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차대의 문등리[文登里] 계곡 기습전
- 미 72전차 대대의 단장의 능선 작전-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어물어물 학훈 장교로 임관할때
뭐가 뭔지도 모르고 선택 한 것이 기갑병과였다.
기갑학교에서 죽도록 두들겨 맞으며 교육받고 또 어물어물
졸업해서 간 곳이 서부 전선의 어느 전차 대대였다.
굼벵이도 딩구는 재주는 있다고 원래 전쟁물이나 전사를
많이 읽었기에 부대 근무중에도 떠오르는 전술 전략의 관심을
누를 수는 없었다.
때로는 역사의 전쟁 영웅들을 떠올리며 내게 주어진
환경이라면 어떻게 지휘를 하는가하는 동키호테식 공상을
해보면 고달픈 처지에서도 마음의 편안함을 취할 수가 있었다.
부대 연병장에서 멀리 보이는 북한 땅에 첩첩이
둘러친 산악은 나의 공상의 날개를 펼치게 유혹하는
존재였었다.
북한군은 그런 전략적 고지에는 전부 갱도를 파고
들어 앉아서 폭격이나 포격을 해도 죽지 않고 살아남아
반격한다는데 저것들을 전차로 어떻게 공격해야 하는가하는
과제로 삼아 상당 기간 공상을 해보았다.
나는 한동안 독일의 기갑군들처럼 담벼락같이 단단한
북한군의 휴전선 방어선을 뚫고 들어가 평양 쪽으로
돌진하는 테마를 가지고 공상을 했었다.
단, 다시 강조해 두지만 이것은 세상 물정 모르는 아마추어의
순수한 머릿속 공상이었다.
이런 공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미친 놈 취급을 받는 것이
그때의부대 분위기였기에 물론 나 혼자만의 공상이었다.
그러나 그때 한국의 정치적인 환경이 전면전의 시나리오보다도
국지전의 가능성을 더 높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앞에 보이는 북한 땅 능선들을 공격해서 점령하라는 지시를
우리 대대가 받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하는 축소된 테마로 붙들고 또 공상을 했었다.

미해병대에 퍼부어지는 공산군의 82미리 박격포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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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올라갈 수는 없는 전차가 포병처럼 직접 사격으로
보병의 공격을 지원하는 임무는 어쩐지 내 공상의 날개가
활갯짓하기가 부족한 공간이었다.
나는 여러 가지로 궁리해보았으나 고지(高地)는 전차가
주도적으로 어떻게 해볼 수가 없는 목표라는 결론을 내렸다.
결론은 고지 점령에서 전차가 할 일은 역시 포병과 같이
보병의 지원역할을 하는 것 뿐이라는 것이었다.
당시 대대 본부의 회의실에 군대 내에 회람되는
이 책 저 책을 되는대로 꽂아두는 낡은 책장이 있었다.
정훈교재나 야전교범이나 군 정기 간행물등 모두 별다르게
재미있는 책들은 아니기에 간부라면 누구든 가져가도 시비를
별로 걸지를 않았었다.
나는 어느 날 이 책장을 들여다보다가 맨 아래 칸에서
손장래 장군이 편역한 ‘한국 전쟁의 기갑운용’이라는
책을 발견했다.
물론 미군들의 사례를 모아서 편역한 것이었다.
손 장래 장군은 80년대초 소장으로 예편해서 주미대사를
지낸 분이다.
이 책을 여기저기 들여다보다가 문득 책 뒷부분에서
1952년10월 미군 72전차대대가 단장의 능선 전투에서
고지 점령의 주도적인 역할을 했음을 발견했다.
내가 부대에서 멀리보이는 북한 땅의 산들을 보면서 궁리를
거듭하던 그 공상에 해답을 주는 전사 사례였다.
이 전투는 전차끼리의 치열한 결투나 번개 같은 기동이 없어서
전사 애호가들이 읽기에 밋밋하다 .
그러나 우리군의 기갑병과 지휘관들은 연구 해 봐야하는
특이한 전례를 담은 전사이기도 하다.
간단히 설명해 본다면 미군 2사단이 공격했었던 단장의 능선은
마치 개의 머리처럼 북 쪽에서 남쪽으로 삐죽하게 노출된 고지다
미 72 전차 대대의 기동부대가 개의 머리 같은 고지
왼쪽 계곡으로 투입하고 다른 보조 기동부대는 개머리 격의
고지 오른쪽 계곡에 투입하여 적의 후방을 차단함으로서
북한군을 퇴각하게 만들어서 보병들이 단장의 능선을
점령하게 한 것이다.
강원도 양구 북방 15키로 지점에 있는 피의 능선에서 북쪽으로
5 키로에 위치한‘단장의 능선‘은 현재 군사 분계선 남쪽 민통선
안에 자리하고 있다.

단장의 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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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8월 당시 공산군은 펀치 볼 남쪽을 제외한
세 방향의 고지를 점령하고 국군과 유엔군의 방어및 부대이동을
감제 하면서 아군 주저항선에 포격을 가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밴프리트 장군은 이 지역에서 적을 밀어내어 아군에
대한 공격 위협을 제거하고 양호한 방어진지를 점령함과 동시에
남쪽으로 돌출하여 구부러져 있던 전선을 직선으로 만들려는
작전을 구상하였다.
이 작전에 따라 8월 19일 국군과 미군은 교대 공격으로
북한군이 점령하고 있던 피의 능선[983고지]을 탈취했다.
피의 능선에서 쫓겨난 북한군은1,500미터 떨어진 후방의
다른 능선으로 옮겨가서
둥지를 틀었다,[나중에 단장의 능선이라는 이름을 얻게된다.]

피의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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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새로운 능선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약 11킬로 정도 길이로
세로로 길게 뻗어있는 능선이었다.
능선은 여러 고지들을 품고 있었다.
남쪽으로 부터 894고지,931고지,851고지가 북을 향하여
우뚝우뚝 솟아 있었다.
북한군은 능선 고지들의 지형을 이용해서 피의 능선보다
더 공격하기 힘든 난공불락의 요새를 구축했다.
피의 능선을 점령 작전에서 동원되었던 미 2사단이
다시 이 능선의 공격을 맡았다.
그러나 미군 2 보병 사단의 사단장 대리 토마스 드 샤조 준장과
그의 직속 상관 미 10군단장 크로비스 E.바이어스 소장은
험악한 능선에 자리 잡고 있는 북한군을 과소평가하는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다.
두 사람은 2사단의 23연대와 연대에 배속된
프랑스 대대만을 동원해서 단단히 요새화된 능선의
고지 군에게 정면 공격하기로 했다.
나중에 크게 잘못된 것으로 평가된 작전 계획이
9월 12일부로 발령되었다.

프랑스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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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은 9월 13일 시작했다.
공격개시와 동시에 미군의 항공기와 전차 그리고
포병들이 수 시간 동안 능선을 두들겼다.
이미 포격으로 많이 파괴되었던 사면은 달 표면과 같이
수많은 구덩이가 파져있는 황량한 모습으로 변했다.
이어서 미 2사단 23연대의 장병들이 가파른 바위투성이
사면을 위로 보고 전진하기 시작했다.
보병들은 북한군의 진지를 하나하나 파괴하면서 그 일부가
능선에 도착했다.
그러나 능선 점령 병력은 지칠대로 지쳐있는데다가
실탄마저 매우 부족한 상태였다.
소수의 지친 능선 점령 미군에게 북한군의 강력한 반격이 있었다.
능선은 북한군 6사단이 방어하고 있었다.
그들은 고지마다 견고한 지하 진지를 구축해놓고 미군의
포화를 피해 있다가 반격을 시도되었다.
반격은 주로 야간에 감행되었다.
폭탄과 기관총이 난사하고 수많은 수류탄이 폭발했다.
이런 난전은 때로는 칼로 찌르고 돌로 찍는 치열한
육박전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이렇게 싸우다가 다수의 사상자를 낸 미군이 산 아래로
쫓겨가기도 하고 때로는 북한군이 반격에 실패하고
패주하기도하는 치열한 전투가 무려 2주간이나 계속되었다.
미군의 몇개 보병중대는 심대한 타격으로 사실상
전투부대 단위로서 소멸되기도 했다.
능선은 서 너 번이나 주인이 바뀌었다.
미군은 보병의 피해가 커지자 막강한 화력을
능선의 고지 주변에 쏟아 부어 북한군을 몰아내려했지만
북한군은 갱도(坑道)라 부르는 지하 진지로 피신해서
이를 교묘히 피해냈다.
화력만으로는 이 진드기 같은 북한군을 어떻게 해볼 수가 없었다.

중공군의 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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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은 9월 12일부터 2주간 시도했던 능선공격은
성공 하기는커녕 미 제 2사단 23연대의 950명이 넘는
사망자를 포함해서 사상자만 1,670명의 피해를 입었다..
피해가 너무 막심했기에 미 언론들은 이 능선을
단장의 능선[HEARTBREAKING RIDGE]라고 명명했었다.
9월 27일 단장의 능선 전투기간 새로 부임한 사단장
로버트 영 소장은 단장의 능선에 대한 공세를 일시 중지하고
원점으로 돌아가 작전을 다시수립하기로 했다.
그 간의 전투를 주의 깊게 연구 검토한 결론은 북한군에게
재보급과 인력충원을 계속 허용한다면 단장의 능선은
절대 점령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영 소장은 그동안의 실패를 분석 한 뒤에 그 때까지의
제한된 목표[능선의 고지들]대신 능선의 배후와 주변을 포함한
정면의 넓은 지역을 목표로 삼았다.
또 다른 변경 사항으로 연대 병력이 아니라 전 사단 병력을
동원해서 단장의 능선뿐만 아니라 인근이나 배후고지까지
공격해서 적으로 하여금 보급을 받지 못하게 저지
시켜버린다는 것이다.
새로운 공격의 선봉에서 리드할 부대는 사단에 배속된
72전차 대대였다.
영 소장은 전차가 목표 후방에 돌격하여 적 예비대를
강타하여 교란시킴과 동시에 보병으로 목표 능선을
공격한다는‘OPERATION TOUCHDOWN'을 구상한 것이다.
이 작전 계획에 따라 M4셔먼 전차를 장비한 미72탱크 전차대대를
능선 서쪽의 계곡을 통해 문등리[文登里]부락까지 전진시키고
이보다 소규모인 전차대로 구성된 스토맨[STORMAN]
기동 부대를 능선 동쪽 사태리 부락에 투입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이 공격적인 작전 실행의 선결사항은 72전차대대의
문등리 진입로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단장의 능선 좌측에서 문등리로 나있는 좁은 산 계곡의
단 한 개 나있는 소로는 전차가 통과하기가
의심스러울 만큼 좁았다.
미군들은 전차들을 좁은 산길에 몰아넣었다가 중공군의
대매복 작전에 큰 피해를 본 쓰라린 경험을 1950년 청천강
이북에서 뼈저리게 한바있었다.

청천강 이북에서 좁은 시골길을 운행 하다가
개천에 빠져 폐기된 미군 M26 전차- 좁은 산길에
기계화 대 부대를 투입하면 안된다는 교훈은
운산이나 장진호전투가 입증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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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그 소로는 북한군에 의해서 대전차 지뢰와
2 미터가 넘는 바위들로 만든 대전차 장애물에 의해서
완전히 차단되어 있었다.
사단장 영 소장은 이런 난관을 극복하는 충분한 준비를
하기로 하였다.
단단하게 준비된 대규모 공병부대를 투입하기로 한것이다.
2사단 제 2 야전 공병대대에게 전차 기동로를 확보하라는
절대 지시가 내려졌다.
공병들은 능선위의 북한군들이 아래로 쏘아대는 총탄을 뚫고
매몰 된 지뢰들과 장애물을 삽과 폭발물로 일일이 제거하고
소로가 가장 좁은 곳은 확장하여 전차의 기동이 가능케 했다.
공병대대가 작업을 하는 동안 미 2사단의 9연대, 23연대,
38연대가 단장의 능선과 주변 산악에 기만 공격을 하여
공병대의 작업을 도왔다.

피의 능선에서의 미군- 한국군이 점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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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세를 위한 이 작업과 함께 더 작은 기동부대가 단장의 능선
왼쪽 계곡 깊숙이 위치한 사태리를 기습했다.
미 23연대 전차 중대를 중심으로 사단 수색 중대와 공병 1개
소대로 편성된 스토맨 기동부대는 사태리 계곡에서 강습 공격을
반복하면서 76미리 전차포로 851고지 동쪽 뒷면의 북한군 참호와
벙커를 파괴하였다.사태리로 통하는 도로는 그후
미군의 수중에 들어왔고 공산군의 접근을 차단했다.

M4 셔만탱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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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공격을 위한 모든 준비는 10월10일까지 완료하였다.
10월 10일, 제 72전차 대대의 전차 M4 셔만 전차 68량은
‘이목정’을 거쳐 10km 북방에 있는 문등리 부락에 돌입하였다.
완전한 기습이었다.
동시에 사단 전 보병 병력이 단장의 능선 일대에
대한 전면 공격을 개시했다.
적의 저항이 미약함에 고무된 전차 대대는 문등리 넘어
북방 4km에 있는 하심포까지 위력 정찰겸 진격했다가
기대하지 않았던 큰 사냥감을 발견하였다.
단장의 능선을 방어하고 있던 북한군 5군단 휘하 제 13사단과
임무 교대를 하려고 도보로 문등리를 향하여 남하하고 있는
중공군 제 68군 204사단과 조우한 것이다.
204사단의 중공군들은 그날 아주 운이 없었다.
하필이면 전차대가 밀고 북상한날 부대 교대를 위해서
남하하고 있었고 또 하필이면 이들이 하심포 부근 넓은 들에서
미 전차 부대들에게 포착되었던 것이다.
중공군 대부대가 접근하는 것을 발견한 미 전차대는
전차포와 기관총의 총 동원 된 화력을 퍼부었다.
미군 전차대의 기습을 받은 중공군은 많은 시체를 버린채
흩어져 도주하였다.

중간이 단장의능선, 왼쪽이 문등리 계곡, 오른쪽이
사태리 계곡, 양계곡을 노리고 전차들이 투입되었다.
그리고 앞이 피의 능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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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군을 전멸시키다시피 섬멸해버린 미 전차대는 문등리
후방에서 전차간 거리 30미터를 유지한 채 원형 방어진지를
구성하고 사격구역을 할당해서 단장의 능선 경사면에 있는
북한군 참호와 벙커를 이 잡듯이 찾아내어 파괴하였다.

M4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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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오기 전 일단 철수했던 대대는 새벽에 다시 출동하여
확보돤 문등리 길을 오르내리며 눈에 띄는 목표들을 포격과
기총소사로 파괴하였다.
전차대대가 닷새간 문등리 계곡을 휩쓸고 다니며 파괴
한 것은 집적된 보급물자,병력 집단과 350개소의 벙커였다.
북한군의 고지 양 측면으로 전차부대가 깊숙히 파고들어와
포위가 된 형세로서 후방이 차단되어 보급로가 끊긴데다가
보병들의 압박이 강하게 가해지자 북한군은
진지를 버리고 후퇴하기 시작하였다.
10월 10일 개시된 미 2사단의 대공세는 사단에 배속된
프랑스 대대가 10월 13일 단장의 능선 마지막 공산군 진지를
점령함으로서 완료되었다.
.
잔적을 완전히 소탕한 미군은10월15일 작전 종료를 선언하였다.
9월 12일부터 시작한 단장의 능선 전투는 미군 전차부대의
활약으로 34일만에 미군 수중에 들어왔다.
영소장이 주도권을 주고 펼친 터치 다운 작전은 성공하였다.
터치 다운 작전에서 미군 전차대가 사용했던 76mm 전차 포탄은
6만발로서 그 이전 어느 작전에서도 이렇게 엄청난
전차 포탄량이 사용된 사례가 없었다.
단위 전투로는 역사상 최고의 기록이었다.
확인된 북한군및 중공군의 시신만 1,473구나 되었다.
전우의 사체는 반드시 회수하거나 매장하는 공산군의 습성을
감안한다면 이 작전 동안 전사한 공산군들은 약 1만여명이
넘는다고 추정된다.[공산층 사상자 25,000명 추정]

M4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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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단장의 능선 점령 작전 동안 미군과 배속된 프랑스군이
입은 피해로서 사상자가 무려 3,700명이나 되었다.
단장의 능선을 미군이 탈취했다고는 하지만 인명 피해는 너무 컸다.
그 피의 큰 댓가로 얻은 것은 극히 작은 땅 조각이었다.
충격을 받은 미군은 앞으로 피해는 크고 얻는 것은 별로 없는
이런 식의 전투는 하지 않기로 했다.
단장의 능선은 한국전쟁 중에 미군이 취했던 마지막
사단급 주요 공세 작전이었다.
기갑의 본질은 적의 붕괴에 있다.
붕괴는 신속한 기동에 의한 기습으로
적의 후방을 쳐서 핵심 보급로를 차단하는 전략으로
달성가능하다.
기동 공간도 없는 이런 첩첩 산중에서 전차부대가
적의 붕괴를 가져 올 수있는 전과를 올릴수가
있었다는 사실을 문등리 작전이 입증해주었다.
물론 이는 아주 드문 사례이다.
산악지대를 전차가 어떻게 공격해야하는가 하는 소설 같은
테마를 붙잡고 공상을 거듭하다가 전차가 산악작전에서 할
역할이란 보병을 위한 화력지원이라는 것 이외는 없다고
얻은 나의 결론을 간단히 부정해버린 전사적 사례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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