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즐겨찾기 | 블로그홈 | 바로가기 바로가기 | 로그인
-울프 독-
울프 독의 이름을 빌린 불량 메일에 주의하십시오.
블로그  |  사진갤러리  |  동영상갤러리 방명록  |   즐겨찾기 추가
 인기도 :
 이 블로그 점수주기
최근 글
돌아온 명성황후 표범 ..
한국전쟁 최후로 격추된..
한국 전쟁 최초로 격추..
한 日軍 장교의 30..
북 최강 4사단 18연..
전체 글보기(430)
돌아온 명성황후 표범 카페트의 행방은?
한국 전쟁 최후로 격추된 공산기
한국 전쟁 최초로 격추된 공산기
한 日軍 장교의 30년 나홀로 전쟁
북 최강 4사단 18연대 흥망사
사향쥐의 한반도 출현 경보
한국전쟁 유일의 해전 - 주문진 해전
세계 최강 예비군 - 대한민국 예비군
북한 탱크 T34, 저지할 수 있었다.
알래스카의 울프 독
무적 몽고에 맞선 고려의 30년 위대 항전
무용총 수렵도 보기
한국 근세 총기사
역사추리- 진돗개의 조상을 찾아서
2009년 10월
2009년 9월
2009년 8월
2009년 7월
2009년 6월
2009년 5월
2009년 4월
2009년 3월
2009년 2월
2009년 1월
2008년 12월
2008년 11월
2008년 10월
2008년 9월
2008년 8월
2008년 7월
2008년 6월
2008년 5월
2008년 4월
2008년 3월
2008년 2월
2008년 1월
2007년 12월 새 댓글이 있습니다.
오늘 전체
방문자 11722 20311442
구독자 0 943
댓글 120 30390
참조글 0 2302
HanRSS 로 구독하기Fish 로 구독하기
TOP 블로거 울프독 (waterview33)
프로필     
개설일 : 2007/10/25
 
광고 - 야후! 코리아 에서 '울프독'님의 블로그를 지원합니다.

500여년 전에 팠던 경인 운하 [아라 뱃길]

2009.10.24 23:00 | 2009년 10월 | 울프독

http://kr.blog.yahoo.com/waterview33/1152 주소복사

 


500여년 전에 팠던 경인 운하 [아라 뱃길]

▼ 얼마 전 해양 수산부가 발간한 한국의
해양문화라는 책에서
인용했던 '금당도 어민의
고래 납치 작전'을 포스팅 했었다.

방대한 자료 수집과 현지 답사를  해서 
만든 이 귀중한 8권의 자료집이 일반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고 도서관에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까워서 앞으로도 흥미있는 내용을  종종
소개하기로 한다.


이번에는 영 정조 연간에 인천 앞바다와 한강을 잇는

운하를 뚫고자 많은 노력을 했으나 결국은 중간의

산에 막혀 성공하지 못한 비화를 소개한다.


그때 공들여서 팠던 미완성 운하의 일부 구간은

농수로로서 계속 사용되어 왔었고 지금 공사하고
있는 경인 운하인 아라 뱃길의 일부가
될 예정이다.


어떤 의미에서 조상들의 선견지명이 정확했다는

또 하나의
사례가 되겠다.


서해와 한강을 잇는 아라 뱃길.
옛 운하보다 더 북쪽으로 뚫고 있다.
[일부 인천 공항 고속도로와 병행]
김포 터미날에서 부터 일부는 옛 운하인
굴포천을 확장해서 사용한다.
------------------------------------

경인 운하에 대한 시도는 거의 천 년 전인
고려 시대부터
있었다.


고려 고종[1192-1259]때 무신 정권의 실력자
최이[崔怡]가 현 부평의
지세를 살펴보고
한강 물을 끌어 들여 운하를
만들려고 하다가
중지했다.대몽항쟁에서 육지 내륙과
소통하고자 하는 필요에서 였다.

조선시대 중종 때
김 안로[金 安老]가 역시
운하를 파다가 실패했다.


김 안로 [金 安老,1461-1537]
조선 전기의 문신. 명문가 출신.
중종 딸의 시아버지.출중한 능력도 있었으나
권세를 지나치게 휘둘렀고 정적들을 무자비해서
숙청해서 조정 내외에 적이 많았었다.
나중에 사람 싫증 잘 내는 중종에게 버림받고
유배갔다가 사약을 받았다. .
허항,채무택과 함께 정유 삼흉으로 일컬어진다.

 

이 하천은 운하를 만들기 위해 내를 팠기 때문에
‘ 판개
또는 한자로 굴포[堀浦], 굴포천[堀浦川]
이라 한다.


※‘판 -> 파다. ↑ 개 -> 포[浦],삼개[마포]


김 안로가 착공한 운하 굴착의 구체적인 계획이나

실행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아

그 세부 사항은 알 수없다.


단지 숙종 실록에 굴포천이 짧게 언급이 되어있고 

부평 읍지등의 지도에 굴포교가 나타나 있다.


그러나 조선 왕조판  경인 운하는 300년 뒤에
정조의 입을 통해서
비교적 자세히 그 존재를 알린다.

정조 21년[1797]8월에 정조가 김포 장릉을
참배한 후
재상 채 제공을 인견한 자리에서,

“예전에 듣건대 김 안로가 40리에 조수를 통하려고

  원통현까지 이르러 중단하였다고 하는데 이는

  만년 공호[拱護]해야 할 땅인데 어찌 인력을
  드려서
착파 할 수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김포 장릉 - 원종[선조의 서자로 인조의 아버지]과

  왕비 인헌 왕후 합장릉


김 안로의 굴포 건설은 40리 길이었고 서해의
인천교, 당시
부평 번직이 나루 쪽과 김포의
한강 쪽에서 동시에 진행되어
약사사[藥師寺]앞
원통현까지 굴착했으나 개통 굴착에 실패함으로서
공사가 중단되었다.


따라서 원통현 앞의 주안 염전 수로는 인위적인
수로로
김 안로가 팠던 운하로 추정된다.


총합에서 말하자면 옛 경인 운하는 현재의 인천교에서

동암 역 앞에 이르는 주안 염전 수로[인천에서
파오던 수로]와 양천현 북포[지금의 김포공항
서북쪽]에서 굴포 교를 지나
부평 역 부근의
직포[한강에서 파오던 수로]의 합계 약 16킬로의
수로이다.


원통현의 개착 실패의 이유는 정확히 알 수없다.

그 무렵 기술과 능력으로 고개를 뚫기가 너무
힘에
붙여서 였을 것으로 추측 할 뿐이다.



김포 하류쪽에서 부평 상류쪽으로 올려다 본
굴포천 - 아라 뱃길의 일부가 된다.
-- ---     -- ----------  -----

민간 전설에 의하면 이 수로를 김 자점[金 自點]의
운하라고 불렀다.

김 자점은 청나라와 내통하여 효종의 북벌 계획을

밀고한 사람이라는 혐의를 쓰고 역적으로 몰려서
죽었다.


김 자점이 원통현을 파서 조선의 혈맥[계양산맥]을
끊으려고
획책하다가 죽었다는 이야기다.


김 안로가 팠던 운하에 엉뚱하게 김 자점과 

풍수지리설이 동원한 것은 백성들 사이에 평판이
나빴던 그와
운하 개통의 실패를 소설적으로
엮은 민간의 속설이 떠돌았기 때문이다,

----------------------------- 


아라뱃길의 두물머리-  
------------------------


왜 그 힘든 운하를 굳이 파려고 했는지를
그 배경부터 살펴보자.


한양은 조선 8도의 지리적인 중심지에 자리
잡고 있으며
최대의 도시였으며 8도 최대의
소비처이다.


조선 오백년간 쌀이나 소금, 그리고 땔 나무
생선 같은
체적 큰 화물이 끊임없이 조선 8도의
최대 소비처 한양으로 흘러 들어왔다.


지금으로 말한다면 물류[物流]의 개념이
그 때에도 중요했었다.

지금은 경부선이나 경의선 같은 주요 철도가
서울로 향하고 있고

여기에 고속도로라는 물류의 수단이 부산하게
움직이지만
조선시대에는 이런 근대적인
대형 운반 가능한
물류 수단이 없었다.


소가 끄는 수레가 있을 수 있다고 하겠지만
조선시대
소수의 주요 도로를 빼놓고는 수레가
통행조차 할 수가 없는 곳이 태반이었다.


지상 물류수단의 상당 부분을 사극 영화의
보부상들이 했듯
지게를 사용하거나 이 효석의
‘메밀 꽃 필 무렵‘의 허생원의

영업도구였던 나귀나 소의 등에 등짐을 지어서
날랐었다.


[ 박지원이던가? 중국을 다녀온 실학자 한분이
  우리도 수레가
일상화되어야 물산이 발달한다고 
  썼던 것이 생각난다.

  사실 일제에 의해서 건설이 주도되었던 도로망의
  명칭이었던 
신작로[新作路]가 탄생하고서야
  수레가 급증하였다.]


그래서 의존했던 것이 수운[水運],선박이  
대량 운송의 
수단이 되었다. 


특히 조정이 거두어 드리는 세곡미는

선박을 동원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배가 수단이 되다 보니 한양이 끼고 있던 한강은

지금의 도로 와 철도의 역할을 톡톡히 했었다.

한양은 이런 면에서 아주 복 받은 수도였다,


한양을 끼고 흐르던 한강을
경강[京江]이라고 불렀다.
마포나루는 한강변에서 가장 큰 포구였고
아래 서강이나 용산,
한강진등은 그리고 강건너
영등포나 반포등 또는 송파등은 지금의
서울역이나
김포 공항, 인천 항과 같은 역할을 했었고

그래서 크게 번창했었다.


구한말 마포 나루 - 즐비한 기와 집과 수십척의
범선들, 그리고 강 건너 밤섬이 있다.
밤섬 모래 사장에 여러척의 범선이 보인다.
돛대가 없는 것으로 보아 아직 건조중인 배들 같다.
-----------------------------------------

한강은 남한강을 통해서 충북 충주나 단양으로 통했고

북한강을 통해서 금강산으로 통했고 임진강을 통해서

문산 연천등 황해도와 강원도로 통했다.

한반도 내륙 심부[深部]의 여러 물자들,말하자면
목재, 양곡, 화목 등의 생활 필수품이
한강 상류에서
한양으로 들어와서 수요를 맞춰 주었으며
한강
하류를 통해서 세곡미는 물론 어물과 소금등 8도의

산물이 다 출입하였다.



화물은 물론 여객 운송도 있었다.
사료를 찾아보니
마포나루를 떠난 배가 제주도까지
가기도 했지만
중국으로 향하기도 했었다.
해방전에는 중국과 만주에서도 찾아 오는
배들이 많았다.
 


한강의 여객 터미널은 한말 경인선이
놓이기 전인 1886년
부터 창룡환이라는 작은
여객선을 시작으로 너덧 척의 증기 여객선이
인천과 마포,
용산 사이 노선을 운행되기도 했었다.


용산진이 있던곳 - 원효로는 이 용산나루때문에
생겨나고 발전했다.한국 최초의 화력 발전소도
이곳에 있었다.- 뱃 사람들이 출항전 무사 항해를
기도했던 부군당이 뒤 언덕에 아직도 남아 있다.
[용산 성당 아래]
-----------------------------------------

여객선 운항 노선은 인천항에서 강화 해협을
통과해서 한강 하구로 들어와
통진과 김포 행주를
통과해서 용산과 마포로 들어오는 노선이다.


[ 점심쯤 출발하면 저녁 무렵에나 도착했다고
  하지만 
이용자들이 많았었다.]


기록에 의하면 17세기가 지나 한강의 수운은 더욱
발달하여
마포를 중심으로 한강을 내왕하는
선박의 숫자가
일년에 일 만 척이나 되었고
한강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대소 선박이 2,000척이
넘었다.[큰 것은 일 천석의 쌀을 적재했었다.]


반입되는 쌀만해도 세곡미 30만석을 포함해서
소작미,
상업미등 연 100만석이나 되었다.

------------------------
한양의 한강가, 즉 경강에는 세 개의
세곡창이 있었다.

광흥창[벼슬아치 녹봉], 풍저창[궁궐 비용],

그리고 군자창[군량미]이다.

광흥창은 지금은 전철역이 생겨서 서울 시민들에게

잘 알려진 곳이 되었다.

대 규모 쌀 창고 단지는 그 이름을 남겼다.
광흥창 지하철역.
----------------------------------

마포를 중심으로 경강 상인이라는 상업적

자본 집단들도 형성되었다. [
옛날 마포사는 황부자라는 영화가 있었는데
사실 마포는 해방까지 부자가 많았다.

4대문을 넘어서는 마포로 최초로 전차 노선이
놓인 것도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하여튼 한강만 봉쇄되지 않았더라면 마포는
거대한 수산시장을
비롯해서 큰 내륙 수운의
항만으로 발달 했었을 가능성을 보인다.


마포 나루 덕에 생긴 마포 길은 지금 번화한
고층 번화가가 되었다.
--------------------------


한강은 물론 임진강도 수운이 발달하여 상류의

고랑포와 연천까지도 배가 드나들었다.

--------------------------------------------------

1870년대던가 조선의 고종이 울릉도 개척을 결정하고

사람을 울릉도로 보내서 현지 조사를 시키고
거주하는 섬 사람중에서 울릉도의 촌장격의 사람을 
뽑아서
임명했는데 그 사람 고향이 경기도
파주였었다.


나는 을릉도와  전혀 교류가 있을 것 같지 않은

머나먼 경기도 파주 사람이 그 먼 곳에서
나타난 것에
정말 당혹스러웠다.


알고 보니 짐작이 가는바가 있었다.

파주를 흐르는 임진강가에는 한강을 통하여
서해로 나가거나
한양을 내왕하는 어업과 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았었고
한양에 인접한
덕분에 배들이 무척 바쁘게 오가는 강이었다.
문산포나 고랑포 그리고 연천이나 전곡까지도
배들이
내왕했었다.


인용한‘한국의 해양 문화’에 의하면
문산이나 고랑포등에 연평도를
내왕하며
어로 작업을 하는 큰 어선을 가진 선주들도
여럿 있었다.


울릉도까지 가서 살던 파주 사람도 장사 목적으로

임진강을 떠나 조선의 해안을 따라 

흘러흘러 울릉도 까지 갔을 것이다.

--------------------------------------------------

마포의 앞 밤섬은 한강을 운행하는 선박을 만드는

조선 산업의 센터로서 몇 백 석의 양곡을 싣는
대형선을
만들기도 하였다.


임진강을 운행하는 배들도 마포나루 앞 밤섬에서
만들었다.


일제시 이런 범선들 한척 건조비가 그 때 엄청나게

비쌌던 트럭 한대 구입비와 같았다고 하니
범선이라 해도
상당한 고가였음을 알 수가 있다.


백제가 400년 가까이 한강변인 하남에
도읍 했었다던가
이 성계가 계룡산에 도입하려다가
한양으로 바꾼 것이라던가
하는 것은 다 이런
한강이 주는 수운의 이점을 내다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드문 마포나루의 천연색 사진. 배들이 선수가
높은 중선들[조기 잡이 전용 어선], 여성들 옷차림은
봄철로 보아서 5,6월 조기철 연평 바다에서 들어온
어선들일 가능성이 크다.
--------------------------------------
그렇다면 이렇게 번창했던 수운의 중심지 한양으로
통하는 통로로 한강 하구를 사용했으면 되었지
왜 굳이 인천과 한강을 잇는 운하를 뚫어야 했던가?
이유를 알아 보자.

한양 앞 한강 즉 경강으로 가는 항해로는
경기만과 염하[鹽河
- 강화 해협- 육지와 강화도
사이의 좁은 해로]를 지나 강화의
손돌목을 지나
한강으로 진입, 연미정과 통진 공암진 양화도
[합정동 앞]를 경유 서강을 거쳐 마포나
용산등으로 통하는 것이었다.


북쪽으로 본 강화 해협- 옛날에 염하라고 불렸다.
-------------------------------------------


그러나 이 항로에는 항해의 장애가 되는 것이
세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는 지형지물에 의한 것이었다.


황해도 장연의 장산곶, 태안의 안흥량과
마찬가지로 강화 해협의
손돌목에서는
조난 사고가 많았다.


※앞에서 말한 장산곶은 아버지 심 봉사를 위해서
팔려간 심청이가 다이빙했던 임당수와 가깝고
안흥량은 한국 유일의
바다 운하 안면도 해협과
가까운 곳이다.


손돌목은 김포와 강화 사이의 해협에 존재하며
강화의 광성보
용두돈대와 건너편
김포 덕포진 사이에 있다.


한강으로 진입하려면 손돌목을 피할 수 없었는데

여기에  한양 진입의 최대 장애물이 있었다.


손돌목에 설치된 두개의 돈대- 언덕위 손돌목
돈대와 해변의 용두돈대
-------------------------------------------
이곳에는 물밑에 가로 지르다시피한 돌다리같은  
암초가
널려있어서 마치 문턱과 같이 되어 있고
그 중앙이
약간 오목하여 조수가 드나들 때에
물살이 드세게 빠르다,


조금 때 가보면 용두돈대 앞에 삐죽 삐죽 내민
암초의
끝머리들을 볼 수도 있다.


바로 이곳에서 숱한 침몰 사고가 있었다.
역사 기록은 1765년-1800년 사이 전국에서
세곡미를 운반하던 조운선이 해난 사고를
당한 일이 18번 있었는데 그중 6번이
이 손돌목에서 발생했다.

급한 물살을 타고 흘러가는 기동력 약한 범선들은
암초를 피할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

1871년 5월 31일 대동강에서 불탄 제네랄 셔먼호의

배상과 사과를 요구하며 내침했던 미 함대는
조선군의
도발을 유도하기 위해서 작은 증기선
포함 두 척을 해협 안으로
침투시킨다. 


증기선 포함 모노캐시- 손돌목 암초와 충돌하여
침몰할 뻔했다.
----------------------------------------
 
두 척의 증기선은 두 돈대들로부터 엄청난 포격을

받았지만 유감스럽게도 한발도 맞지를 않았다.

그대로 진행하던 증기선중 한척인 모노케시는
바로
이 손돌목의 암초에 걸려서 선저가
파손당한 뒤 철수했다.


한국 침투 전 프랑스 함대로 받은 듯한 자세한
강화 해협 지도를 가지고
왔던 미 함대도
이 악명 높은  손돌목 암초에 대해서는
사전 정보를 받지 못했던 것 같다.


미군들이 그린 신미양요 작전도.- 놀랄만큼 자세히
강화 해협 양안의 지리 정보를 담고있다.
--------------------------------------

모노케시는 작약도로 철수하여 땅이 들어나는
서해안 조수 간만의 차이 덕분에 썰물에
배를
해변에 얹혀 놓고 용이하게 수리할 수가 있었다.


미 해군 기록은 배의 선저 파손 부위를 직접 보면서
수리하게 만들어 준 서해의 차이 큰 밀물 썰물을
자연의 마술인양 아주 신기 한 것으로
특기 해놓았다.

서양배로 손돌목 암초들에게 손상을 입은 것은
이 모노케시가 최초이다. 

손돌목에서 큰 피해를 본 두번째 서양배는
1889년 인천에서 영업하던 독일계 무역회사
세창 양행이 독일에서 도입해서 운영하던
제강호라는 제물포-마포 여객선이었다.
이 배는 좌초후 침몰했다.
--------------------------------
-------------

따라서 제물양 [인천 앞바다]와 성창포에서 물길이

험한 강화 해협에 진입하기 전 정박하면서 물 시간을

기다리며 험난한 난코스 돌파를 준비하여야 했다.

제물양과 성창포는 수도 한양에 세곡미를 운반하는

기점에 있었다.


두 번째의 장애는 풍랑이었다.

풍랑과 손돌목이 만나면 대개는

통과 선박의 침몰로 끝나기 마련이었다.


정조 때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구 선복[具  善復]이

손돌목의 형세에 대해서 이렇게 묘사했다.

해안에서 손돌목을 바라보니 바야흐로 조수가

  만조가 되었고 바람이  알맞게 불어주는 기회를
  틈타
선박들이 꼬리를 물고 내왕하는데
  사공들이 이 곳에
도달하면 아연 긴장하여
  정신을 가다듬고 키를 조작하면서
 
정타[正舵-직진]로 중앙 항진하다가

  측타[側舵- 좌우 회전]로 돌아 암초를 피한 후

  다시 정타로 환원하기를 수차 되풀이 한다.

  그러나 만약에 역풍을 만난다면 감히
  통과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처음에 순풍이
  불다가도 바람이 돌변하면 반드시

  암석에 부딪혀서 침몰하게 된다고 할 정도였다.”


윗 글은 사공들이 어떻게 조마조마하게 손돌목을
통과했으며
돛배의 향방을 가름하는 바람이나
조수의 속도가 얼마나
심각한 항해의 요소였는가를
잘 알려준다.


세 번째 장애는 서해안의 심한 조석의 차이였다.

경기지역에 접한 서해안은 전국적으로도
조차[潮差]가 심했다.

다시 말해서 조석 간만의 차이가 컸다.


서해의 조석은 만조와 간조가 하루에
두 차례씩 되풀이 되는데
그 시각이 일정하지 않다.

특히 손돌목은 만조의 최대 해면일 때가 아니면
통과하기 힘들다.


강화 해협만 통과했다고 해서 장애물이
다 지나간 것이
아니었다. 


한강으로 거슬러 오는 길의 행주 염창항[鹽昌項]은
물이 얕은데다가
수초가 많아서 큰 배인
세곡 운반선은 운행하기가 힘들었다.


즉 세곡을 가득 실은 대형선은 한달에 두 번 오는

사리 때나 만조를 타고 한강을 거슬러
올라갈 수가 있었다.


따라서 이곳을 통과하려면 사리 때를 기다려 조수가

최대로 차서 수위도 높고 바닷물이 한강의 흐름을

느리게 할 때 기회를 타고 배를 운행해야 했다.

----------------------------------------------

행주 나루 강중[江中]에 저런 모래 장애물이
있다는 사실은
1950년 한국전쟁의 기록에도
잠깐 얼굴을 내민다.


인천 상륙 작전 성공으로 김포 공항까지 진격했던

미 해병대는 인천에서부터 가져온 LVT
[수륙 양용 주정]로
행주 나루를
야간 도강하려다가 북한군의 반격을 받았다.



1950년 9월 행주 나루의 수륙 양용 전차[LVT]
-----------------------------------------

도강 병력은 일시 철수중에 모래톱에 두 량의
LVT가 걸려
탑승했던 해병들은 몸만 탈출해야 했다.
LVT는 다음날
다시 회수하였다.
그 모래톱이 앞의
 염창항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해병대 작전 상황도를 보면 지금의 행주대교
좌우에 두개의  긴 수중 모래톱이 그려져 있다.
이 곳이 염창항일 것이다.

--------------------------------------------

그래서 큰 세곡 선은 한강 진입 때 물때가
맞지 않으면
김포 반도 쪽 한강 어구의 강령포에서
일주일 씩
기다리기도 했다.
--------------------------------------------------

강령포는 지금 해병대가 지키는 GOP내에 있어서
보기도 힘들지만
조선 시대에는 500여호의 민가와
각종 상점과 술집등이 있었던 큰 포구였었다.

분단이 안 되었다면 지금쯤 서울의  위성 도시로
발달했을 가능성이
있었던 곳이었다.

------------------------------------------

이상의 경강 항로의 장애 중에서도 강화 해협의
손돌목에서의
피해가 가장 컸다

위에서 수도 한양이 필요로 했던 수운의 중요성과

이를 오가는데 한강 하구로 가기 전의 강화 해협

통과가 상당히 위험하다는 것을 설명했다.


무상한 세월이 바꾸어 놓은 마포나루의 모습
배들과 강변의 무수한 배들과 번화한 상가는
사라지고 한강 공원과 아파트 단지가 되었다.
-------------------------------------------

따라서 이를 피하기 위해서 김포와 굴포[堀浦]사이에

인위적으로 운하를 조성하려는 시도가 있었던 것이다.


조선 시대의 토목기술로 사실 경인 운하는
벅찬 사업이었었다

[조선시대 태안 반도에서도 안흥량이라는
 험난한 곳을
우회하고자 운하 건설을 시도했다가
 실패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도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절실한 이유들이 위에서 설명했듯이 있었던 것이다.


운하 건설이 성공하면 뱃길이 단축되어
운반비용이 경감되고 
손돌목에서의 인명피해와
세곡의 손실을
막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제 경인 운하의 공사가 한창이고 굴포천을
확장해서
큰 선박이 한강까지 들어오게 된다.


한강은 원래가 물류의 기능을 발휘함으로서
역할을 했었다.


그러나 국토 분단과 다른 교통수단의 엄청난
발달로
한강은 그 중요한 기능을 상실해야 했다.


인천 - 한강 아라 뱃길의 상상도
----------------------

상류 쪽과의 소통은 댐과 교량 때문에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하류를 통한 한강의
본래 물류 기능은 부분 회복이 된다.

운하가 활성화 되면 제주도나 일본, 또는 중국을
가는 여객선도
한강 선착장에서 타게 되고
지금 노량진 수산 시장도
서해의 어선들이
직접 입항하여 수산물을 출시하는 것도

가능할지도 모른다.


생태 이유를 들어서 반대하는 목소리도 많지만 이미

국민 혈세를 들여서 건설을 시작한 바에야
이익을 보고 있는 인천 공항과 같이
운영의
기술을 다하여 흑자도 많이 나고 국민의

사랑를 받는 운하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추천(5) 스크랩 (20) 인쇄
황태 2009.10.25  20:20

하루 정리하려고 컴에 들어와 접속하니 새 글 올려진 소식이 올라오네요
손돌목의 물살과 암초 이야기는 유명한 모양입니다. 손돌목이란 이름 자체가 전설에 의하면 몽골군이 침입했을때 왕이 강화도로 피하면서 나룻배를 몰던 손돌을 신하들의 의심에 의해 처형하면서 그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붙인 이름이라는 데에서도 알 수 있겠지요.
하도 오래전에 들은 이야기라 자세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손돌이란ㄴ 배사공이 죽으면서도 바가지를 띄우고 그 바가지를 따라서 배를 저어서 가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그 지역이 통과하기 위험한 지역인 모양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도 운하에 대한 역사가 있었군요.
요즘 삽질이라는 경인운하나 4대강 개발사업이 처음인줄 알았는데요.

답글쓰기
바라는것이란 2009.10.25  22:11

님의 블로그는 정말 제미있네요~!

답글쓰기
**** 2009.10.25  22:20

[귓속말 입니다.]

고락산성 2009.10.26  06:16

거대한 예산을 소모하지 않은다면 전 개인적으로 운하건설을 찬성하지요.
4대강 역시...국가의 빚이 넘 많아지고...다른곳이 더 바쁘지 않은지 잘 살피고....
손돌목에 대해서는 저가 현장을 다녀 온 적이 있지요.
이른아침 잘 보고 갑니다.
활기찬 일주일 열어가세요.

답글쓰기
검나루 2009.10.26  14:25

한정된 땅에 바닥을 드러내는 자원보다 체계적인 수로 정비를 통한 과학적 수질관리만 가능하다면 식수, 농수뿐 아니라 강과 토양 바다까지 정화하는 대단한 사업이될 수 있을 뿐더러 수로가 발달을 해야 레져와 관광등의 제4차 산업의 기반이 설립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공사에 따른 환경과 법제도 개선 및 타국 성공 혹은 실폐사례 등을 접목한 이상적인 시스템 구축부터 하는것이 우선인듯 합니다. 그러한 면에서 작가님 처럼 몇백년전 우리 선조분들의 성공과 실페 사래담을 재검토하여 당시의 지도를 통한 풍수지리학적인 면부터 돌아보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 생각됩니다.

답글쓰기
kantapia 2009.10.28  05:58

상위 1퍼센트를 위해선 전쟁이든 대규모공사든해야한다.. 서민들은 그저 서민일뿐.. 난 조옷됬다.. ㅆ ㅂ 한국이란 조옷같은 나라에서 태어난것이 조옷같다.

답글쓰기
갈대의영혼 2009.10.28  08:44

동작동 국립묘지 너희들 슨상님 묘소에 가서 울거라. 너희들 잘난 슨상님이 경부고속도로도 포항제철도 못 만들게 억수로 반대하고 했잖아? 대규모 공사햐면 너희 같은 떨거지들 피 빨아먹는 짓이라고 생각하는 너 같은 놈들 슨상님 묘소에 가서 실컷 울고 북조선으로 가거라. 대규모 공사도 전혀 없는 지상천국이 너희 조국이니라.
가서 장군님 품안에서 잘 살거라.

최영철 2009.10.28  11:43

갈대의 영혼이란자 영혼이 이상한 사람이군 왜 정부정책을 반대하면 전라도 사람이라고 단정하지??? 지능이 짧은인간들 이런인간들이 한날당과 현 정권의 지지기반이지....그래서 싫어 이명박과 한날당이 난 전라도 사람이지만 4대강 사업은 찬성해
나중에 거짓말로 운하파는 일만 아니면 말이야

강변 2009.10.28  14:18

오죽하면 상도말살정책이 나왔을까 .....일본놈들이 반을차지하니까 그렇지

갈대의영혼 2009.10.28  19:55

꼴갑 떨고들 있네, 백제가 멸망하니까 왜놈들이 동족 백제 구한다고 군사를 보냈다가 다 죽었잖냐? 왜놈과 동족은 너희들이지. 대구의 시인 이상화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쓸 때 너희 쪽 고창의 서정주는 황국군대 찬양 시를 썼단 말이다.
어쩌다가 십년 정권 잡아보니 좋았지. 정이리에게 핵 개발자금 실컷 지원하고 인민군대 먹이고, 그러다가 정권 잃으니 온갖 술수로 촛불 난동 부리고, 현정권을 공격 해대는데, 4대강 개발도 궤변 같은 논리로 방해를 하는구나.
고솓도로도, 철강회사도 조선회사도 너희기 반대 안한게 있는 줄 아느냐?
4대강 개발자금 정이리에게 준다면 좋아할 너희들 이란 것 잘 안다.

갈대의영혼 2009.10.28  20:13

나는 전라도라는 말은 전혀 사용도 안 했는데, 피해의식을 얼마나 갖고 있길래 전라도라고 단정을 하는지 기가차군.
내가 말한 상대는 소위 허울좋은 진보라는 가면을 쓴 재야 좌파들을 말하는 것인데.
정권을 잃으니깐 온갖 술수로 국민들 선동하여 현 전권을 전복 시킬려는 비열한 인간들을 말하는 것이지. 민주주의 기초도 모르고 오직 독재자를 숭배하는 인간들도 그 중에 다수 있다는 걸 내가 잘 알지...
상도말상정책??? 웃기고 자빠졌네. 어느 놈이 그런 정책을 말했는데??? 꼴갑 좀 그만 떨어라. 너희들 그런 사고방식으로 촛불 폭동 같은 비열한 짓만 해대면 너희 좌파 쪽에서 앞으로 50년 안에 국가 영도자 될 사람은 없을 것이다

lielchan 2009.11.01  17:05

뭐라는겨 갈대의 영혼 ㅄ인야?
그렇게 출생지 따질거면, 임진왜란 당시에 이순신 아래에서 열심히 싸운 사람은 누구고 이순신이 근거지가 어디였고 전쟁이 나자마다 도망가기 바쁘던 원균이 있던 곳은 어딘데?
인생 왜 그리 저열하게 사냐?

생불 2009.10.28  11:09

글쓴이 직업이 궁금하네...

답글쓰기
조선몬스터 2009.10.28  17:31

나두!!!!

하늘 2009.10.28  22:37

갈대의영혼 대구쪽같은데 난 서울이요 대부분의 건설or산업시설이 경상도로 집중이 되니 경상도쪽에 부가집중되는데 그것이 얄밉고 MB하는 모든것이 경상도민만을위한 도적질처럼 보이오 또한 갱상도는 한놈만 건너뛰면 장차관을 아는데 다른지역 사람은 얼마나 열받겟소 앞으로 법을바꾸어 도별로 돌아가며 대통령을 하면 갱상도만 이 아니고 다른지역 사람도 친인척중에 장차관 한명쯤은 있을것이오 오로지 갱상도에서만 대통이 나와야 ....숨차네....갈대알바아니유

warriets 2009.10.28  11:29

4대강 사업비 최소한으로 잡아도 22조 입니다. 22조면... 연봉 2200 만원짜리 직업을 백만명 만들어 줄 수 있는 액수입니다. 설상가상, 22조로는 턱도 없죠. 제가 보기엔 최소 30~40조가 들어도 힘든 공사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실업자를 일시에 2백만명을 구제해 줄 수 있는 액수이죠. 4대강 사업으로 일자리가 창충된다굽쇼? 공사장 나가보세요. 일당잡부조차도 중국인, 조선족들이 대다수입니다. 그들이 돈을 벌면 90%는 본국으로 보냅니다. 결국 4대강사업으로 이익을 볼 대상은 또다시 상위 1% 도 안되는 기득권층이라는 것이죠. 무한한 자금이 있다면 몰라도 우선순위의 관점에서 본다면 4대강 사업은 정말 ..... 정말 아닌것 같습니다.

답글쓰기
갈대의영혼 2009.10.28  20:28

청맹과니, 기업이 잘 돌아가면 사업의 전방효과 후방효과 등의 경제효과가 있다. 단순 노무자들이 받는 임금만 보지 말고 그 공사에 납품회사 중장비 제공회사 등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받는 경제효과 등을 생각하면 대단한 경제효과가 나타날 수 밖에 없다.
교묘한 궤변으로 선동하지 마라. 경부고속도로도, 포항제철도 너희들은 돈 없다고 반대만 하였다. 십년을 내다보는 인간과 천년을 바라보는 사람의 사고방식은 천지 차이다.
너희들 진보라는 사고로 십년을 내다보면 조금 가진 돈을 서민들에게 복지정책으로 풀어서 나누어 주어야 하지만 천년을 바라보는 사람의 정책은 당장 배고프더라도 미래를 생각해서 참으라는 것이다.

딩동댕 2009.10.28  21:40

님은 쪼D세요???22조 있으면 저절로 기업이 생깁니까?
G랄 그만 하시고 전에 못난이 병진 변호사처럼 진보적으루다가 삼성 박살내기 욕하기 쭉 하세요.왜 있잔아요...말만 끄내면 님의 심뽀들이 하는 쥐색키...그런 야기를 아니합니까? 그게 정상인데...오히려 안니하니깐 더 이상하네...글구 대한민국에 넘어온 탈북자 5만명이 한결같이 오십팔은 장군님과 선상님의 위대한 합작품이라고 증언 하는데...그쪽으로는 곳죽어도 못본척 하는지...참 진보스럽다

cts9874 2009.10.29  15:08

2200만원짜리 연봉으로 백수 백만명을 구제한다는 건 좋은 발상입니다... 그러나 1년후는 다시 백수 된다는 사실을 왜 모르실까요?? 저도 맹목적인 4대상 사업은 절대 반대합니다... 그러나 꼭 필요한 사업은 골라서 해야겠죠...예를 들어 사업이 확실이 있는 쪽 개발같은거요........민주당이나 자징 진보주의..또는 환경단체에서는 경부고속도로처럼 무조건 반대만 할게 아니라 사업성이 떨어지는 곳은 못하게 하고 개발대비 사업성이 뛰어난 곳은 운하를 설치하는 쪽으로 서로 의논하고 양보해야 되지 않을까요??

불씨 2009.10.28  11:38

항상 좋은자료 감사합니다. 추천후 퍼갑니다.

답글쓰기
다이아몬드 2009.10.28  12:01

4대강 사업은 모르겠지만, 경인운하, 아라뱃길 만큼은 정말 필요한 공사라는 생각이 드네요

답글쓰기
sakim_2001 2009.10.28  12:02

매사 반대만 하면 발전은 기대할 수가 없다네. 선경지명이야말로 큰 지도자의 덕목이죠!

답글쓰기
orange649nz 2009.10.28  12:10

문제는 반대하는 소리가 타당한데도 불구하고 잇속에 눈이 멀어 그 소리를 안들으려고 귓구멍을 처막고 있다는 것입죠.

강철가슴 2009.10.28  14:04

649nz님! 문제는 타당한 사업을 타당치않은 이유로 귓구멍을 틀어막은 님같은 분들 땜에 이나라가 거꾸로 가는거 같아 불안하네요

orange649nz 2009.10.28  16:16

강철씨, 대체 뭐가 타당하다는 건지 알수가 없군요. 아마 근처에 땅이라도 좀 사두셨나 보죠? 그러니 눈멀고 귓구녕 막혀 앞뒤 분간 못하고 그리 삽질하시는게지요. 그것마저 아니시라면 정신이 온전치 못하시던가.

orange649nz 2009.10.28  12:08

사랑받는 운하가 되긴 애저녁에 글렀지 않았소? 이미 혈세를 들여 건설을 시작했더라도 중단해야 마땅합니다. 정말 참 이상한 정부, 정신나간 대통령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어요.

답글쓰기
비련대 2009.10.28  12:15

또 왔습니다. 야후메인창에 글이 떠서 클릭했더니 이곳이 나오네요. 글을 읽으며 느낀것은 자료를 정성드려 준비했다는 노력이 보이는듯 합니다. 500년전의 부국을 꿈꾸던 선조들의 노력을 상기시키는 의미는 아주 뜻이 있다고 여겨집니다. 이 시대에 경인운하가 와성된다면 500년의 꿈이 실현되는 군요.ㅎㅎㅎ 내 개인적으로는 4대강 운하만 빼고는 매우 바람직한 대 역사라고 생각되며 이런 글을 포스팅한 울프독님의 노고도 격려를 드립니다...ㅎㅎㅎ 쓰고보니 무슨 쥐새끼 창에 떠서 지우고 이곳에 다시 씁니다.ㅎㅎㅎ늙으면 무엇하나 제대로 하는게 없다니까...ㅋㅋㅋ

답글쓰기
유운 2009.10.28  12:17

재미있는 역사얘기네요.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그런데 경인운하도 시대를 잘 못 만난 것 같아요. 지금은 해서는 안될 사업이죠. 무리하고 너무 비생산적인 사업이라서요. 하더라도 백년 계획으로 천천히 해야 될일인데..너무 욕심만 앞세우는 것 같네요. 그리고 멋모르는 놈한테 칼을 맡기면 칼이 살인도구가 되지만 요리사에게 맡기면 훌륭한 요리가 나오지요. 쥐새기에게 ㅔ맡기면 쥐시궁창이 되지만 용에게 맡기면 용천이 되겟지요.

답글쓰기
jyh2009 2009.10.28  12:37

운하 만들면 좋치요,,더 급한데 가 천지인데 강바닥에 돈 버리니 글쵸 ...

답글쓰기
폭탄 2009.10.28  13:00

운하가 500년전에는 혁신적인 개발사업이었지만 500년이 지난 지금은 KTX가 다니고 조금있으면 자기부상열차도 달릴예정이고 전국으로 고속도로 뻥뻥 뚫려있는 상황에 4대강정비라??? 강주변 콘크리트 발라놓고 환경과 자연보존이 되는건지? 유럽을 가보니 2000년전에 뚫은 운하데로 난도질하지 않은 강은 자연그대로 보존하는것이 환경과 자연보존의 핵심이던데 과거 로마시대 운하뚫는 공사가지고 현대를 달려가겠다는 것은 코웃음밖에 나오지않는다. 광고 문구에 은어가 헤어쳐다니는? 문구가 있던데 일본에 가보니 은어가 헤엄쳐다니는 강은 자연그대로 보존한 얕은강에서만 볼수 있었다. 강바닥 긁어내고 콘크리트 쳐발라놓은 강에서 과연 은어가 헤엄쳐다니겠는가???
답글쓰기

답글쓰기
금정동잠보신랑120700 2009.10.28  13:48

윗글에 동의합니다...

답글쓰기
leesanghun 2009.10.28  13:56

웃긴다. 웃겨

답글쓰기
단군 2009.10.28  14:06

글쓴이 직업은 한때 장교였다 알고 있습니다만 직업군인 출신이라 좀 생각이 막힌데가 많아요 이해하세요 이글도 좀 냄세가 나죠 은연중에 머 요런 꼼수를 마이 부립니다 이승만시대의 모든 아가리에서 나온 말은 거의 거러지않고 맹신하고 있다 고러케 생각하심 이해가 빨라요

답글쓰기
msy1155 2009.10.28  14:31

노무현때 김대중때는 나라망할것처럼 반대하고 난리를 피우던것들이 이번엔 자기들이 추진한다고 설레발이 치는게 문제다...알것냐...당나라당 빨갱이 쉐이들아~

답글쓰기
기여우 2009.10.28  15:00

저는 위의 글은 이미 오래전에 계획하고 실행하다가 중단된 기록을 근거로 글을 엮었읍니다. 지금 4대강 사업이란 것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내용을 기록하고 찬성하고 반대하는 글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어서 참 이상합니다. 인터넷에 댓글 거의 대부분이 근거가 없어서 읽어도 무슨 내용에 대하여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 알 수가 없네요.

답글쓰기
기여우 2009.10.28  15:06

지금 우리나라 거의 모든 큰강은 강 양 옆 길이 방향으로 둑을 막아 놓았는대 언제 막았는지는 저도 모릅니다만 이 둑 즉 보는 모두가 사람들이 인력으로 토사를 쌓아 만들어져 있고 일부 공격사면으로는 밑바닥을 돌로 쌓아 둑의 유실을 최대한 방지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런대 이 둑을 막기전에 강 옆으로는 지형에 따라서는 현재 강폭보다 몇배의 수로를 차지하고 있엇든 듯 한대 농지를 확보하려고 자연적인 수로의 폭을 둑으로 쌓고 그 나머지 퇴적지는 논으로 만들고 또 상부에서 수로를 만들어 퇴적지 보다 높은 곳은 평평하게 만들어서 논으로 반들어 놓은 것 같습니다.

답글쓰기
bejsda 2009.10.28  15:10

그러니까 옛날의 필요성을 충족시키기위해 그냥 파자? 운하보다 더빠른 철도와 도로가 지천으로 깔린 지금에? 생태계가 주는 이득이 운하의 이득과는 비교할수 없을만큰 크고 또커서 생태계가 살아야 인간이 사는데도? 기냥 건설사와 엠비의 영원한 보존과 돈벌이를 위해? 에이 그건 아니지? 정신이 있는거냐고 엠비는 임기끝나고 먹튀하면되고 건설사도 따라 날라가면되고 그저 이땅에 힘없는 서민들만남아서 생태계파괴에 따른 폐해와 빚더미를 떠맡아 고통받아야하는데? 그래도 하고시포? 넌 누구냐? 도데체 니놈이 한국인 맞기는맞냐?

답글쓰기
기여우 2009.10.28  15:18

저는 감정을 표시하지 않앗는대 끝까지 읽어보지도 않고 극한 감정을 글로 표현하는 뜻이 무엇인지요?

기여우 2009.10.28  15:20

그리고 선생님의 표현대로 라면 제일 빠른 비행기 이외의 운송수단은 다 필요가 없는 건 아니지요?

기여우 2009.10.28  15:21

그리고 엠비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앞으로 모든 대통령들은 모두 자기 임기내에 끝마칠수 잇는 공사만 하여야 하네요.

기여우 2009.10.28  15:24

위의 제목은 경인운하이지만 제가 쓴건 댓글중에 4대강에 대하여서도 거론한 분들이 계시길래 저도 다니면서 강둑의 형상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는 중인대 제가 쓴 글을 정확하게 인용하여 제가 잘못 보았거나 잘못 쓴글을 구체적으로 수정하여 주십시요.

기여우 2009.10.28  15:15

따라서 현재의 강 곁에 있는 거의 모든 논들은 둑을 막을당시는 강 바닥과 표고가 같았지만
그 후에 강에 수 많은 수중보를 만드니 홍수기나 강물이 많을때 토사가 밑바닥에 차츰 퇴적되어 강바닥이 논보다 높아져서 강둑이 넘치거나 둑이 터지면 순식간에 침수가 되고 강의 수위가 낮아져도 강 인접한 논의 물른 자연배수가 않되는 문제가 반복되어 왔읍니다. 4대강 사업의 취지는 모르지만 자연파괴라고 하는 것은 저는 잘 모르지만 이미 강 옆에 둑을 막은것 자체가 자연을 건드린것인대 더 이상의 회손은 막아야합니다만 이미 인간이 저질러 놓은 농토는 농사짖는 사람들 생계를 위하여 보존을 시키는 수 밖에 없을 것 같지 않습니까!

답글쓰기
거시기 2009.10.28  15:55

시작했다가 정권 바뀌면 바로 취소할 사업 1번입니다.

답글쓰기
최성권 2009.10.28  16:59

그땐 주요 교통수단이 벳길 아니였남???참나~~~~

답글쓰기
TOLST 2009.10.28  17:08

4대강? 참으로 웃기는 말이오....내가 22조의 돈을 쓸 수 있다면 차라리 경주 시민들을 전체 소거하고 도시 전체를 5m 깊이로 파 버리겠소...그리고 신라시대의 경주를 복원해 버리겠소......대운하 찬성하던 사람들은 대운하 아니라면서 4대강 찬성하고 자빠진 이 웃긴 상황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이오...설계도도 없는 공사를 입찰하니까 멍해진 건설업체들이 담합하는거 아니오

답글쓰기
숀코걸이 2009.10.28  17:33

500년전과 지금을 비교하다니요. 500년전과 지금의 경재를위한 운송품은 많이 변햇지요.
지금은 반도체나 전자 제품같은 부피가 작고 빠른 운송을 요하는 물품이 많습니다. 그외에 부피가 크다거나 그리 급하지않은 물품은 철도나 화물차로 운송을 합니다. 그럼 여기서 운하를 만들어서 운송을 하게되면 철도나 화물차 업자에게 크나큰 경제 손실을 줄수 있습니다. 여기에대한 정부의 대책은잇는지...... 물론 소형 전자제품이나 이런건 타격이 없겟지만 .
전에 인천과 부산을 오가며 운송을 하던 해운 회사가 있었는데 수지가 맞지안아 없어졋습니다.. 이렇듯이 배로 운송하는 것은 경제성이 없음을 이미 경험 하고도 22조원이 넘는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려하는이유가 무언지 궁금하군요. 또한 외정 때도 경인 운하 건설을 건설을 시도 했었지만 철도에비해 경제성이 없어 포기햇던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는 현시대는 운송방법이나 운송양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얼마나 빨리 운송하느냐의 문제가 가장 중요시 되고 있슴을 알수 있습니다. 현대는 속도의 시대입니다.

답글쓰기
숀코걸이 2009.10.28  17:40

마지막에 흑자를내고있는 인천공항 언급하셧는데 이걸 외국 회사에 주식을 팔려 하다니 운하도 흑자나면 팔겟다는건지......

답글쓰기
해외동포 2009.10.28  17:40

4개강 정비사업은 반드시 그것도 지금 해야 합니다. 강은 밑바닥을 깊게 파주고 강벽이 허물어지지 않도록 해줘야 많은 물을 담을 수 있고, 그것이 홍수나 식수대책이 됩니다. 북한이 왜 매년 홍수가 나서 논밭이 떠내려가냐 하면 강바닥을 준설해 주지 않아서입니다. 연료가 없으니까 산의 나무를 마구 베어다 쓰고 그러다 비가오면 물이 그대로 강으로 흘러들고 강바닥이 얕으니까 금방 범람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유엔으로부터 물부족 국가로 분류돼 있습니다. 미래학자들은 장래 식수전쟁이 일어날 거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강들을 정비하고 저수시설들을 확충해야 합니다.
이미 강원도 지방에서는 연례행사처럼 홍수와 장마가 빈발하고 있지 않습니까? 강 바닥과 벽을 정비하지 않아서입니다. 이것은 후손들을 위해 지금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하는 사업입니다.
비판을 하더라도 제발 과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이성적으로 하시기 바립니다.

답글쓰기
갈대의영혼 2009.10.28  20:41

논리정연한 말씀 동감합니다. 지금 좌파들이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이유는 무슨 소신 때문에 그러는 게 아니라 오로지 현 정권의 지지를 떨어뜨리고자 하는 비열한 술수로서 그러는 것입니다. 미국산 쇠고기나 용산참사(죽은 놈들이 불지른 일) 등등의 기회만 생기면 지랄을 해대는 게 그 놈들의 수법입니다.
국가 천년을 바라보면 반드시 언젠가는 추진해야 할 일이 그 사업입니다.
좌파 놈들 경부고속도로 만들 때도, 포항제철 건설 할 때도, 88올림픽 추진 할 때도 반대만 했었지요.
오로지 현 정권의 지지도를 떨어뜨리고, 자기들이 다시 정권 잡아서 대북한 퍼주기를 하겠다는 게 이 놈들의 수작입니다.

abelardo 2009.10.28  18:32

4대강 사업은 경인운하를 먼저 시도해 본후 경과를 봐가며 차근차근 생각해 볼 문제 같네요. 이왕 하고 있는 경인운하이니 시대적 목적은 다르더라도 관광용이든 범람방지용이든 만들어 놓으면 나쁘진 않을 것 같아요. 일단 이쪽 수도권은 인구가 바글바글한 곳이니 구경하는 사람으로 적자는 면할 듯.

답글쓰기
용학이아재 2009.10.28  19:16

나는 울프독님을 가끔 이해하기 힘들때가 많습니다..이왕 시작한게 아니라 끝까지 막아야 할판인데 안타깝습니다.....

답글쓰기
hmdi2004 2009.10.28  20:46

이런글은 다음부터 올리지마세요? 옛날에는 운하가 필요했지만 지금은 전혀 필요없습니다. 역시 보수는 어쩔수없군요?

답글쓰기
울프독 2009.10.28  20:53

뭐 하는 사람인지 모르지만 글이나 다 읽고 시비거시오.

까만바보 2009.10.28  21:03

4대강 사업이든 현 정부의 무능함이든 다 좋은데 차라리 나 같으면 지금 이 나라에 시급한 1차산업에 적극 투자할것을 예를들어 중국으로 이전한 의류산업이나 3D 업종에 지원을 더 강하한다면 어려운 건설 짝도 금방 해결될듯헌디 왜 타국민에게 일자리 창출의 효과를 주는지 참으로 답답 10조원 1차산업 지원기금으로만 사용해요 우리 아리랑 경재는 금방 회복될것을 맨날 첨단산업 이지랄이라 거도 좋지만 연봉 2000만 이하에게 매월 100만씩만 더 얻어 줘봐라 왜 힘근 타국 땅 가서 그 고생을 하겠는지 예를들어 몇자 적어봤지만 방법은 항상 주위에 있건만 모자람이 넘 많구나 앞만보고 열심히 뛰는 민족근성이야 어찌하리오만 누구 탓을 하리요 모두가 내 탓

답글쓰기
aj82708 2009.10.28  23:36

$$$$

째돌이는판사대장 2009.10.29  22:40

4대강살리기 취지가 무엇인지요?
말그대로 강을 살리자는뜻아닌지요?
태초의 물길이 죽었더란말 입니까?
자연섭리를 거스르면서까지 인위적으로 물길을 정비해서
득이될것이무엇이며 정형화된 강줄기가 무슨 자연의일부겠습니까!
자연 그자체는 스스로 생육화성하는것 아니겠습니까!
제발이지 정치적 이슈꺼리로 그대들것도아닌 그누구의것도아닌 자연의일부만큼은
멋대로 함부로 더러운 짓꺼리 삼가주셨으면 좋겠는데요.
물적이득 이나 편함을 핑계로 벌받을짓꺼리 맙시다.
우리 후세들도 온전한 자연을 맞이할 기회는주어야지않겠습니까!
있던 그대로의 자연은 그대들에게 불편함이더란말입니까?
그 오만방자함 때문에 지구온난화를초래했고 다가올백년전후로 우리는 높아진해수면때문에
더높은 지역으로 대대적인 이주를해야할 지경이 될것입니다.
이곳에오신분들이 사상 이념차이때문에 다툴핑계로 수천 수만년을 흘러온 강에 뚝을쌓고 내륙과 단절시키는 공사를 옹호하고 반박하고 하는것에 실소를 금할수없군요.
제발이지 그나마 남은 자연에게라도 아무짓 말아주세요 자연은 당신에게 머라고하지 않잔습니까? 우릴 살게해줄뿐이지!

답글쓰기

댓글쓰기

댓글쓰기 입력폼

포스트 목록 닫기

목록보기
 
2009 11월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즐겨찾기
 즐겨찾기 글모음
다녀간 블로거 더보기
- hbj122
- audtnr0306
- 고아라
- kjy000031
- 한용국
최근 댓글 전체보기
표범 카페트의 행방은 ..
흰둥이님 말대로 빌어..
파이퍼라면.... 60..
한국 호랑이 [ 조선범..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왔..
최근 참조글 전체보기
Cheap oxycod..
Cooking squa..
종어 ( 큰 빠가사리)
재치만발 군대이야기 (..
초록색 강아지 태어나..
지난 글
2009년 1월
2009년 2월
2009년 3월
2009년 4월
2009년 5월
2009년 6월
2009년 7월
2009년 8월
2009년 9월
2009년 10월
2009년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