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처럼 목탁소리에 들렀다가 법상스님의 깊고 맑은 샘물같은 좋은글이 있어 담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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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단순하게 생각해서
누구나 잘 살기 위해 세상을 살아간다.
또 누구나 삶의 목적은 잘 사는데 있다.
그러나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길인가.
'이렇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다'라는 정답이 있고 체크리스트가 있어서
매일같이 잠자리에 들기 전, 또 매 해를 보낼 때마다
그 표를 하나하나 내 삶과 대조해 보면서 체크해 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우리 삶이라는 것이 그렇게 딱 정해진 것 만은 아니기에
그런 것이 있을리 만무하다.
그러나 조금 큰 틀에서 본다면
어떤 종교에서든, 어떤 사상이나 가르침에서든
공통적으로 적용될 법한 일반적인
‘잘 사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를테면 부처님도 하느님도
또 수많은 인류의 성자, 사상가들도 모두가 한결같이
'사랑을 베풀라' '자비를 베풀라' '이웃과 나누라' '보시하라'는
말씀을 하고 계신다.
그 본질은 어느 종교에서도 다르지 않다.
보시와 베풂이라는 그 본질은 진리의 영역이다.
베풀고 보시하는 길은 참된 삶을 살기 위해서라면
누구나 가야할 근본이 되는 가르침이요 진리인 것이다.
다만 각 종교별로, 사상가별로 그 구체적인 방법은 다를 수 있다.
십일조를 내든 자유롭게 보시를 행하든,
절이나 교회에 내든 불우한 이웃에게 내든,
사람에게만 사랑과 자비를 베풀든
풀이며 나무 산천초목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명에게 베풀든,
그 구체적인 방법은 서로 다를 수 있는 부분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자기답게 저마다의 개성으로써 실천 해 나가야 할
세부적인 부분 보다는
전체적인 진리의 본질로써
우리가 삶 속에서 어떻게 마음을 쓰고,
어떻게 참된 삶을 살아 나갈 수 있는가 하는
실천의 정신을 몇 가지 소개하고자 한다.
어느 종교에서든, 어느 사상에서든,
진리의 본질을 관통하고 있는 가르침이라면
대부분 수긍하지 않을 수 없을만한
그런 구체적인 수행방법을 언급함으로써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행복하게 잘 사는 사람이 되는 법'에 대한
최소한의 사유의 뜰을 제공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몇 가지를 적어 보는 것이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이 목록을 펴 들고
하나 하나 내 마음과 비추어 보며
사유의 뜰을 넓혀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혹은 매 순간 순간 시간 날 때도 좋고,
그것도 아니라면 어떤 괴롭거나 힘겨운 경계를 당해 마음이 휘둘릴 때
그 때 이 목록을 펴 보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모르긴해도 아래에 열거된 마음공부 목록만 잘 점검하더라도
어지간한 괴로움이나 경계는 충분히 이겨낼 수 있는
내적인 힘이 쌓일 것이라고 본다.
또 기독교나 혹은 또 다른 종교의 신자나 종교가 없는 분이더라도
이 목록의 가르침들은 대부분이 수용 가능한 것들일 것이다.
법정스님의 말씀처럼
사실 모든 종교의 가르침은 끊임없는 복습의 연장이다.
가르침의 본질은 이미 우리가 다 알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마음을 비우고 이웃과 나누며 욕심과 집착을 버리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그런 가르침들이 항상 내 가까이에서 살아 움직이고
실천의 힘이 되며 내 존재 안에 숨쉬도록 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복습만이 우리 내면에 힘을 실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아래의 목록은 한번 읽고 그만 두기 보다는
가까운 곳에 두고 '잘 사는 방법' 체크리스트처럼 활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
아울러 이 목록의 구체적인 이해와 방법들, 깊은 이해는
이 목탁소리의 글들을 읽어 내려가면서
하나씩 터득해 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1. 일체를 다 받아들이라. 수용하라.
내 삶에 등장하는 그 어떤 사건도, 사람도
모두 온전한 진리의 목적을 가지고 온다.
이 세상에는 정확히 필요한 일만이 정확히 필요한 바로 그 때에
정확히 필요한 만큼의 크기로 찾아온다.
또한 그 모든 것들은 좋은 것이든 싫은 것이든
모두가 나를 돕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내게로 온다.
그 모든 일들이 부처의 자비요 신의 사랑이다.
그렇기에 모든 것을 대 긍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좋다고 너무 붙잡지 않고 싫다고 버리려 애쓰지 않고
다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괴로울 일이 없다.
삶을 전체적으로 받아들이라.
∎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고 말하라.
∎ 과거에 좋지 않았던 일들이 되돌아보면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은 없는가. 괴로운 상황이나 미운 사람이 내게 주는 긍정점을 찾아보라.
∎ 아무리 최악의 상황이더라도 ‘우주가 나를 돕고 있다’고 외치라.
2. 집착을 버려라. 놓아라. 비워라.
모든 괴로움의 원인은 집착에 있다.
집착이 있으면 반드시 그곳에는 괴로움의 씨앗이 있다.
돈도 명예도 사랑도 소유도 성공도 지식도 가치관도 집착할 것이 못 된다.
모든 수행의 핵심, 모든 행복한 삶의 핵심은 무집착에 있다.
변한다는 이치를 받아들이면 집착할 것이 없음을 알게 된다.
모든 집착을 놓는 자리가 부처자리요 영성이 충만해지는 자리다.
아상을, 집착을, 욕망을, 번뇌를, 소유를, 생각을 놓고 비워라.
비우면 채워지고, 놓으면 잡히며, 버렸을 때 전체를 잡을 수 있다.
텅 비면 충만하다.
∎ ‘지금 죽을 수 있는가?’ 죽을 수 없다면 이유를 10가지 적어보라. 그것이 바로 가장 큰 내 집착의 실체다.
∎ 괴로운가? 그렇다면 그 원인은 무언가에 대한 집착에 있다. 집착의 실체를 찾아보라.
∎ 내 욕망과 집착의 목록을 만들라. 욕망을 버리기 쉬운 것부터 지워본다.
3. 지금 이 순간에 깨어있으라. 관하라.
생각을 과거나 미래로 내보내지 말라.
오직 지금 이 순간을 지켜보라.
‘지금 여기’에 집중하라.
객관의 관찰자가 되어 나를 바라보라.
한 발자국 뒤에서 나를 지켜보라.
내 생각, 느낌, 몸, 호흡, 그리고 대상을 아무 판단 없이
다만 지켜보고 관찰하라.
지금 이 순간에 깨어있을 때
비로소 내 안 깊은 곳의 신성을 불성을 일깨우게 된다.
영성이 충만해지고 존재는 깊은 휴식에 든다.
깨어있는 관수행이야말로 깨달음의 요체다.
∎ 아침 저녁으로 10분 좌선에 들어 마음을 무심하게 바라본다.
∎ 하루 일과 중 ‘3분호흡관’으로, 들숨과 날숨에 숫자를 붙이며 호흡을 관찰한다.
∎ 화날 때 화부터 내지 말고 화내기 직전 호흡을 10번 크게 들이 쉬고 내쉬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난 뒤에 화를 내더라도 낸다.
4. 부처님께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긴다. 자연의 흐름에 맡긴다.
내가 무엇을 한다는 생각을 버리라.
나는 없다. 오직 본연의 성품이 있을 뿐.
내가 한다고 하면 내가 괴롭고 즐겁지만
모든 것을 맡기면 괴로울 것도 즐거울 것도 없다.
늘 한결같이 살 수 있다.
모든 것을 맡기고 자연스럽게 살라.
자연의 흐름, 진리의 흐름에 내 몸을 맡기라.
일을 할 때도 자연스런 분위기와 흐름을 타고
자연스럽게 되어지는 것이 가장 좋다.
∎ 3번 이상 권유하고 시도해서 안 되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은 것, 포기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
∎ 모든 것을 ‘내 일이 아닌 부처님 일’ ‘하느님 일’이라고 생각하고 맡긴다.
∎ 잘 되든 못 되든 상관하지 말고 당신이 하시는 일이니 더 큰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라.
5. 사랑과 자비를 베풀라. 나누어 주라.
‘내 것’이란 없다.
잠시 나에게로 흘러왔다가 흘러갈 뿐이다.
그것을 흐르도록 두라.
내 안에 가둬 쌓아두지 말라.
소유든, 사랑이든, 마음이든, 가르침이든 이웃과 함께 나누라.
끊임없이 자비와 사랑을 베풀라.
베풀되 베풀었다는 상 없이 베풀라.
베풀어도 사실은 베푼 것이 아니라
잠시 이쪽에서 저쪽으로 인연따라
정확히 필요한 곳에 가 닿을 뿐이다.
준다는 것은 곧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면 받게 되고,
준 바 없이 주면 무한한 복을 받게 된다.
∎ 월급을 받으면 일정액을 떼어 순수하게 베풂을 위한 몫으로 정해두라.
∎ 돌려받을 수 없는 곳, 받을 수 없는 사람에게 베풀자.
∎ 매월 좋은 책을 10권씩 사서 버스기사, 회사 동료, 이웃들에게 아무 이유 없이 주자.
6. 적게 생각하고 많이 행동하라. 생각날 때 바로 저질러라.
될 수 있다면 머리를 적게 굴리는 것이 좋다.
생각은 본연의 진리를 막아선다.
생각과 판단을 줄이면 삶이 선명해지고 명료해진다.
많이 생각하기 보다는 많이 저질러라.
행동은 깨달음의 지름길이란 말이 있다.
∎ 도움을 주고 싶은 생각이 일어나면 바로 주라. 생각이 많으면 주지 못한다.
∎ 한 생각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 바로 저질러라.
∎ 오랫동안 마음만 있었지 용기를 내지 못한 것이 있다면 저질러보라.
7. 내 생각을 남에게 주입하지 말라. 고집을 버리고 활짝 열려있으라.
어떤 한 가지 생각에도 전적으로 고집하지 말라.
언제든 바꿀 수 있는 유연성을 키워라.
어떤 가르침도, 어떤 사상도 다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가슴을 열어라.
어떤 사람에게도 배울 수 있는 자세를 가지라.
내 생각이 옳을 수 있다면 다른 사람의 생각도 옳을 수 있다.
내 생각을 상대에게 주입하지 말라.
∎ 전혀 새로운 분야의 책도 한번쯤 사서 읽어 보고, 나와 생각이 맞지 않는 사람의 말도 한번쯤 수용하는 자세로 들어보라.
∎ 나보다 못한 사람에게 배울 수 있는 점을 찾으라.
∎ 다른 종교의 성전을 읽어보라.
8. 부족하게 불편하게 산다. 아끼고 절약한다.
자식을 실패로 이끄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원하는 것을 다 해주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가지고 싶은 것을 다 가지고 사는 것 보다
조금 불편하고 부족하게 절약하며 사는 가운데에서
사유의 뜰이 넓어진다.
몸이 불편하면 정신이 깨어나지만,
몸이 게으르고 편한데 익숙해지면 정신의 지평이 축소되고 만다.
또한 아끼고 절약하는 가운데 충만한 복이 깃든다.
∎ 집에 있는 쓰지 않는 것들을 모아 필요한 곳에 나누어 준다.
∎ 무언가를 살 때는 이것이 욕망에 의한 것인가 필요에 의한 것인가를 살피라. 사고 싶은 것을 바로 사지 말고 좀 나둬 본다.
∎ 아끼고 절약한 만큼을 돈으로 환산하여 저축하고 보시한다.
9. 매일 기도의 시간을 가진다. 수행과 명상을 실천한다.
기도만큼 이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행위는 없다.
물질은 육신에게 필요한 것이지만 기도는 정신에게 필요한 것이다.
물질은 이번 생으로 끝나는 것이지만 기도는 다음 생까지 이어진다.
아침 저녁으로 기도와 수행의 시간을 가지라.
아침의 기도는 낮 동안의 재앙을 없애주고
밤의 기도는 밤 동안의 재앙을 소멸시킨다는 말이 있다.
기도와 수행의 시간을 가지는 자에게 충만한 평화가 깃든다.
∎ 매일 아침 기도는 거르지 않는다.
∎ 기도의 본질은 감사다. 매 순간 순간 아무리 작은 일에도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 주 1회 이상은 자신이 믿는 종교의 성전에서 기도를 한다.
10. 적게 말하고 많이 들어라. 침묵하라.
말이 많아지면 그만큼 허물도 늘어난다.
입이 가벼우면 생각도 가벼워지고 행동 또한 가벼워져
자기 중심을 잡기 어렵다.
입이 화의 근원이고 번뇌의 근원이 된다.
침묵하는 자는 쉬 들뜨지 않으며 가볍지 않고 쉽게 행동하지 않는다.
내 생각과 견해를 상대방에게 말함으로써 인정받고자 하는 생각을 버리라.
침묵 속에 기도와 명상이 있고, 신과 부처와의 대면이 있다.
∎ 상대방의 말을 주의 깊게 경청하고 공감해 주라.
∎ 때때로 말하지 않는 ‘묵언’의 시간을 가지라. 묵언의 하루를 보내는 것도 좋다.
∎ 대화중에 말을 관찰하고, 내가 하루 종일 했던 말의 목록을 적어보라.
11. 자연의 먹거리로 소식하라. 자연치유력을 높인다.
인공적인 것, 가공된 것, 인간의 욕심이 개입된 먹거리는
곧 우리 몸을 혼탁하게 만드는 주범이 된다.
몸이 맑아져야 마음도 함께 맑아진다.
될 수 있다면 자연 그대로의 먹거리가 좋다.
자연의 생명이 담긴 음식은 곧 우리 몸의 자연치유력을 높여주어
온갖 병을 예방해 준다.
또한 음식을 먹을 때는 소식을 원칙으로 한다.
많이 먹을수록 식복이 다해 수명도 줄어든다.
많이 먹으면 정신이 둔해진다.
∎ 가족이 함께 주말농장이라도 찾아 가 자연의 먹거리를 직접 생산해 먹어본다.
∎ 가공식품, 인스턴트식품, 탄산음료 등을 먹지 않는 날을 정하라.
∎ 하루 한 끼 이상은 잡곡밥과 야채, 콩, 감자 등만으로 소식한다.
12. 홀로 있는 시간을 가지라. 외롭고 고독한 시간을 즐기라.
외롭게 홀로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 안의 참나를 만나는 소중한 통로가 되며,
그 때 비로소 신과 부처와 대면할 수 있는 시간이 된다.
홀로 있다는 것은 곧 전체와 함께 있다는 것이다.
홀로 존재하는 시간이 많을수록 정신이 내 안에 뿌리를 내린다.
∎ 때때로 홀로 여행을 떠나라.
∎ 하루 중에 아무 생각 없이, 일 없이 다만 홀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가지라.
∎ 일주일에 몇 일은 집에서 TV를 꺼 두고 지내라.
13. 매일 숲길을 걸으라. 산책의 시간을 가지라.
숲길이나 산길을 홀로 걷는 산책의 시간은
더없이 소중한 자기와의 대면이며
걷는 일 자체가 경행의 수행이 된다.
걸음을 관찰하며 걸으라.
마음을 관찰하며 걸으라.
서서 두 발로 대지 위를 걷는 것이야말로
몸 건강에도 정신 건강에도 큰 도움을 가져온다.
아침 저녁 조용한 산책의 시간에
가장 창의적인 아이디어도 떠오르고,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시간도 된다.
때때로 산을 찾으라.
∎ 아침이나 저녁 중 한 때를 정해 가까운 산으로 산책을 나서라.
∎ 주말이면 홀로 혹은 가족과 함께 산을 찾으라. 때때로 지리산을 홀로 종주해 보라.
∎ 숲길을 걸으며 발바닥에 마음을 모아 집중하고 그 느낌을 알아차린다.
14. 자연의 변화를 살핀다. 꽃이 피고 지는 것을 유심히 지켜본다.
자연이야말로 가장 진리와 합일을 이루며 사는 생명이다.
자연과 가까이할수록 우리 마음도 자연을 닮아가고
자연의 지혜를 배우게 된다.
자연의 변화를 지켜보는 일은 곧 마음을 비우는 일이 된다.
∎ 봄부터 겨울에 이르기까지 나무나 야생화를 하나 정해 유심히 관찰하라.
∎ 계절의 변화를 오감으로 느껴보고, 자연 관찰 일기를 적으라.
∎ 식물도감을 가까이 하고 식물의 이름을 알아본다.
15. 자기다운 삶을 살라. 누구처럼 살려고 애쓰지 말라.
남처럼 살려고 애쓰지 말고 독창적인 자기 자신의 길을 걸으라.
'나'라는 존재는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유일무이한 진리의 표현이다.
진리가 '나'로써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 자신의 길을 걷는 것이야말로
나로써 피어나는 진리를 꽃피워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인 것이다.
누구처럼 사는 것은 억지스럽지만
나답게 사는 것은 자연스럽고 쉽다.
자기다운 일을 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이 이 세상에 나온 진리의 목적을 이뤄내는 것이다.
∎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은 무엇인가. 그 일에 에너지를 쏟으라.
∎ 사소한 것일지라도 나의 긍정점을 100가지 이상 찾아보라.
∎ 무엇이든 남과 나를 비교하지 말라.
참된 앎은 곧 존재를 변화시킨다.
수첩에 적거나 프린트를 하여
눈이 자주 가는 곳에 붙여 놓고 틈틈이 읽기라도 해 보라.
분명 삶에 변화가 찾아 올 것이다.
가랑비에 옷이 젖듯 은은히 삶 속에 스며들 것이다.
하나 하나의 목록이 어찌 생각해 보면 별 내용 아닌 듯 느껴질 지 모르지만
이 안에 우주의 신비로운 지혜의 소식이 담겨 있다.
모르긴 해도 수많은 종교나 사상, 철학, 성인들의 가르침이
이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을 것이다.
물론 사람들에 따라 이것이 가지는 의미는 다르겠지만,
어떤 사람은 이 가르침들 안에 깨달음의 씨앗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삶을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억지로 실천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무슨 거창한 수행을 한다거나,
삶을 변화시키겠다거나 하는 노력을 기울일 것도 없다.
쉽고 단순하게 실천하는 것이 좋을 듯 하다.
다만 틈틈이 반복해서 읽고 사유해 보라.
이 목록이 가지는 좀 더 본질적인 의미를 삶 속에서 찾다보면
어느 순간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작은 깨우침이 찾아 올 지 모른다.
이해되지 않거나,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어떻게 현실에서 실천해야 할지 모르겠더라도 괜찮다.
점차 이해는 깊어질 것이다.
우리 안에 본연의 깨달음이 항상 자리하고 있음을 받아들이기 바란다.
자기 자신의 본래 능력을,
우리 안의 불성이며 신성을 너무 쉽게 무시하지 말라.
반드시 안에서 깨우침의 향기가 피어오를 것임을 믿어도 좋다.
다만 반복해서 읽고 사유해 보라.
그것도 어렵다면 그저 읽기만 해도 좋다.
반복해서 읽다보면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내면 깊은 곳에
몇몇 언어들이 생명력을 일으키며 물결을 일으킬 것이다.
수행이란, 마음공부란 사실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동안 우리들은 수행과 명상에 대한 너무 높은 울타리를 치고 있었다.
억지스런 노력과 애씀은 오히려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수행을 오히려 나와 멀어지게 만든다.
고행주의를 버리라고 했던 부처의 말은
이미 2,500여 년 전에 있어왔지만
그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여전히 수행은
고도의 고행과 노력을 감당해 낼 수 있는
소수의 사람들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수행은 특별한 사람만 할 수 있는
어떤 고난도의 기술이 아니다.
가장 단순하고 쉬운, 너무 쉽고 단순해서 오히려 어렵게 느끼는 것이
수행이요 명상이다.
그러니 그동안 가져왔던 수행에 대한,
명상에 대한 벽을 깨라.
아주 자연스럽게, 아주 쉽고 단순하게,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긴장을 풀기 바란다.
그랬을 때 비로소 우리의 삶은 변화될 수 있다.
내 안의 깊은 휴식의 공간이 비로소 본연의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된다.
1.합장
몸의 힘을 빼고 손가락을 모두 붙이고(새끼손가락 벌어지면 청년이라
도 노인과 같이 힘이 없고, 엄지손가락 벌어지면 아만이 꽉차서 모두
싫어하며 내생에 원숭이가 될 가능성이 높다.)
발뒷꿈치와 엄지발가락은 붙이고, 엄지발가락이 방석에 약간 덮일
정도로 위치를 고정 시킨다. 합장한 손은 자기 심장높이
(입가까이 손이 올라가면 소극적,두려움이 많게됨),
팔꿈치는 옆구리에 살짝 붙이고 앞에서 보면 코끝,손,배꼽이 일직선.
2.표정
부처님께 예경 올리는데 강시 표정은 금물!!!
마음을 밝게 표정을 밝게 해야만 지치지 않게 된다.
힘들때 억지로라도 입꼬리를 귀가까이 까지 올리면 108배는 무사통과
3.발가락 꺽으면서 무릎꿇기
엄지발가락을 기준으로 뒷꿈치를 벌리면서 무릎을 꿇는데 이때 무릎은
반드시 붙인다. 양뒷꿈치 사이로 엉덩이가 들어가야 한다.
이때 새끼발가락 까지 완전히 꺽어져서 아플 정도로 되어야 신장의
물기운이 머리와 눈을 식혀주고 심장의 불기운이 몸을 덥게 해서
수승화강이 절로 된다.(새끼발가락에 족태양방광혈이 있으므로)
4.손짚고 앞으로 나가면서 발포개고 접족례하기
손을 짚는데 손과 손사이 넓이는 자기 얼굴넓이 만큼, 손짚는 길이는
팔을 구부렸을때 팔꿈치가 무릎 바로 앞에 오게 한다.
손을 짚을때 반드시 팔을 곧게 펴고 앞으로 살짝 나가면서
왼발을 오른발에 포개고 머리와 코와 엉덩이가 동시에 방석바닥에
닿게 한다(머리가 닿으면 머리의 정전기가 빠져나가고, 코는 어깨와 목뒤
의 뻣뻣한 근육, 오십견등을 풀어준다. 스트레칭 효과가 있다.)
접족례는 부처님의 발을 공경스럽게 받드는 것으로 손가락 사이가 벌어지지
않게 붙이고 손마디가 튀어나올 정도로 곧게 펴서 손목의 힘으로 실제로
손바닥에 부처님 발이 놓여 있는 것을 살짝 든다는 느낌으로 한다.
그러면 손바닥에 있는 심장과 직결된 노궁혈이 열려 심장이 두근 거릴때
합장을 하면 10초 이내로 안정이 되며, 평생 심장병 걸릴 일이 없다.
5.다시 손짚고 머리들면서 합장 일어선다.
접족례를 마치고 다시 손짚고 앞으로 살짝 나가면서 발가락 꺽고 합장
일어선다.
6.호흡법
들이쉬는 호흡은 앉을때, 일어설때 자동으로 들어오므로 전혀 신경쓰지
말고 내쉬는 호흡만 가늘고, 길게, 부드럽게 하면된다.
처음에는 세고 빠르게 내뱉아야 폐속의 노폐물이 빠져나간다.
대중과 함께 수행할 때는 너무 크게 내뱉으면 방해되므로 삼가.
접족례를 하기 위해 손을 방석 바닥에 짚기 바로 직전(10cm)에
입을 약간 오므려 윗입술 가운데로 휘파람 불 듯이 내뱉으며
접족례를 하고 합장하는 순간까지 한다.(합장함과 동시에 입은 다물어야됨)
7.숫자 대입법
처음 발가락을 꺽을때 거기에 마음을 두고 하나!
접족례를 마치고 일어 서려고 발가락 꺽을때 하나!
일어서서 뒷꿈치를 붙이면서 하나!
한숫자를 세 번씩 반복하여 센다.
숫자대입은 108번이나 100번 까지만 할것.
8.마지막 고두례 자세와 축원기도
고두례는 부처님께 절을 많이 할수 있지만 시간이 없어서 그만 하겠습니다
라는 뜻으로 마지막에 엎드려 반배를 한번 더 하는 것이다.
접족례 할때보다 양다리를 조금 더 벌리고 팔을 앞으로 더 가져가고
합장을 하여 엄지손가락 첫마디를 상단전 차크라에 댄다.
코에 마음을 집중하여 들이쉬는 호흡에 “부처님” 내쉬는 호흡에
“고맙습니다”를 30번 한후 부처님께 축원 기도를 올린다.
*절수행시 주의사항
절수행시 몸의 힘을 쪽빼고 동작은 너무 크지 않게 소리는 나지 않게
한동작 한동작이 끊어지지 않고 부드럽게 이어지게 해야 한다.
그래야만 호흡과 동작이 일치되어 몸의 사기 및 노폐물은 빠져 나가고
부처님의 밝은 기운과 단전호흡이 절로 된다.
숨차지 않고 헐떡거리지 않고 평상시 맥박보다 10%이상 증대되지 않게
해야 하며 너무 급하게 하면 공격적인 성향으로 오히려 역효과가 있다.
절수행시 창문과 방문을 닫고 두꺼운 옷을 입고 땀을 흘리면서 해야한다.
(스포츠와달리 수행시 흘리는 땀은 수은,알미늄,지방과 같이 우리몸에 불필요한
것들을 빼내 주므로 몸의 영양소는 그대로 남아 있다.)
절수행이 끝나고 샤워시 비누 사용은 금물(모공이 모두 열려서 그속으로 들어간다)
절수행시 나타나는 통증 및 슬픔이나 분노 괴로움등은 모두 우리들 잠재의식
속에 입력되어 있던 것이 빠져나가는 모습이므로 놀라지 말고 마음을 발에
더욱 집중하여 계속 절을 하면 된다.
절수행시 마음은 항상 발에 가 있어야 한다.
아침,저녁으로 잠자리에서 일어나기전에 마음을 발에 두고 발가락을 몸쪽으로
꺽으면서 “부처님” 몸바깥 쪽으로 풀면서 “고맙습니다” 필히 20분정도 한 후 기상하고 잠자리에 든다.
지난 주일은 입춘을 핑계로 삼백배를 했다.
한번에 다 한 것은 아니고
아침에 집에서 백팔배를 하고
정토법회에 가서 두번 백팔배를 했다.
처음엔 다들 좋다니까 호기심으로 시작해서
운동이라도 되겠지 싶어 계속했다.
온몸으로 하는 기도라는데
힘든 생각만 들고 자비심이 생기지 않아 답답했다.
그러나 내게 자비심이 부족하다는 자각조차도
백팔배를 하지 않았다면 들지 않았을 것이다.
지난 주엔
내가 부당한 대우를 주위에서 받았을 때
쉽게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는데
내가 상대에게 부당한 대우를 하는 것은
그리도 잘 보이지 않음을 알았다.
모든 사람을 부처님으로 보고 대우하라는 말씀을 새기면서
내가 아무리 그 사람이 나보다 못한 조건과 자격을 가지고 있다해도
그를 부당하게 대해서는 안되겠다는 반성을 했다.
아이들에게도 말 한마디라도 더 부드럽게 자상하게 하도록 해야겠다.
어려서 엄마로부터 받은 영향이
아이들에게 그대로 전해지는 부분을 보면서 소름이 끼친다.
이렇게 업이 전해진다는 말이구나.
매일 백팔배를 하면서 두꺼운 내업을 들여다보고 반성한다.
마지막 소원이 있다면
그동안 쌓은 모든 업들이 소멸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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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독일 도보여행협회에서 인정한 프레미윰 도보여행길은 중부 이남의 산악지대에 몰려있지만, 독일 지리상 북쪽으로 갈수록 평평해지는 평지에 위치한 도보여행길로서는 가장 인기가 높은 길이며, 2006년에는 도보여행협회가 준 제일 아름다운 도보여행길로 뽑힌 길이다. 2009/10년에도 이 길의 9단계인 Ruedersdorf와 Hangelsberg 구간이 컨테스트에 참가한다.
독일 수도 베를린을 북쪽으로는 Zehlendorf와 Trampe를, 동쪽으로는 Strausberg와 Fuerstenwalde를 경계로, 남쪽으로는 Koethen과 Trebbin을, 서쪽으로는 Potsdam과 Wustermark를 경계로 큰 원을 그리며 걸을 수 있는 브란덴부르그 주내 가장 중요한 도보여행길이다. 취향에 따라 17단계의 구간중 원하는 곳에서 시작할 수 있는데, 각 구간은 최소 19km에서 최고 29km를 걷게 되어 있으며 전 구간은 400km 이다.
도보여행길의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3000여개의 호수들과 연못, 그리고 운하, 강이 숲과 어울려 있는 독일내 가장 큰 자연보호지역을 통과하게 되어 있다. 길 표지판도 호수를 상징하는 파란색 원이 그려져 있다. 브란덴부르그 주의 숲은 소나무와 모래땅만 있다고 생각하는 여행자들은 다양한 활엽수로 이루어진 숲을 가을에 만나면 독일 어느 곳보다 짙은 단풍에 놀라게 된다.
이 길은 일년 사시사철을 두고 쉽게 걸을 수 있는 길인데 주로 평지이며 최고 높은 곳이 150미터여서 도보여행 초보자들도 어렵지 않게 마스터할 수 있는 길이다. 봄에는 푸른 초원과 과일나무 군락들이 꽃을 피워 북쪽의 봄을 만끽할 수 있으며, 유월에는 노란 유채꽃이 푸른 초원과 대비를 이룬다. 여름에는 많은 호수의 수영이 허락한 장소에서 마음껏 물놀이를 할 수 있으며 희귀 조류인 황새들이 새끼를 낳아 8월이면 이주를 하는 장면도 만날 수 있고 겨울에는 잎이 다 떨어진 활엽수림을 지나며 텅빈 겨울숲의 한적함을 즐길 수 있다.
대도시 주위에 난 길임에도 대도시의 번잡함을 피해 한적한 자연을 즐길 수도 있으며, 문화유산 볼거리를 원하는 사람들의 욕구도 만족시킬 수 있는 길이다. 일단계 시작인 포츠담과 Marquardt 구간만 보아도 Freundschaftsinsel, Nikolaikirche, Altessportal, Brandenburg Tor, Obelist, Schloss Sanssouci, Pyramid, Schloss Cecileinhof, Roemische Baeder, Chinesisches Teehaus 등이 있다.
호수가 없는 구간도 있지만 두 세개에서 최고 8개의 호수들을 지나며 감상할 수 있는데 제일 아름다운 구간이라고도 할 수 있는 구단계는 22.5km의 거리로 호숫가를 따라 난 길을 걸으며 150m 이 구간에서는 최고 높이의 언덕에 위치한 브란덴부르그 전망대 위에서 주위 전망을 즐길 수 있다. 오월 이후에는 Falkensee에서 수영도 할 수 있고 원하면 부드러운 Loecknitztal나 Liebesquelle를 방문할 수 있다. 깨끗한 물에서 양식도 송어요리도 찾는 사람들의 미각에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66개의 호수가 있는 길이라고 명칭이 붙어 있지만 사실 작은 호수들도 세면 이 길에는 76개의 호수들이 있다. 호수들의 이름도 각각 생긴대로 아니면 어떤 전설이 있는 지 Teufelssee, Moenchsee, Boddensee, Faulersee, Regenbogensee, Krummersee, Jungfernsee 등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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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무엇이든 무리해서 억지로 하지 말자는 것이 제 삶의 신조입니다. 그런데 결혼 적령기를 넘기고 혼자 떨어져 사는 저를 어머니께서 무척 걱정하십니다. 매일 통화할 때마다 결혼 이야기를 빠뜨리신 적이 없습니다. 어머니께 죄송한 마음도 들지만 반복되는 잔소리에 슬슬 지쳐갑니다. 한편으로는 혼자 사는 게 조금 외로운 것도 사실이고요. 그렇다고 누군가를 찾아나서는 것은 귀찮은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답변: 질문하신 분의 마음을 찬찬히 살펴보니, 혼자 살고 있는 현실이 본인 스스로 생각해도 편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지금 조금 외로우시네요. 그래서 누군가 좀 같이 있어줬으면 하는데 게을러서 ‘내가 당신이 필요합니다’ ‘당신이 좋습니다’라고는 말 못 하고 누군가가 나를 찾아와서 ‘당신이 필요합니다’ ‘나는 당신이 좋습니다’라고 말해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내 마음도 그런데, 마음처럼 되지 않아서 약간 짜증이 나 있는데, 어머니가 자꾸 압력을 가하니 괜히 어머니한테 화를 내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나 혼자 사는 데 아무런 마음의 불편이 없다면 어머니가 아무리 결혼하라고 얘기해도 스스로는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내 마음에 걸리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에 반발심이 생기는 거예요.
부모님 입장에서 보면 자식이 혼자 사는 게 좀 안돼 보이겠지요? 물론 그런 생각도 올바른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내 자식이라도 정해진 길을 가라고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은 결혼 이외의 다른 인생길을 생각해본 적도 없고 경험해본 적도 없기 때문에 그것이 행복하든 불행하든 이 길밖에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거지요. 즉 어머니는 나를 괴롭히려고 잔소리를 하는 게 아니라 어머니 나름의 방식으로 당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거예요. 혼자 있는 자식을 보면 첫째로 안타깝고, 그래서 얘기를 하면 고분고분 받아들이지 않고 반발을 하니 어머니도 화가 나는 거예요. 그러니 ‘아, 어머니가 보시기에는 걱정스러운 상황이구나’ 하고 생각하면 돼요. 그런데 그렇게 편하게 생각하지 못하는 것은 내 마음이 편안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이 편안하면 어머니의 불편한 마음을 읽고 위로해드릴 여유도 생기겠지요. ‘어머니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조금만 기다려보세요. 좋은 일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제가 아무나하고 결혼해서 사니 못 사니 하면 어머니가 더 괴로우실 것 아니에요. 제가 지금 때를 기다리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이렇게 말씀드릴 수도 있겠지요. 그러면 어머니께서 ‘너 그런 말 한 게 몇 년째냐?’ 하실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어머니의 그런 걱정과 잔소리를 인사로 들으면 돼요. 부모님은 자식한테 전화해서 매번 ‘밥 먹었니?’ 이러시잖아요. 설마 밥 안 먹고 살겠어요? 밥 먹었니, 잘 잤니, 이건 그냥 인사란 말이에요. 그처럼 결혼하라는 말도 인사로 들으면 돼요.
내가 편안하면 잔소리도 다 인사로 들리는데 내가 불편하니까 어머니 말씀에 짜증이 나는 거예요. 여러분 마음이 불편하면 여름에 매미 우는 소리도 시끄럽고 짜증스럽게 들리지요? 연못에서 우는 개구리도 밤에 잠 못 자게 하는 원인이 되고요. 그러니까 지금 내 마음이 불편하다, 외롭다 이런 신호를 보내고 있는 거지요.
어떤 사람을 구하는 것도 외로움을 해결하는 방법 중 하나이겠지요. 그런데 그것은 임시방편일 뿐입니다. 잘못하면 부작용이 따르지요. 외로워서 사람을 사귀게 되면 외로움은 가시는데 다른 부작용, 귀찮음이 생깁니다. 시간이 흐르면 그 귀찮음의 도가 점점 더 커져서 도저히 못 살겠다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수많은 세월을 보내다가 결국 헤어지면 귀찮은 병은 잠시 낫는데 또다시 외로움이라고 하는 부작용이 생겨나는 겁니다. 혼자 있으면 외롭고 둘이 있으면 귀찮고, 늘 이 사이를 오고 가며 방황합니다.
외로움은 내가 마음의 문을 닫고 있기 때문에 생겨납니다. 마음의 문을 닫고 남에게 다가가지 못하기 때문에 외로운 거예요. 마음의 문을 탁 열고 있으면 깊은 산 속에서 혼자 살아도 하나도 외롭지 않습니다. 별에 마음의 문을 열고 산에 마음의 문을 열고 하늘에 마음의 문을 열고 달에 마음의 문을 열고 풀벌레와 온갖 짐승, 꽃과 새와 나무에 마음의 문을 열고 있으면 혼자 살아도 전혀 외롭지 않습니다. 그런데 마음의 문을 닫고 있으면 두 남녀가 껴안고 한 이불 밑에 있어도 외롭습니다. 껴안고 있는 상대가 내 마음을 알아주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면 둘이 있어도 늘 혼자예요.
외로움은 내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그 외로움의 진짜 이유를 늘 살펴야 됩니다. 그렇게 외로움의 원인을 알고 스스로 외로움에서 벗어나면 혼자 살아도 괜찮고, 같이 살아도 귀찮음이란 부작용이 안 생깁니다. 혼자 있을 때는 혼자 있어서 좋고, 둘이 있으면 둘이 있어서 좋은 인생의 참맛을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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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세계에서 와서 사랑을 하다 사랑의 세계로 가는것이 인생의 길인데
그 사랑을 하지 않으려 결혼을 하지 않으면 부모의 사랑과, 부부의 사랑, 형제의 사랑,
자녀의 사랑을 체휼하지 못하니 인간으로서 가장 불행한 삶을 산다고 봅니다.
모든 피조만물이 쌍으로 이루어져 생존, 번성하는데 그 순리를 거부하니
순리대로 사신 부모님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시겠죠.
부모님의 그 심정도 부모가 되어봐야 알겠지만요...
일본시골님 말씀도 맞아요. 자식을 낳아야 비로소 부모맘도 알게 되고 어른이 될텐테 말에요. 그러나 남들이 다 한다고 그냥 따라해서 불행해지는 결혼도 많으니...전 스님께서 열린 마음으로 일단 살아야 한다고 하셔서 공감했어요. 그럼 결혼을 하든 안하든 행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오늘 불교방송에서 법륜스님의 일문일담을 잘 들었습니다.
여러 답변 중 제일 인상깊었던 것 하나.
불화한 부모의 피터지는 다툼에 심정적으로라도 끼어들어 엄마편이 되었으니, 자신도 결혼하여 아버지와 같은 전철을 받을까 두려워하지 말고, 철저히 남(=부모)의 부부싸움에 관여하지 않음으로써 까르마를 끊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지요. 한국이나 서양이나 남의 일에 너무 간섭해서 갈등이 심화되는 것 같아요. 여긴 프라이버시를 지키는 성향이 강해서 한국보다 덜 하지요. 부모도 자식일에 잘 간섭 안할려고 하구요. 간섭이 배려라고 착각해서는 안될 것 같아요. 저도 어려서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까르마를 아이들에게 그대로 전할까봐 요즘 반성하며 백팔배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