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말리아 해적들에게 붙잡혀 있던 미국 컨테이너선 머스크 앨라배마호의 리처드 필립스(53) 선장이 억류 닷새만인 12일 구출된 계기로 역사적으로 가장 유명한 구출작전에 대하여 알아보려 한다.
리처드 필립스(53) 선장이 구출되기는 하였지만 소말리아 해적과 대치하고 있는 미국의 전투력을 생각하면 미국측이 얼마나 답답 하였을까?

위의 도표에서 보듯이 구명정에 탄 해적 4명과 미구축함3척, P-3 오리온 정찰기,소형 항공 모함 박서호 등이 대치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는 곧, 인질 구출 작전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인질 구출작전 `빛과 그림자' 성공사례 1976년 7월4일 이스라엘 군은 대 테러작전사(史)에 큰 족적을 남긴다. 팔레스타인 인민해방전선(PFLP) 소속 테러범들에 의해 납치돼 우간다 엔테베 국제공항에 기착한 에어프랑스 여객기에서 99분만에 100여명의 인질들을 구출해낸 전격 작전의 성공 전례다. 이스라엘 정부는 처음부터 `테러범과는 협상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천명하고 특공대를 투입했다. 이들은 먼저 공항의 전기를 끊고 어둠 속에서 납치 비행기에 진입해 인질들만 알아들을 수 있도록 히브리어로 엎드리라고 소리친 뒤 신속히 인질범 전부를 사살했다. 1977년 독일 국적 루프트한자 여객기를 무대로 한 `란주트 인질극' 역시 손꼽히는 성공 사례로 꼽힌다. 독일 정부는 승객과 승무원 등 91명의 인질을 잡고 1천5백만 달러와 동료 11명의 석방을 요구하는 팔레스타인계 테러범들에 맞서 `마법 불꽃'이라는 암호명의 군사작전을 펼쳤다. 폭탄을 이용해 비행기 동체와 날개에 구멍을 뚫어 진입로를 마련한 특공대는 섬광탄을 터트려 인질범들을 혼란에 빠지게 한 뒤 인질 전원을 무사히 구출해냈다. 1996년 아키히토 일왕의 생일축하 파티를 벌이던 페루 주재 일본 대사관을 습격해 이원영 한국대사를 비롯한 각국 외교관 등 인질 700여명을 억류한 페루 무장세력도 정부의 군사작전에 제압당한 경우. 페루 정부는 동료 400여명의 석방,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 폐지 등을 요구조건으로 내세운 인질범들과 약 4개월간 지루한 협상을 벌인 끝에 특공대를 투입키로 결정했다. 땅굴을 파고 대사관에 돌입한 특공대는 인질 1명의 희생을 남겼지만 인질범 전원을 사살했다. 실패사례 군사작전은 인질들의 대규모 희생만 초래한 채 실패로 막을 내린 경우도 적지 않다. 1985년 팔레스타인계 테러범들은 승객과 승무원 100여명을 실은 이집트 항공기를 납치한 뒤 몰타 공항에 착륙했다. 이집트는 특공대를 투입했으나 기내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폭탄의 양을 조절하는데 실패, 인질의 절반 이상이 사망했고 살아남은 인질 대부분도 부상을 당했다. 1979년 이란 과격파 학생들이 테헤란 주재 미국대사관에 난입한 후 미국인 인질 52명을 붙잡고 444일간 팔레비 국왕 신병인도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인 사건 역시 군사작전이 실패한 경우다. 미국은 이란 사막에 임시 기지를 설치할 만큼 인질구출작전에 공을 들였으나 근처를 지나던 이란 시민들에게 기지를 발각당하고 모래바람에 헬리콥터가 고장나는 등 망신만 당한 뒤 결국 사건 발생 후 444일만에 협상을 통해 사태를 해결했다. 2004년 9월1일 개학날을 맞아 체첸 무장세력이 베슬란 공립학교를 침입, 1천명이 넘는 민간인을 인질로 잡고 대치하다가 이틀만인 3일 러시아 특수부대의 작전으로 진압된 베슬란 사건은 최악의 인질극으로 통한다. 당시 인질범들은 로켓포와 기관총으로 무장하고 있었으며 러시아군은 이에 맞서 탱크와 전투 헬리콥터를 동원하는 등 8시간동안 치열한 교전을 벌인 끝에 어린이 186명을 포함한 민간인 333명과 인질범 31명이 사망한 채 종결됐다.
미국의 실패한 인질 구출작전
 1979년11월 4일 이란의 혁명정권 학생들은 미국 대사관에 있던 63명의 외교관과 3명의 미국시민들은 인질로 이란 미국 대사관 안에 가두었다. 이들이 풀려나는 데는 444일 이 걸려서 1981년 1월 20일에 석방이 되었다. 그동안 52명은 마지막까지 풀려나오지를 못했었다. 미국은 이란에서 석유를 지속적으로 공급을 받는 조건으로 이란에 군사경제지원을 해왔다. 혁명정권이 들어서면서 미국과 이란의 관계는 적대적으로 돌변했다. 소련과 미국은 이란을 놓고 서로 지배경쟁을 해 왔고, 영국도 이란을 지배하려고 역사적으로 노력을 한 각축장이 바로 이란이었다. 1980년 4월 7일 단교후 공기밥 작전이라고 불리어진 작전을 계획하는데 주축은 당시 미 최정예로 키워진 델타부대였다. 그런데 문제 발생. 다들 숟가락 하나씩 올려놓으려는 군부로 인하여 육군, 해군, 해병대에 공군까지 가세하여 지휘계통이 혼란스럽기 짝이 없었고 공기밥 작전으로 일단 사막까지 이동하여 CH-53의 보급을 수행하고 C-130 수송기로 날라오는 연료를 보급한후에 2단계로 독수리발톱을 발동하여 테헤란에 있는 인질을 구출하기로한다. C-130이 임시 기지로 도착하는것까지는 좋았으나 CH-53중 일부가 모래바람으로 길을 잃어버린데다가 모래로 인해 CH-53고장! 거기다가 이란 버스가 지나가며 임시기지를 목격하는바람에 이란인 44명을 도리어 감금하는 상황까지 간다. 결국 하는수 없이 철수하는 미군. 그러나 CH-53과 C-130이 공중충돌하여 8명이 죽고 고장난 CH-53을 멀쩡한체로 버리고 철수하였으며 기밀문서도 고스란히 두고 나온다.
결국 1981년 1월 19일 알지에 합의(Algiers Accords)를 맺어서, 그 다음날 석방이 된 것이다. 내용은 미국은 이란에 1. 내정 불간섭을 약속하고, 2. 80억불에 해당하는 이란의 재산을 동결했던 것을 풀기로 하였다.
가장 성공한 이스라엘 엔테베 구출작전(1976.7.3)
1976년 7월 3일 특공대원을 태운 허큘리스 수송기 4대가 이스라엘을 출발했다. 목적지는 무려 4천여㎞ 떨어진 우간다의 엔테베 공항. 인질구출 작전의 전설로 알려진 '엔테베 작전'이 실행되는 순간이다.
이에 앞서 파리발 텔아비브행 에어 프랑스 여객기가 중간 기착지인 아테네에서 팔레스타인 테러범에 의해 공중 납치되었다. 납치범들은 일부 승객들을 풀어주고 이스라엘인으로 보이는 100여명의 인질을 붙잡고 동료 테러리스트의 석방을 요구했다. 예행연습까지 마친 작전명은 '선더볼트'. 엔테베 공항 관제탑에는 석방할 테러리스트 수송기라고 속이고 무사히 착륙했다. 이스라엘군은 이디 아민 우간다 대통령의 전용차로 기발하게 변장을 하고 경비병 대기소로 접근해 경비병을 해치우고 공항 건물로 진입한다. 히브리어로 "엎드려"라는 고함과 동시에 총격전이 벌어지고 인질범 7명은 사살되었다. 우간다군이 반격을 시도했으나 소련이 제공한 미그기 11대까지 파괴하고 인질들은 무사히 구출된다. 작전에 소요된 시간은 53분. 테러범을 완전히 제압하기까지의 총격전은 불과 1분 45초였다. 3명의 인질과 특공대장 1명이 숨졌다.
이디아민의 전용차로 위장하여 우간다군을 속아 넘겼다.

구조되어 돌아온 인질들

엔테베 작전 개요 | 동원된 실제 전투병력 | 이스라엘 육군의 최정예 부대 제35 공수여단, 골라니 코만도, 사렛트 메트칼에서 선발된 최정예 특공대원 100여 명 | | 동원 수송수단 | 허큘리스 수송기 4대(특공대원 수송) 보잉 707 2대(지휘부) | | 전과 | 인질범 7명 전원 사살. 우간다 보안군 20여 명 사살, 우간다 공군기 다수 파괴 | | 특공대 측 손실 | 전사 1 명(현장 지휘관 요나단 네탄야후 중령) | | 인질 | 106명 중 102명 구출, 3명 사망, 1명 실종(작전 당시 병원 후송, 후에 피살됨) |
가장 실패한 러시아 베슬란 인질 구출작전(2004.9.3)
“러 인질목숨 경시 사상최악의 작전” “이런 엉터리 인질 구출작전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400명 가까운 사망자를 포함해 무려 1천여명의 사상자를 낸 러시아 남부 북오세티야에서 벌어진 러시아군의 인질극 진압작전에 대해 서방 대테러 전문가들은 작전의 무모함에 혀를 내둘렀다. 이들은 “이번 러시아군의 작전은 인질들의 생명 중시라는 인질 구출작전의 기본이 무시된 역사상 최악의 작전”이라며 “러시아 특수부대원들은 인질들을 구하는 것보다 테러범들과 싸우는 방법에 집중적으로 훈련한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현지 작전 지휘관들은 인질 구출작전이 우발적으로 시작됐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당시,4일 북오세티야 베슬란의 현장을 전격적으로 방문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도 “인질극 해결을 위해 모든 가능한 방법들을 모색했으나 무력을 사용하는 것은 계획하지 않았다”며 “특수부대 스스로 용기를 과시한 것이며 결과적으로 큰 손실을 초래했다”고 밝혔다. 우발적인 상황에서 작전이 벌어지는 바람에 극도의 혼란이 일어났고 이에 따라 인명 피해가 커졌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현지를 취재한 언론이나 대테러 전문가들은 러시아 특수부대가 사전에 인질의 피해를 최소화할 방안을 강구한 흔적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실제로 이번 진압작전의 선봉에 선 연방보안국 산하 특수부대인 알파부대는 2002년 모스크바 극장 인질극, 1995년 남러시아 부됴노프스크의 병원 인질극, 96년 다게스탄자치공 키즐리야르 인질극에서도 각각 100명이 넘는 엄청난 인명피해를 초래했던 전력이 있다.


구출작전 작전에 동원된 러시아연방보안국(FSB) 산하 대테러부대 ‘알파’와 내무부 소속 ‘오몬’ 요원들은 인질극이 벌어지고 있던 학교 주변에 장갑차를 포진시킨 뒤 작전 준비를 했다. 오전부터 시작된 반군과의 협상 직후 오후 1시쯤 사망한 인질 시신(10~20구) 인도에 합의한 직후였다.

대테러부대원들이 포함된 시신 인수팀의 차량이 학교 앞마당에 도착한 직후 세 차례에 걸친 강력한 폭발음이 들렸다. 반군들이 인질들이 갇힌 체육관 내 설치한 폭발물(TNT 10㎏에 해당)을 의도적으로 폭파시키면서 건물 벽 등이 일부 날아갔다. 폭발로 체육관은 아수라장이 됐고, 갇혀 있던 인질들은 혼비백산이 돼 모두 탈출을 시도했다. 반군들이 이들을 향해 총기를 난사했다. 바로 이순간 100여명의 특수부대원들이 인질 보호를 위해 반격에 나서면서 시나리오에 없던 진압작전이 시작됐다. 인질범들의 무차별 학살이 시작되었으며 중무장한 인질범을 제압하기위해 T-72전차와 Mi-24하인드까지 무차별 포격을 실시.



인질범들 역시 빠져나가는 인질들과 진입하는 특수부대원들에게 총을 난사하며 달아나기 시작했다. 인질범들은 5명의 사수조와 나머지로 구성된 탈출조 두 그룹으로 분리돼 저항과 탈출을 시도했다. 러시아 특수부대원들은 체육관 진입과정에서 사수조였던 인질범 5명을 사살했다. 나머지 인질범들(최소 13명)은 인질들의 옷을 빼앗아 입고 탈출, 인근 주택가에 숨어들어 러시아 군경과 총격전을 시작했다. 진압작전으로 600여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작전 종료 직후 체육관 내에는 약 100구의 시신들이 발견됐고 병원에 실려온 부상자만 520여명이 넘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최악의 인질 구출작전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자료 출처 http://news.airportal.co.kr http://news.chosun.com http://www.busan.com http://world.kbs.co.kr http://www.ecumenian.com http://www.yonhap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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