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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쟁의 소련 격추왕 -제 1 편-

2009.08.04 21:38 | 2009년 8월 | 울프독

http://kr.blog.yahoo.com/waterview33/1072 주소복사

한국 전쟁의 소련 격추왕 
        
              - 제 1 편-




한국 전쟁중 미그 15기
-------------------------------

이 번 글은 한국 전쟁중 최대로 많은 미군기를 격추했던 소련의
톱 에이스 중 한명인 에브게니 페페리아예프 상좌의
공중전투 기록이다.


에브게니 페페리아예프 상좌- 오른쪽
------------------------------


그는 압록강 상공에서 공중전이 치열했었던 1951년 5월부터
다음해인
1952년 1월까지의 7개월간 미군 제트 전투기 확인 19기
미확인 4기를
총 23기를 격추해서 미 공군의 한국전 최고 에이스
맥코넬 대위가
격추했던 16기를 넘어섰다


그가 격추한 미군 전투기는 12기의 F86, 5기의 F80, 4기의 F84,
2기의 F94이다.[F94는 F80을 오인한 것이다.아래에 설명한다.]

[ 최고 격추왕으로 니콜라이 수챠진을 꼽기도 하는데 그는
  21기를 격추했다.
 
  기록에 따라 그를 최고 에이스로 꼽는 소스가 많지만
  미확인 기까지 포함해서 예브게니를 최고 에이스로 
  지목하는 글도 있다.
 
  미 공군이 자체 기록으로 확인 한 두 사람의 격추기는
  두 사람 꼭 같이 12기다 ]

미그 15기
----------------------


한국 전쟁에서 F 86 세이버 기를 몰던 미군 조종사들의 용맹성과
뛰어난 기술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어오던 바다.

한국 전쟁중 미 공군은 공산 측 적기를 858기를 격추했으나 반면
미군기는 단지 58기만 잃어서 공산 측에 대해서 13:1의
격추 우위를
보였다고 홍보했었다.

그러나 월남전에서는 미 공군이 월등히 우수한 조종사와 전투기를 가지고도 월맹기에 대해서 단지 2;1의 우세만을 기록했을 따름인데 한국전에서는 왜 이렇게 대승했던가에 대해서 의문을 가져 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격추기의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하는 중국 공군과
북한 공군의 조종사들이 충분한 훈련도 경험도 없어서 미숙하고
서투른 초년병들이었기 때문인 이유가 제일 클듯하다.

[중국측 자료에 의하면 미 조종사는 실전 투입전 최소 300시간의
비행 훈련을 받지만 중국 공군측이나 북한 공군측은 단 3O시간의
비행 훈련만 받았을 따름이라는 것이다.]


반대로 이들과 맞선 미 공군 조종사들에게 이차 세계대전중
유럽이나 태평양에서 많은 실전 경험을 쌓았고 또 공중전에 관한
노우 하우도 풍부하게 축적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F86
------------------


여기에 한 몫 더해서 중국이나 러시아의 군사 정보가 풍부해진
요즈음은 한국 전쟁 중에 거둔 미 공군의 전과가 지나치게
부풀려지지 않았느냐는 조심스러운 의심도 제기되고 있다.


즉 적기 격추 판정은 주로 미 전투기에 장비된 카메라에 찍힌
영상이 좌우했는데 적기가 연기를 뿜거나 불이 붙으면
격추로 판정했었던 사실에서 오류가 있었다는 것이다.


공산측 전투기, 즉 미그 15기가 의외로 튼튼해서 미군기에
격추 판정을 받을 만큼의 심한 손상을 입고도
중국내 기지로 귀환한 것들이 많았다고 한다.

하여튼 압록강 상공의 미그 골목 상공에서 붙은 대결에서
미 공군이 대승한 것은 사실이지만 예외적 사실은 인정해야
할듯하다


미그 15기와 예브게니- 한국 전선 출동전
-------------------

극비리에 참전했던 소련 공군 두 개 비행연대의 실력만은
만만치가 않았다


왜냐하면 미 공군의 신화를 깨기 위해서 소련이 전 소련 공군에서
최고의 실력을 가진 조종사들만 엄선해서 출동 시켰기 때문이다.


더해서 소련 공군이 2차 세계 대전을 통하여 독일 공군
루프트바페를
상대로 미 공군 못지않은 실전 경험을 쌓았었고

또 이들이 조종했던
미그 15기가 세이버와 호각의 실력을
겨룰 만큼 뛰어난 성능을 가진
우수한 전투기였기 때문이다.


사실 소련 기록에는 좋은 전투기를 가져다가 졸전을 거듭했던
중국과 북한 초(初)자 조종사들의 형편없는 수준을 혹평하는
글이 있다.


항공전사 메니아들이 아래 소련 격추왕 예브게니 빼빼로야프스키
상좌의 공중전 기록을 읽다보면 거부감이 들만한 요건들이 있다.

그간 선전 된 한국 전쟁 중의 미공군의 압도적인 전과와
미그 15기의 성능이 열등하다는 사실에 우리들 뇌리에 입력되어
있기
때문이다.

[ 미그 전투기가 허접스런 전투기라는 평가는 귀순한 미그기를
분석한 뒤에 나온 소리다. 한반도 상공에서 실전을 겪은
미군 조종사들은 그런 평가를 하지 않았었다]


또 한국 전쟁 중 전과 부풀리기를 밥 먹듯 했던 공산측의
허세도
이런 느낌에 한목을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예브게니의 전투 기록은 적어도 그를 인터뷰한 미국의
항공 저널리스트 디에고 잠피니[Diego Fernando Zampini]
미 공군측 자료로서 그가 격추했다던 미 전투기 23기 들을 일일이
확인했었고 중공군의 격추기 잔해 발견등의 기록도 확인해서
서 너 기만 제외하고 그의 격추 기록이 사실에 가깝다는 것을
확인한 것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미군 공식 확인은 12기]


그의 약력부터 살펴보자
예브케니 페페리아예프 상좌는 1918년 3월 18일 년 시베리아
이루쿠츠크에서 철도 노동자의 아버지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조종사가 되고 싶어 했던 그는 1938년 제 8 비행학교를
졸업하고 극동의 한 비행 연대에 배치되었다.
그의 형도 소련 공군에서 조종사로 근무하다가 대독전에서
전사하였다.


그는 독소전이 발발하자 전선근무를 요청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전쟁 발발 직후 그의 형이 전사했던 탓에 당국은 동생인
그의 전사를
염려하여서 그의 거듭된 청원에도 불구하고
전투 임무를
용인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의 부대는 소일전이 터지자 전투에 동원되었고 예브게니는
전투 출격을 30회 해서 정찰과 호위 임무를 수행했으나
일본 전투기를 격추하지는 못했다.


종전시 1945년 8월의 예브게니
-------------------------



그 때 그의 나이가 27살이었다.
그가 전투의 피 맛을 보기 위해서 6년간을 더 기다려야했다.

전쟁후 1947년,

그는 결혼하고 편대장에서 196 비행연대[18기 구성]의
부연대장으로
특별 승진을 했다.


예브게니 페페리아예프
------------------------------------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였다.
예브게니는 196 비행 연대장으로 승진했다.
공산 측으로 봤을 때 전황은 숨 가쁘게 돌아가는 중이었다.


남한을 침공했던 김일성은 유엔군에게 되 쫓겨 정신없이
도주하고 있었다.

소련과 중국, 공산권의 두 패권 국가는 자신들의 졸개가
한반도에서 축출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스탈린과 모택동은 은밀히 이 전쟁을 참전하기로 합의하였다.
1950년 중공군의 대부대가 한반도에 참전했을 때 소련은
최신식 전투기인 미그 15기로 무장한 두개의 비행 연대를 압록강
북쪽 안동으로 파견해서 중공군의 한국전 참전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 미그기들은 곧 압록강 남쪽 일정부분의 북한 상공을
미군기들이 드나들기에 위험한 적색 지대로 만들어 버렸다.


미 공군은 미그기들이 단골로 출몰하던 이 압록강 남쪽 지역
장방형의 공역[空域]을 미그 골목[MIG ALLEY]라고 이름 지었다.


미그 골목
--------------------------


우수한 성능을 가진 미그 15기는 북한에 출격하던
유엔군의 전투기들,
미 공군의 F80이나 F84, 영연방군의
영국제 미티어 기등의 제트 전투기들에게
큰 위협이 되었다.



F 80 슈팅 스타 - 미군의 최초 실전 배치 제트 전투기
--------------------------------------------------


그러나 1950년12월, 미 공군이 급히 본토에서 F86을 가져오자
전투기 성능상의 불균형은 가까스로 해소되었다.


미 공군의 제 4비행단이 전부 F86으로 무장하고 나타나자
소련도 이에
대항하는 조직 보강을 했다.


소련은 64전투 항공단을 만들고 여기에 두 개의
비행 연대를 배속시켰다.

두 비행 연대는 소련 공군의 최 정예부대가 선발되었다.
전투 부대의 조직을 보강한 소련 공군은 최고 조종사들을 엄선해
인사 발령을 내었다.


선발된 비행연대는 196연대[예브게니 지휘]와 176연대였다.
이들 연대가 속했던 64전투 비행단은 324 비행 사단이었다.

64사단장은 독소 전쟁 중에 소련 최고의 에이스로서
62기의 독일 기를 격추시켰던 이반 코체두브 대좌였다.
그는 소련 최고의 무공 훈장을 세 번이나 받은 전쟁 영웅이었다.

한반도 출전 명령을 받은 에브게니는 먼저 스탭을
이끌고 중국 안동에 부임했다.

그의 비행연대는 1951년 1월에 만주에 전개되었다.
비행연대는 최전방이 아니라 제 2선의 비행장에 배치되어

당분간 추가 훈련과 키모프 RD 45엔진을 장비한 미그 15기의
까다로운
조작에 익숙해지는 과정을 거친 뒤에야
안동에 배치되었다.

----------------------------------------------------

미그기의 RD 45엔진은 당시 세계 최고 제트엔진 기술을 가진
영국의 롤스 로이스의 넨[NENE] 엔진을 그대로 복사 한 것이다.


본래 독일 패망후 독일에서 약탈해온
HeS-011엔진 디자인을
모방해서
신형기 엔진을 생산하고자 했지만 실패 때문에
영국제 엔진을
구입하여 모방하자는 안이 나왔고 이 계획은
스타린에게 보고되었다.


스타린은 영국에서 엔진을 구입해온다는 아이디어에
실무자들을
비웃었다.

“ 세상의 어느 멍청이가 우리에게 그런
   최고 비밀 기술을 팔겠냐?”


그러나 전후 영국에 들어선 좌파 정부[노동당 정부- 특히
친소파인
통산성 장관 스태포드 트립]는 놀랍게도 연구용으로
제트 엔진을
구입하겠다는 소련의 요청에 생산 기술의
세부 기술과 함께
롤스 로이스 엔진의 소련 판매를 허용했다.


그러나 대량의 복사판 엔진이 쏟아져 나와서 미그 15기에
장착되는
것을 본 롤스로이스사는 2억 7백만 파운드의
라이센스 비를
청구했으나 이미 볼 일 다 본 소련은
코웃음으로 대꾸 했을 따름이다


영국이 실수로 판매한 넨 엔진의 복사 엔진을 부착한
소련기들은
덩치 크고 둔한 영연방군의 미티어기
[ 호주기- 구식의 롤스 로이스 쌍발 엔진 부착]를
북어처럼 두들겨 팼다.

[물론 미그기를 격추했던 미티어기도 있었으나 미그기의
 상대가 되지않아 미그 골목 출격을 중지하고
 대지 공격 전용으로 돌려졌다.] 


미티어 기는 북한 상공에 나타난 제트 전투기중에
소련 공군이
제일 우습게 본 전투기였다.


구식 롤스 로이스 엔진 두기를 장비한 미티어기
[ 호주군이 사용해서 호주기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

전후 영국에서 집권했던 좌파 정권, 애트리 정권은
보수당 정권의 처칠이
거듭하여서 경고했음에도 순진한
유화 정책을 써서 공산권을 도와주었다.

전후 초기 좌파 정부의 무지 할 만큼의 순진함은 60년대
집권한
해롤드 윌슨의 노동당과 감히 비교를 할 수가 없었다.


소련제 넨 엔진은 급 회전시 엔진이 정지하는 문제점이
있었지만
미그 15기를 세계 정상의 전투기로 만들었다.
스타린이 말했듯이 격추된 영연방 전투기 조종사들은
애트리 수상과 그 각료들은 바보 천치라고 욕을 해도
이들은 할 말이 없을 것이다.

-------------------------------------------------

1951년 4월1일 두 연대는 드디어 실전에 투입되었다.


시작 초반은 부진했다.
여러 이유가 있었다.


소련은 자신들의 참전을 비밀로 하기위해서 공군 조종사들에게
전투상 여러 제약을 가했었다.


소련 공군기는 중국 공군기처럼 위장하고 도색하고
부대 표시도 중국 공군 것과 꼭 같게 하였다.


조종사들은 절대 유엔군이 제해권을 쥐고 있는
서해나 동해에
나가지 않도록 지시받았다.

격추된 소련 조종사가 바다에서 포로가 되면 소련의
참전 사실이 밝혀지기 때문이다

조종사들은 금지된 해상의 상공으로 나갈까봐 마음 놓고
기동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소련기의 활동에 최대의 장애를 준 것은
조종사들에게 소련어가 아닌 중국어나 한국어로 무선
교신하도록 한 것이다

이 지시는 예브게니와 다른 비행 연대장인
세르게이 비스네코프 중좌의
격한 항의와 반대를 불러냈다.


미그 15
-------------------


예브게니는 훗날 이렇게 회고했다.

‘ 사실 심리적으로 급하게 쫓기고 있는 격렬한 공중 전중에
잘 알지도 모르는 외국어로 교신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짓이었다.
작전 투입 두 어 주 뒤에 우리는 그 명령을 무시해버리기로
하였다.

별자리들은 우리의 명령 불복종에 투덜댔지만
나는 그 양반에게“장군님이 올라가셔서 그렇게 한번
싸워 보시지요!” 라고 대꾸하였다.

사령관 코제두브도 그의 부하 지휘관들을 지지하는 입장이라서
64공군의 사령관IV. 베로프 중장에게 이의 부당성을 항의하며
명령취소를 요구하였다.

격추왕 코제두브는 스타린이 자식 같이 사랑하는
전쟁 영웅이었던지라


공군 작전 사령부는 이 명령을 폐기하고 공중전시 소련어를
사용해도 좋다고 지시했다.


출격 중에 소련 조종사들의 소련어로 교신한 내용은 나중에
미 정보부대에 낱낱이 도청되어 소련 공군의 참전사실이
밝혀진 만큼
소련은 꿩처럼 머리만 감추고 몸체는 다
내놓는 격이 되었지만
조종사들의 반발로 어쩔 수가 없었다.


이 말이 안 되는 지시 변경 하나로 참전 소련 공군의 전과가
거두어지기 시작하였다.


1951년 4월 12일 176, 198 비행연대 소속 36기의 미그 15기가
미 공군 19,98,307 전술 폭격 비행단의 34기의 F84기가 18기의
F86 호위 하에 압록강 철교를 폭격하러 내습했다가 3기가
격추되고
7기가 손상을 입었다.


미그 15 기는 F86 세이버의 영격으로 한 기가 격추 되었다.
그의 첫 격추는 1951년 5월 20일 기록하였다.


F86
----------------------

첫 격추된 미군기는 F86이었다.
마지막 격추는 그 다음 해 1952년 1월 15일에 있었다.
마지막 미군기도 F86이었다.

제 2편으로 계속됩니다. cl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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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 2009.08.05  14:03

미그 앨리에서 벌어진 세계최초의 제트전투기간 공중전 이야기는 제가 몇번을 봤는데도 여전히 재미있습니다. 근데, 롤스로이스 엔진을 카피해서 미그15에 사용했다는거 지금와서 보면 참으로 우습습니다. 사진 중간에 있는것. 킹코브라인가요? 앞에 서 있는 주인공 모습을 보니 미국이 지원해준 기체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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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프독 2009.08.05  14:23

야크 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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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락산성 2009.08.05  15:00

1편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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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락산성 2009.08.05  15:00

1편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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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지방인 2009.08.06  11:29

세계 최초의 제트기 대 제트기 대결, 연합국 측 기체들과 Me-262 등 사이의 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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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지방인 2009.08.06  11:36

지상전은 1 차 대전 비슷, 미 측이 B-29 동원하면서 공중전은 2 차대전류 물량전 양상 ... 헤밍웨이 목격했던 전선, 1 차대전 오스트리아 대 이탈리아 전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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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씨13 2009.08.06  12:18

철저하게 미국 시각에서 만들어진 히스토리 채널의 Dogfight(실전최강 전투기 대전)에서도 소련공군 조종사들의 놀라운 조종실력을 보여줍니다. 비록 몇몇 부분에서 사실을 누락하기는 했지만 공중전에는 일가견이 있다고 자부하던 미국인들도 시베리아 곰들이 모는 비행기가 결코 장난감이 아니라는 것은 보여준 것이 놀랍던데... 역시 독일공군과 피의 혈전을 벌인 소련공군이 결코 우스운 상대는 아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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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ilsix3 2009.08.06  18:53

저 제트기도 독일의 영향으로 만든거죠... 대단한 독일이었는데.. 하일 히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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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니 2009.08.07  08:06

역시 훈련량이군,,, 군인은 훈련을 많이 해야 생존률이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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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대가리 2009.08.14  21:20

ㅎ~~~!!!
울프님~~~!!!
전 c-123,c-130,c-141,밖에 모름니다요~~~ㅎ
영덕 풍력발전소에 많은 전투기가 전시되어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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