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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사 만족할 줄 알고 그것을 실천하면 평생 치욕을 당하는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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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르뽀/배트남에 희망 뿌리 내린 윤희진 다비육종대표

2009.01.13 16:44 | 장지헌이 만난 사람 | 우림

http://kr.blog.yahoo.com/wkd3556/1577 주소복사



‘내 돈으로 전기 끌어 들이는데 9개월…’
인프라 구축 어려움 딛고 ‘꿈이 꿈 만들어
’2004년 CJ와 합자, 베트남 진출빈증성에 3만2천평 종돈장 구축
“투자회수 늦더라도 꿈을 키워야”장학금 지원·교육연수원도 추진
현지인력 육성 ‘꿈의 씨앗’ 뿌려

헤르만헤세 이후 독일 최고의 작가로 평가받는 한스크루파는 ‘나비의 입맞춤’이란 글에서 “꿈을 접은 사람은 다른 사람의 꿈조차 앗아 간다”며 이성적인 삶보다는 꿈이 있는 삶을 강조했다. 그 만큼 우리 삶에 있어서 꿈이 갖는 의미는 크다. 삶이 어렵고 힘들수록 꿈은 더욱 소중하다할 것이다. 새해를 맞아 특집으로 꿈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 주인공은 (주)다비육종 윤희진 대표다.

윤 대표는 지난 1983년 현 다비육종의 근간이 된 대월종돈장을 설립한 이후 많은 꿈을 꾸고 또 그 꿈을 실현했다. 급기야 국제적인 권위를 지닌 일가재단(이사장 김상원)도 그를 인정, 2008년 일가상 수상자로 선정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이제 꿈의 나래를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도 펼치고 있어 축산인들로부터 관심을 끌고 있다. 본지는 그가 꿈꾸는 해외 현장을 2개월여 전인 지난해 10월 말경에 다녀왔다. 그때의 그 현장으로 시간을 되돌려 본다.

■고무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꿈의 현장

그러니까 2008년 10월 23일 베트남 시각으로 오전 10시경, 호치민시 빈증성(平陽城)에 위치한 다비육종으로 가는 길은 온통 고무나무로 뒤덮여 있다. 말로만 듣던 고무나무 숲, 그것은 이곳이 이국 땅 베트남임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다. 그야말로 이국만리 머나 먼 땅에서 우리 축산이 진출해 있다는 것을 생각하니 우리 축산에 대한 뿌듯한 자부심마저 인다.

드디어 정문 앞에 도달하니 반가운 한글이 보인다. 본지 취재진을 환영하는 현수막과 함께 선명한 다비육종 간판이 새삼 반갑게 눈에 들어 온다. “여기가 윤 대표가 꿈꾸던, 그 꿈의 현장인가” 어리둥절한데, 현지 베트남인들이 눈웃음으로 취재진을 맞이한다. “누가 그 현지 베트남인들을 웃게 하는가” 생각하니 윤 대표가 그동안 고생한 보람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호치민시에서 이곳까지 약 1시간 가량 차를 타고 오면서 윤 대표는 그동안 어떻게 배트남에 투자할 것을 결심했는지, 또 그동안 베트남에서 어떤 어려움 끝에 오늘이 있었는지 말해줬다.투자의 안전성이나 소비 동향 등을 감안할 때 중국이나 필리핀, 그 외 인도네시아 등 회교도 국가에 비해 베트남은 확실한 경쟁력 우위에 있었다고 판단했고, 그 판단은 틀리지 않아 베트남의 무한한 축산 성장 가능성만큼 다비육종의 성장 가능성도 그만큼 크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고 없고, 꽃도 바람에 흔들리며 피는 법, 베트남 진출 초기에는 인프라 구축의 어려움 등으로 많은 고생을 했다고 한다. 특히 전기를 내 돈 주고 끌어다 쓰는데 9개월이 걸렸다고 하니 그 어려움을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또한 현지 인력을 모집하고 교육하는 과정 역시 우여곡절이 많았다는 것이다.

■현장 소장도, 현지인도 ‘윤희진’을 꿈꾸다

농장내에 위치한 현장 사무실에 들어서자 윤 대표는 간단한 업무 파악과 함께 업무 지시를 한 후 취재진과 마주 앉았다. 그 옆에는 현장 소장인 윤우식씨, 수의사인 김태연씨, 그리고 베트남 현지인으로 팀장을 맡고 있는 짱씨(29세)가 배석했다.인터뷰 주제는 꿈이다. 우선 현지인 짱씨의 꿈이 궁금했다.
호치민 농업전문학교를 졸업한 그는 분만사 팀장으로서 열심히 양돈기술을 배우고 있다며 지금 당장 돈을 버는 것보다 양돈 기술을 배우는 것에 매우 큰 의미를 두고 있었다. 언젠가 그도 자기 농장을 갖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에 까지 다녀갔다. 그의 꿈은 ‘베트남의 윤희진’이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윤희진’을 꿈꾸는 한 사람이 더 있었다. 현지 법인 소장 윤우식씨다. 그는 지난 5년 동안 베트남 현지 문화를 익히고 현지인과 부대끼며 베트남 다비육종의 오늘이 있게 한 일등공신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이 윤 대표의 설명이다.
그럼에도 그는 공신임을 내세우기 보다는 책임감을 강조했다. 그리고 꿈을 말했다. “앞으로 5년 내지 10년후 내 농장을 갖고 제2의 윤희진이 되고 싶다”는 것이었다.

꿈은 꿈을 만드는가. 윤 대표는 이렇게 꿈의 씨를 뿌리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현지 베트남 대학에 장학금을 지원하고, 교육을 위한 연수원 운영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이 다 그런 꿈의 씨앗인 셈이다.

그렇다고 꿈을 뒷받침할 수 있는 현실적인 자본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된다. 때문에 이곳 베트남 투자에 대한 회수가 언제부터 이뤄질 것인가가 궁금했다. 윤 대표는 “새해 부터는 조금씩 회수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투자 회수가 다소 늦어지더라도 베트남 축산 투자의 징검다리 역할은 충분히 한 것”이라며 베트남 투자 선도 축산인으로서 의미를 부여했다.

■꿈 바이러스 가득한 2009년을…

다비육종은 지난 2004년 CJ와 합자, ‘다비-CJ 제네틱스’를 설립, 현재 빈증성 벤깟군에 3만2천평의 부지위에 종돈장을 조성한 이후 지난 2007년에는 처음으로 베트남 현지에 종돈을 분양했다. 투자에 대한 회수가 이뤄지기 시작한 것이다.따라서 윤희진 대표의 꿈이 이제 해외에서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다시 한 번 주목할 것은 윤 대표가 자신의 꿈만을 실현시키는 것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에게 꿈을 심어주고 있다는 것이다. 윤 대표의 그런 꿈의 바이러스가 많은 축산농가에게도 전염됐으면 한다. 어려운 상황이 예상되는 2009년이라 그런 기대감이 더욱 크다.

대잇는 축산가족 이야기/충북 청원 곽한무 수영 부자

2008.03.03 15:22 | 장지헌이 만난 사람 | 우림

http://kr.blog.yahoo.com/wkd3556/1572 주소복사

대잇는 축산가족 이야기 (5)
충북 청원군 태산목장 곽한무․수영 부자

“소비자 시대 어떻게 부응할까 고민…축산인 자세가 중요”

<낙농 시작…그리고 지금은>
父 “상업 접고 전공살려 시작…개량으로 자부심․ 비전 가져”
子 “어려서부터 즐겨하던 일 적성에 맞아 목장일에만 전념”

<힘들었던 때…그리고 보람은>
父 “사료포 개간 가장 힘들어…적정규모 유지 알뜰한 경영”
子 “하루도 쉴 수 없는 일…그러나 목장일 천직으로 여겨”

<앞으로 계획과 서로 하고 싶은 말은>
父 “승마장과 함께 소비자 찾는 목장기반 조성…아들 믿어”
子 “자립 경영위한 이론 실기 접목 노력…지켜봐 주세요”


‘우리 축산에 미래가 있는가’
사료 값은 천정부지로 오르고, 수입 축산물은 넘쳐나는데 축산산업이 환경 오염산업이라는 부정적인 인식마저 팽배해 있다 보니 이 같은 화두가 자연스럽게 던져진다.
그러나 축산에 놓인 상황이 하나같이 힘들고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우리 축산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적지 않다.
충북 청원군 낭성면 지산리, 태산목장의 곽한무(56)․수영(26)부자도 우리 축산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내다보는 대잇는 축산인이다.
무엇을 보고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젖소검정중앙회충북연합회장, 낙농자조금관리위원, 종축개량협회감사라는 곽한무 대표의 또 다른 직함 때문이 아니다.
그 판단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목장주의 축산에 대한 철학과 축산기반 조성을 위한 투자, 그리고 대를 이을 후계자를 보면 대충 파악된다.
그러면 태산목장은 이 같은 기준에 어느 정도 부합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요즘 축산 현장에서 축산이 어렵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여러 가지 상황을 볼 때 어려운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축산인들이 축산현장에서 할 바를 다하고 있는지에 대해 우선 되돌아봐야 합니다.”
곽한무 대표는 현재 축산업계에 놓인 현안과 관련, 이렇게 축산인의 자세부터 강조한다. 축산인으로서 할 바를 다해야 정부에 대한 요구도 당당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축산인으로서 해야 할 바, 그 일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생산 기반을 다지고, 개량 등 생산성 향상에 대한 관심을 갖고 투자하는 것입니다. 특히 이제 소비자 시대를 맞아 소비자들이 요구하는 축산물을 어떻게 생산할 것인지 고민하고 또 실천해야 한다.”
-태산목장은 실제 어떻게 실천하고 있나.
“우선 조사료포가 4만여평 된다. 1톤 정도 납유하는 우리 목장 규모를 감안할 때 최소한의 생산 기반은 갖췄다고 본다. 개량은 그랜드챔피언 등 수차례 수상 경력을 보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은 산유량보다 체형 개량이나 소비자 요구를 감안한 유단백 중심의 젖소 사양관리에 관심을 갖고 있다.”
이처럼 곽 대표는 자신에 차 있다. 이쯤해서 대를 이을 후계자인 아들 수영씨의 이야기도 들어보지 않을 수 없다. 한국농업대학에서 낙농을 전공하고 4년째 낙농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그다.
-축산업의 대를 잇는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갈등은 없었나.
“어릴 때부터 소를 보고 자라서 그런지 소를 돌보는 일이 적성에 맞는 것 같다. 농고를 졸업하고 농업대학에서 낙농을 전공하면서 선택을 잘했다고 생각했다.”
-축산 중에서 낙농을 선택한 이유는.
“타 축종보다 자금 회전이 빠르다는 것이 매력이다. 하루라도 쉬는 날 없이 목장에 묶여있다는 것이 단점이긴 하다. 그러나 낙농 현장에서 일하면서 처음 1년반 정도는 남들처럼 시내에 나가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별 도움이 되는 것도 없고, 흥미도 없었다. 그래서 목장에 틀어박혀 소를 돌보는 것을 낙으로 삼고 있다.”
우리는 흔히 그 일을 타고났다는 의미에서 천직(天職)이란 말을 한다. 아들이 이렇듯 낙농을 천직으로 여기며 묵묵히 일하고 있으니 아버지는 그 아들이 얼마나 든든하고 기특할까. 곽 대표가 미래를 긍정적으로 내다보는 이유가 이것으로 충분히 증명됐다할 것이다.
하지만 태산목장이 이렇게 낙농기반을 다지고 아들이 대를 이어 목장을 관리할 수 있게 된 것이 결코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은 물론 아니다.
곽 대표는 청주농고를 졸업하고 3년 정도 상업에 종사할때까지만 인생의 큰 비전을 갖지 못하다가 1982년 전공을 살려 낙농을 시작한 것이 오늘을 있게 한 밑바탕이 됐다. 그러나 처음부터 낙농이 호락호락한 것은 아니어서 소를 몰라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그래서 관심을 가진 것이 개량이었는데 1984년 목장을 청주 근교에서 현재의 이곳으로 옮기면서 본격적인 낙농을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 남의 소를 구입해서 사육하다가 ‘내 소는 내가 만든다’는 일념으로 개량에 심혈을 기울이다보니 생산성이 향상되면서 자부심을 갖게 됐고 아울러 낙농비전을 스스로 갖게 됐다는 것이다. 85년 이후 충북도 최우수 10회, 95년의 중앙대회 챔피언, 99년 그랜드 챔피언 등의 수상 기록이 그것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조사료 기반이었다. 고능력 젖소 사육을 위해서는 일정규모의 조사료 기반 확보가 필수적인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쉽지 않았는데, 특히 사료포 개간에 따른 여러 가지 법적인 문제에 봉착,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때 그 일이 얼마나 어려웠던지 “그동안 가장 어렵고 힘든 일이 무엇이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사료 기반 확보”라고 대답할 정도였다. 이어 “우유가 남아돌아 낙농가들이 어려움을 많이 겪은 시절이 있지 않았느냐”고 다시 묻자, “그동안 내 힘에 맞게 목장 규모를 유지해 왔기 때문에 그런 어려움은 없었다”며, 앞으로도 욕심내지 않는 적정 규모의 낙농 경영이 긴요함을 강조했다.
현재 태산목장의 낙농 규모는 착유우 33~34두 규모다. 20년 넘게 낙농을 하면서 개량선도농가로서 지역 낙농을 이끈 목장치고 규모가 적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욕심내지 않는 적정 규모의 낙농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태산목장은 요즘 우유 생산량을 늘리는 일 보다 더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있다. 그것은 소비자 시대를 겨냥한 친환경 체험목장이다. 소비자들이 목장을 찾아 우유가 얼마나 안전하고 깨끗하게 생산되는 지를 체험하도록 함은 물론 목장에서 직접 만든 치즈 등을 시식케 함으로써 그동안 그릇된 낙농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불식시키는 일이 그것이다. 특히 태산목장은 체험목장 프로그램에다 승마 프로그램을 도입, 보고 즐길 거리를 보탬으로써 더욱 경쟁력 있는 목장을 꿈꾸고 있다. 그 승마장은 큰 아들인 **씨(28세)에게 맡기고 있으니 삼부자가 목장을 가꾸고 있는 셈이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과 부자간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1톤 규모의 목장을 유지하면서 소비자들이 즐겨 찾는 목장으로 가꿨으면 한다. 물론 아들이 잘 하리라 믿는다.”
“아직은 부족한 것이 너무 많습니다. 학교에서 배운 이론이 아버지의 경험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혼자서 알아서 경영할 수준에 이르기까지 노력하겠습니다. 잘 지켜 봐 주십시오.”
이렇게 부자(父子)의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니 해가 서쪽 하늘 중간쯤 가 있다. 목장 위치가 북향이다보니 그렇지 않아도 추운 겨울 날씨가 더욱 춥게 느껴진다. 거기다 우사 규모에 비해 소가 적어 더욱 쓸쓸한 느낌이다.
‘이런 입지 조건에서 어떻게 체험목장이며, 승마장을 운영할까’ 싶어 의아해 하던 참인데, 곽 대표는 우리를 차에 태우고 목장 뒤편 언덕길을 올라간다. 그런데, 그 위에 펼쳐지는 사료포는 전혀 딴판이었다. 잘 가꾸면 체험목장으로서 승마장과 어울려 소비자들이 즐겨 찾을 만한 그런 입지였다. 그저 우사만 보고 품었던 의문이 저절로 풀렸다.
장지헌

대잇는 父子 축산인의 ‘희망 이야기’ / (4) 경기도 화성 이정배·재형 父子

“짐승은 사람 손끝에 살쪄요…시세에 일희일비말고 성적 향상에 전념해야”

<양돈, 어떻게 시작했는지>
父 “운수업서 전업…불황을 기회로 삼아 돼지 마리수 늘려”
子 “일반대학 졸업 후 농업대학에 다시 입학 전문 양돈가로”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선>
父 “농장 주인이 농장 떠나지 말아야…농장 일꾼이 성적 좌우”
子 “어려울수록 기본 매우 중요…소독, 청소, 기록 철저기해야”

<부자간 서로 하고 싶은 말은>
父 “스스로 노력한 만큼 대가 반드시 따라…긍정적 사고를”
子 “기반 물려준 아버지께 감사…친환경 양돈 꼭 이룰 것”


“짐승은 손끝에 살찐다.”
축산 현장에서 가축관리를 잘해야 한다는 것을 한 마디로 표현하는데 있어, 이보다 더 피부에 와 닿게 표현할 수 있는 말이 무엇이 있을까.
오늘의 대 잇는 축산가족 주인공인 광명농장 이정배․재형 부자. 아버지가 말하고 아들이 전적으로 공감한 말이다. 특히 서경양돈조합 조합장이기도 한 이정배씨는 말에 대한 책임을 지는, 의리와 신의를 생명같이 여기는 사람으로 정평이 나있다. 그런 만큼 광명농장의 돼지들은 그의 말대로 사장을 비롯한 말단 일꾼에 이르기까지 돼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손끝에 살이 찌고 있다.
외양으로 보기에는 시설이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은 것 같은데, 성적은 MSY(연간모돈 한 마리당 출하두수) 20두를 웃도는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임직원들의 손끝이 사랑스러우면서도 부지런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도대체 농장을 어떻게 돌보기에 돼지가 사람의 손끝에 살이 찔까?
“가정집이 따로 있지만 잠을 집에서 자지 않고, 농장에서 잠을 잡니다. 조합 업무 등 바쁜 일이 있어 늦게 들어와도 반드시 농장을 한 바퀴 돌아보고 잠을 잡니다. 연중으로 따지면 350일 정도는 농장에서 잠을 자는 편입니다.”(父)
“아버지는 종업원이든 누구든 돼지를 때리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습니다. 실제 돼지를 때리다가 해고당한 직원들도 있습니다.”(子)
아들이 농장장 역할을 하면서 농장을 지키고 있으면 아버지는 믿고 맡겨도 되련만, 이렇듯 조합장으로서 공인인 아버지가 농장에서 반드시 잠을 정도이니 농장 성적이 좋은 것은 당연한 결과이리라.
경기도 화성시 온석동 417번지 1만평 가까운 부지에 5천여 두 규모의 광명농장. 이 농장이 설립된 것은 30년 전이다. 처음 축산을 어떻게 시작했을까. 대 잇는 축산가족 누구에게나 가장 먼저 던지는 질문이다. 그런데 이 조합장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이외였다.
“세금 때문이었습니다.”
“세금 때문이라니?” 무슨 의미냐고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당시 운수업을 하고 있었는데, 세금 부담이 너무 커 양돈은 그렇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무작정 시작했습니다.”
아무튼 그 때만해도 단독 주택 한 채 값인 1백만 원으로 암퇘지 두 마리와 수퇘지 한 마리를 구입해 돼지를 사육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게 시작한 양돈이 5년 만에 2백 마리 규모로 늘어남으로써 본격적인 양돈업의 길로 들어섰다는 것이다. 80년대 축산의 특징이 주기적인 호․불황이 거듭되던 시절이라 불황을 피할 수 없었지만 그때마다 돼지 사육두수를 늘리며 불황을 극복해왔는데, 82년의 불황 극복 사례는 초창기 축산 농가의 희비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돼지 한 마리에 500원으로 떨어지는 불황이 닥쳤습니다. 때문에 많은 양돈농가들이 손을 들었지요. 그러나 저는 오히려 수천마리를 구입했습니다. 사육 시설이 없어서 비가림 시설만 대충하고 D사료 회사와 사료를 신용 거래하며 6개월을 버텼지요. 그랬더니 5백원 하던 돼지가 20만원이 넘게 오르더라고요.”
이 때 오늘의 양돈 기반을 갖게 된 셈이다. 운이 따랐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조합장의 양돈하는 자세를 보면 결코 운이었다고만 할 수 없다.
“저에게 고민은 돼지 값 하락여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돼지를 잘 기를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돼지만 잘 키워 놓으면 돈을 벌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밤늦게 귀가하더라도 반드시 농장에서 잠을 자는 이유가 바로 이 같은 양돈 철학에 기인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아들 재형씨는 어떤 자세로 양돈에 임하고 있을까. 일반대학에서 4년을 공부하고, 양돈이 적성에 맞다고 판단, 3년 과정의 한국농업대학을 다시 졸업한 그다.
“어릴 때부터 돼지와 노는 것이 재미있었습니다. 캐나다에서 1년간 양돈 연수를 하면서 양돈에 대한 더욱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생각을 갖게 됐습니다. 아버지 말씀처럼 가격은 운명에 맡기고 양돈 성적 향상에 전념을 다할 것입니다. 6개월 후 돼지를 출하한 후 결과를 기대하면 일하는 재미가 절로 납니다.”
그러면 양돈을 체계적으로 공부한 양돈 전문가로서 양돈 성적을 올리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무엇이라고 생각할까.
“사람입니다. 돼지를 관리하는 사람이 얼마나 정성을 다하느냐에 따라 성적이 크게 좌우됩니다. 우리 농장에서 직원들에 대한 복지에 많은 신경을 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농장 직원이 자주 바뀌면 농장 성적이 나빠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는 캐나다 연수에서 배운 것이기도 합니다.”
부전자전이다. 이 정도면 더 물어볼 것도 없다. 그래도 양돈 성적을 향상을 시키는 노하우가 없을까 싶어 환경이나 질병 문제 등 양돈 현장의 애로를 어떻게 극복하고 있는 지 물었다.
“기본을 돌아보는 일입니다. 신선한 사료를 급여해야 합니다. 소독에 대한 개념을 확실히 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항상 깨끗한 환경을 유지하기 위한 청소를 한 번이라도 더 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록하는 습관입니다. 기록이야말로 더 좋은 성적을 위한 더 없이 훌륭한 기초가 됩니다.”
어려울 때 일수록 기본을 강조하는 축산인들의 이야기를 한두 번 듣는 것이 아니지만 이 농장의 이곳저곳을 살피면 그 기본의 중요성을 새삼 절감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계획과 부자간 서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었다.
“최근 양돈이 어렵다고 한다. 그러나 힘들더라도 ‘하면 된다’는 자신감과 긍정적인 사고를 강조하고 싶다. 자기 스스로 노력했을 때 그 만큼의 결과도 있다. 무조건 정부에 기대어서 될 일이 아니다. 축산인 절반이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면, 그 절반에 포함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父)
“앞으로 5천두 규모를 유지하며, 소비자 시대에 걸맞는 친환경 양돈, 안전한 돈육 생산으로 더욱 경쟁력있는 농장으로 가꿔 가겠습니다. 그동안 이만한 기반을 닦으신 아버지께 감사하며 미흡하지만 더욱 발전된 광명농장이 되도록 하겠습니다.”(子)
농장 한 구석 10평이 채 안 되는, 직원들이 식사할 때 주로 이용하는 온돌방에서 나눈 대잇는 축산가족의 대화는 이렇게 끝이 났다.
기자가 수첩을 접자, 아버지가 “좀 더 열심히 해, 안 그러면 월급 안올려줘.”라며 아들을 다그친다. 부드러우면서도 내심 긴장을 늦추지 말 것을 당부하는 모습에서 오늘의 광명농장이 결코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님을 느끼게 했다.
글 장지헌․사진 이일호

대잇는 축산가족/오무홍 한성부자

2008.02.04 12:00 | 장지헌이 만난 사람 | 우림

http://kr.blog.yahoo.com/wkd3556/1567 주소복사

대잇는 父子 축산인의 ‘희망 이야기’(3) / 경기도 이천 신둔양계장 오무홍·한성 부자

“고곡가 시대, 생산성 향상에 힘써야죠…외상사료 쓰지말고”



▶▶ 산란계 사육동기
父 “형님 아래서 일 거들다 독립…40년 외길 걸었지요”
子 “내가 제일 잘하는 일이 양계장일이라 생각했습니다”
▶▶ 현재 사육규모와 계획은
父 “이천에서 2만5천수 규모…작지만 알뜰하게”
子 “장호원에서 7만수 규모…더욱 경쟁력있게”
▶▶ 닭 잘 키우려면
父 “철저한 환경 관리 노력…다음날 날씨 반드시 확인”
子 “무창계사 시스템 일부 문제점 보완 하면 경쟁력 있어”
▶▶ 아버지가 말하는 아들, 아들이 말하는 아버지
父 “저보다 낫습니다. 하고자 하는 의욕이 돋보입니다”
子 “밤에도 몇차례씩 계사 온·습도 살펴…존경스러워요”

“앞으로 닭 사육은 늘어나고, 인구는 줄어 소비가 감소할 것을 생각하면 양계산업 전망은 밝지 못하다.”(父)
“결국 경쟁력의 문제다. 규모를 더욱 경쟁력있게 키우고 생산성 향상과 생산비 절감에 노력하면 비관적이라고 할 수 없다.”(子)
앞으로 산란계 산업 전망이 어떨 것이냐는 질문에 대한 대를 잇는 산란계 농장 오무홍(68세)·한성(28세) 부자의 답변이다.
같은 질문이라도 이렇게 아버지는 부정적인 전망인데 비해, 아들은 긍정적인 전망을 말하고 있다는 사실이 무척 반갑다.
그렇다. 이 대를 잇는 축산 가족에 대한 릴레이 인터뷰 목적이 우리 축산의 희망을 말하기 위함에 있기 때문이다.
경기도 이천시 신둔면 소정리 33번지, 2만5천수 규모의 신둔양계장. 중부고속도로에서 서이천 진출로를 빠져나와 이천과 광주로 갈라지는 큰 길에서 광주 방향으로 좌회전 하면 왼쪽으로 ‘한국도요’라는 큰 간판이 보이는데 그 바로 옆집이 신둔양계장이다.
굳이 위치를 설명하는 것은 양계장이 큰 길 가에 있는데다 유명한 도자기 판매장 곁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즉 흔히 혐오 시설로 인식되는 양계장이 관광객이 적지 않게 드나드는 곳에 위치해 있다는 것은 그 만큼 이 양계장이 깨끗하고, 냄새도 적다는 이야기다. 이 양계장을 찾아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작업복 차림의 오무홍씨가 저만치서 걸어온다. 그런데 걸음걸이가 불편해보였다. 어릴 때 소아마비를 앓았기 때문이란다. 직감적으로 양계장 관리에 있어 다른 어느 농장보다 각별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인이 된 후 형님 아래서 몇 년 양계장 일을 거들다가 70년대 들어 하우스에서 본격적으로 양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며 말문을 연 오무홍씨는 지난 40년 가까이 오직 닭과 함께한 시간 동안 겪었던 일들을 어떻게 말로 다하느냐는 듯 기자의 다음 질문을 기다렸다.
“그동안 가장 힘들었던 일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런데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아들이 세살 때 척추결핵을 앓았습니다. 잘못되면 곱추가 되는 병이었지요. 그 때 수술을 한 이후 초등학교 입학할 때까지 고생했습니다.”
아들 한성씨를 새삼 다시 쳐다보지 않을 수 없다. 지금 한성씨의 모습은 매우 건장한 모습으로 어릴 때 그런 고생을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들이 양계업을 물려받기로 한 동기가 더욱 궁금했다.
“저도 처음부터 이 일을 좋아한 것은 아닙니다. 일 하는 것이 힘든 것도 힘든 것이지만 일만하고 자유시간이 없는 것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시내에 가서 취직할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데 영국에 어학연수차 갔다온 적이 있는데 그때 부모와 떨어져 있으면서 고생한 경험이 내 인생의 중요한 전환기가 된 것 같습니다. 귀국해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래도 내가 제일 잘하는 것은 양계장에서 일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잘하는 일을 하자고 결심한 것이지요. 마침 장호원에 좋은 농장 매물이 나와서 본격적인 양계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닭에 대한 남다른 애정으로 생산성을 높여 나가고 있는 오무홍(가운데) 한성 부자. 오른쪽은 오무홍씨와 함께 양계장을 일궈온 부인 박석순씨.

이천시 장호원읍 나래리에 7만수 규모의 양계장이 바로 그 양계장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들이 아버지보다 더 큰 양계장을 갖고 꿈을 펼치고 있다는 이야기다. 동시에 산란계를 사양관리하는 기술도 아버지보다 아들이 더 낫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아들은 손사래를 쳤다. 아직 아버지의 경험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닭을 보는 눈이 뛰어 납니다. 특히 중추를 구입할 때 건강한 병아리를 귀신같이 골라냅니다”라며 “아버지 그렇지 않습니까”라고 되묻는 표정이다.
이에 아버지는 “닭을 키우는데 있어 환경이 매우 중요합니다. 적당한 온도나 습도 조절이 사료 조절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특히 건강한 닭은 운동을 할 수 있는 환경에서 자란 것입니다”고 말하자 곁에 앉은 부인 박석순 씨가 거든다.
“이 가근방에는 우리 농장 성적이 가장 나은 편에 속할 것입니다. 산란율이 95~ 97%가 되는데 더욱 중요한 것은 높은 산란피크를 오래도록 지속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좋은 성적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역시 닭에 대한 남다른 애정 때문일 것입니다.”
축산인치고 자기가 사육하고 있는 가축에 대한 애정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만 그래도 남다른 애정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듣고 싶었다.
“아버지께서는 저녁 9시 뉴스를 반드시 봅니다. 정치나 경제 같은 뉴스를 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기상 정보를 알기 위해서입니다. 내일 날씨 예보에 따라 계사 온도 관리를 하기 위해서죠.”(子)
“밤에도 몇번이나 들락날락하면서 계사 환경에 신경을 씁니다. 남들은 귀찮아서라도 그렇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婦人)
이쯤 되면 농장 성적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또한 닭에 대한 애정이 부전자전이면 성적 또한 부전자전이 아니겠는가. 그렇지만 부자간 견해가 다른 것도 있지 않을까 싶어 물었다. “닭 사육과 관련 의견이 다른 것은 없느냐?”고.
“있습니다. 저는 무창 계사를 구상하고 있는데 아버지는 신중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무창 계사는 관리가 용이해 규모화가 가능하고, 인건비도 절감되는 이점이 있습니다. 몇 가지 시스템상의 문제를 보완하면 승산이 있습니다.”(子)
“닭은 햇볕을 봐야 건강합니다. 마리수를 많이 늘리는 것보다 알뜰하게 관리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父)
세대차이로 볼 수 있는 문제지만, 부모와 자식 간에 사업을 놓고 부모가 자식을 아끼고 걱정하는 마음과 자식의 사업을 더욱 번창시키고자 하는 의욕이 잘 드러난 부자간의 대화가 아닐 수 없다.
사료 값 상승 현안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 지도 묻지 않을 수 없다.
“생산성을 올리는 노력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특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사료를 현금 구매해야 합니다. 사료 외상 구입은 이자 부담 때문에 결국은 ‘남좋은 일’만 하고 나는 손해를 보는 결과를 초래하고 맙니다.”(父)
“질병 예방을 위해 농장을 더욱 깨끗하고 위생적으로 유지하고, 환기 등에 좀더 신경을 많이 써 호흡기 질병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는 노력이 절실합니다.”(子)
마지막으로 앞으로 계획과 부자간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을 들었다.
“앞으로 계획이래야 현행 규모를 유지하면서 더욱 알뜰하게 힘닿는 데까지 열심히 하는 것밖에 더 있겠습니까. 아들은 저보다 낫습니다. 무언가 하려고 하는 의욕이 있어 좋고, 무엇이든 제할 탓이기 때문에 믿고 지켜볼 것입니다.”(父)
“양계산업 전망이 어렵다 해도 저는 낙관적으로 보고, 규모를 좀 더 경쟁력있게 키워 갈 생각입니다. 아울러 광주 이천 지역의 젊은 양계인들이 다한영농조합법인을 결성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저는 나중에 가입했습니다만 지역 양계인들과 함께 양계산업이 더욱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님께 감사합니다. 이런 기반을 갖추기까지 부모님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특히 닭 사육과 관련한 좋은 경험과 노하우는 제가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가장 귀중한 유산입니다. 정말 고맙게 생각합니다.”(子)

대잇는 축산가족/윤두현 범준부자

2008.02.04 11:59 | 장지헌이 만난 사람 | 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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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잇는 父子 축산인의 ‘희망 이야기’ / (2) 경기도 이천 윤두현·범준 父子

“축산이 천직…꾸준히 일하다보니 길이 열리더라구요”


축산을 선택한 특별한 동기는
父 “소 키우는 걸 생업으로 알고 규모 늘려왔죠”
子 “그저 어릴때부터 일하는 것이 즐거웠을 뿐”

농장을 그만 두고 싶었을 때는
父 “질병으로 한꺼번에 수십두가 폐사 됐을때”
子 “월급받고 일하는 것이 부러워 한때 외도”

소를 잘 키우려면
父 “축사 환경이 중요…송풍과 채광 특별한 신경을”
子 “퇴비장 시설 충분히 확보 분뇨처리 걱정 없애야”

서로에게 한마디
父 “경기 호·불황에 개의치말고 꾸준하면 승산”
子 “아버지가 자랑스러워요. 많이 닮고 싶습니다”


대잇는 축산가족과의 만남, 두 번째 주인공은 경기도 이천시 호법면 주막리 산11번지에서 220두 규모의 한우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윤두현(57세)·범준(27세) 부자다.
지난 3일 아침 일찍 농장을 찾았다. 이천축협 조합장을 2선째 맡고있는 윤두현씨의 바쁜 일정 때문이었다. 농장에 들어서자 작업복 차림의 두 부자가 반갑게 맞았다. 그리고 아침 식사를 함께 하자며 식탁에 앉기를 권한다. 이미 아침 식사를 한 다음 농장을 방문한 취재진은 두 부자의 아침 식사가 끝나기를 기다리는데, 식사하는 모습이 참 소박하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한우가 2백마리가 넘고, 농장 부지가 6천9백평에 달하는 자산을 어림잡아 계산해도 수십억원이 된다. 그럼에도 조촐한 아침상에 앉은 두 부자의 모습은 농촌에서 사는 사람들의 꾸밈없는 일상 그 자체라 할 것이다.


위사진은 처음우사를 신축했을때 중간에 물받이를 설치, 지붕이 낮아 통풍이 잘 안됐다. 아래는 단점을 보완해 지붕이 높아 통풍이 잘 됨으로써 항상 축사바닥이 건조하다.

두 부자의 한우 사육동기가 우선 궁금했다. 우선 아버지가 말문을 열었다.
“특별한 동기가 있었다기보다 농촌에서 농사를 지으며 소도 몇 마리 사육한 것, 그것이 전부입니다. 그저 꾸준히 생업이라고 생각하고 한우 규모를 늘려왔습니다.”
좀 특별한 동기를 기대했는데 답이 좀 싱겁다. 이번에는 아들에게 특별한 동기가 있을까 기대했다.
“어렸을 때부터 일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아예 여주자영농고와 전문학교를 다니면서 한우를 사육하기로 작정했습니다.”
애당초 특별한 동기를 기대했던 것이 잘못이었을까. 해서 거꾸로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동안 소를 사육하는 일을 하면서 싫증난다거나 소를 키우는 일이 아닌 다른 일을 하고 싶을 때는 없었느냐”고.
▲子 “왜 없었겠습니까. 한 동안 소키우는 일이 싫어서 골프장에 가서 일도 해보고, 다른 목장에서 월급을 받아가면서 일도 해 봤습니다. 매달 월급받는 일을 하고 싶어서 7~8개월 정도 농장을 떠나 있었는데 결국 내가 일할 곳은 현재 이곳이라는 생각이들더군요. 그런데 다시 농장으로 돌아와 본격적으로 소를 사육하는데 큰 소를 4마리나 죽이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 때는 정말 겁이 나더군요. 아버지께 혼날 생각하니 그것도 두렵고...”
▲父 “진짜 소를 키우기 싫은 때가 있었지요. 언젠가 소 20마리가 몽땅 아까바네병에 걸려 장님송아지가 나오고, 절름발이 송아지가 나오는 등의 어려움을 겪은 일이 있는데, 그 때는 정말 소 사육을 포기하고 싶더라구요. 그 이후에는 또 번식우가 설사를 해서 40여마리가 폐사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로마는 하루 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는 말이 언뜻 생각난다. 역시 2백여두 규모의 한우농장이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부자(父子)는 이런 어려움을 겪으면서 덕평리 농장을 처분하고 이곳으로 소를 모으면서 본격적인 규모화에 나섰다. 우선 우사를 새로 짓는데, 그동안 폐사 경험이 큰 힘이 됐다. 소 사육 환경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이다. 우사의 통풍과 채광을 최우선시 하면서 사양관리 방법도 그동안 쌓은 노하우를 적극 활용, 이제는 폐사가 한 마리도 없을 정도라는 것이다.
이들 부자의 노력은 현재 농장의 우사 형태가 잘 설명해준다. 처음 건축한 우사와 최근 신축한 우사를 보면, 통풍과 채광 문제를 어떻게 개선했는지 한 눈에 알 수 있게 한다.
이쯤에서 부자가 함께 소를 사육하면서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다툰적이 없는 지 궁금했다.
▲子 “학교에서 배운 것과 경험이 충돌하는 경우가 많았지요. 그런데 학교에서 배운것보다 아버지의 경험이 더 낫더라고요. 이를 테면 송아지를 키우는데 아버지는 조사료를 많이 줘야된다고 하시는데 저는 농후사료를 어느 정도 급여해야 한다고 주장하지요. 너무 조사료 중심으로 키우면 송아지가 꺼칠꺼칠한 것이 보기가 안좋거든요. 그런데 나중에 결과를 보면 아버지 말씀이 맞아요.”
▲父 “그래도 사육은 아들이 거의 전담해서 합니다. 다만 송아지 구입은 제가 전적으로 맡아 하는데, 역시 경험이 중요하니까요.”
기자는 그래도 아들이 더 잘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아들에게 “그래도 아들의 의사가 더 많이 반영된 것이 없느냐”고 물었다.
아들은 “있습니다. 축사 지을 때 퇴비장을 충분히 확보한 것입니다. 농장에서 직접 작업을 하다보니 퇴비장을 충분히 확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그래서 퇴비장을 5백평정도 확보했는데, 이제 긴요하게 분뇨를 처리하고 있습니다. 1년 우분을 다 모아두었다가 퇴비로 파는 것도 가능해졌습니다”며 자신있게 말했다.
그러면, 축산 현안에 대한 인식은 어떠할까. 아무래도 조합장이기도 한 아버지가 주로 말을 했다.
우선 사료값 폭등과 관련, “농가로서는 한계가 있습니다. 정부에서 FTA대책으로 폐업 보상등 축산을 그만두는 사람에 대한 대책을 세울 것이 아니라 축산을 하고자 하는 사람을 지원하는 대책을 세워야 한다”며, 농가가 사료 생산원가를 줄일 수 있도록 정부가 직접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조사료 확대는 농가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정책을 주문하고, 그것이 아니라면 차라리 조사료 수입을 자유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농가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비육기간을 현재 28~29개월에서 31개월 이상으로 늘려 등급을 높여 받는 일 정도라는 것.
여기까지 듣고, 아들에게 그래도 한 마디 할 것을 권하자 아들은 “소 값의 오르내림에 구애받지 않고 꾸준히 현두수를 유지하다가 기회가 되면 늘리겠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부자간 서로 하고 싶은 말을 부탁했다.
▲父 “이제 모든 것을 (아들에게)맡기고 싶다. 소 사육을 천직으로 알고 변함없이 꾸준한 마음으로 이어가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본다. 개인적인 욕심은 앞으로 조그맣게 농장을 운영하면서 개인 용돈이나 쓸 수 있었으면 한다.”
▲子 “그동안 아버지께 불평 불만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속으로는 아버지가 항상 최고라고 생각해왔습니다. 많이 닮고 싶은데…앞으로 더욱 열심히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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