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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건영
아침 10시 경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매주 원고를 보내는 곳 편집자로부터의 전화였는데, 첫 마디는 “일어나셨어요? 너무 이른 시간에 전화 드린 건 아니죠?”였다. 물론 아니다. 그 즈음이면 이미 사무실에 출근해 하루 일과에 대해 깨작거릴 시간이고 커피 한 잔 마시면서 모니터와 마주할 때이다. 이런 유의 아침 인사, 그러니까 주로 영화판 외부인으로부터 걸려오는 아침 전화인 경우 이렇듯 조심스레 상대의 상태를 확인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가만 생각해보니,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즉 글쟁이들에 대한 편견, 이를테면 글로 밥 먹고사는 사람들이란, 늦은 밤까지 통음하거나 꼭두새벽까지 글을 쓰다 잠들어 해가 중천이나 돼야 일어나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여기는 까닭인 듯싶다. 하기야 내 경우에 국한시켜보더라도 대낮에 일어나 봉두난발에도 아랑곳 않은 채 세상 가장 게으른 자의 모습으로 슈퍼로 직행하는 것이 일과인 시절도 있었으니 완전히 부정하진 않겠다만 요즘 세상에 이렇게 게으름을 피우는 글쟁이가 어디 있을라고. 그랬다가는 밥 굶기 십상일 터. 제 아무리 두주불사로 밤을 지새웠다 해도 아침이 되면 제 할 일 똑 부러지게 처리하는 것이 프로의 참모습 아니던가. 게다가 제 입맛에 맞춰 시간을 사용하다가는 사회부적격인간으로 낙인찍히기 딱 알맞다.
또 한 날은 아침 7시도 안 된 시간에 휴대폰이 울렸고 너무 이른 시간이라 스팸이 아닐까 싶어 일부러 받지 않았는데, 그렇게 몇 차례 전화는 거듭되었다. 아침 일과를 마치고 남겨진 번호를 눌렀더니, 상대는 모 대학원신문사 편집국이었다. 통화를 한 적이 있는 것도 아니요 일면식 있는 관계도 아닌데 원고청탁 때문에 전화했다는 말로 운을 떼더니 “하도 전화를 안 받으셔서 주무시는 줄 알았습니다”라고 한다. ‘하도 전화를 안 받다니’ 내가 빚쟁인가? 내가 돈 떼먹고 달아난 사람이라도 된단 말인가. 내가 그 시간에 전화통화하기로 약속이라도 했단 말인가. 물론 상대의 말뜻을 모르는 바 아니나 7시도 안 되어 걸려온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하도 전화를 안 받는다’는 말을 해대는 편집국장이란 친구의 사고방식은 선뜻 이해가 되질 않았다. 나도 질세라 “요즘 대학원은 새벽반도 있나봅니다.”라고 일갈해주었으나, 영 맘이 편치 않았던 기억이 있다.
인정하기 싫지만 타인의 시간을 위해 나의 시간을 분할하여 내놓아야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자본주의화 된 사회의 작동원리 중 하나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 개인은 결국 누군가의 시간을 위해 자신의 시간을 헌납할 수밖에 없다는 서글픈 현대인의 초상을 그린 로랑 캉테의 <시간의 사용_ L'emploi du temps>이 설득력을 얻는 것도 이 지점이다. 달리 얘기하면 너무 이른 시간도 너무 늦은 시간도 각자의 생활패턴에 의해 스스로 규정지은 설득력 없는 규칙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너무 이른 또는 너무 늦은 시간이란 게 없는 건 아니다. 채권추심업체일지라도 밤 8시 이후에는 전화를 걸어 빚 독촉을 할 수 없고 늦은 밤과 이른 새벽에 전화를 거는 행위가 경우에 어긋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제 아무리 자본주의화 된 시스템이 개인의 시간을 속박한다고 해도 최소한의 프라이버시는 인정해야 한다는 묵시적 약속일 테다.
언젠가 후배가 ‘힘 있는 자’의 정의를 물어왔을 때, 돈과 시간을 내 맘대로 쓸 수 있는 자가 힘 있는 사람이라고 단정 지어 말한 적이 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진짜 권력자는 시간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사람이다. 가령 경찰에서 전화가 왔는데,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자는 공권력의 요구에 항변하지 못하고 상대가 정한 시간에 맞출 수밖에 없지만, 힘 있는 자는 자기시간에 따라 상대의 일정을 조정하고 변경하며 때론 무시하기도 한다. 시간을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는 말은 참이다.
돈이야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도 시간만큼은 내 뜻대로 사용하면서 살고 싶은 게 인지상정일 것이다. 이것은 프리랜서의 자유로운 시간활용과는 다른 차원의 얘기다. 말하자면 사회경제활동을 할 때 상호관계가 훼손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나의 의도대로 시간을 조절하며 살아감을 뜻한다. 이 정도가 되려면 얼마간의 성공과 경제적 안정이 뒷받침돼줘야 할 터이다. 말이 그렇지 언감생심 그런 날이 올 리 만무하겠지만 가끔 걸려온 전화의 상대가 나의 스케줄을 조심스런 어조로 묻을 때마다 혼자 피식 웃곤 한다. 나의 시간이 아직은 내 것이구나. 하고 말이다. 오랜 만에 <시간의 사용>을 다시 봐야겠다.
(추신) 영화사 ‘아침’의 정승혜 대표가 세상을 떠났다. 마흔 네 살의 아직은 너무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했다. 그와는 공식석상에서 단 한 차례 인사를 나눈 적이 있을 뿐이다. 언론이 앞 다퉈 부음을 전하고 있지만, 특별한 친교를 나눈 사이도 아닌 마당에 입에 발린 글로 애도하는 것이 주저된다. 한국영화계는 재기 넘치고 올곧은 좋은 제작자를 잃었다. 그것이 안타깝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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