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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화면비의 스크린을 채우던 숭고한 얼굴

2009.11.01 14:27 | 필진 리뷰 | 우디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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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하

언젠가부터 영화의 화면비를 유심히 보기 시작했다. 현재 가장 일반적이고 대중적으로 쓰이는 1.85:1, 시네마스코프 2.35:1, TV 화면비로 잘 알려진 4:3. 시네마스코프 화면비나 4:3의 화면비를 가진 영화들을 볼 때면 저 영화는 왜 저 화면비를 택했을까를 영화 전체에서 찾으려 노력했고, 좋은 영화들은 어렴풋하면서도 또렷한 나름의 대답들을 나에게 들려주었다. 개인적으로 시네마스코프 화면비의 좋은 영화들은 금방 떠오르는데(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솔라리스>부터 우디 앨런의 <맨하탄>을 거쳐 2009년 한국 봉준호의 <마더>에 이르는 중구난방의 다양한 지형도를 그릴 수 있다.) 4:3 비율의 화면을 영화적으로 잘 구현해 낸 영화는 구스 반 산트의 최근작들 정도만 떠올랐다.

그러던 중,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진행 중인 "영화적 체험" 특별전의 상영작 목록을 보았다. 듣도 보도 못한 감독들의 1900년대 초 영화들로 가득한 목록에서 익숙한 이름이라고는 그레타 가르보, 이 전설적인 여배우의 이름뿐이었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그녀가 출연한 영화 중 한 편인 <크리스티나 여왕>을 보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녀의 클로즈업 된 얼굴이 4:3 화면의 스크린에 영사될 때마다, 황홀했다. 배우의 얼굴이 그토록 시네마틱(cinematic)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난 처음 깨닫고야 말았다.

유럽의 전쟁통 한복판에서 스웨덴의 여왕으로 취임한 크리스티나는 기품과 카리스마를 갖춘 지도자이면서도, 예술을 사랑하고 더 넓은 세계를 동경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개인이다. 왕실 각료들과 국민들은 그녀와 당시의 전쟁영웅인 장군과의 결혼을 강하게 바라고 있다. 이 와중에 그녀는 우연히 스페인에서 온 대사와 만나 사랑에 빠진다. 스페인에 대한 여론이 점점 나빠지면서 이 스캔들을 들은 국민들은 분노하고, 각료들은 그녀에게 여왕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요구한다. 날 때부터 자신을 규정해 왔던 왕의 역할과 이제 막 눈을 뜬 사랑의 자아 사이에서, 크리스티나는 고뇌한다.

그녀의 얼굴에는 다양한 감정의 격랑들이 오고간다. 가로변이 길지 않은 4:3의 프레임은 그녀의 얼굴로 가득 찬다. 흑백의 화면, 오래된 필름 입자들, 빛나는 하얀 얼굴. 여왕으로서의 의무를 이야기하는 친구 같은 하인을 뒤로 하고 창 밖 눈 쌓인 풍경들을 보며 드넓은 바깥세상에의 갈망을 이야기하는 그녀의 얼굴에는 설렘과 불안, 희망과 체념이 교차한다. 스페인 대사와 운명적인 만남을 가진 후 여관에서의 마지막 날 밤, 침대의 기둥을 손으로 감싸 안고 어루만지던 그녀의 얼굴에는 사랑에 눈을 뜨고 피어나기 시작한 여성이 존재한다.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왕좌에서 일어나 여왕의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말하는 그녀의 얼굴에는, 내면의 가장 깊은 곳이 이끄는 대로 커다란 선택을 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용기와 위엄이 서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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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기사와의 결투에서 부상당한 대사는 왕관을 벗고 달려온 크리스티나의 눈앞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둘이 함께 타고 바다를 건너기로 했던 배 위에는 이제 크리스티나만이 남았다.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던 크리스티나는 돛을 올리라 명하고, 뱃머리에 가서 선다. 바람이 분다. 돛이 올라가고, 배가 움직인다. 눈물이 멈춘다. 카메라는 그녀의 얼굴로 빨려 들어가듯 가까이 간다. 무표정한 얼굴. 하지만 흐트러짐 없이 한 곳을 응시하는 눈동자. 운명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자는 늘 선택의 기로에 부딪친다. 그 선택이 주는 책임의 무게는 늘 무겁게 다가온다. 무게를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짊어지고 다가올 새로운 앞날을 응시할 때, 인간으로서의 어떤 성숙을 지니게 될 것이다. 그녀의 눈동자에 반영되던 그 성숙함을 잊을 수 없다. 스크린에 가득 찬 크리스티나를 보며 진심으로 그녀의 건투를 빌었다. 한 사람의 얼굴. 때론 그것만으로도 영화는 진정 영화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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