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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유일의 해전 -제 1 편-. 다른 글을 쓰다가 중단하고 급히 이 글을 쓴다, 전에 썼던 글의 오류를 시정하고 새로 알게 된 한국 해전사의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나는 작년에 ‘북한의 최대 해전 승리 사기극 ’이라는 글을 포스팅했었다.
북한은 한국 전쟁이 발발한 직후인 1950년 7월 2일, 한국 해역은커녕 아시아 바다에 있지도 미 순양함 발티모어를 [북한 발음-빨지모르]를 북한 어뢰정대가 동해 38선 해역에서 과감히 공격하여 격침 시켰다는 엄청난 거짓 선전을 해댔다. 
소련제 어뢰정 - 한국전중 북한이 운용 ---------------------------- 나는 북한의 주장이 완전 허구는 아니고 전쟁이 발발하자 블라지보스톡에서 급히 순찰 나온 소련 순양함 함대를 미 함대로 오인해서 어뢰 몇 발 헛방으로 날린 사건을 과장해서 허위 선전하지 않았겠느냐는 추리를 했었다.
발티모어가 그 당시 한국전쟁에 나타나지도 않았지만 대형함인 미 순양함대도 한국 전쟁이 발발한지 며칠 되지도 않은 짧은 시간 미국으로부터 급파 되었을 리가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 우연히 손에 넣은 미 해군 전사 책자에서 개전되자 말자 미국과 영국 해군 순양함들이 한국 동해안으로 출동했었고 겁 모르고 도전해오는 북한 어뢰정 네 척 중 세 척을 격침 시켰다는 글을 읽고 깜짝 놀랐다.
북한이 미군 순양함을 격침 시켰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지만 해전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는 것이 들어났다. 이에 다시 자료를 모아 글을 구성해서 재 포스팅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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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제 어뢰정 - 어뢰 발사관이 장착되어 있지 않다. -------------------------------------------------- 내가 군 복무중일 때의 일이다. 지금 보병 1사단 구역인 서부 전선에서 근무 했는데 임진강 건너 GOP 지역으로 파견 근무를 나간일이 있었다.
부대 뒷산에 올라가면 적 선전 마을과 개성이 아스라이 보이는 곳이었다. 그 곳은 휴전선이 서쪽을 따라 형성되기 때문에 북한 선전 방송이 북쪽이 아니라 서쪽에서 들렸다. 나는 밤마다 이 귀찮은 선전 방송에 잠을 설치며 시달려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열두시가 넘어서 이었다. 바람의 방향이 이쪽으로 정확히 맞게 불어서 였던가---? 그날 밤 따라 북한 방송이 라디오 방송처럼 선명하게 들렸다.
매일 되풀이 되는 거짓과 증오와 욕설의 내용에 혐오감이 들어서 잘 듣지도 않았는데 그 날 밤 방송은 특이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육이오 사변 때 북한 해군 어뢰정들의 영웅에 대한 선전이었다.
북한 녀석들이 해대는 또 다른 허풍이겠지 했는데 북한 어뢰정들이 침몰시켰다는 미 순양함의 이름과 구축함들의 이름들이 구체적으로 열거되는 것을 보고 이 것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지 않는다고 함정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열거되는데 실제 해전이 있었지 않나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을 금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세월이 지나면서도 옛날 의아스러운 북한 방송 생각이 가시지를 않아 기회만 되면 북한 어뢰정 편대가 미 순양함을 격침 했다는 이 해전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북한이 떠들어대는 어뢰정의 전투 내용은 이러했다. 6.25사변이 발발하고 꼭 일주일이 된 1950년 7월 2일, 북한 고속 어뢰정 4척이 거진 앞바다에서 미 함대를 공격했다. [실제로는 주문진 앞 바다이다.]
북한이 말하는 그 미국 함대는 세력이 대단해서 17,000톤짜리 순양함이 한 척, 그리고 다른 12,000순양함도 한 척, 그리고 여러 척의 3,500톤짜리 구축함들로 이루어진 막강한 함대였다.
북한 어뢰정 편대는 그 막강한 미제 놈들의 함대를 야음을 틈타 어뢰 공격을 가해서 몇 척을 침몰 시켰다는 것이다. 어뢰정 한 척은 적 포격으로 선체에 불이 붙자 적함에 돌진하여 장렬하게 자폭했다는 소리도 이 말 같지 않은 허풍에 양념으로 들어있었다.
내가 북한 선전 방송을 들었을 때는 격침시켰다는 흥분한 여자 아나운서는 앙칼진 목소리로 서 너 척의 함 명을 분명히 이야기 했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 거짓말이 지나쳤다고 생각했는지 요즈음의 북한 발표 격침함은 기함 급의 미 중순양함 ‘빨찌모르’ 한 척으로 슬그머니 줄어들었다. 
'격침 된' 빨찌모르 - 미 중순양함 발티모어, 당시 한국 동해는 커녕 바다에 떠있지도 않았었다. ----------------------------------------------
결론적으로 말하면 기특하리만큼 용감했던 북한 어뢰정 부대 전과는 뻔뻔한 거짓말이었다. 하여튼 이 뻔뻔한 거짓말의 실상을 기본부터 들여다보자.
북한이 격침 시켰다고 요란스럽게 떠들어 대는 '빨찌모르'라고 하는 미 함은 도대체 있기는 있었던 걸까?
실제로 있었다. 빨찌모르는 발티모어(Baltimore)라는 영어 함명을 러시아식으로 발음 한 것이다.
그렇다면 1950년 7월 2일 중순양함 발티모어는 정말 북한 해역에서 활동했던가?
천만의 말씀이다! 발티모어라는 이 중순양함은 1942년 미 함대에 취역하여 활동했다가 전쟁이 끝나고 1946년 7월 8일 잠정 퇴역하였다.
해전이 있었다는 1950년 7월 2일에는 미 서해안 워싱턴 주 브레멘 항에서 모든 무장을 풀고‘편히 쉬어’상태였다.
51년 다시 재 취역 했으나 한국 전쟁 동안은 한국 영해에는 오지도 않았었고 지중해에서만 활동했었다.
한국 전쟁이 끝나고 한참이 지난 1956년 퇴역하였다. 함 이력에는 연안 포격이나 상륙작전 지원 같은 것은 있었으나 적함과의 교전, 다시 말하면 해전 참가는 한 번도 없었다.
그러면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가? 동해에서 해전이 있기는 있었다.
북한의 네 척 어뢰정이 1950년 7월 2일 동해안에 출동했던 미함과 영국 함들로 구성된 함대에 겁 없이 덤벼들었다가 대타격을 입은 것은 사실이다. 
북한의 소련제 어뢰정 ------------------------ 미국의 타임지와 영국의 해군 기록이 해전의 전모를 간략히 알려준다.
주역을 한 함대는 미국 해군 순양함 쥬노와 영국 순양함 자메이카,역시 영국 호위함 블랙 스완으로 구성 된 미영 혼성 연합함대였다.
쥬노는 한국 전쟁이 발발하기 전 존 히긴스 소장이 함대 사령관인 미 극동함대에 배속되어 미국 항을 출발해서 일본 규우슈의 사세보 미군 항으로 왔었다. 쥬노는 6,000톤 이며 32톤에 623명의 승무원이 운행했고 145년 취역, 1955년 퇴역했다.
 경순양함 쥬노- 일본 사세보 항에서 촬영한것. -----------------------------------
한국에 나타난 쥬노는 두 번째 함[二代艦]이었다. 첫 번째 함 [一代艦]쥬노는 42년 2월에 취역했었다. 그 순양함도 6,000톤 크기 였는데 일대 쥬노는 취역 당년인 1942년 11월 13일 일차 과달카날 해전에서 일본 해군 구축함에게 뇌격을 당해 대파되었다. [뇌격을 했던 일본 구축함은 뒤에 소개할 일본 어뢰전 전문가 하라 다메이치[原 爲一] 대좌가 함장이던 아마츠가제였다.]
간신히 침몰을 면한 쥬노는 귀항하다가 일 잠수함 이 26에게 격침 당했다.
일대 쥬노의 격침을 드라마틱하게 만든 비극이 있었다. 쥬노의 승조원이었던 설리반 형제 다섯 명이 모두 이 침몰에서 전사해서 미 국민들의 깊은 동정을 샀었다. 이들 형제들은 미국이 참전하자 모두 자원해서 해군에 입대,
순양함 쥬노에서 5형제가 함께 근무했던 것이다. 
1대 쥬노 침몰때 전원 전사한 설리반 형제들-1914년에서 1922년 출생의 5형제는 아이오아의 토마스와 알레타 설리반의 부부의 아들 들이었다.
한국 해군이라면 한 함정에 이렇게 형제들을 모두 승함시키지는 않았을 텐데 -- -------------------------------------------------------------- 힌국 전쟁에서 활약했던 2대 쥬노는 1945년 취역하고 1957년에 퇴역한 최대 속도 33노트의 경순양함이었다.
지금은 삼대함[三代艦] 쥬노가 미 해군에 복무중이다. --------------------------------------------
6월 25일에 쥬노는 대마도 해협을 초계하다가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말자 한반도 해역으로 달려왔다.
미국 기록에서 주문진 해전이라고 부르는 이 해전은 아주 간략하면서도 혼란스럽게 기록되어 있다.
하여튼 신빙성 높은 정보로서 정리해보자.
이날 쥬노는 앞서 소개한대로 홍콩에서 북상했던 영 순양함 자마이카와 함께 함대를 만들어서 38선 부근으로 초계 항해를 나갔다. 한국 해역에 출동한 자메이카의 함장은 제스 D. 소웰 대령이었다.
 영 순양함 자마이카 ----------------------------------------------- 영국 순양함 자마이카는 8,530톤의 크기에 승원 730명의 순양함이다. 1942년 취역했었고 1955년 퇴역하였다.
2차 세계대전 시 북빙양에 투입되어 대단한 활약을 했다. 특히 독일 순양함 히페르가 선도했던 독일 함대가 무르만스크행 영국 선단을 공격했을 때 달려와 이들 우세했던 독일 함대를 격퇴하고 선단을 위기에서 구한 공로는 아주 크다.
한국 전쟁 인천 상륙 작전 때 내습했던 북한 야크기를 인천 외항에서 격추 시키는 공훈을 세우기도 하였다. --------------------------------------------- 쥬노는 전쟁 발발 후 단 나흘 뒤인 1950년 6월 29일 동해안 옥계 항에 집결해 있던 북한군을 포격하였다.-
미 기록에는 목표가 bokuko do로 되어 있는데 이는 미군이 쓰던 일본 발행 한국 지도의 묵호를 일본 발음으로 표시한 것을 옮긴 것 같다. [이 포격을 북한은 동해안의 무고한 어민들을 포격했다고 비난했다.]
이 옥계 포격의 목표에 대한 기록은 여러 가지다. 포격 목표가 집결 병력이었다는 설에서 부두시설, 또는 병력을 내려놓고 귀항하는 북한 어선들이라는 설이다. 
한국에서 작전을 끝내고 일 사세보 항에 돌아와 정비및 보급중 --------------------------------------------------------------
포격 후 초계를 계속하던 미영 함대는 7월 2일 심야에 해안에 붙어 남하하는 여러 척의 선박을 레이다로 컨택했다. [스컹크 발견]
함대는 총원 전투 준비를 발하고 접근하면서 조명탄을 주포로 발사해서 괴 선박들의 정체를 확인했다.
열 척의 북한 어선들이 네 척의 어뢰정에게 호위되어 남하 중이었다.
볼 것도 없이 어선에는 625일 침투시킨 병력을 지원하는 또 다른 병력 아니면 남하하는 북한군에게 지급할 보급품들이 적재 되었을 것이다. ----------------------------------------------------- 북한이 도발한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나흘 전인 6월 21, 북한군 대좌 오 진우가 지휘하는 766부대는 수 십 척의 어선을 타고 원산을 출발하여 속초에 대기하다가 25일 새벽 개전과 즉시 38선을 넘어와 주문진, 삼척, 옥계 등에 기습 상륙하여 태백산맥으로 집결하였다. 오 진우는 후에 김일성의 신임을 얻어 북한 인민 무력부장이 된 인간이다.
원산의 945독립 해병연대를 투입하러 부산으로 가던 북한 무장선 한 척은 한국 해군 백두산 함에 격침되어 이 병력은 전멸되었다.
북한이 이와 같이 어선단을 동원한 후방 기습 상륙 전술을 시도했던 것은 아무래도 1949년의 승리에서 맛본 재미를 잊지 못해서 였을 듯하다.
1949년 동해안 배치 한국군 6사단 10연대장 송 요찬 대령은 북한 38여단이 계속 도발하자 1950년 7월4일 단독 북진해서 당시 북한 땅이었던 38선 이북의 양으로 돌입하고 더 북쪽의 기사문리라는 곳까지 점령했다.
유명한 양양 돌입 사건이다. 북한군은 일시 후퇴하는 척하면서 하면서도 술수를 부렸다. 그물로 가린 어선에 병력을 태워 남하시켜 송 대령의 후방을 기습했다. 한국군은 일개 중대 규모의 피해를 입는 대패를 맛보고 철수했다.
송 대령은 이 사건의 책임을 물어 해임되었다. [두 달 후 다시 16연대장으로 복직.]  송 요찬 장군- 청렴하고 용감했지만 너무 강직해서 송 석두라는 별명을 받았었다. --------------------------------------------
이런 재미를 보았으니 북한군은 한국전 개전과 함께 어선을 동원한 기습 작전을 되풀이 시도했던 것으로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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