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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림 (wkd3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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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영화 ‘괴물’을 보고

2006.08.14 19:07 | 생각 나눔 | 우림

http://kr.blog.yahoo.com/wkd3556/296 주소복사

영화 메니아도 아닌 내가
화제의 영화, 그것도 한국 영화 사상 처음인 개방 18일만에 관객 9백만을 돌파한
화제의 영화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한다는 것이
처음부터 넌센스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영화에 대한 기본 상식이 없는 사람의 시각도
우리나라 영화 산업 발전에 필요한 일이 아닌가 싶어
용기를 냈다.

영화 ‘괴물’은 보기도 전에
이미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괴물’을 관람한 관람객 수가 연일 기록을 세우고 있어서 그런지
마치 내가 이 영화를 보지 않으면 바보가 될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정도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괴물’은 괴물의 모습부터 시작해서 여러모로 호기심을 유발했다.
그것만으로도 영화관으로 발길을 옮기는 이유는 충분했던 것이다.
마침내 영화가 시작되고,
괴물이 나타났다.
공룡 같지만 공룡이 아닌, 진짜 괴상한 괴물로
사람의 공포심을 유발하기에 충분했다.
불가항력의 괴물 앞에 인간은 더 없이 나약한 동물이었고
그런 괴물 앞에 한 인간이 나서서 싸운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그러나, 한 인간, 괴물에게 딸을 앗긴 아버지는 과감하게 맞선다.
그것도, 딸이 괴물에게 잡혀갔으나 살아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믿지 않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도 한 딸의 아버지와 몇 안 되는 가족이
처절하게 맞서는 모습은 분명 가슴 찡한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것으로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주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충분하게 공감케했다.
그런 메시지는 영화에서 중간 중간에 등장하는 환경문제라든가 반미문제라든가하는 메시지는 한갓 양념에 불과했다.
시종 긴장감을 늦추지 않게 했던 점도 영화 관람의 긍정적인 요소였다.
분명, 한국 영화가 많이 발전했음을 읽을 수 있는 영화였다.
그럼에도, 극장 문을 나서면서 마음 한 켠에 남는 아쉬움은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스토리 전개에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차피 한강에서 괴물이 갑자기 나타난다는 스토리 자체가 사실성과 상식의 공감대를 벗어난 것이긴 하지만,
괴물이 갑자기 나타나서 놀란 만큼 그 괴물을 처치하는 장면 혹은 사라지는 장면 또한 놀라움을 주지 못하고, 용두사미꼴이 되고 말았다.
그런 점에서 어린시절 한 만화에서 전개 되었던 괴물 소재의 이야기보다 못했다는 것이
내 솔직한 생각이다.
어린 시절 만화 작가가 누구인지, 만화 제목이 무엇인지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지만
강철 괴물이 나타나 온 도시를 짓밟는데, 이를 처지하기 위해 온갖 무기로 공격하지만 성공하지 못했는데, 한 과학자가 철이 산화되면 철이 부스러진다는 사실에 착안해 강철 괴물을 바닷물로 유인해서 마침내 괴물을 죽이는 장면이 눈에 선하게 기억된다.
그런 이야기에 비유하면 영화 ‘괴물’의 괴물은
나타날때는 무섭게 나타났다가 그저 한강에서 활약(?)하는 모습에 괴물답지 않았을뿐더러
그 괴물을 처치하는 모습 또한 제법 머리를 쓰기는 했지만
휘발유를 받아 먹고 불 화살에 맞아 죽는 모습은 너무나 괴물답지 못한 최후였다.
왜 물을 좋아하는 괴물이 그런 상황에서 물에 뛰어들지 않았을까?
어차피 영화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어느 정도 황당한 상황은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일정부분 공감을 주는 스토리가 아쉬웠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적어도 영화 ‘괴물’의 괴물을 죽이기 위해서는 탄생의 비밀을 감안한
과학적 근거에 따른 괴물 대처 방안이었다면 어땠을까.
물론 영화 속 괴물과 맞서 싸우는 사람들이 그 정도로 과학적인 두뇌를 가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가족 외에 어느 누구의 도움을 받지 못한 상황을 감안할 때
과학적 근거에 의한 괴물 퇴치가 당치 않을 수 있지만
사람이 아무리 밑 바닥의 삶을 살지라도 나이를 먹으면서 자연에서 배우는
지혜 등을 이용한 괴물 퇴치 방안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영화 ‘괴물’은 많은 관람객을 불러 모을 수 있는 영화로서 여러 가지 요소를
갖추고 있음은 틀림없다. 때문에 관람객 최단기 1000만 돌파도 시간 문제로 여겨진다.
그러나 스토리 전개에 있어서 공감대 형성이 부족했다는 아쉬움은
지을 수 없다.
2006년 8월 14일 장지헌

현대판 축구노예-유럽에 버려지는 아프리카 축구 선수들

2006.06.21 10:25 | 생각 나눔 | 아름다운축산을위해

http://kr.blog.yahoo.com/wkd3556/279 주소복사




독일월드컵에서 가나의 돌풍으로 아프리카 축구가 다시한번 주목을 받고 있다. 요즘 아프리카에서는 축구가 유일한 삶의 희망이 되고 있다고 한다. 먹고 살 것이 부족하고 실업률도 최악인 상황에서 축구를 해서 성공해야 먹고 살 길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아프리카의 모든 아이들은 일찍부터 축구에 올인(모든 것을 거는 것)한다. 그래서 요즘엔 축구수출국인 브라질에까지도 아프리카 용병이 등장하고 있다. 이처럼 그들에게 축구는 그저 즐기는 차원이 아니라 가난을 벗어나기 위한 생존의 도구인 셈이다. 어찌보면 슬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여기 더 슬픈 얘기가 있다. 이런 아프리카 선수들을 마치 현대판 노예 취급하는 유럽 클럽 에이전트들의 얘기다. 우리는 이번 독일월드컵을 통해 드로그바(코트디브와르) 에시앙(가나) 아데바요르(토고)등 성공한 아프리카 축구선수들의 얘기들만 들었을 것이다. 여기엔 그 성공을 쫓다가, 가난 탈출을 위해 몸부림을 치다가 성공하지도 못하고 버려지는 수많은 아프리카 유망주들의 슬픈 얘기가 있다. <편집자주>

요즘 아프리카엔 ‘현대판 노예상인’들이 다시 이 검은 대륙을 찾고 있다. 이름하여 축구 노예상들. 최근들어 아프리카에 축구 유망주들이 많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이들을 헐값에 사서 유럽클럽에 비싸게 되파는 신종 축구 노예상인들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아프리카 축구는 근래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하며 많은 인재들을 쏟아내고 있다. 아프리카는 94년 미국월드컵에서 카메룬이 아프리카국가로는 처음으로 8강 고지에 오르고 나이지리아가 96년 애틀랜타올림픽 우승을 차지하며 돌풍을 예고한 바 있다. 이런 거센 ‘블랙 파워’는 2002월드컵에선 세네갈의 8강 진출로 이제 더 이상 잠시 스쳐 지나가는 돌풍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한번 입증했다. 실제로 축구대륙 유럽에선 아프리카 출신의 뛰어난 선수들이 각 리그를 휘젓고 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사무엘 에투(카메룬) 잉글랜드의 명문 첼시의 드그로바(코트디브와르), 에시앙(가나), 잉글랜드 아스날의 스트라이커 아데바요르(토고) 등 수없이 많은 아프리카대륙 출신들이 유럽최고의 무대를 휘젓고 있다.

사정이 이쯤되니 유럽의 많은 클럽들과 선수를 소개하는 FIFA 에이전트들은 아프리카 대륙에 눈길을 돌리고 있다. 심지어 축구선수 수출국이라는 브라질조차 아프리카 선수들을 영입할 정도라니 요즘 아프리카엔 얼마나 많은 축구 유망주가 있는 지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만 하다.

요즘 아프리카에선 어린 아이 10명이면 10명 모두 축구에 푹 빠져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처럼 이들이 축구에 열광하는 이유는 축구만이 그들의 유일한 삶의 탈출구이기 때문이다. 자원도 없고 실업률이 높고 마땅한 공부해서 살아가기도 힘드니 이들은 오로지 축구에 모든 것을 건다. 축구만이 빈곤을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 가족 중에 걸출한 축구 선수 1명만 있으면 가족은 물론 친척까지 모두 먹여 살릴 수 있다고 한다.

필자의 미국인 친구 폴(Paul)은 아프리카 토고에서 10년동안 축구 아카데미를 운영해 오고있다. 그가 들려주는 아프리카 축구의 현실은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고 있었다. 희망은 그저 꿈을 꿀 수 있다는 것이다. 축구만 잘 해서 유럽무대에라도 진출할 수 있다면 자기 가족이나 친척을 먹여 살리는 것은 물론이고 그 나라에서 몇번째 손가락에 꼽히는 부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토고의 톱스트라이커 아데바요르와 같은 경우 유럽 클럽에서 뛰며 연봉으로 엄청난 돈을 벌어들여 현재 토고의 수도 ???에서 가장 큰 저택을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선수들을 바라보며 아프리카 선수들은 오늘도 열심히 잔디도 아닌 맨땅에서 공을 찬다.

이렇게 저변이 넓다 보면 자연 좋은 선수들도 많이 나오는 법. 13~17세 사이의 청소년시절때부터 두각을 나타내는 선수들도 많다. 그런데 유럽 클럽에서 이들을 가만 둘 리 없다. 유럽의 클럽이나 에이전트들은 아프리카의 이곳 저곳을 다니며 어린 선수들을 아주 싼 값에 산다. 이미 국제경기에 나설 정도의 선수들은 몸값이 비싸기 때문에 아예 일찍부터 장래성있는 어린 선수들을 ‘구입’하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헐값으로 사고, 계약은 거의 종신 계약 수준이다. 이러다보니 현대판 노예상인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들 어린 아프리카 선수들을 테스트 목적으로 유럽 클럽에 데려가서는 테스트에 떨어지면 그냥 내팽겨쳐 버리는 것이다. 즉, 중간의 에이전트들이 아프리카 선수들을 데리고 유럽 클럽에 테스트 받으러 갔다가 선수들이 테스트에서 탈락하면 나몰라라 하고 선수들을 그대로 버리는 것이다. 에이전트의 말만 믿고 유럽까지 날라온 어린 선수들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비행기 티켓도 없어 할 수 없이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유럽의 거리를 방황하는 부랑자로 전락하게 된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이렇게 유럽에 버려지는 아이들의 수가 꽤 많다는 것이다. 매년 적게는 수백명, 많게는 수천명의 아프리카 선수들이 유럽의 수많은 클럽에서 테스트를 받는데 여기서 떨어지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바로 방치되는 선수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아프리카 선수 ‘사냥’을 하는 에이전트나 클럽 입장에선 결코 손해보는 장사가 아니다. 왜냐하면 아프리카의 어린 선수들은 아주 헐값이 살 수 있기 때문에 100명중 1명만 성공해도 본전을 뽑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싼 값이 100명을 사서 그중 1명만 성공해도 이들로선 큰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결코 손해보는 장사가 아니다. 때문에 이들은 아프리카 대륙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마구잡이식으로 유망주들을 사서 유럽에 보낸다. 뒷책임은 생각도 하지 않고 말이다.

물론 본인 실력이 아주 뛰어나면 이런 에이전트의 농간이 있어도 축구를 통해 부도 쌓고 명성도 쌓을 수 있다. 하지만 축구를 해서 실제 프로 선수로 성공하기란 정말 쉽지 않다. 제 아무리 아프리카에서 날고 긴다 하는 유망주라 하더라도 전세계의 유망주들이 모두 집결하는 유럽 클럽에서 성공하기란 하늘의 별따기와도 같다.

유럽에 버려지는 아프리카의 어린 축구선수들. 축구 세계화의 또 다른 어두운 그늘이 아닐 수 없다.

-저서 [스포츠를 읽어라] 중에서-



[스크랩] 김구 선생의 <삼천만 동포에 읍고함> 全文

2005.07.28 10:25 | 생각 나눔 | 아름다운축산을위해

http://kr.blog.yahoo.com/wkd3556/88 주소복사

친애하는 삼천만 자매형제여!

우리를 싸고 움직이는 국내외 정세는 위기에 임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에 있어서 동맹국은 민주와 자유와 평화를 위하여 천만의 생령(生靈)을 희생하여서 최후의 승리를 전취(戰取)하였다.

그러나 그 전쟁이 끝나자마자 이 세계는 다시 두 개로 갈리어졌다. 이로 인하여 제3차 전쟁은 온양( 釀)되고 있다. 보라! 죽은 줄로만 알았던 남편을 다시 만난 아내는, 죽은 줄로만 알고 있던 아들을 다시 만난 어머니는, 그 남편과 그 아들을 또 다시 전장(戰場)으로 보내지 아니하면 아니될 위험이 닥쳐오고 있지 아니한가. 인류의 양심을 가진 자라면 누가 이 지긋지긋한 전쟁을 바랄 것이랴! 과거에 있어서 전쟁을 애호한 자는 '파시스트' 강도군(强盜群) 밖에 없었다. 지금에 있어서도 전쟁이 폭발되기만 기다리고 있는 자는 '파시스트' 강도 일본뿐일 것이다. 그것은 그놈들이 전쟁만 나면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믿는 까닭이다.

현재 우리 나라에 있어서도 남북에서 외력에 아부하는 자만은 혹왈남정(或曰南征) 혹왈북벌(或曰北伐)하면서 막연하게 전쟁을 희망하고 있지마는 실지에 있어서는 아직 그 현실성도 없을 뿐만 아니라, 전쟁이 폭발된다 하여도 그 결과는 세계의 평화를 파괴하는 동시에, 동족의 피를 흘려서 왜적을 살릴 것밖에 아무 것도 아니 될 것이다. 이로써 그들은 새 상전들의 투지를 북돋울 것이요, 옛 상전의 귀염을 다시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전쟁이 난다 할 지라도 저희들의 자질만은 징병도 징용도 면제될 것으로 믿을 것이다. 왜 그러냐하면 왜정 하에서도 그들에게는 그러한 은전이 있었던 까닭이다.한국은 일본과 수십 년 동안 계속하여 혈투하였다.

그러므로 일본과 전쟁하는 동맹국이 승리할 때에 우리도 자유롭고 행복스럽게 날을 보낼 줄 알았다.

그러나 왜인은 도리어 환소 중에 유쾌히 날을 보내고 있으되 우리 한인은 공포 중에서 죄인과 같이 날을 보내고 있다. 이것이 우리의 말이라면 우리를 배은망덕하는 자라고 질책하는 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미국 신문기자 '으리차드'씨의 입에서 나온 데야 어찌 공정한 말이라 아니하겠느냐. 우리가 기다리던 해방은 우리 국토를 양분하였으며 앞으로는 그것을 영원히 양국의 영토로 만들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로써 한국의 해방이란 사전 상에 새 해석을 올리지 아니하면 아니 되게 되었다. UN은 이러한 불합리한 것을 시정하여서 인류의 행복을 증진하며 전쟁의 위기를 방지하여서, 세계의 평화를 건설하기 위하여 조직된 것이다.

그러므로 UN은 한국에 대하여도 그 사명을 수행하기 위하여 임시위원단을 파견하였다. 그 위원단은 신탁 없는, 내정간섭 없는 조건하에 그들의 공평한 감시로써, 우리들의 자유로운 선거에 의하여 우리에게 남북통일의 완전자주독립을 줄 것과 미·소 양군을 철퇴시킬 것을 약속하였다. 이제 불행히 소련의 보이코트로써 그 위원단의 사무진행에 방해가 불무(不無)하나, 그 위원단은 UN의 위신을 가강(加强)하여서 세계평화 수립을 순리하게 진전시키기 위하여, 또는 그 위원제공들의 혁혁한 업적을 한국독립운동사상에 남김으로써, 한인은 물론 일체 약소민족간에 있어서 영원한 은의(恩誼)를 맺기 위하여 최선한 노력을 다할 것이다. 만일 자기네의 노력이 그 목적을 관철하기에 부족할 때에는 UN 전체의 역량을 발동하여서라도 기어이 성공할 것은 삼척동자라도 상상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이와 같이 서광이 비치고 있는 것이다.

미군주둔 연장을 자기네의 생명연장으로 인식하는 무지몰각한 도배들은 국가민족의 이익을 염두에 두지도 아니하고 '박테리아'가 태양을 싫어함이나 다름이 없이 통일정부 수립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음으로 양으로 유언비어를 조출(造出)하여서 단선단정의 노선으로 민중을 선동하여 UN위원단을 미혹하게 하기에 전심력을 경주하고 있다. 미군정의 난익하에서 육성된 그들은 경찰을 종용하여서 선거를 독점하도록 배치하고 인민의 자유를 유린하고 있다. 그래도 그들은 태연스럽게도 현실을 투철히 인식하고 장래를 명찰(明察)하는 선각자로서 자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선각자는 매국매족의 일진회식 선각자일 것이다. 왜적이 한국을 합병하던 당시의 국제정세는 합병을 면하지 못하게 되었던 것이다. 아무리 애국지사들이 생명을 도하여 반항하였지만 합병은 필경 오게 되었던 것이다. 이 현실을 파악한 일진회는 동경까지 가서 합병을 청원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자들은 영원히 매국적이 되고 선각자가 되지 못한 것이다. 설령 UN위원단이 금일에 단정을 꿈꾸는 그들의 원대로 남한 단독정부를 수립한다면, 이로써 한국의 원정은 다시 호소할 곳이 없을 것이며, UN위원단 제공은 한인과 영원히 불해(不解)의 원을 맺을 것이요, 한국 분할을 영원히 공고히 만든 새 일진회는 자손만대의 죄인이 될 것이다.

통일하면 살고 분열하면 죽는 것은 고금의 철칙이니 자기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하여 조국의 분열을 연장시키는 것은 전민족을 사갱(死坑)에 넣는 극악극흉의 위험한 일이다. 이와같은 위기에 있어서 우리는 우리의 최고유일의 이념을 재검토하여 국내외에 인식시킬 필요가 있는 것이다. 내가 UN위원단에 제출한 의견서는 이 필요에서 작성된 것이다. 우리는 첫째로, 자주독립의 통일정부를 수립할 것이며 이것을 완성하기 위하여 먼저 남북정치범을 동시 석방하며, 미·소 양군을 철퇴시키며, 남북지도자회의를 소집할 것이니, 이 철과 같은 원칙은 우리의 목적을 관철할 때까지 변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이 불변의 원칙으로써 순식만변(瞬息萬變)하는 국내외정세를 순응 극복하여야 할 것이다. 이것이 중국 장 주석(蔣主席)의 이른바「不變으로 應萬變」이라는 것이다. 독립이 원칙인 이상 독립이 희망 없다고 자치를 주장할 수 없는 것을 왜정하에서 충분히 인식한 것과 같이, 우리는 통일정부가 가망 없다고 단독정부를 주장할 수 없는 것이다. 단독정부를 중앙정부라고 명명하여 위안을 받으려 하는 것은 군정청을 남조선 과도정부라고 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다. 사사망념(邪思妄念)은 해인해기(害人害己)할뿐이니 통일정부 수립만 위하여 노력할 것이다.

삼천만 자매형제여!

우리가 자주독립의 통일정부를 수립하려면 먼저 국제의 동정을 쟁취하여야 할 것이요. 이것을 쟁취하려면 전민족의 견고한 단결로써 그들에게 정당한 인식을 주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미군정의 앞잡이로 인정을 받는 한민당의 영도하에 있는 소위 '한협(韓協)'은 나의 의견에 대하여 대경소괴(大驚小怪)한 듯이 비애국적 비신사적 태도로써 원칙도 없고 조리도 없이 모욕만 가하였다. 한민당의 후설(喉舌)이 되어 있는 동아일보는 여자의 이름까지 빌어 가지고 나를 모욕하였다. 일찍이 조소앙·엄항섭 양씨가 수도청에 구인되었다고 허언을 조출(造出)하던 그 신문은 이번에 또 '애국단체 제출한 의견서 김구 씨 동의 표명'이라는 제목으로써 허언을 조출하였다. 이와 같은 비열한 행위는 도리어 애국동포들의 분노를 야기하여 각방면에서 토죄(討罪)의 격랑이 높았다. 이리하여 내가 바라던 단결은 실현도 되기 전에 혼란만 더 커졌을 뿐이다.

시비가 없는 사회에는 개량이 없고 진보가 없는 법이니 여론이 환기됨을 방지할 바이 아니나, 천재일우의 호기를 만나서 원방(遠方)에서 내임한 귀빈을 맞아 가지고 우리 국가민족의 운명을 결정하려는 이 순간에 있어서 이것이 우리의 취할 바 행동은 아니다. 일절 내부투쟁은 정지하자! 소불인(小不忍)이면 난대모(難大謀)라 하였으니 우리는 과거를 잊어버리고 용감하게 참아보자!

삼천만 자매형제여!

한국이 있고야 한국사람이 있고, 한국사람이 있고야 민주주의도 공산주의도 또 무슨 단체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자주·독립적 통일정부를 수립하려 하는 이 때에 있어서 어찌 개인이나 자기의 집단의 사리사욕을 탐하여 국가민족의 백년대계를 그르칠 자가 있으랴. 우리는 과거를 한 번 잊어버려 보자. 갑은 을을 을은 갑을 의심하지 말며 타매(唾罵)하지 말고 피차에 진지한 애국심에 호소해 보자! 암살과 파괴와 파공(罷工)은 외군의 철퇴를 지연시키며 조국의 독립을 방해하는 결과를 조출할 것뿐이다. 악착한 투쟁을 중지하고 관대한 온정으로 임해 보자!

마음속에 삼팔선이 무너지고야 땅 위에 삼팔선도 철폐될 수 있다.

내가 불초하나 일생을 독립운동에 희생하였다. 나의 연령이 이제 칠십유삼인 바 나에게 남은 것은 금일금일하는 여생이 있을 뿐이다. 이제 새삼스럽게 재화를 탐내며 명예를 탐낼 것이랴! 더구나 외국 군정하에 있는 정권을 탐낼 것이랴! 내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주지하는 것도 한독당을 주지하는 것도 일체가 다 조국의 독립과 민족의 해방을 위하는 것뿐이다. 그러므로 내가 국가민족의 이익을 위하여는 일신이나 일당의 이익에 구애되지 아니할 것이요. 오직 전민족의 단결을 달성하기 위하여는 삼천만동포와 공동분투할 것이다. 이것을 위하여는 누가 나를 모욕하였다 하여 염두에 두지 아니할 것이다. 나는 이번에 '마하트마 간디'에게서도 배운 바가 있다. 그는 자기를 저격한 흉한을 용서할 것을 운명하는 그 순간에 있어서도 잊지 아니하고 손을 자기 이마에 대었다 한다. 내가 사형언도를 당해 본 일도 있고 저격을 당해 본 일도 있었지만 그 당시에 있어서는 나의 원수를 용서할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지금도 이것을 부끄러워한다.

현시에 있어서 나의 유일한 염원은 삼천만동포와 손목 잡고 통일된 조국, 독립된 조국의 건설을 위하여 공동 분투하는 것뿐이다. 이 육신을 조국이 수요한다면 당장에라도 제단에 바치겠다. 나는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려다가 삼팔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에 구차한 안일을 취하여 단독정부를 세우는 데는 협력하지 아니하겠다. 나는 내 생전에 38 이북에 가고 싶다. 그쪽 동포들도 제 집을 찾아가는 것을 보고서 죽고 싶다. 궂은 날을 당할 때마다 삼팔선을 싸고도는 원귀(怨鬼)의 곡성이 내 귀에 들리는 것도 같았다. 고요한 밤에 홀로 앉으면 남북에서 헐벗고 굶주리는 동포들의 원망스러운 용모가 내 앞에 나타나는 것도 같았다.

삼천만 동포 자매형제여 !

붓이 이에 이르매 가슴이 억색(抑塞)하고 눈물이 앞을 가리어 말을 더 이루지 못하겠다. 바라건대 나의 애달픈 고충을 명찰하고 명일의 건전한 조국을 위하여 한번 더 심사(深思)하라.

대한민국 30년 2월 10일

天光雲影 (石蓮池)

二樂堂前雙石盆, 何年玉女洗頭盆?

洗頭人去蓮花發, 空有餘香滿舊盆.

戊子流頭李敎方

此乃羅代興輪舊物 寺廢抛在荊棘中者.

幾千餘載崇禎戊寅冬 運入植蓮以爲賞玩之

具顯< >有數< > < >廣陵後人晩悔識


*이 시는 경주 박물관 뒷 뜰의 한국에서는 제일 크다는 석련지입니다.
우연히 석련지에 새겨진 한시를 발견하고 옮겨 적어 왔습니다.

몇자는 마모되어 보이지 않지만 해석 한번 해보지요.


하늘의 빛과 구름의 그림자가 석련지에 비치니....

이요당 앞 쌍석분은
어느해 옥녀가 머리 감던 그릇인가
머리 감던 사람은 가고 없어도 연꽃은 피어 나
헛되이 남은 향기 옛 그릇에 가득하네

무자년 유두날 이교방

이는 흥륜사의 오래된 물건으로 신라로부터 내려온 것이다.
절은 폐허가 되고 가시밭속에 버려진 것을
기천년 세월이 지난 숭정(연호) 무인년 겨울에 옮겨 들어 와 백련을 심고
써 그것을 즐기고 사랑하게 하다
광릉후인 만회(이필영의 호)가 쓰다.



공돈 생긴날
장 지 헌

사무실에서 짐 정리를 하다가 돈 봉투를 발견했다.
이것은 찢고, 저것은 버리고 하다가 발견된 ‘횡재’
어쩌면 다른 쓰레기와 함께 찢겨져 버려질 뻔 했던,
잊혀진 것의 재발견에 좋아라 뛰었다.
직원들에게 점심을 쏘겠다고 언약하고
저녁에는 마음 놓고 술 마시고 대리운전 해도 되겠다며
싱글싱글 좀 모자라는 사람이 되었다.
가만 보자, 내가 진짜 모자란 놈 아닌가
원래 제가 갖고 있던 것을 가지는 것이
무에 그렇게 좋다는 말인가
그래, 나는 정말 모자라는 놈이다
나는 그래도 좋다
주머니가 불룩해서 좋기도 하지만
그렇게 좋은 것을 잊고도 살 수 있다는
사실의 발견에 흐뭇한 미소 짓는다.
지금 좋다고 너무 집착하지 말 일이다.
가끔 좋은 것도 잊고 살다보면
훗날 이렇게 좋아할 날도 있을 터
지금 좋은 것 다 누리지 말고 남겼다 봉투에 넣어
그냥 잊고 어딘가에 숨겨두자
그 봉투 나중에 쓰레기와 함께 버려져도
잊었기에 아까울 것 없고
찾으면 더욱 좋아
모자라는 놈이 되어 싱글싱글 웃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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