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명성황후 표범 카페트의 행방은?
오늘은 중요한 호소성 글을 소개하고자 한다.
나는 지난 3월 명성황후의 집무실에 깔려있던 표범 50마리
가죽[정확히 48마리]으로 만든 양탄자가 한국 전쟁 중에
도난당해서 서울 인사 동 골동품 점포에 팔렸다가 이를 발견한
한 미군 병사가 구매해서 미국으로 보내졌다는 사연을 소개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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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시작하면서 독자 여러분들에게 부탁이 있다.
전번 글에서도 글의 주제와 달리 다소 엉뚱하게도
명성 황후의 비난한 댓글들이 많았다.
그 분이 국정 운영에 판단을 잘못한 것도 있었고 외척도
지나치게 중용한 것도 맞으나 조선 판 달기나 포사로 몰고
간 일본의 농간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명성황후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시는 독자분들에게 부탁드린다.
이 글에서만은 무도한 왜적의 만행으로 비운에 간 그 분 대신
아래 인간을 잘 주목해주시기를 바란다.
비운에 가고도 험담을 받는 명성황후 대신 한민족 만고의
지탄을 받아야 할 인간이다.
타국에 공사로 와서 주재국의 황후를 암살하는 만행을
저지른 일본 공사 미우라 고오로[三浦 梧樓]다.
메이지 유신의 주도를 한 조우슈 출신으로서 장군까지 되었으나
다른 주도 파벌인 사쓰마 번과 갈등 끝에 퇴역하고 조선에
공사로 왔었다.
평소 불교에 심취해서 공사 업무보다 참선이나 경문 베끼기등에
몰두하고 승복을 입기를 좋아 했으나 불교가 가르치는 불살의
계율을 거스르고 상상도 못할 타국 황후 암실이라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 자와 암살에 동원된 낭인들은 전부 일본에 소환 되었지만
물론 형식적인 재판만 받고 다 석방되었다.
세계 근대사에 외교관이 주재국의 왕비를 직접 암살 한
야만스럽고 야비한 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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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인용했던 라이프 지 기사와 사진이 표범 카페트에
대한 전체 기사가 소개된 것이 아니라 일부만 소개했던지라
내용에 불만이 많았다.
그래서 마침 보니 이 지난 1951년도 8월의 과월 호를
판매 한다는 안내가 있어서 이 책을 구입해서 전문(全文)을
다 본 뒤에 다시 글을 올리려고 마음먹었지만
뜻대로 되지가 않았다.
역시 구제 불능의 내 게으름과 삶의 힘든 무게가
심적(心的)여유를 허락지 않았다는 변명밖에 할말이 없다.
그러나 몇 주 전 최 재웅씨라는 독자 분에게서
메일이 날아왔다.
구글을 통해서 보면 라이프 지의 그 표범 관련 화제 기사를
전부 볼 수가 있다고 했다. 친절하게도 관련기사의 URL까지
동봉해 주셨다. .
정말 그 것을 따라가 보니 표범 카페트에 관한 라이프 지의
전문 기사가 있었다. [그 분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반가웠던 것은 중요한 핵심인 표범 가죽 48마리로 만든
카페트 사진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역시 표범 등가죽만으로 만들었다는 설명대로
기대 이상으로 아름다웠다.

표범이 한반도에 시글시글하고 가축과 인명을 해치는 해수였던
시절, 잡은 표범의 등가죽을 모아서 만든 표범 양탄자.
이런 귀중한 모피 보물은 현대의 세계 어디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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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범 카페트는 명성 황후 접견실을 다 덮은 것이 아니라
마치 영화제 시상식의 레드 카펫처럼 접견실 중앙에 길게
깔려있던 것이었다.
일본이나 중국의 예를 보면 이 표범 카페트 위는
명성 황후 혼자만이 밟을 수 있는 지엄한 것이었으리라.
이 표범 카페트가 어떻게 미국으로 흘러 나갔는지 라이프 지의
전문을 옮겨와 보자
기사는 한국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미국 콜로라도의
푸에블로에 거주하는 식품 도매상 휴 길트너 집안에서 시작한다.

표범 카페트를 아들로 부터 선물받은 길트너 부부.
한국산 옻칠 장식장을 손에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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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트너 씨는 아마추어 골동품 수집가라서 집에 작은
갤러리를 꾸미고 비록 값비싼 물건을 아닐지라도 이집트의
피라미드 돌에게부터 콜로라도의 오래 된 성냥 곽들도
잡다한 것들을 수집해놓고 있는 중이었다.

다시 올린다. 라이프지 그림 설명은 고 미술품을 사러
온 미군이라고 하지만 모두 위압적인 태도에 권총으로
무장하고 장교[대위]가 인솔 한 것을 보면 쇼핑 하러온
미군들이 아니라 미군 CID대원들이다.
앉아서 그림을 자세히 살펴 보고 있는 사람은 한국 경찰
외사과 직원 아니면 통역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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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아들 27세의 에브른 중사는 한국에 파병 되어 있었다.
부모들의 골통품 취미를 아는 아들은 옻칠한 한국의 장식장을
사서 보내주거나 때로는 미군 맥주 깡통을 오려서 만든 램프를
보내 주기도 했다.

다시 올린다.그림이 도난 당했다는 명성황후의
접견실 외부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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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아들은 엄마에게 편지를 보냈다,.
“아주 괜찮은 한국 표범 가죽 카페트를 샀어요.
보내 드리겠어요.”
그리고 1951년 6월16일, 길트너 집안에 군용 더플 백에 담긴
묵직한 물건이 국제 배송되어 왔다.
39.20불의 항공 배송료 꼬리표가 붙어있었다.

표범 카페트를 사서 집에 보내준 길트너 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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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백에서 나온 것은 폭 8피트 길이 18.5피트의 기다란
표범 카페트였다.[가로 2.5미터 길이5.6미터]
사실 너무 길어서 길트너 집의 응접실에 깔 수도 없었다.
두 부부는 집안에서 보관할 곳 역시 마땅치 않아 일단
조셉 시몬스 모피 판매상에게 보관을 의뢰 했다.
모피상 시몬스는 이 한국에서 건너온 진귀한 보물을
언론에 공개했다.
[길트너가 팔아 달라고 위탁한듯하다.]
그러자 한국 뉴욕 총영사관에서 신속하게 반환을 요청하는
성명서가 발표되었다.
이 표범 모피는 경복궁 명성 황후 궁실에서 도난당한
국가 보물로서 값을 먹일 수가 없을 만큼 진귀한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여졌다.
길트너 중사는 자신은 이 보물을 그 지난 4월 서울 길거리
리어카 행상에게서 십오만 환에 구입했다고 말했다.
그때 한국의 시장 환율로 바꾸면 25불 정도이다.
사실이라면 국가적 보물이 항공 운송료보다도 헐값에 팔린
이야기가 된다.
그는 그 뒤 그의 부대를 따라 여기 저기 전전하면서
이 부담스럽게 큰 표범 카페트를 가지고 다니다가 집으로 보냈었다.

길트너 씨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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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표범 카페트를 소유한 길트너 부부에게는
미국 법으로도 도둑질한 장물을 구입한 장물 취득 혐의가 적용된다.
그리고 길트너 중사는 이 표범 카페트를 집에 보낼 때
‘선물’이라고 세관에 신고했는데 이것 역시 허위 신고에
해당한다.
미 세관은 이 진귀한 표범 카페트를 압수했다.
세관 당국의 말에 의하면 이 표범 카페트는 수천 달라의
고가에 판매 될수있는 것이라고 짐작했다.
라이프 지는 이 표범 카페트가 중공군이 서울을 점령하기전
도난당한 것으로 추측했다.
더불어서 상황으로 보아 곧 한국의 명성황후 궁궐로 되돌려
질 것이라고 예견하는 말로 끝맺었다.
미국 언론이 크게 보도한 명성 황후 표범 카페트는
주한 미군에서도 수사에 착수했다.

다시 올린다. 명성황후 접견실. 다 도둑 맞고 아무 것도 없다.
뒤의 그림이 온전한 것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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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트너 중사는 미 범죄 수사대[CID]의 조사에서 이 보물을
리어카 행상이 아니라 고미술품 상에서 샀다고 자백했다.
그리고 고미술품 점포에 CID대원이 파견되어
한국 경찰과 함께 조사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라이프 기자 팀과 CID 대원과 한국 경찰이 이 점포를 덮쳤을 때
주인은 세상 모르고 여전히 대궐에서 훔쳐 나온 값진 장물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위의 사실로 명성황후의 접견실에서 사라진 표범가죽이 어떻게
미국까지 흘러갔는지를 알게 되었다.
나는 지난 2003년 미군이 바그다드에 진공했을 때
바그다드 시민들이 박물관에서 세계적인 유물들을
마구 약탈하는 것을 보았었다.
나는 이 한심한 작태를 보고 아는 외국인에게 자랑하듯이 말했었다.
“우리 한민족은 말이지요, 아무리 국난의 위기에 처했어도 저런
뻔뻔한 도둑질을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나는 우리 민족이 기본적 양심은 있는 민족이라고 믿어왔었다.
외국의 경우 폭동에 가까운 시위만 있어도 의례히 주변 상점들을
약탈하는 것을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하는 경우가 많다.
가까운 예로서 LA에서 흑인 폭동이 일어났을 때 흑인들이
하필 코리아 타운에 밀려 들어와 상점들을 털고 방화까지
했던 일이 상기되실 것이다.
5.18광주 항쟁 때도 공권력이 실종했는데도 대규모 약탈이나
강절도가 없었고 일반 광주 시민들은 적어도 치안 면에서는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할 수가 있었다.
[임진왜란 때 선조가 몽진했을 때 한 맺힌 노비들이
주동이 되어서 경복궁에 불을 지른 것은 예외라고 치자.]
나는 6.25의 참변 중에도 바그다드 같은 대규모 약탈상태는
없는 줄 알았는데 이런 일이 있었던 것이다.
졸지에 나 자신이 사돈 남말하는 처지가 되었으니
무색하게 되었다.
훔친 절도는 물론이지만 이런 국가 보물격의 문화재를
외국인에게 팔아넘긴 인간은 지탄을 받아 마땅하다.
하여튼 도난당한 경위를 고마우신 독자분의 협조로 자세히
알 수 있었는데 또 다른 독자분 들의 답 글로 이 표범 카페트가
워싱턴의 한국 대사관에 반환 된 사실도 발견했다.
아이디 mikejunhyuk님,jamie3317b님,plains001님등이
이 반환 사실에 대한 정보를 주었다. 모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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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Leopard skin Rug - Guiltner,Pueblo,Colorado- Returned to Korean Embassy, August 1951- February 1952 47frames Major Topic: Return of Leopard Skin Rug to South Korean Embas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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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트너 씨 부부가 아무리 욕심이 나도 입법 국가인 미국에서
장물로 들통 난 물건을 그냥 자기 소유로 가지고 있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한국 대사관에 돌려 주었다면 표범 카페트는 응당 국내로
돌아와 국가 보물로서 잘 관리 보존되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이렇게 귀중한 국가 보물에 관한 이야기를
이런 방면에 관심이 있다는 나 자신 살아 오면서 단 한번도
들어보지를 못했으니 좀 이상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라이프 지에서 기사 전문를 읽고 사건의 전모를 안 이상
이 표범 카페트의 행방을 직접 찾아 나서 보기로 했다.
나는 먼저 대전에 있는 문화재청 궁능[宮陵] 문화재과에
전화를 했다.
그러나 자신들은 그 방면의 자료가 없으니 경복궁의
고궁 박물관에 연락해보라는 말이었다.
경복궁 안에 고궁 박물관이 있었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었다.
생각해보니 명성황후의 표범 카페트가 경복궁에서 도난당했으니
그 곳으로 반환되는 것이 당연할듯했다.
그래서 큰 기대를 가지고 경복궁내에 있는 고궁 박물관에
전화를 했다.
그 곳의 연구 담당분과 연락이 닿았는데 자신도 처음 듣는
소리라며 한번 알아 볼 테이니 며칠 후 연락을 달라고 했다.
며칠 뒤에 연락을 했더니 맥 빠지게도 아무런 관련 정보를
찾지 못했다고 했다.
표범 카페트가 당연히 있어야 할 곳에 없니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미국에서 반환된 표범 카페트가 반드시 거쳐서 들어왔을
외교 통상부에 전화를 했다.
그랬더니 그 곳의 상담원은 뉴욕 영사관에 알아보라고 말했다.
본부가 이 지경이니 그곳 일선 외교 부서에서도 신통한 대답을
할 것 같지 않았다.

라이프지에 민비[ 閔妃 -Queen Min]라고 소개된 명성황후 초상화.
담당자가 잘못 판단하고 관음보살 상을 게재했다,
명성황후의 사진은 아직 확실하게 발견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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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없이 궁리를 하다가 당시 신문을 보면 무슨 단서나 발견할 수
있을까 해서 국회 도서관을 찾아가 조선일보 아카이브에서
1951년 8월부터 다음해 2월까지 검색해보았지만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비슷한 시기의 동아일보 마이크로 필름 기사도 찾아보았으나
관련 기사 발견에 실패했다.
내 생각에 라이프 같이 세계적인 잡지에서 이렇게 큰 기사가
다룬 표범 카페트가 국내에 돌아왔다면 국내 언론에 분명히
보도 되었을 것이다.
좀더 집중적인 노력을 해보면 싶었지만 시간이 없던 것이
유감이었다.
문제는 응당 반환된 표범 카페트를 잘 관리 보관하고
있어야 할 경복궁의 관련 부서에 아무런 흔적이 없다는 점이다.
분명 미국의 기록에 따르면 대사관에 반환이 된 것은 확실한데
이 뒤부터의 기록도 없고 이 표범 카페트의 흔적도 묘연하니
가능한대로 상상해보면 국내에 돌아와서 다시 도난당했거나
또는 우리 일반인이 모르는 사이 훼손되어서
몰래 폐기 했거나 일 것이다.
생각하기도 싫지만 그 사이 장구한 세월동안 정권이 바뀌는
변혁의 시기를 틈타서 이 표범 카페트를 관리하던 당국의
양심 불량한 인간이 착복해서 사리[私利]를 채웠을 가능성이
있을 가능성도 있다.
[가능성은 낮으나 이 표범 카페트의 진가를 모르는
관계자들에 의해서 어느 창고 구석에서 낮잠을 자고 있을지도
모른다.그러기를 고대한다.]
이 진귀한 보물의 행방을 추적하던 나는 고민 끝에 나와
조금은 안면이 있었던 모 방송국 PD에게 전화를 했다.
그가 담당한 프로에서 충분한 방영꺼리가 될 것 같아서였다.
그렇게 해서 여론이 일어난다면 표범 카페트 행방의 수색이
본격적으로 되리라는 기대감도 있어서였다.
그랬더니 내가 아는 PD는 다른 부서로 가서 통화조차 되지 않았다.
대신 작가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여성은 그런 것은 자기들 프로에
맞지 않는다는 무성의한 대답을 했다.

과거 한반도에 표범은 무척 많았었다.
1900년 파리 만국 박람회에 대한 제국이 한국관을 열고
전시한 무관의 표범 복장[현대의 전투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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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서민인 나는 명성황후 표범 카페트의 행방은 찾는데
능력의 한계를 아니 느낄 수가 없었다.
작년 3월, 내가 중국에 가서 만났던 전 북한군 출신
동포 할아버지의 수첩에 고별사를 남긴 국군 포로병
김 병덕씨의 신원을 찾다가 당국 책임자의 무성의한 태도에
아무 성과를 보지 못했던 사연을 하소연 삼아 포스팅
한 일이 있었다. CLICK!
덕분에 이 글을 본 관계 부서에서 일하는 조 소영이라는
사무관이 나서서 크게 도와 주어 이 비운의 국군 포로의
신원과 그 아들을 찾아내는 성과를 올린바 있다.
[한심한 아들이 통화를 거절해서 더 이상 수색을 중단했지만.]
이 글도 비슷한 희망감으로 포스팅한다.
막연하나마 어느 고마운 분이 이 국보급 표범 카페트의
행방을 찾아 주실 것을 기대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