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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4/08/23
 



을유년(乙酉年), 정해년(丁亥年), 기축년(己丑年) 등 그 해의 띠가 닭, 돼지, 소 등 주요 가축에 해당할 경우 축산인들은 그 해에 특별한 애정과 관심을 갖는다. 올해는 소 띠 해, 기축년이다. 때문에 소 사육농가들의 관심은 더욱 각별할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면 소 사육농가들이 더 관심을 갖는 소 띠 해 소 산업, 특히 한우 산업은 어땠을까. 지나간 소 띠 해는 12년 전인 1997년의 정축년(丁丑年), 24년 전인 1985년의 을축년(乙丑年)이다.
어느 해고 의미가 없는 해가 있을까마는 이렇게 놓고 보니, 소 띠 해마다 의미있는 정책이나 사건이 눈에 들어온다. 우선 24년 전인 1985년은 미국산 생우 도입으로 당시 소 값이 사상 최악의 폭락을 경험한 해로서, 국내산 소 사육기반 조성을 명분으로한 외국 소 수입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일깨워 준 해였다. 이 해는 본지가 창립된 해이기도 하다. 공교롭게도 본지가 소 띠 해에 축산인과 동고동락을 다짐하며 축산 전문화와 선진화의 기치를 들고 고고지성(呱呱之聲)을 울린 바로 그 해였던 것이다.
그 12년 후인 1997년은 우리 모두가 기억하고 있는 IMF 외환위기로 온 국민이 고통을 겪어야 했던 해였다. 한우산업계로서는 때마침 사육두수 증가와 소비 위축으로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애써 구축해온 한우 개량 기반이 무너지지 않을까 많은 걱정을 해야 했다. 다행이 국내 부존자원 활용과 고품질 차별화 노력이 주효, 위기를 넘겼다.
그 이후 한우업계는 1999년 한우협회를 창립하고 한우인 스스로 수입 생우와 맞서 싸우는 것을 시작으로, 한우 의무자조금 사업 실시, 음식점 쇠고기 원산지 표시제 도입, 쇠고기 유통감시 강화 등 한우 산업이 ‘이 땅의 자존심’으로 발돋움하는데 있어 그야말로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그리고 맞이한 소의 해인 기축년 새해, 이왕이면 희망이 가득찬 그런 해였으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하다는데서 걱정이 앞선다. 사료값이 하향 안정화 될 것이라는 전망이지만 우리 축산농가들의 걱정을 덜어줄 수준은 안 될 것으로 보인다. 경기 전망은 더욱 우울하다. 상반기 집중적인 투자가 이뤄진다고 하더라도 빨라야 하반기에나 그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고 보면 축산외적인 환경으로 우리 축산산업이 나아질 것이라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결국 축산인들 스스로 이 같은 어려움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놓였다. 축산인들 스스로의 노력 밖에 기대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24년 전에 소값 폭락의 어려움을 극복했듯이, 또 12년 전의 IMF 위기를 국내 부존 자원 활용과 품질 고급화로 맞섰듯이….
소는 예로부터 우리 민족과 애환을 함께한 가축으로서 많은 문인들이 예찬을 했다. ‘호랑이를 노려보는 시선’(虎視)은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는 시선이고, ‘소가 내딛는 발걸음’(牛步)은 어떤 난관이 앞을 가로막아도 묵묵하게 전진한다고 했다. 그렇게 앞으로 12년 후인 소의 해 2011년 신축년(辛丑年)을 희망차게 맞이했으면 한다.
한우가 국내 시장을 굳건히 지킴은 물론 세계 시장에서도 한우 고유의 맛으로 경쟁력을 갖는 그런 시대가 되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그것은 한우인들의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가능하리라고 확신한다.

장지헌/축산신문 데스크칼럼

축산인 자긍심으로 멀리 보자

2009.01.13 16:58 | 논단/칼럼 | 우림

http://kr.blog.yahoo.com/wkd3556/1578 주소복사



새해가 밝았다. 크게 기지개를 켜고 희망찬 새해를 외쳐 본다. 비록 지난해는 우리에게 우울한 한 해였지만 올 해는 우리 축산의 수준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키는 한 해이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그 외침에 담는다. 일을 시작하기 전 ‘하면 된다’ ‘할 수 있다’는 긍정의 자세야말로 우리에게 무엇보다 필요함을 인식하면서.
우리 축산업계에 있어 2009년의 한 해는 과연 어떤 한 해가 될 것인가. 전문가들은 어려운 가운데서도 희망을 조심스럽게 점치고 있다. 작년까지 우리 축산 농가들을 힘들게 했던 사료 값은 곡물가격과 환율의 하향 안정으로 지난해보다 좀 나아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축산물 시장 개방에 따른 외국 축산물의 국내 시장 잠식이 여전히 걱정되기는 하나 음식점 원산지 표시의 본격적인 시행이 그 같은 우려를 어느 정도 씻어 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다만 소비 부문에서는 국내외 경기가 단기에 좋아질 전망은 아니어서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게 하고 있다.
따라서 새해 축산 전망은 크게 낙담할 것도, 그렇다고 좋아할 것도 아니다. 결국 우리 축산인들 스스로 어떤 노력을 기울이느냐에 따라 불안을 씻어 낼 수도, 더 큰 어려움을 자초할 수도 있다 하겠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새해를 맞이하면서 다음 네 가지를 강조하고자 한다.
첫째는 축산인으로서 자긍심이다. 여기서 축산인이라 하면 축산 현장에 종사하는 사람은 물론 축산 관련 산업에 관계하는 모든 사람을 말한다. 우리 축산업이 우리 농촌 경제와 국민 식생활에서 차지하고 있는 엄연한 위치는 농업 생산액 등 여러 가지 통계가 충분히 설명해 주고 있다. 특히 축산 식품의 중요성은 우리 가정의 식생활에서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다. 식품의 수급 문제는 물론 안전 측면에서도 우리 축산업의 중요성은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런 축산식품을 생산하고 유통 소비하는 모든 과정에 있는 축산인들이야말로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축산 관련 정책을 입안하고 있는 공무원이나 축산 관련 연구에 임하고 있는 학계, 또 사료 동약 기자재 등을 공급하고 있는 산업계도 축산인이라는 자긍심을 당당하게 지녀야 할 것이다.
둘째는 ‘멀리 보자’는 것이다. 농부가 소를 앞세워 쟁기질 할 때면 멀리 있는 산의 어느 목표점을 보고 쟁기질에 임함으로써 똑 바로 밭을 갈 수 있다고 한다. 우리 축산인도 눈 앞에 있는 것만 보지 말고 좀 더 멀리 내다봄으로써 축산이 가야할 길을 똑바로 가기 바란다.
셋째는 연구하고 공부하는 자세다. 축산인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라. 우리 축산업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내가 얼마나 연구하고 또 공부하고 있는가. 축산 기술이나 질병, 유통· 경영에 관한 그 숱한 심포지엄이나 세미나에 축산인들이 얼마나 자리를 메우고 있는가. 축산업의 경쟁력은 결국 축산인 스스로의 경영 기술 능력을 얼마나 키우느냐에 달려 있음을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겼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는 지금 당장 작은 것부터 실천하는 것이다. 축산 생산 유통 현장은 물론 축산 관련 기관 단체 학계 산업계도 지금 당장 실천하면 축산의 경쟁력을 1%라도 더 올릴 수 있는 일들이 얼마든지 있다. 우리는 지나온 일을 뒤돌아보며 그 때 그 일을 했더라면 하는 후회를 한다. 그리고 내일 그 일을 하자고 미뤄뒀다가 결국 그 일을 못하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다. 따라서 지금 눈앞에 보이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임을 다시 한 번 인식하자.

장지헌/축산신문 신년사설

해외르뽀/배트남에 희망 뿌리 내린 윤희진 다비육종대표

2009.01.13 16:44 | 장지헌이 만난 사람 | 우림

http://kr.blog.yahoo.com/wkd3556/1577 주소복사



‘내 돈으로 전기 끌어 들이는데 9개월…’
인프라 구축 어려움 딛고 ‘꿈이 꿈 만들어
’2004년 CJ와 합자, 베트남 진출빈증성에 3만2천평 종돈장 구축
“투자회수 늦더라도 꿈을 키워야”장학금 지원·교육연수원도 추진
현지인력 육성 ‘꿈의 씨앗’ 뿌려

헤르만헤세 이후 독일 최고의 작가로 평가받는 한스크루파는 ‘나비의 입맞춤’이란 글에서 “꿈을 접은 사람은 다른 사람의 꿈조차 앗아 간다”며 이성적인 삶보다는 꿈이 있는 삶을 강조했다. 그 만큼 우리 삶에 있어서 꿈이 갖는 의미는 크다. 삶이 어렵고 힘들수록 꿈은 더욱 소중하다할 것이다. 새해를 맞아 특집으로 꿈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 주인공은 (주)다비육종 윤희진 대표다.

윤 대표는 지난 1983년 현 다비육종의 근간이 된 대월종돈장을 설립한 이후 많은 꿈을 꾸고 또 그 꿈을 실현했다. 급기야 국제적인 권위를 지닌 일가재단(이사장 김상원)도 그를 인정, 2008년 일가상 수상자로 선정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이제 꿈의 나래를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도 펼치고 있어 축산인들로부터 관심을 끌고 있다. 본지는 그가 꿈꾸는 해외 현장을 2개월여 전인 지난해 10월 말경에 다녀왔다. 그때의 그 현장으로 시간을 되돌려 본다.

■고무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꿈의 현장

그러니까 2008년 10월 23일 베트남 시각으로 오전 10시경, 호치민시 빈증성(平陽城)에 위치한 다비육종으로 가는 길은 온통 고무나무로 뒤덮여 있다. 말로만 듣던 고무나무 숲, 그것은 이곳이 이국 땅 베트남임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다. 그야말로 이국만리 머나 먼 땅에서 우리 축산이 진출해 있다는 것을 생각하니 우리 축산에 대한 뿌듯한 자부심마저 인다.

드디어 정문 앞에 도달하니 반가운 한글이 보인다. 본지 취재진을 환영하는 현수막과 함께 선명한 다비육종 간판이 새삼 반갑게 눈에 들어 온다. “여기가 윤 대표가 꿈꾸던, 그 꿈의 현장인가” 어리둥절한데, 현지 베트남인들이 눈웃음으로 취재진을 맞이한다. “누가 그 현지 베트남인들을 웃게 하는가” 생각하니 윤 대표가 그동안 고생한 보람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호치민시에서 이곳까지 약 1시간 가량 차를 타고 오면서 윤 대표는 그동안 어떻게 배트남에 투자할 것을 결심했는지, 또 그동안 베트남에서 어떤 어려움 끝에 오늘이 있었는지 말해줬다.투자의 안전성이나 소비 동향 등을 감안할 때 중국이나 필리핀, 그 외 인도네시아 등 회교도 국가에 비해 베트남은 확실한 경쟁력 우위에 있었다고 판단했고, 그 판단은 틀리지 않아 베트남의 무한한 축산 성장 가능성만큼 다비육종의 성장 가능성도 그만큼 크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고 없고, 꽃도 바람에 흔들리며 피는 법, 베트남 진출 초기에는 인프라 구축의 어려움 등으로 많은 고생을 했다고 한다. 특히 전기를 내 돈 주고 끌어다 쓰는데 9개월이 걸렸다고 하니 그 어려움을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또한 현지 인력을 모집하고 교육하는 과정 역시 우여곡절이 많았다는 것이다.

■현장 소장도, 현지인도 ‘윤희진’을 꿈꾸다

농장내에 위치한 현장 사무실에 들어서자 윤 대표는 간단한 업무 파악과 함께 업무 지시를 한 후 취재진과 마주 앉았다. 그 옆에는 현장 소장인 윤우식씨, 수의사인 김태연씨, 그리고 베트남 현지인으로 팀장을 맡고 있는 짱씨(29세)가 배석했다.인터뷰 주제는 꿈이다. 우선 현지인 짱씨의 꿈이 궁금했다.
호치민 농업전문학교를 졸업한 그는 분만사 팀장으로서 열심히 양돈기술을 배우고 있다며 지금 당장 돈을 버는 것보다 양돈 기술을 배우는 것에 매우 큰 의미를 두고 있었다. 언젠가 그도 자기 농장을 갖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에 까지 다녀갔다. 그의 꿈은 ‘베트남의 윤희진’이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윤희진’을 꿈꾸는 한 사람이 더 있었다. 현지 법인 소장 윤우식씨다. 그는 지난 5년 동안 베트남 현지 문화를 익히고 현지인과 부대끼며 베트남 다비육종의 오늘이 있게 한 일등공신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이 윤 대표의 설명이다.
그럼에도 그는 공신임을 내세우기 보다는 책임감을 강조했다. 그리고 꿈을 말했다. “앞으로 5년 내지 10년후 내 농장을 갖고 제2의 윤희진이 되고 싶다”는 것이었다.

꿈은 꿈을 만드는가. 윤 대표는 이렇게 꿈의 씨를 뿌리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현지 베트남 대학에 장학금을 지원하고, 교육을 위한 연수원 운영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이 다 그런 꿈의 씨앗인 셈이다.

그렇다고 꿈을 뒷받침할 수 있는 현실적인 자본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된다. 때문에 이곳 베트남 투자에 대한 회수가 언제부터 이뤄질 것인가가 궁금했다. 윤 대표는 “새해 부터는 조금씩 회수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투자 회수가 다소 늦어지더라도 베트남 축산 투자의 징검다리 역할은 충분히 한 것”이라며 베트남 투자 선도 축산인으로서 의미를 부여했다.

■꿈 바이러스 가득한 2009년을…

다비육종은 지난 2004년 CJ와 합자, ‘다비-CJ 제네틱스’를 설립, 현재 빈증성 벤깟군에 3만2천평의 부지위에 종돈장을 조성한 이후 지난 2007년에는 처음으로 베트남 현지에 종돈을 분양했다. 투자에 대한 회수가 이뤄지기 시작한 것이다.따라서 윤희진 대표의 꿈이 이제 해외에서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다시 한 번 주목할 것은 윤 대표가 자신의 꿈만을 실현시키는 것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에게 꿈을 심어주고 있다는 것이다. 윤 대표의 그런 꿈의 바이러스가 많은 축산농가에게도 전염됐으면 한다. 어려운 상황이 예상되는 2009년이라 그런 기대감이 더욱 크다.

대잇는 축산가족 이야기/충북 청원 곽한무 수영 부자

2008.03.03 15:22 | 장지헌이 만난 사람 | 우림

http://kr.blog.yahoo.com/wkd3556/1572 주소복사

대잇는 축산가족 이야기 (5)
충북 청원군 태산목장 곽한무․수영 부자

“소비자 시대 어떻게 부응할까 고민…축산인 자세가 중요”

<낙농 시작…그리고 지금은>
父 “상업 접고 전공살려 시작…개량으로 자부심․ 비전 가져”
子 “어려서부터 즐겨하던 일 적성에 맞아 목장일에만 전념”

<힘들었던 때…그리고 보람은>
父 “사료포 개간 가장 힘들어…적정규모 유지 알뜰한 경영”
子 “하루도 쉴 수 없는 일…그러나 목장일 천직으로 여겨”

<앞으로 계획과 서로 하고 싶은 말은>
父 “승마장과 함께 소비자 찾는 목장기반 조성…아들 믿어”
子 “자립 경영위한 이론 실기 접목 노력…지켜봐 주세요”


‘우리 축산에 미래가 있는가’
사료 값은 천정부지로 오르고, 수입 축산물은 넘쳐나는데 축산산업이 환경 오염산업이라는 부정적인 인식마저 팽배해 있다 보니 이 같은 화두가 자연스럽게 던져진다.
그러나 축산에 놓인 상황이 하나같이 힘들고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우리 축산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적지 않다.
충북 청원군 낭성면 지산리, 태산목장의 곽한무(56)․수영(26)부자도 우리 축산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내다보는 대잇는 축산인이다.
무엇을 보고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젖소검정중앙회충북연합회장, 낙농자조금관리위원, 종축개량협회감사라는 곽한무 대표의 또 다른 직함 때문이 아니다.
그 판단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목장주의 축산에 대한 철학과 축산기반 조성을 위한 투자, 그리고 대를 이을 후계자를 보면 대충 파악된다.
그러면 태산목장은 이 같은 기준에 어느 정도 부합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요즘 축산 현장에서 축산이 어렵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여러 가지 상황을 볼 때 어려운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축산인들이 축산현장에서 할 바를 다하고 있는지에 대해 우선 되돌아봐야 합니다.”
곽한무 대표는 현재 축산업계에 놓인 현안과 관련, 이렇게 축산인의 자세부터 강조한다. 축산인으로서 할 바를 다해야 정부에 대한 요구도 당당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축산인으로서 해야 할 바, 그 일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생산 기반을 다지고, 개량 등 생산성 향상에 대한 관심을 갖고 투자하는 것입니다. 특히 이제 소비자 시대를 맞아 소비자들이 요구하는 축산물을 어떻게 생산할 것인지 고민하고 또 실천해야 한다.”
-태산목장은 실제 어떻게 실천하고 있나.
“우선 조사료포가 4만여평 된다. 1톤 정도 납유하는 우리 목장 규모를 감안할 때 최소한의 생산 기반은 갖췄다고 본다. 개량은 그랜드챔피언 등 수차례 수상 경력을 보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은 산유량보다 체형 개량이나 소비자 요구를 감안한 유단백 중심의 젖소 사양관리에 관심을 갖고 있다.”
이처럼 곽 대표는 자신에 차 있다. 이쯤해서 대를 이을 후계자인 아들 수영씨의 이야기도 들어보지 않을 수 없다. 한국농업대학에서 낙농을 전공하고 4년째 낙농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그다.
-축산업의 대를 잇는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갈등은 없었나.
“어릴 때부터 소를 보고 자라서 그런지 소를 돌보는 일이 적성에 맞는 것 같다. 농고를 졸업하고 농업대학에서 낙농을 전공하면서 선택을 잘했다고 생각했다.”
-축산 중에서 낙농을 선택한 이유는.
“타 축종보다 자금 회전이 빠르다는 것이 매력이다. 하루라도 쉬는 날 없이 목장에 묶여있다는 것이 단점이긴 하다. 그러나 낙농 현장에서 일하면서 처음 1년반 정도는 남들처럼 시내에 나가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별 도움이 되는 것도 없고, 흥미도 없었다. 그래서 목장에 틀어박혀 소를 돌보는 것을 낙으로 삼고 있다.”
우리는 흔히 그 일을 타고났다는 의미에서 천직(天職)이란 말을 한다. 아들이 이렇듯 낙농을 천직으로 여기며 묵묵히 일하고 있으니 아버지는 그 아들이 얼마나 든든하고 기특할까. 곽 대표가 미래를 긍정적으로 내다보는 이유가 이것으로 충분히 증명됐다할 것이다.
하지만 태산목장이 이렇게 낙농기반을 다지고 아들이 대를 이어 목장을 관리할 수 있게 된 것이 결코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은 물론 아니다.
곽 대표는 청주농고를 졸업하고 3년 정도 상업에 종사할때까지만 인생의 큰 비전을 갖지 못하다가 1982년 전공을 살려 낙농을 시작한 것이 오늘을 있게 한 밑바탕이 됐다. 그러나 처음부터 낙농이 호락호락한 것은 아니어서 소를 몰라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그래서 관심을 가진 것이 개량이었는데 1984년 목장을 청주 근교에서 현재의 이곳으로 옮기면서 본격적인 낙농을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 남의 소를 구입해서 사육하다가 ‘내 소는 내가 만든다’는 일념으로 개량에 심혈을 기울이다보니 생산성이 향상되면서 자부심을 갖게 됐고 아울러 낙농비전을 스스로 갖게 됐다는 것이다. 85년 이후 충북도 최우수 10회, 95년의 중앙대회 챔피언, 99년 그랜드 챔피언 등의 수상 기록이 그것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조사료 기반이었다. 고능력 젖소 사육을 위해서는 일정규모의 조사료 기반 확보가 필수적인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쉽지 않았는데, 특히 사료포 개간에 따른 여러 가지 법적인 문제에 봉착,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때 그 일이 얼마나 어려웠던지 “그동안 가장 어렵고 힘든 일이 무엇이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사료 기반 확보”라고 대답할 정도였다. 이어 “우유가 남아돌아 낙농가들이 어려움을 많이 겪은 시절이 있지 않았느냐”고 다시 묻자, “그동안 내 힘에 맞게 목장 규모를 유지해 왔기 때문에 그런 어려움은 없었다”며, 앞으로도 욕심내지 않는 적정 규모의 낙농 경영이 긴요함을 강조했다.
현재 태산목장의 낙농 규모는 착유우 33~34두 규모다. 20년 넘게 낙농을 하면서 개량선도농가로서 지역 낙농을 이끈 목장치고 규모가 적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욕심내지 않는 적정 규모의 낙농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태산목장은 요즘 우유 생산량을 늘리는 일 보다 더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있다. 그것은 소비자 시대를 겨냥한 친환경 체험목장이다. 소비자들이 목장을 찾아 우유가 얼마나 안전하고 깨끗하게 생산되는 지를 체험하도록 함은 물론 목장에서 직접 만든 치즈 등을 시식케 함으로써 그동안 그릇된 낙농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불식시키는 일이 그것이다. 특히 태산목장은 체험목장 프로그램에다 승마 프로그램을 도입, 보고 즐길 거리를 보탬으로써 더욱 경쟁력 있는 목장을 꿈꾸고 있다. 그 승마장은 큰 아들인 **씨(28세)에게 맡기고 있으니 삼부자가 목장을 가꾸고 있는 셈이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과 부자간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1톤 규모의 목장을 유지하면서 소비자들이 즐겨 찾는 목장으로 가꿨으면 한다. 물론 아들이 잘 하리라 믿는다.”
“아직은 부족한 것이 너무 많습니다. 학교에서 배운 이론이 아버지의 경험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혼자서 알아서 경영할 수준에 이르기까지 노력하겠습니다. 잘 지켜 봐 주십시오.”
이렇게 부자(父子)의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니 해가 서쪽 하늘 중간쯤 가 있다. 목장 위치가 북향이다보니 그렇지 않아도 추운 겨울 날씨가 더욱 춥게 느껴진다. 거기다 우사 규모에 비해 소가 적어 더욱 쓸쓸한 느낌이다.
‘이런 입지 조건에서 어떻게 체험목장이며, 승마장을 운영할까’ 싶어 의아해 하던 참인데, 곽 대표는 우리를 차에 태우고 목장 뒤편 언덕길을 올라간다. 그런데, 그 위에 펼쳐지는 사료포는 전혀 딴판이었다. 잘 가꾸면 체험목장으로서 승마장과 어울려 소비자들이 즐겨 찾을 만한 그런 입지였다. 그저 우사만 보고 품었던 의문이 저절로 풀렸다.
장지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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