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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최후로 격추된 공산기
3년간 수많은 인명을 앗아갔던 한국 전쟁은 1953년 7월 27일, 휴전이 발효 되면서 끝장이 났다. 
F86F 세이버 전투기 ----------------------- 그러나 휴전의 발효는 그날 밤 12시부터 였다. 전선의 이곳저곳에서는 마지막 화력을 퍼붓는 포격전들이 있었다.
한국 전쟁이 발발하고 이틀 뒤인 1950년 6월27일 한국 전쟁의 최초로 북한기가 김포 공항 상공에서 격추 되었는데 한국 전쟁의 마지막 공산기가 전쟁의 마지막 날인 1953년 7월 27일 격추 되었다.
이날도 미 공군의 F 86부대는 출격을 했다. 아래는 한국 전쟁의 에이스 랄프 파 대위가 한국전쟁 최후의 공산 기를 격추한 글이다. 파 대위는 이미 적기를 9기나 격추한 에이스였다. 
한국 전쟁중 적기를 10기 격추로 더블 에이스가 된 랄프 파 대위 19기중 8기는 단 나흘동안에 격추한 것이다. 대령 때의 사진이다. -------------------- 그날 우리는 압록강 공역에 사진 정찰 비행을 나가는 정찰기를 호위 비행 출격을 했다.
본부는 우리에게 북한이 휴전에 임박하여 중국 만주에 기지를 둔 미그기들을 얼마나 많이 북한 영내의 비행장으로 이동시켰는지에 관한 정보가 필요하니 이의 정밀 사진을 찍어 오라고 명령했다.
휴전협정이 자정을 기해서 발효되는데 휴전 협정에 의하면 어떠한 외부의 추가 무기도 양측 영내에 반입되지 않게 되었다.
협정에 의하면 남북 양측은 휴전 협정 전에 양측 영내에 있는 무기만 보유할 수 있다는 뜻이다. --------------------------------------- 이 협정은 곧 문자 그대로 사문화(死文化)되었다. 이 협정이 정말 그대로 준수되었다면 한국 공군의 조종사들은 지금도 무스탕 전투기를 조종하고 있어야 했다. 왜 이런 실현 가능성이 없는 협정내용이 생겼는지 의문이다. ------------------------------------------------ 정찰기는 짙은 구름 때문에 기대했던 촬영을 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별 수 없이 기수를 남으로 돌리고 귀환 길에 올랐다. 우리의 기지는 김포 비행장이었다.
우리가 북한의 작은 도시 남시[南市 ]남쪽 방항 저공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은빛이 나의 시야에 들어왔다. 우리의 고도는 30,000피트였으나 그 은빛은 10,000피트 저공에서 날고 있었다.
나는 나의 윙맨[편대원]과 함께 그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서 급강하 하였다.
미확인 물체는 소련제 일류신IL 12 수송기였다. 은빛의 기체와 날개에 붉은 별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었다. 
격추 당한 소련제 IL 12 수송기 --미국 C47기를 복제 생산한 Li 2기를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킨 수송기였다. ---------------------------------------------------- 전에 만나 보지 못했던 기종이었다. 나는 우리가 현재 정말 북한 상공 어디에 있는지를 재삼 확인했다. 휴전 발효일인 이날 나는 정말 우리가 중국 상공에 있지 않기를 바랬다.
우리는 거듭해서 분명히 압록강의 한참 남쪽에 위치했슴을 확인하였다.
나는 확실히 위치를 확인한 뒤 나의 윙맨[편대원]에게 이 적기를 격추 시키겠다고 알려주고 기수를 돌려 적기의 후방 사격 위치로 이동했다. 미그기에 비하면 이 덩치 큰 수송기는 쉬운 표적이었다.
나는 놓칠 수 없는 이 큰 수송기에게 기총탄의 긴 화력을 발사했다. 적기에 화염이 일고 한쪽으로 기운채 그대로 아래 산악지대로 추락해 버렸다.
나는 그 일류신 수송기가 그간 연합국 전투기들에게 발각되지 않고 그 남시 쪽의 북한 비행장에 자주 왕래했다고 추측했다. 우리에게 걸려든 그날 그는 억세게 재수가 없었다고 하겠다. 
휴전후 북한 공군 노 금석 대위가 김포 기지로 몰고온 미그 15기 ---------------------------------------- 기지로 돌아 온 뒤인 그날 자정에 휴전이 발효되었고 그 일류신 수송기에 대해서 격추한 적기중의 한기라는 생각 외에 특별한 생각을 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다르게 말하는 실상도 있다.
그들이 소련 수송기와 조우한 것은 중강진 부근이고 이 소련의 군 수송기는 여객을 싣고 중국 여순 쯤에서 이륙하여 한반도 북부를 잘못 가로질러 블라디보스톡으로 날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재수없게도 한반도 전투 공역으로 들어와 버려서 변을 당한 것이다. 파 대위는 이 수송기를 여러 번 스쳐 가면서 확인을 했다는 것이다. 수송기는 피격당하고 겨우 기수를 돌려 만주 땅으로 들어가 추락했다. 소련 측이 노발대발할 이유가 있었단 것이다. 
랄프 파 대위의 건 카메라에 찍힌 마지막 격추 공산기, 소련 공군의 IL 12 수송기 ----------------------------------------
그러나 나는 휴전 후 곧 일본의 극동 공군 사령부의 호출을 받았다. 조사관은 어이없게도 압록강 북쪽 중국 만주 땅 100키로나 침입해서 수송기를 격추시킨 사건에 대해서 캐고 또 캐서 물었다. 모두 공산측이 주장하는 생트집이었다.
소련은 이 사건을 계속 물고 늘어졌다.
소련은 이 사건은 네델란드 헤이그의 국제 재판소에 제소했다. 미 공군은 국제 문제로 비화된 이 사건을 철저히 조사할 조사위원회를 구성했다. 나는 물론 그날 출격을 했던 모든 편대원이 모두 일본 미 극동 공군 사령부로 호출 당했다. 내 애기(愛機)의 건 카메라에 찍힌 필림은 수십 번이나 되풀이 돌려 보며 세밀히 검사되었다.
조사가 깊어지면서 되풀이 하며 묻는 말은 아래와 같았다.
“격추한 정확한 지점은? 격추기의 기종(機種)은? 식별 표시는 ? ” 그리고 그런 답답한 질문들에 우리의 답변들을 끝나고 나면 항상 “확실 해?”로 끝났다.
모든 조사와 증거가 꼼꼼히 조사 된 뒤에 미 공군은 내가 진술한 것이 다 진실이고 기종도 말한바와 같고 그 격추는 하등 교전 상태에 국제 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결론을 지었다. 이 결론에 근거해 미 공군은 소련의 주장을 강하게 반박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국제 재판소의 재판일이 가까워오자 세계 언론에서는 난리가 났다. 서방측 언론은 나의 주장을 맞는다고 옹호했고 공산측 언론은 나의 주장이 거짓이라고 하며 설전을 벌였다.
엄청난 큰 국제 사건이 될 뻔 한 이 사건은 결국 맥 빠지는 결론으로 끝났다.
미국 측이 국제 재판소에 제출했던 모든 확실한 증거에 반박할 자신이 없어져 버린 소련 당국이 소(訴)를 취하 해버렸기 때문이다.
적 수송기 한 대가 커다란 국제 사건으로 비화 할 뻔한 일화였다. 내가 격추했던 소련 수송기는 3년간 미 해 공 군과 유엔 동맹국들이 격추했던 각종 적기 976기의 마지막인 976번째의 적기가 되었다.
양쪽에서 제트기가 등장한 최초의 전쟁이었으면서도 최초에 격추된 공산측 전투기도 프로펠러 전투기였고 최후로 격추된 공산측 전투기도 프로펠러 항공기였다.
또 특징을 들라면 첫 격추를 기록한 미군기가 쌍발기라면 마지막으로 격추된 공산측기가 쌍발기라는 점이다. IL12 수송기에 다시 개량이 이루어져 IL 14 수송기가 탄생하였다.
몇년 뒤 이스라엘의 야간 전투기가 아랍 IL 14 수송기를 지중해에서 격추한 작전이 있었다. -> CL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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