 그렇게 마무리되고 있었다. 생면부지인 나를 사람 좋은 웃음으로 편안하게 대해준 정동규씨(나홍진의 <추격자>에서 시장 역할을 맡았던 배우다)와 사소한 것까지 신경써준 스태프들과 아쉬운 인사를 나누고는 서둘러 자리를 떴다. 알 만한 사람은 벌써 눈치 챘겠지만, 이건 신동일 감독의 <반두비> 촬영장을 찾은 후 써내려간 사적단상이다.

신동일의 세 번째 장편 <반두비>의 촬영이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벵골어로 ‘참 좋은 친구’라는 뜻의 <반두비>는 이주노동자와 여고생 간의 수상쩍은 로맨스를 통해 한국의 사회시스템 전반을 진단해나가는 독특하고 진중하며 경쾌한 영화다. 예정대로라면 9월 24일 경 크랭크업을 하게 된다. 두 번째 장편의 개봉 불발을 딛고 와신상담한 작품이니만큼, 스태프들의 유기적인 협조와 노력이 보태진 만큼 좋은 영화가 나올 것으로 확신한다.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이 영화를 위해 <반두비 제작위원회>가 구성되어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이 제작위원회라는 것은, 투자 제작 배급을 수행해온 전문 집단이 삼각편대를 이룬 후 유기적으로 협력하여 투자부터 개봉까지를 관장하는 독립영화의 실험적 제작시스템을 말한다. 2007년 윤성호 감독의 <은하해방전선>이 그 효시였으니 신동일의 <반두비>는 두 번째 수혜자가 된 셈이다. 이미 2008 상반기 독립영화제작 지원작에 선정된 바 있고, 독립영화배급의 메카인 인디스토리가 배급. 마케팅을 맡았다는 사실은, 적어도 개봉 걱정은 안 해도 된다는 점에서 의미하는 바가 크다. 주인공인 방글라데시 출신의 이주노동자이자 미디어활동가인 마붑 알엄과 CF모델 출신의 신인 백진희 사이의 수상쩍은 로맨스, 혹은 박혁권과 이일화가 다른 한 축을 이뤄 펼쳐내는 닭살 돋는 사랑 놀음이 궁금하지 않은가? 그래도 조금만 기다리시라.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반두비>는 후반작업을 거친 후 내년 초 반드시! 여러분과 만나게 될 것이니.


디지털 단상, 날아보니 무엇이 보이더냐

2008.09.26 17:03 | 필진 칼럼 | 우디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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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경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라는 고민에서 '이것도 보여줄 수 있다'라는 가능성으로
 


고대 그리스인들은 제우스의 전령사인 헤르메스를 발목에 날개가 달린 신으로 묘사해 놓았다. 등 혹은 어깨죽지에 날개가 달린 것이 아니라 발목에 날개를 그려넣은 까닭은 헤르메스의 동적인 움직임을 더욱 강조한다. 과거 신화의 주인공은 제우스였는데, 제우스가 강력한 권력을 가진 존재로 인식될 수 있는 것은 천둥과 번개를 이용한 물리적인 힘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헤르메스로 대표되는 전달꾼이 있었기 때문이다. 헤르메스를 전령사로서 기능하게 하는 힘, 즉 전령사로서의 설득력을 갖게 하는 것은 제우스의 힘에서 기인한다. 마찬가지로 제우스의 힘을 유지시키는 것 또한 전령사의 역할이 있어야 한다. 이것은 권력과 통신이 일인에게 집중되고 하나의 망을 통해 파급됐다는 과거 정치 구조를 은유한 것과 같다.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저마다의 헤르메스가 있다. 그것은 절대적인 권력을 분산해준다. 1인에게 부여되는 권력은 같지 않다. 얼마나 더 접근성이 뛰어난 통신망이 있느냐에 따라 다르다. 디지털을 통해 생성해낸 텍스트는 그것이 비공개가 아닌 이상 최소한의 접근성을 허용하는 것이므로 반드시 힘을 가진다. 여기에서 중요한 방점이 하나 찍혀야 한다. 힘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는가, 없는가. 전자의 경우는 '아고라'와 '광장' 등을 통한 정치 활동은 이 힘을 적극적으로 발휘하는 경우에 해당하는 것으로, 과거에도 존재하던 방식의 소통이 새로운 매체를 타고 원활해진 것이다. 후자의 경우에는 디지털 상에서 당장의 힘을 발휘할 것을 목표하지 않으나, 이 힘이란 것은 질량불변의 것이어서 어느 방식으로든 새어나오게 돼 있기 때문에 문화적인 영역에서 발휘된다.

디지털을 통한 활동은 주로 웹을 통해 하이퍼 링크를 타고 이뤄지는데, 하이퍼 링크의 기본 성질은 동질성 혹은 유사성에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동질성이라거나 유사성이란 것 자체에서 체계성이나 논리성이 항상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한 페이지에서는 중대하게 다뤄질 수 있어도, 링크를 타고 들어간 다른 페이지에서는 단지 한 구절로 기록돼 있을 수도 있다. 이것을 목적에 맞지 않는 '쓰레기 정보' 혹은 '정보 바다의 범람'이라고 부르는 관점이 있고, 디지털을 '올바르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이 정보들을 잘 분류해내어야 한다고 권장한다. '올바르게'라는 말에 적힌 말에 대해 우리는 좀 생각해봐야 한다. 이 말을 '효율적으로' 라는 말로 바꿔 쓰일 때 더욱 분명하게 의미가 전달된다.

효율적인 방법과 체계적인 논리가 권장받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디지털을 효율과 논리로서만 대하던가. 그보다는 검색창에 친 한 가지 키워드를 통해 상관관계가 상이한 것들이 하나로 엮여지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때, 그것이 더 큰 정보를 제공하거나 발상의 전개를 도운 경험은 없었을까. 논리성과 체계성을 바탕으로 텍스트를 생산해내거나 수집하는 과정에서는 핵심내용으로 수렴될 수 있는 자료들만을 필요로 한다. 그 밖에 검증하거나 논증하기 어려운 자료들은 쳐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해당 텍스트 자체의 힘은 강력하게 길러주지만, 너무도 예각화를 시킨 나머지 채택되지 못한 다른 자료들과의 연계성을 현저히 떨어뜨린다. 추측이나 직관, 그리고 '말로는 제대로 설명할 수 없으나' 느껴지는 것으로 이어낼 수 있는 것을 '갖다붙이기'라고 하여 쓸모없는 것으로 간주해버리기도 한다.

이제 '그것이 무엇이든, 얼마나 멀리 있든' 상관없는 세계가 펼쳐졌다. 논리성과 체계성은 필요조건으로 삼고, 그것의 지배력에서 자유로워져도 괜찮은 것이다. 저 멀리에 무엇이 있다고 상상했으면 그것과 관련된 키워드를 통해 상상한 그 이상을 볼 수 있다. 이 확장은 단순 탐험의 차원으로 끝나지 않는다. 키워드 하나로 확장된 세계를 경험하고서는 다른 키워드를 발견하기도 하고 발명해내기도 한다. 한 가지 키워드로서 추려낼 수 있는 키워드는 무한으로 발산하는 것이다. 두뇌 속에서는 키워드를 조합해낸다. 고로 이 세계의 화두는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를 묻는 게 아니라, 연결시켰으면 이제 뭘 볼 것이고 뭘 만들어낼 것인지를 묻는 것이다.

<24시티>를 감독한 지아장커는 CinDi2008 관객토크에서 매체의 자유로움이 실험을 가능하게 했다고 밝혔다. 작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아낀 에너지를 표현과정에서 역동적으로 풀어냈다는 의미다. 디지털은 우리 현실에 조합을 통해 나온 경우의 수 대부분을 등장할 수 있게 해준다. 이 결과로 세상에 보여질 텍스트는 분명 필연성을 갖고 있으나, 일일이 논증해내기 보다는 그 바탕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디지털을 통한 창작, 소통과정을 통해 보다 다양한 것들이, 이전에는 차마 보여지지 못했던 것들이 영상과 영화와 현실의 경계를 아울러 등장할 것이다. 앞으로 당신이 볼 세상은 양적으로 얼마나 커질 것인가

강민영.서유경, [반두비] 촬영 현장을 급습하다!

2008.09.26 17:01 | 그리고... | 우디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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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영


지하철 6호선이 위치한 창신역은 나에게 낯선 동네였다.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는 종로구에 속하지만 단 한 번도 발을 디뎌본 적이 없는 기묘한 장소. 이른 아침부터 잠을 쫓아내고 눈을 비비며 주섬주섬 옷가지를 몸통에 끼워 넣은 채 낯선 ‘창신역’으로 향했던 이유가 있었다. <방문자>, <나의 친구 그의 아내>를 연출한 신동일 감독의 세 번째 장편영화 <반두비(공동제작: 비아신 픽쳐스, 시네마 달, 배급: 인디스토리)>의 13회차 촬영이 바로 그곳에서 진행되기 때문이다. 지지하는 감독의 다음 영화를 기다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기쁨을 맛 볼 수 있는데, 직접 촬영 현장의 ‘방문자’가 된다는 것은 분명 가슴을 설레게 만드는 진귀한 경험일 것이다. <반두비>의 촬영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으며, 지금까지 달려온 딱 절반, 그 절반의 에너지를 느끼기 위해 익숙하지 않은 6호선을 잡아 세웠다. 그리고 똑같이 피곤함을 가득 이끌고 6호선을 탄 동료, 유경씨에게 차가운 캔 커피를 건넸다.


오전 9시를 조금 넘긴 시각. 수상해 보이는 버스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 옆면은 ‘3219’번의 탈을 쓰고, 앞면은 ‘1212’번의 탈을 쓴 이상한 녹색 버스. 그리고 녹색 버스를 호위하며 촬영 장비를 토해내고 있는 차들. 분주하게 움직이는 카메라와 장비들의 모습은 대번에 촬영장의 힘찬 분위기를 생각나게 만들었다. 서글서글한 미소로 인사를 건네는 신동일 감독은 녹색 버스 바로 뒤에 촬영감독과 함께 스케쥴에 대한 재점검을 하고 있었다. 한껏 여유가 느껴지지만 어딘지 모르게 치밀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신동일 감독의 표정 위로, 스탭들이 하나 둘 씩 인사를 건넸다. 오늘로 반을 달려온 스탭들의 얼굴은, 촬영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친절히 알려주듯 환한 웃음을 띄고 있었다.





녹색 버스 주변을 배회하며 촬영 장비들과 스탭들에게 인사를 한창 나눌 즈음, 맞은 편 정류장에 촬영장을 구경하기 위해 하나 둘 씩 흩어져 나온 주민들과 교복 차림의 보조출연자들 옆으로, 반가운 두 명의 얼굴이 보였다. 짙은 피부색에 수더분한 차림을 한 ‘카림(마붑 알엄)’, 하얗고 빛나는 피부색에 음악을 들으며 대본을 훑고 있는 ‘민서(백진희)’. <반두비>의 남녀 주인공들은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촬영장 셋팅이 완료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버스 안을 다시 확인하니 여전히 분주하게 움직이는 스탭들. 아직 촬영까지 꽤나 시간이 남았음을 알 수 있었다. 평온해보이지만 상기된 눈빛으로 촬영을 기다리는 두 배우에게 ‘접근’하기엔 절호의 순간이다. 도로를 가로질러 건너가 새초롬히 앉아있는 여주인공 백진희에게 가벼운 인사를 건네고, 버스 정류장 바로 옆에서 혼자 고즈넉이 담배를 태우고 있는 남주인공 마붑 알엄에게 두 번째 인사를 청했다. 반갑게 우리를 맞아주며 조심스레 담배를 뒤로 젖히는 그와 함께 ‘막간 수다’가 시작되었다.


강민영(이하 ‘강’): 가장 궁금했던 걸 먼저 물어볼게요. 처음 한국에 발을 딛었을 때는 노동자의 신분이었으나 후에 미디어 활동가로 활동하고 계시잖아요. 부인도 한국분이고. 카림 역을 소화하는데 이전의 경험이 많이 작용했을 것 같아요.

마붑 알엄(이하 ‘마’): 여러 가지 면에서 일치되는 것이 있었어요. 한국에서 연애경험이 있어서. <반두비>의 마지막에 카림이 강제출국당해서 추방당하잖아요. 저도 처음에는 카림의 입장으로 와서 일했고, 주변인 중에서도 불미스러운 일을 당한 분들이 많아요. 그런 부분에서 많이 이해를 할 수 있었어요. 영화나 미디어 활동, 이주 노동자와 같은 신분으로 일을 하면서도 경험이 많이 있으니 보탬이 되었던 거죠. 어렵지 않았어요.

강: 사실 <나의 친구, 그의 아내>에서도 마붑씨를 뵈었거든요. 그래서 엄밀히 말하면 저에게 초면은 아닌 셈 이예요(웃음). <반두비>가 프리 프로덕션 과정을 진행 중일 때 대강의 시나리오를 들었는데, 이주노동자가 주인공이라는 말을 듣고 <나의 친구, 그의 아내>에서의 마붑씨를 캐스팅하지 않을까 했었어요. 신동일 감독과 친분은 많으신가요?

마: 전부터 관심이 많았어요, <반두비>에 대해서. 워낙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다보니까 다른 이주노동자들에게도 소개해주고 싶었기도 했어요. <반두비> 자체가 사회에 새로운 반향을 일으킬 수 있는 거니까요. 이주민들이 한국에 거의 20년 동안 살고 있지만, 실제로 이런 내용을 다루는 영화나 영상은 많지 않아요. 장편은 거의 없었죠. 저도 하고 싶었고, 개인적으로 영화에 관심이 많으니까. 영화 만들고 싶기도 했구요.

강: 지난 8월에 있었던 시네마 디지털 서울 영화제에서 장 률 감독님과 이야기를 하다가 알게 되었는데, 연말에 이주노동자 영화제가 있지 않나요? 올해도 참여 하시는 건가요?

마: 네, 물론이죠. 작년에는 제가 집행위원장으로 있었는데, 올해는 바빠서 프로그래머만 맡을 것 같아요.

서유경(이하 ‘서’): 영화에 대한 관심은 어떻게 가지게 되셨나요?

마: 한국에서 일을 하며 이주노동자 공동체 활동을 하다보니까 이주민들의 상황을 한국 사회에 알리기 위해서는 미디어 활동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면서 크고 작은 영화제를 준비했는데, 한국서 활동하다보니까 국내에 계시는 영화제작하시는 분들에게 요청도 많이 오고 제안도 많이 받았어요. 그럴 수록 점점 더 많이 관심을 가지게 되었죠, 좋은 작품과 좋은 영상에 대해서.

서: 문화적 영역의 경계를 이야기 한다는 것이 당장 소득은 없을지라도 엄청 힘든 일이잖아요. 파장이 그만큼 크기도 하고.

마: 한국은 다문화라는 것에 대해 정부기관 등에서 홍보를 많이 하고 있잖아요. 하지만 한편으론 닫혀있고 인정하지 않아요. 다문화라고 말하지만 자기 식으로 받아들이는 거죠. 서로 이해해야하는데 ‘한국인의 다문화에서는 한국이 최고다’이런 의견들이 많아요. 이건 문화성이 아니라 주체성이죠, 어떻게 보면. 한국에 많은 사람이 와있는데도 불구하고 봉쇄되어 있으니까. 그런 면에서 스스로 이벤트를 만들고 함께 한국인과 어울리는 시스템을 꾸려나가고 싶죠. 정부와 이주민들 사이에서 서로 소통이 잘 안되니까. 이주민들은 작은 공동체를 계속 해오고 있어요. 미디어에서 다루는 이주민들에 대한 기사는 많이 아쉬워요. 불쌍하거나, 웃기거나. 혹은 슬프거나, 재밌거나. 이런 이분적인 시선 이외에는 다루지 못하더라구요. 그래서 중요성을 깨달았어요. 지금은 이주노동자의 방송 MWTV를 만들고 운영을 하고 있어요. 미디어가 중요한 거죠. 그러다보니 영화에도 관심을 가지게 된 거구요.

강: 한국영화들도 많이 보셨겠네요.

마: 물론이죠. 영화제 준비하면서도 그렇고.

강: 이건 좀 개인적인 질문인데, 제가 인도를 몇 차례 여행했는데, 여행하면서 인도와 방글라데시의 국경 사이가 상당히 불안정하다고 들었거든요. 그래서 방글라데시로 넘어가려 했는데, 인도인들은 그곳은 위험하다고, 국경이 위험하니 가면 안 된다고 말하더군요. 그게 사실인가요?

마: 국경이 원래 하나였죠. 인도-파키스탄으로. 2차 세계 대전과 종교 전쟁 때문에 나눠진 거예요. 파키스탄도 언어가 달랐기 때문에 떨어져 나온 거고, 방글라데시도 마찬가지죠. 지금도 인도는 나라가 워낙 크니까, 방글라데시에 대해서 좀 많이 무관심해요. 자기 나라의 이익을 챙기게 되잖아요, 모든 국가가. 그런 것 때문에 충돌이 좀 있죠. 저희가 좀 힘들어요. 방글라데시에서 가져가는 자원도 많기도 하구요. 우리도 아무 얘기도 못하죠, 사실. 인도의 도움도 많이 받았으니까. 한국-미국의 관계와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강: 촬영하면서 힘든 건 없으셨나요? 물론 전부터 같이 작업해왔고, 신동일 감독을 잘 알아왔으니까 트러블이나 이런 건 생기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만요.

마: 힘든 건 없지만 촬영 들어가기 전에 체중을 줄이는 게 좀 많이 힘들었어요. 지금 이게 10킬로 정도 줄인 몸이예요. 감독님이 영화 들어갈 때 살을 좀 빼야겠다고 말하셨어요. 거의 굶었죠, 야채 같은 것만 먹고. 많이 힘들었어요, 단기간에 빼야 하니까. 근데 살을 빼니 확실히 몸이 가벼워졌어요. (있는 대로 조인 벨트를 보여주며)바지도 막 흘러내리고(웃음).

강: 혹시 감독님이 트레이닝도 하셨나요? 같이 굶거나, 같이 운동하거나(웃음)

마: 하하, 그런 건 없었구요. 물론 가이드는 조금 해줬어요. 잡지 같은 곳에 많이 나왔던 다이어트 방법들을 보여주기도 하시고. 전 거의 식이요법만 쓴 거죠. 사실 전부터 많이 빼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영화를 계기로 다이어트를 한 거죠. 힘들잖아요, 살빼기가. 술 마시고 늦게 먹고 이러니까.

강: 촬영장에 부인 분도 가끔 오시나요?

마: 오늘 올 것 같은데요? 근데 오늘 촬영은 이동 씬이 많아서 힘들지도 모르겠네요. 와이프 있으면 연기 못 할 까봐 그게 걱정되죠. 이젠 익숙해지니까 좀 괜찮은 것 같아요. 아, 원래 이번 달 말쯤에 끝나고 방글라데시 잠깐 들어가려고 했는데, 일이 생겨버렸네요. 다문화에 대한 프로그램의 강사를 맡아서. 이번 년도에는 방글라데시에 가기 힘들 것 같아요.

마: (잠시 쉬다가) 사실 이 영화는 어떻게 보면 많이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아요. 감독님이 워낙 영화를 통해 야기되는 이야기들이 많으니까. 뭐 이명박이나 부시, 이런 것들. 감독님이 그런 부분을 잡는 걸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나의 친구, 그의 아내> 같은 경우에도 처음에 이주노동자를 잠깐 등장시킨다고 했을 때 ‘등장시켜서 뭐 할 거야?’ 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곰곰이 생각하니까 제가 잘못 생각했더라구요. 모든 게 연결되는 부분이 존재하고 있었어요.

강: 저도 동일한 이유로 신동일 감독님의 영화를 좋아해요. 여러 가지 복선들, 혹은 결합되지 않는 관계 사이의 유대감 같은 것들. 그런 것들을 찾는 게 신동일 감독의 영화에서는 부수적인 재미로 작용하는 것 같아요.


햇볕이 뜨거워졌다. ‘카림’과 대화를 나누던 자리에는 어느새 남자배우를 위한 의자가 놓여 졌고, 카림은 자연스레 의자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참을 신나게 대화를 나누던 차에, 녹색 버스에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한꺼번에 오른다. 보조출연자들만을 태운 녹색 버스는 카메라와 함께 골목 어귀로 사라진다. 동시에 주머니에서 느껴지는 진동. 핸드폰을 꺼내드니 신동일 감독으로부터 첫 번째 촬영을 다녀오겠다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가 보인다. 고개를 들어 버스를 보니 우직하게 헤드폰을 눌러쓴 채 버스 창문 틈새로 손을 흔들며 사라지는 신동일 감독. 그와 스탭들이 탄 녹색버스가 돌아오면, 두 배우가 열연해야 하는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될 것을 직감한다. 카림의 의자를 뒤로 하고, 재빨리 ‘민서’가 앉아있는 곳, 백진희의 의자에 마이크를 조심스레 내밀었다. 그녀는 수줍은듯하지만 밝고 맑은 눈동자로, 열심히 자신을 담고 있는 카메라를 곧게 쳐다보고 있었다.


강: 오늘은 몇 시부터 나오셨어요?

백진희(이하 ‘백’): 저는 메이크업 때문에 여덟시 반 정도요.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일찍 나왔죠. 아무래도 남자 배우보다는 손이 더 많이 가서요.

강: 영화의 주연은 이번이 처음이잖아요. 진희씨가 맡은 ‘민서’라는 인물은, 일반적으로 보기에 평범한 여고생인데 상황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이주노동자를 만난다든가 하는 설정 같은 것들이요. 민서를 이해하는 데 힘들었던 점이 있었나요?

백: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민서가 평범하지 않은 상황들을 만나잖아요. 그런 것들이 어렵게 다가왔는데, 감독님이랑 같이 지내면서 민서라는 캐릭터에게 많이 다가간 것 같아요.

강: 프리 단계에서도 대화를 많이 하셨나요? 마붑씨와도 의견 많이 나누셨죠?

백: 네.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한 달 정도의 기간 동안 감독님이랑 배우들이랑 열심히 사전 작업을 진행했어요.

강: 민서의 캐릭터에 진희씨의 어떤 한 부분이 맞닿아 있어서 캐스팅되었다고 생각해요. 민서와 백진희, 두 사람의 공통점이 뭐라고 생각해요?

백: 민서가 하는 행동이나 성격이 많이 비슷한 것 같아요. 민서의 욱 하는 성격, 이런 게 닮아서 연기하기 편한 것 같아요. 물론 중간 중간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많이 있었어요.

강: 어떤 부분이 그랬나요?

백: 예를 들면 퇴폐 스포츠 마사지, 소위 말하는 ‘대딸방’씬이요. 고등학생이 그런 곳에 가서 일을 한다는 것 자체도 이해가 안 갔어요. 이주 노동자에 대해서 호감을 가진다는 것 자체가, 솔직히 피부색이 다른데. 처음부터 그런다는 게 좀 이상했어요. 근데 이런 것들도 시간이 가다보니까 마음을 열게 되고, 민서라는 캐릭터를 알아가게 되면서 바뀌긴 했죠. 하지만 아직도 ‘대딸방’은 좀...(웃음)

강: 시나리오를 보면서 그 부분이 가장 걱정되었거든요. ‘대딸방’같은 경우에는 사회적인 이슈가 많이 되고 있기도 하고, 고등학생이라는 신분도 많이 작용을 하기 때문에요. 처음에 백진희라는 인물만을 놓고 봤을 때, 여리고 소녀 같은 이미지가 강해서 그런 독특한 극을 소화해내는 과정이 굉장히 궁금했어요.

백: 시나리오 받아보고도 걱정하고, 촬영 들어갈 때도 걱정하고 그랬어요. 전 그런 게 있다는 것 자체도 몰랐다가 이번 영화 작업을 통해 알았거든요. 하지만 그런 것 이외의 민서는 모두 받아들이기 수월한 부분 이예요.

강: 캐스팅 비하인드 스토리를 좀 들춰보고 싶은데요. 어떤 방식으로 여배우에 대한 캐스팅이 이루어졌는지가 궁금해요.

백: 전에도 감독님께 한 번 여쭤봤던 적이 있어요. 오디션을 봤는데, 그때 질문 내용 중에 그런 게 있었거든요. ‘넌 착한 애냐’라고 물으셨어요, 그때. 그래서 저는 아니라고, 세상 살아가려면 남을 짓밟고 올라가야지 살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는데, 그게 인상이 깊었다고 말씀 하시더라구요.

강: 다시 <반두비>의 민서로 돌아가서. 자신이 만약에 카림을 현실에서 만났다고 가정했을 때도 민서와 비슷한 행동을 할 거라고 생각하세요?

백: 어떤 부분은요. 하지만 아직 잘 모르겠는 부분도 있어요. 학교를 그만둔다거나, 이런 것들. 그래도 앞서 말했지만 대화를 통해 많이 풀었어요. 민서가 카림을 만나고 짧은 시간동안에 많은 일을 겪으면서 소녀에서 숙녀로 성장한다고 이해한 후에는 문제없었어요.

강: 혼자서 민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을 것 같아요.

백: 독특하죠. 학생이라면 학생인데, 완전히 학생은 아니고. 저랑 비슷한 면을 계속해서 찾아나가고 있어요.

강: <반두비> 촬영이 끝나고 나서는 어떤 일을 계획하고 있어요? 처음 데뷔했던 CF나 모델 쪽으로 다시 돌아가실 건가요?

백: 아니요, 계속 영화와 드라마 쪽으로 작업하려고 해요. 연기하는 것들 배우고 싶기도 하고, 앞으로는 연기자로서 작업하고 싶어요.


아이 같은 웃음을 지으며 천진난만한 미소를 보내는 백진희의 모습은 영락없는 민서였다. 그녀는 때로는 고민스런 표정으로, 때로는 맞장구를 치며 조용조용 대화를 이어갔다. 민서와의 짧은 인터뷰를 마치고, 녹색 버스가 사라진 한적한 버스 정류장에 앉아 스탭들이 얼마 없는 한적한 분위기를 즐기고 있기를 몇 십 여분, 드디어 집 나간 버스가 다시 머리를 보이기 시작했다. 한 눈에 보기에도 후끈한 열기가 가득한 버스 안. 원래의 자리로 돌아온 녹색 버스에서, 출연자들과 스탭들, 그리고 신동일 감독이 차례로 내렸다.




강: 드디어 감독님을 인터뷰하는 시간이 난 셈이로군요.(웃음) 방금 촬영하신 건 첫 번째 씬을 찍고 돌아오신 건가요?

신동일(이하 ‘신’): 네. 첫 번째 씬. 버스 안에서 사람이 많은 분위기를 내기 위해 간단히 도입부 씬을 찍고 온 거예요.

강: 오늘이 13회차로 지금까지 반 정도 촬영이 진행이 되었는데, 뻔한 질문이지만 그래도 여쭤볼게요(웃음). 특별히 촬영하는데 기억에 남을만한 에피소드가 있으시면 하나만 말씀해주세요!

신: 아, 에피소드를 준비해왔는데 지금 생각이 안나(웃음). 오히려 저보다는 스탭들이 많이 알지 않을까요! <반두비>같은 경우는 독립영화 감독들이 우정출연을 많이 했어요. 양해훈 감독은 재수 없는 주유소 사장의 아들로 활약했었고, 김 선 감독과 김동명 감독도 조깅하는 씬에 출연 했죠. 윤성호 감독도 익스트림 롱 샷에서 잠깐 등장했어요. 윤성호 감독같은 경우는 현장에 잠깐 들렸는데, 그때 ‘급’ 보조 출연을 결정해서 하게 되었던 거구요. 그 밖에 여러 분들도 있었어요.

강: 좀 전에 백진희씨와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왔는데, 퇴폐 스포츠 마사지 씬을 찍는 게 많이 힘들었다고 하셨어요. 근데 감독님과 이야기하고, 의견 나누면서 어렵게 소화해냈다고 고충을 이야기하시던데요!(웃음)

신: 여배우, 그러니까 민서 본인도 힘들었지만 저희 스탭들도 엄청 고생을 했던 장면이죠. 하지만 진희씨가 너무 잘 해줘서 다행이었어요.

강: <반두비> 시나리오를 생각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는지요? <반두비>의 주연배우인 마붑 알엄씨는 <나의 친구, 그의 아내>에서 보조출연을 맡으셨잖아요.

신: 몇 년 전부터 여고생이 주인공인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다른 작품이 있었어요. 근데 그 작품을 작년부터 준비하다가 윤리적인 선택에 의해서 포기를 했었거든요. 살인사건인데, 남아있는 유족들에게 상처를 줄 것 같아서 그만 둔 거죠. 하지만 여고생을 주인공으로 다루고 싶다는 건 변함이 없었고, 때문에 <반두비> 시나리오와 연계가 되었던 거죠.

강: 그렇다면 여고생이 주인공인 영화에 이주노동자가 부수적인 입장이었나요? 이주노동자를 넣게 된 이유가 있었나요?

신: 딱히 그렇진 않아요. 여고생이 주인공인 영화와 이주노동자가 주인공인 영화를 구상을 하다가 결국 같이 결합을 시킨 거죠. 언젠가 노동문제를 소재로 다루고 싶은 적이 있었어요. 아직까지 그런 것들을 한국에서 다룬 적이 없었고, 다뤄져야 마땅한 것이 분명하기에 여고생과 이주노동자가 만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에 대한 상상을 하는 과정이 재밌었어요. 둘 다 불안한 존재인데, 한 명은 갓 피어나는 청춘을 즐겁고 꿈의 나래를 펼쳐야 하는 시기인데 입시나 시간적으로 구속받는 존재였고, 한 명은 이주노동자라는 3D 업종에 종사하는 직업을 가진 존재였다는 것에서 통하는 게 있다고 생각했죠. <방문자>도 그렇잖아요. 전혀 매치가 되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끼리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게 제 관심사인 것 같아요.

서: 소외되고 또 만나는 것에 대한 의미는 어떤 걸까요.

신: 계속 제 작품들이 의도한건 아닌데, 연대를 그리고자 하는 게 있는 것 같아요. <방문자>, <나의 친구, 그의 아내>도 그렇고. <반두비>도 세대와 국적 차이에서 오는 연대를 이루면 뭔가 세상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작업했어요.

강: 지금까지 감독님 영화들이 계급이나 관계에 대한 것들이 많았잖아요. 마붑씨와도 이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지만 그런 부분 때문에 저 또한 <방문자>와 <나의 친구, 그의 아내>를 재밌게 볼 수 있었어요. 다시 여고생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면, 여고생 캐릭터를 생각해낼 때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신: 2001년 말에 어떤 사건이 있었어요. 학원장이 살해된 사건이 있었는데, 그 학원장이 살해되는 과정에서 부원장과 부원장의 정신적 지배를 받는 여고생이 모의를 해서 죽인 거예요. 근데 여고생을 취조하다가 여고생이 살인사건 1년 전에 엄마를 죽였다는 자백을 했어요. 우연히 저는 그 기사를 접했고, 관심을 가졌던 게 사건의 센세이셔널한 것 보다 왜 ‘여고생’이라는 신분의 일관성이 이 사건을 통해 파괴되는가 하는 거였거든요. 여고생의 내면세계를 형상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근데 당시로서 제겐 힘이 없었죠.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이 사건을 소재로 하고 싶었는데, 취재해나가는 과정에서 도저히 감당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더라구요. 영화가 만들어지면 골치 아픈 문제를 야기 시킬 것 같았죠. 진정성을 가지고 만들려고 했다고 해도, 사건 자체가 그렇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부분이 많을 테니까. 결국 사건은 포기해도 여고생이 주인공인 영화로 하자 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대신 작년 초에 환경과 사회적 포지션이 차이가 나는 두 여고생의 우정 스토리를 시나리오로 만들었어요. <반두비>는 거기서 전환을 좀 한 거예요. 그때도 카림이라는 인물이 조연이었는데, 그걸 압축 시켰어요. 다른 여자아이를 날리고, 가난한 학생과 이주노동자 두 개의 이야기로 잡았어요. 경제성 측면에서 아기자기하게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구요.

강: 전에 어떤 기사에서 <반두비>가 여러 가지 의미에서 ‘방문자 2’로 무방하다는 말씀을 하셨던 걸로 기억해요.

신: 아, 그건 바로잡아야 할 부분이예요. 지난 5월에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사람을 만났어요. 근데 그 분께 제가 <반두비>에 대한 이야기를 말하면서, ‘간단히 압축해서 방문자 2 다’라고 했는데 그게 그분에 의해 기사화된 거거든요. 하지만 저는 이해를 돕기 위해서 ‘방문자 2’라고 했을 뿐이고 <반두비>를 그렇게 의도한 부분은 전혀 없었어요. <방문자>의 무거운 주제를 풀어내는 방식이 <나의 친구 그의 아내>에서는 미묘하게 다르다는 생각을 했고, <반두비>는 그런 면에서 밝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강: 그래서 포털에 <반두비>를 검색하면 ‘방문자 2’라는 단어가 자동으로 올라오더군요. 그 부분은 잘못된 것이지만, 이미 인터넷 상에서는 공식적으로 인정이 된 거라고 생각했어요.

신: 근데, 그 표현이 좋은가요? 어때요?

강: ‘방문자 2’나 ‘방문자 연작’이라고 하는건 분명 좋지 않아요. 하지만 <방문자>를 좋게 본 사람들이 <반두비>를 이해하는 데 일정부분 기여하지 않을까요. 물론 ‘방문자 2’라는 생각을 끌어내는 것에는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지만, 전자로 받아들이기가 관객으로서는 더 수월할거 같아요.





강: 그럼 <반두비>에서도 관객의 입장에서 <방문자>와 비슷한 효과를 만들어내기를 기대하시는 건가요?

신: 제 영화를 보면서 관객들이 마음의 반향을 일으키기를 바래요. 생각할 소지를 던져주는 것. 영화 보고 나서 보통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면서 ‘영화 재밌었다’라고 하고 곧바로 다른 이야기들 많이 하잖아요. 그것보다 한 두 시간이든 몇 일이든 몇 달이든 시간이 흐른 뒤에 제 영화를 생각하며 어떤 정서를 떠올린다면 그것만으로 행복한 거죠. <반두비>도 궁극적으로 그런 영화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구요.

강: <반두비> 시나리오의 마지막 부분에서 민서가 방글라데시 음식을 수저와 포크를 이용해서 먹잖아요. 카림이 살던 방글라데시의 고유 음식에 거리낌 없이 동화되는 민서의 모습을 보면서, 관객들이 영화에서 가져갈 수 있는 공통된 부분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강: 막간을 이용해 인터뷰를 거행(?)해봤는데, 감독님도 그렇고 배우들, 스탭들도 그렇고 바쁠 것 같아서 질문의 수를 최대한 줄였어요. 이제 셋팅이 완료되면 카림과 민서가 동시에 나오는 씬을 촬영해야하는데, 오늘 촬영장 분위기, 혹은 지금까지의 촬영장 분위기는 어땠나요?

신: 대체적으로 분주하면서도 여유로운 분위기였어요. 스탭들이 모두 차분하게 진행되고 있고, 제작비와 일정상 정신없이 진행되는 부분도 있기도 했지만 좋은 흐름을 타고 있어요. 저는 제 영화의 주제나 제작 방식이 민주적이었으면 하는데, 아이러니 하지만 돈과 시간의 지배를 받는 다는 것을 느끼면서 많이 안타까워하죠. 특히 비용 부분에서 아쉬운 부분이 많아요. (이때 신동일 감독을 향해 다가오는 스탭) 준비됐어? O.K, O.K, O.K, 일단 타시죠.



짬을 내어 신동일 감독과 이야기를 나누기를 잠시, 다음 씬의 셋팅이 완료되었다는 보고를 받고 신동일 감독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민서와 카림이 만나는 씬을 촬영하기 위해 작은 녹색 버스 안은 스탭들로 복닥거렸다. 신동일 감독이 버스로 올라가자 카림과 민서는 버스 안에서 자리를 잡고, 더위를 쫓아 내렸던 보조 출연자들이 다시 버스에 올라탔다. 쏟아지는 땀을 닦으며 카메라를 점검하는 사람들과 휴대용 모니터를 장착하는 촬영팀의 모습, 그리고 호흡을 가다듬는 남녀 두 배우들. 사람들의 열기로 후끈거리는 버스 안, 메인 카메라의 앵글 밖에 자리를 잡고 앉아 촬영을 기다렸다. 시계는 열 한 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고 카메라 포지션, 조명, 마이크, 그리고 배우들의 위치까지 모두 완벽하게 세팅을 마친 녹색버스는 촬영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버스의 구역은 스탭들, 배우들 이렇게 두 부류로 쪼개졌다. 버스의 앞머리에는 신동일 감독과 촬영팀을 제외한 보조 스탭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으며, 신동일 감독은 줄곧 헤드폰을 낀 채 모니터를 직시하고 있었다. 버스의 후미는 배우들의 몫이었다. 실제로 앵글에 들어가는 부분은 버스의 뒷좌석이었으므로, 촬영장비와 화면에서 잡아내고자 하는 모든 요소들은 버스의 뒷좌석에 쏠려있었다. 연신 땀을 닦으며 부채질을 하는 보조출연진, 교복을 입은 학생들의 수다도 조근조근 들려왔다. 에어컨이 작동되고 있었지만 막상 촬영에 들어가면 에어컨은 중지시켜야 했고, 그럴 때마다 스탭들의 등줄기에서 흐르는 땀방울의 수는 점점 늘어갔다.






버스는 그렇게 두 시간여를 넘게 보문동과 창신동 일대를 달렸다. 이날 촬영분인 여섯 번째 씬, 카림과 민서가 처음 만나는 장면은 총 7회 차의 테스트 촬영을 거치고 네 번의 테이크로 마무리되었다. 일곱 번의 테스트 촬영 기간 동안 신동일 감독은 좀처럼 슛 사인을 넣지 않았다. 일곱 번 모두 각자의 사연이 있어 ‘버림받는’ 컷 들이었다. 흐름이 좋다 싶으면 도로가 갑자기 막혀 버스의 움직임이 깨지고, 수월하게 버스가 이동한다 싶으면 배우와 버스간의 호흡이 말썽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지갑을 분실한 것을 깨달은 카림이 다시 황급히 버스를 잡으려 뛰는 장면을 담는 13회차 촬영분은, 밖에서 열심히 달리는 카림과 안에서 최대한의 효과를 잡기위해 애를 쓰는 스탭 모두 고생에 고생을 더해 만들어낸 것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카림의 셔츠는 땀으로 젖어갔고, 스탭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도 거세졌다. 두 번째 컷이 들어가기 전, 몇 분간의 휴식시간에 창문을 열어 젖혀 버스 안으로 흘러들어오는 공기를 만끽했다. 바깥의 바람은 가을인양 솔솔 흐르는데, 버스 안의 공기는 너무나도 후텁지근했다. <반두비>의 열정도 그만큼 대단했으리라.

버스 안에서 울려 퍼지는 목소리의 태반은 스탭들에게서 흘렀다. 제법 힘을 내어 스탭들을 통솔할거라고 생각했던 신동일 감독의 목소리는 자주 들리지 않았다. 그가 입을 여는 순간은 오로지 배우의 연기를 지도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날 때 뿐 이었다. 신동일 감독은 곧게 모니터 앞에 앉아 자유롭지만 일정하게 자리를 잡아가는 스탭들의 반경에 손을 대지 않았다. 하지만 허술한 테이크를 좀처럼 보내지 않았던 그는 분주하게 움직이는 촬영팀 뒤에서 장면의 모든 것을 꿰뚫어보고 있는 듯한 눈을 가지고 있었다. 배우들의 목소리와 감독의 목소리는 동등하게 작용했다. 한 치 앞을 분간하기 힘든 상황, 그리고 조여드는 시간과의 약속 안에서 신동일 감독은 스탭들의 목소리를 모두 귀담아 듣고 행동을 결정짓지 않았을까. 좁지만 차분하고, 활력이 넘친다. 테이크 하나가 끝나는 동안 숨소리 하나 허용하지 않을 만큼의 고요함. 하지만 컷 싸인이 떨어지고, 곧바로 스탭들은 정해진 포지션을 따라 농담을 섞어가며 흥겨운 분위기로 움직인다. 그곳에서는 모두가 주역이다. 누가 누구인지 분간하기 힘든 상업영화 전선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현장이다.




줄곧 앉아있던 앵글 밖 뒷좌석에서 자리를 옮겨 신동일 감독의 뒤로 이동했다. 세 번째 슛이 들어가고 난 후,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재빨리 모니터링을 하기 위해 앞으로 움직인 것이다. 슛, 레디, 액션. ‘6-04’라고 적힌 슬래이트가 바쁘게 째깍거린다. 지나가는 바람 한 점도 용납하지 않는다. 모두가 숨을 죽인다. 순조로운 흐름 가운데 이번 컷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던 찰나, 감독은 독특한 제스쳐를 취하며 천천히 컷을 외칠 준비를 한다. 그의 컷 사인과 O.K. 사인이 떨어지자마자 무더운 버스는 에어컨을 가동시키고 창문을 활짝 연다. 수많은 스탭들이 크게 숨을 내쉬며 그제서야 녹색 버스에서 내려 담배를 꺼내 문다. 모니터를 통해 보았던 카림과 민서의 투 샷. 내가 보았던 것은 결국 몇 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씬 하나였지만, 그 장면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들이 필요했던가. 모두가 숨죽여 완성된 하나의 씬 만을 향해 온정신을 집중할 때의 그 열정. 그것이 영화 촬영장을 기웃거리면 피가 끓게 되는 이유 중 하나다. 아직 촬영이 많이 남아있지만, <반두비>가 크랭크업한 후 관객에게 보여질 날을 ‘서둘러’ 기대해본다.




한국독립영화협회 창립 10주년에 부쳐

2008.09.22 12:12 | 필진 칼럼 | 우디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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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건영


더욱 날선 목소리를 요청하며

9월 18일은 한국독립영화협회가 이 땅에 세워진지 10년째 되는 날이다. 요즘처럼 자고나면 세상이 바뀌는 시대에 십년 세월이라니, 얼마나 많은 이들의 땀과 눈물이 오늘의 독립영화협회를 일구어냈는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연일 도착한 안내문을 보면 창립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다양한 기획이 준비되어 있는데, 독립영화의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준비하는 3개의 포럼과 10주년 기념식과 <파업전야> DVD발매 기념상영 등, 영화단체이자 시민사회단체로서 독립영화협회의 발걸음에 새로운 힘을 불어넣을 행사로 가득하다.

지난 10년간 기억도 못할 많은 일들이 독립영화계를 스쳐 지나갔을 테지만, 독립영화인들의 오랜 숙원인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의 개관은 10년 한국독립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특별한 사건으로 기록될 듯하다. 식자들마다 한국영화의 미래가 독립단편영화에 달려있다는 말은 쉴 새 없이 해대왔지만 정작 현실은 이와 동떨어져있어 적은 제작비로 힘겹게 완성시켜도 홍보는 고사하고 상영할 극장을 찾아 나서기도 벅찰 노릇이고, 설사 힘들게 상영관을 잡았다 해도 마케팅의 부재로 찾는 관객이 소수인 것이 현실이었다. 그런 점에서 인디스페이스는 독립영화의 안정적인 상영 뿐 아니라 지속적인 홍보를 통한 관객과의 거리 좁히기를 가능케 했다는 점에서 전용관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고 하겠다.

독립영화협회 10주년을 맞은 지금에도 ‘독립영화의 현재가 한국영화의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단편영화 제작을 통해 기술을 익히고 동시에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을 키워나간다는 점만 놓고 봐도 그렇다. 문제는 상영공간과 배급라인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따라오기 마련인 법. 독립영화의 발전과 저변을 위한 제도적 뒷받침만큼이나 관객의 호응이 절대적으로 요청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돌아보면, 장산곶매, 서울독립영화집단 등을 주축으로 8.90년대 만들어진 <판놀이 아리랑> <강의 남쪽> <상계동 올림픽> <오! 꿈의 나라> <파업전야> 등의 영화들은, (비록 시대적 요청이었다고는 하나) 그 소재가 민주화로 증폭된 사회계층간의 갈등과 소외된 삶에 편중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낯선 영상과 메시지의 중압감에 부담스러워했던 당시의 관객들은 독립영화에 대한 편견을 가졌을 런지도 모른다. 물론 독립영화가 어둡고 음습한 외진 곳의 삶을 조명해만할 이유는 없다. 거꾸로 가는 세상을 바꾸겠다는 다짐이 투쟁적 영상을 만든다고 해서 굳건해지는 것도 아닐 터이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자. 자유당과 공화당을 거쳐 민정당으로 이어진 독재군사정권 하에서 한국영화산업은 국가정책의 발 빠른 메신저 역할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를테면 반공. 계몽. 건전이라는 명찰을 단채 정권의 홍보대사로 격하되기 일쑤였으니, 그 시절 다수의 영화들은 통치자의 대국민 영상편지에 다름 아니었다는 말이다. 때문에 격동의 시대를 뚫고 탄생한 한국독립영화는 태생적으로 영화자본으로부터의 독립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러니까 자본은 물론이고 정치적 목적으로부터의 독립과 부조리한 사회시스템에 항거하지 않고서는 만들 수 도 상영될 수 도 없었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 시대의 관객이 이러한 태생적 연원까지 알아야 할 이유는 없다. 나는 그것을 강요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독립영화에의 애정을 과시한답시고 소재와 형식을 상업영화와 비교해 섣불리 재단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독립영화에 관한한 독보적 비평가 중 한사람인 김이환은, 자신의 첫 번째 독립영화인 송혜진의 <안다고 말하지 마라>를 보며 얻은 경험을 교훈삼아 쓴 글에서  「가끔 사람들이 독립영화가 뭐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언제나 나름대로의 기준을 갖게 될까? 그 기준은 또 얼마나 자주 변할까? 그러니, 함부로 안다고 말하지 말자」고 우리에게 요청하고 있다. 소중히 새겨야할 대목이다.

이제 마음만 먹으면 볼 만한 독립영화는 도처에 산재해 있다. 독립영화 전용관뿐 아니라, 인터넷 영화 사이트나 포털 사이트에서도 독립영화를 만날 수 있다. N 포털 사이트의 경우는 독립영화관이 별도로 개설되어 있고 무료관람이 가능하다. 열정과 성의만 있다면 얼마든지 독립영화를 접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 한 것이다. 그러나 인프라의 확충만으로 독립영화에의 관심을 증폭시킬 수는 없다. 대중이 관심을 갖고 보고자 할 때, 극장을 찾아 나서며 적극적으로 동조할 때서야 독립영화의 위상이 달라지고 관객과의 만남이 잦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 번의 관람과 두 번의 관심이 더해져야 한다.

영화는 가히 21세기 문화산업의 총아로 군림하고 있다. 여기서 방점은 산업에 찍혀야 한다. 환금성 높은 것만이 상품으로서 가치를 지니는 후기자본주의시대에 독립영화라고 예외일 수 는 없는 노릇이다. 즉 철저히 자본의 흐름에 따라 움직이고 작동하는 산업의 자장 안에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독립영화감독들과 인터뷰를 해보면 공통점이 발견되는데, “오래오래 계속 영화를 찍고 싶다”는 바람이 그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오래도록 영화를 찍자면 자본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가족의 주머니에서 나오든 친구 친지에게 읍소해 제공 받든, 아니면 감독과 스태프가 아르바이트로 조달하든 돈이 있어야 영화를 찍을 것 아니냐는 말이다. 영화 속 한 장면을 보자. 김삼력의 <아스라이>에서 주인공 상호는 “상금 타먹으려고 영화 찍느냐”고 대드는 후배에게 “그래도 찍었으면 돌려봐야지, 돈을 구해야 영화를 찍지, 그러려면 작품이라도 부지런히 돌려야지” 않겠냐고 말한다. 사람에 따라서 느낌이 다를 수 있겠으나 독립영화인의 현실적 고민이 담겨있는 이 장면에서 나는 오히려 김삼력의 솔직한 심정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러므로 자본의 독립만큼 중요한 것은 자본의 자립이다. 제도의 장벽과 대작영화의 극장독점이라는 공정성 문제가 상존함에도 불구하고 독립영화 감독들은 자신의 작품을 자본화 시키는 방법을 연구하고 터득해야 한다. 바야흐로, 창작예술이라는 1차원적 사고에서 벗어나 산업적 논리를 대입시키려는 2차원적 문제를 고민해야 할 때가 되었다.

지난 시간 동안의 독립영화가 투철한 모험정신으로 세상과 맞서 사회적 모순과 문제를 진단하고 스크린에 상정시켜놓은 반면,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명쾌한 답변까지 이어지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 현실에 집착하면 상상력이 결핍되기 십상이고 상상력이 앞서면 현실과의 괴리가 발생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시대의 대안가족에 대하여 곰살스럽게 펼쳐 보인 안슬기의 <다섯은 너무 많아>가 (개인적으로 더 없이 좋았음에도) 더 전진하지 못하고 멈춘 그 지점을 김태용의 <가족의 탄생>이 과감하게 돌파했다는 사실은, 독립영화의 한계와 가능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 현실에 대한 비판적 사유를 놓치지 말되 풍부한 상상력과 따뜻한 인간미도 두루 스크린 안으로 끌어들임으로써 독립영화의 편견과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인간에 대한 애정이 실종된 목소리는 무책임한 선동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또한 오늘날 영화의 다양한 기능성, 그러니까 영화의 사회적 책무에 버금가는 엔터테인먼트로서의 속성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될 일이다. 이는 독립영화라고 해서 피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용인될 수 있는 것은 더욱 아니다. 그러므로 독립영화도 재미있어야 한다. 볼거리를 제공하고 그 속에 영민하게 메시지를 담는 방법을 끊임없이 찾아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국독립영화가 더 날선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믿는다. 부조리한 세상을 향한 날선 목소리를 독립영화에서마저 들을 수 없다면 진실의 외침이 설자리는 어디라는 말인가. 최근 몇 년간 독립영화는 비전향 장기수, 외국인 노동자, 청년실업, 기지촌, 일탈을 꿈꾸는 가족사, 무미건조한 일상 등, 소재의 다양성과 내러티브의 확장성을 시도하면서 디지털 시대에 걸 맞는 깔끔한 영상과 재미로 관객과 한층 가까워지고 있다. 독립영화의 대중성 확보를 위해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달리 보면 지금이야 말로 <파업전야>의 결기를 독립영화가 다시 이어받아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오래전 선배들이 피와 땀과 눈물로 지켜낸 소중한 필름과 그 속에 담긴 뜨거운 시대정신 말이다. 그러니 역사의 시계바늘이 거꾸로 도는 것을 막기 위한 초석이 되고, 독립영화를 지켜온 많은 땀방울에 부끄럽지 않도록 세상을 향해 더 통렬하고 시원한 직격탄을 날려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한국독립영화협회 창립 10주년을 맞아 만들어진 <파업전야> DVD에 담긴 상징이야말로 그 시대로의 회귀를 거부한다는 몸짓이요 영화를 통한 실천적 모험정신을 놓지 않겠다는 새로운 다짐이 아니겠는가.

고백, 영화에 대한 글을 쓰는 이유

2008.09.17 11:53 | 그리고... | 우디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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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경


영화에 대한 이야기에 앞서 질문하고 싶은 것은 왜 영화를 보느냐에 관한 질문이다. 영화에 대한 어떤 욕심 혹은 쾌락, 그것들의 근저에 무엇이 자리잡고 있는지에 관해 나는 당신과 대화를 나누고 싶다. 그에 관한한 나는 아주 솔직한 답변을 당신에게 제공할 수 있을 것이며, 그 답변의 완성도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나마 발전 가능성에 대해서는 긍정한다.

최근 나는 영화를 보는 나 자신에 대해 의문을 가졌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영화에 대해서 뭐라고 말하고 있는 내가 우스워보였다. 영화는 저 스크린에서 상영되고 있는데 나의 입과 손은 글을 생산해내고 싶어 안달났다. 그것은 영화로부터 유발된 행위가 아니라 내 자신에게서부터 시작하는 열망이다. 생산이라기 보다는 타인의 것을 해체하는 폭력에서 유발하는 쾌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미성숙하게 발달된 쾌감 인식 작용으로 당신의 고민 결과를 해체시키는 행위. 그 행위는 끝내고 나서야 허무함을 느낀다. 그런 즐거움이라면 다시금 아쉬워 몰두하기 마련이다.

글을 써야 한다는 건 여러가지 이유에서일 것이다. 생각을 정리해가는 과정일 수도 있고 타인에게 글을 읽게 할 목적일 수도 있고. 자신이 작성한 이야기가 타인에게 읽혀질 때는 그 전파성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하는데, 사실상 영화가 감독의 손에서 떠날 때 처럼 글 역시 글쓴이의 손에서 떠나면 더 이상 그 안의 내용에 관해 개입할 여지가 줄어드는 게 맞다. 그러나 내가 개입할 수 없다고 하여 그 내용에 대한 책임 여부까지 줄어드는 건 아니다.

갑자기 글의 책임여부, 전파성 등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는 까닭은 지금 내가 영화에 관한 '비평'을 쓴다는 것이 과연 읽혀야 하는 글일지에 관한 고민이 들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쓴다는 것이 담론형성의 목적을 넘어서 자의식을 드러내기 위한 목적이 더 크게 작용한다면? 나는 영화에 관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일기를 쓰는 것일지도 모른다. 분석과 비평의 목적이 스스로에게로 머물러 있다면. 적어도 그런 글은 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다.

왜? 내용물과 형식상의 괴리가 있기 때문이다. 글의 형식은 어쨌거나 힘을 가진다. 비록 연예인에 관한 근거없는 뒷담화일지라도 기사라는 형식을 가지면 파급력을 지닌다. 적합한 내용물이 아닐지라도 그 형태가 그럴듯 하면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얘기다. 텍스트 이론에서는 작가의 손을 떠나면 해석은 독자의 몫이라고 언급했으나, 독자의 자발적 해석에만 의지할 수는 없다고 본다. 특히나 글을 쓰고 난 뒤 자기 스스로의 카타르시스를 위한 글은 자기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해야한다.

대상을 분석하고 해체하여, 그에 관한 글을 쓴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결국 자기 만족일 경우와 쓰기 위한 목적이 강한 경우. 솔직히 나는 그런 글들을 보며 이 글들의 목적이 결국 그거구나, 싶을 때는 읽기 싫어진다. 또 내가 그런 글을 쓰고 있을 때는 당장이라도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싶다. 가속도 붙은 나의 미성숙에 제동을 걸고 싶다. 과잉된 의식으로 작품을 대하지 말자는 다짐은 내게 유효하다. 타인을 분석하고 비판하는데서 자기 정체성을 얻어버린 '그' 혹은 '그녀'는 결국 남 이야기만 하다 살아갈 뿐이다. 자신에게 결핍된 부분을 타인에게서 찾지 말라는 것. 이것은 내가 나 자신에게 요구하는 바다.

해체를 시켰다면 다음의 것을 조립해야 한다. 한탄을 했으면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이것은 내 가치관이다. 구조를 알기 위해 해체를 해야 하는 것이고, 더 나은 것을 알기 위해 불평을 해야한다는 것은 언제까지나 유효하다. 내 불평의 첫 출발점을 알 때다. 나는 나의 결핍을 안다. 내가 갈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아 간다. 나는 나를 위해 영화를 본다. 얻어낼 것들을 위해 영화를 본다. 어떤 직업 상의 이유로 영화를 보는 게 아닌 이상 나는 영화를 보고 나의 이야기를 한다. 나의 생각을 캐낸다. 말초에서 얻어버린 감각을 통해 내 생각을 꺼낼 수 있는 화두를 얻는다. 그거면 충분하다. 이거면 내가 영화에 대한 글을 왜 쓰는지 이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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