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고 수석졸업 공학도서 의대생 변신한 서울대 치의예과 박현준씨
서울대학교 치의예과 학생인 박현준 씨의 이력은 화려하다.
한성과학고를 1등으로 조기졸업하고 카이스트 전자공학과에 입학, 공학도의 길을 걷다가 카이스트 대학원에서 금융공학을 공부하다 다시 인생항로를 바꿔 의대생이 된 것.
전공을 몇 차례나 180도 바꿔가며 공부하는 것이 분명 쉬운 일은 아닐 터인데 박씨는 공부가 늘 즐거웠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기쁨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매번 도전하는 것마다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은 그만큼 남다른 의지와 노력이 있었다는 얘기. 박씨의 어린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생활, 그리고 공부에 대한 조언을 들어봤다.
호기심 많던 시골 아이 박현준씨의 이력만 놓고 보면 대개가 그렇듯 영재나 조기 교육의 수혜자일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를테면 한두 살 무렵 한글을 떼고 세 살 때 영어를 한 신동. 아니면 조기 교육을 통해 아주 어렸을 적부터 체계적인 학습을 받아온 아이를 떠올리기 십상이다.
그러나 박씨의 어린 시절은 이런 추측과는 거리가 멀다. 군인인 아빠 덕분에 춘천, 논산 등 지방을 전전하며 살았고 물장구 치고 가재 잡으며 노는 게 일과였던 평범한 '시골 아이'였다. 쌍둥이 동생과 종일 산과 들을 누비다가 해질 무렵에야 집에 돌아오는 게 보통이었다. 집에 오면 자연과학비디오를 보거나, <
무당벌레의 일생 > <
개미귀신 > 등과 같은 자연과학책을 읽으며 하루를 보내곤 했다. 공부라고 해봐야 월말고사가 있을 때 전과 한 권을 가지고 동생과 문답 형식으로 내용을 훑어보는 것이 전부. 초등시절 다닌 학원은 피아노, 태권도, 서예, 미술과 같은 예체능 학원뿐이다.
"그때 동생과 들로 산으로 돌아다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어렸을 때부터 과학과 관련된 책이나 비디오 보기를 좋아했는데 아마도 나무나 물가에서 본 곤충이며 물고기들이 호기심을 자극한 것 같아요."
덕분에 초등학교 시절 과학에 대한 재능이 돋보여 글라이더 대회, 조립 대회와 같은 과학 경진 대회에 학교를 대표해 참가하곤 했다. 어린 시절 자연을 벗 삼아 놀던 경험은 훗날 공부에도 값진 밑거름이 된다.
일찌감치 공부 방법 터득 박씨는 요즘아이들 말로 '공부의 신'이다. 노는 데만 정신을 팔던 아이가 '공신'으로 변하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 시절 자신만의 공부 노하우를 터득하고 나서부터였다.
박씨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서울로 전학을 했다. 시골과는 사뭇 다른 환경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이사를 하고 나니 주변에 놀 거리도 없고 친구들은 모두 학원에 가더군요. 저도 덩달아 학원에 다니게 됐죠."
큰 의미 없이 다니기 시작한 학원이지만 이곳에서 박씨는 공부에 대한 의욕을 키웠다. 학원의 반 편성은 학생의 실력이 아니라 선행학습의 정도가 기준이 되었다. 예체능 학원 외에는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박씨가 선행학습을 할 기회는 물론 없었다. 당연히 레벨이 낮은 반에 편성이 되었고 이것이 스스로도 부끄럽고 불만스러웠던 박씨는 선행반의 진도를 따라잡기 위해 밤 11시까지 교과서와 씨름을 했다.
억척스럽게 공부한 결과, 원하는 수준의 반에 편성이 되었을 뿐 아니라 공부에 대한 재미를 느끼고 즐길 줄 알게 되었다. "공부를 본격적으로 해보겠다고 생각한 것은 이때였어요. 내 수준에 맞는 공부 방법을 터득한 것도 이때였죠." 박씨는 지금도 어린 후배들에게 늦어도 중학교 시절에 자신만의 공부 방법을 터득해 두라고 조언한다. 자신의 경험에 비춰봤을 때 어렸을 적의 공부 방법이 어른이 돼서도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 스스로 '3step 학습법'이라고 이름 지었어요. 시험공부를 할 때 모든 과목당 3권의 자습서와 3권의 문제집을 3번씩 본다는 의미죠." 이 방식대로 하자면 단기간에는 불가능하다. 자연히 시험 공부 기간을 3주 정도 잡게 되고 그 다음엔 정해진 기간 동안 계획대로 공부를 하면 된다. 공부 기간을 너무 길게 잡아서 호흡이 끊기거나, 반대로 너무 짧게 잡아서 시간에 쫓기지 않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어떤 식으로 공부할 것인가를 미리 정해놓으면 보다 체계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박씨가 이런 공부법을 터득하기까지는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최초의 공부법은 3step이 아닌 2step 이었다. 자습서와 문제집을 2권씩 사서 2번씩 본다는 의미인데 이것으로는 내용을 완전히 숙지하기 어려웠다. 양을 조금씩 늘려가며 내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정도가 되기 위해선 3step이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이때 터득한 것이 또 있다. 집중과 효율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이는 공부의 목표를 세우는 것과도 연관이 있다. 공부하는 목적이 내신을 위한 것인지 경시대회나 올림피아드를 위한 것인지 정해 놓고 각 시험이 요구하는 수준의 내용을 공부하라는 얘기다. "내신을 위한 공부라면 너무 앞서가는 선행은 도움이 되지 않아요. 공부를 잘하는 경우일수록 어려운 문제를 푸느라 기운을 빼곤 하는데 매우 비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공부량을 잡을 때도 시간으로 정할 것이 아니라 범위를 정해 놓고 하는 것이 훨씬 집중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덧붙인다. 다만 국어 영어 수학 과학 등 단기간에 공부하기 힘든 것은 시험을 보지 않아도 매일 꾸준히 공부해야 한다. 박씨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학교에 갔다 온 직후 2시간 정도는 그날 배운 것을 다시 한번 반복해 보는 습관을 갖고 있다. 주요 과목들은 이 시간을 이용해 복습하면 시험 기간에 무리를 하지 않아도 된다.
공부 방법에 있어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공부를 잘하고 열심히 하기 위해선 선생님과의 원활한 교류가 중요하다는 것. 박씨는 "선생님을 좋아하는 것이 공부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선생님이 아플 때 꽃을 사다드리기도 하고 심지어 크리스마스나 생일을 챙기기도 했다. 수업시간에 선생님과 눈을 맞추는 것도 교류의 한 방법이다.
"선생님은 자신의 수업 내용을 학생들이 잘 이해하고 있는지 아닌지 궁금해 해요. 이는 자신과 눈을 맞춘 아이의 행동을 보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죠. 예를 들어 수업을 듣다가 이해가 되는 부분에선 고개를 끄덕이고, 잘 모를 경우 의아한 듯 고갯짓을 하게 되는데 이런 행동이 판단의 기준이 됩니다." 자연히 수업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뿐만 아니라 수업에 집중하는 효과도 크다.
다양한 분야에 관심 갖기 박씨의 초등학교 때의 꿈은 의사였다. 그리고 꿈과는 별개로 과학에 관심이 많은 아이였다. 과학과 관련된 활동에 두각을 나타내자 자연스럽게 과학고에 진학하게 되었고 의사의 꿈은 잊었다. 대신 누구나 사용하는 컴퓨터에 우리나라에서 만든 소프트웨어가 사용되지 않는 것에 분개하며 과학발전에 이바지하겠다는 당찬 꿈을 갖게 됐다. 고교 시절 생물에도 관심이 많아 유전공학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당시의 사회 분위기에 휩쓸려 카이스트 전자공학도의 길을 걷게 된다. 원하던 공부가 아니어서인지 전자공학을 하는 동안 적응이 힘들었다고 박씨는 말한다.
그래도 후회하지 않는다. 또 다른 분야에 관심을 갖게 한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바로 금융공학이다. 유독 금융 관련 공부에 매력을 느꼈던 박씨는 국내 첫 금융전문대학원인 카이스트 금융대학원에 들어가 자산가격 결정과 기업 재무를 공부했다. 우수한 인재들이 모인 이곳에서 3학기 내내 평점 4.3 만점에 4.0 이상의 성적을 낼 정도로 열심이었다. 대학원 공부를 마친 후엔 다시 의학에 눈을 돌리게 됐는데 어렸을 적 의사의 꿈을 버리지 못한 탓이다. 4개월간의 준비 끝에 결국 치의대에 입문했다.
8년간 자의반 타의반 다양한 분야를 경험한 박씨는 수시로 전공을 바꿨다기 보다 시야를 넓혔다고 생각한다. 과학, 전자공학, 금융공학, 의학 모두 특유의 매력이 있고 이를 경험하는 동안 최선을 다해 공부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친구들을 만나면 할 얘기가 많아요. 금융대학원에 다닐 때는 친구들이 어떤 종목에 투자해야 하는지 자문을 구해오기도 했죠. 계속 과학만 또는 전자공학만 공부했다면
코스피지수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치아의 구조가 어떻게 생겼는지 몰랐겠죠."
관심이 오로지 공부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오페라에 관심이 많아
대전 카이스트에 다닐 때는 주말마다 서울에 올라와 오페라 공연장을 찾곤 했다. 때론 13살 때부터 갈고 닦아온 클라리넷을 연주하기도 하고, 공부를 하다말고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다양한 영역을 공부한 박씨에겐 그만큼 세상이 넓어진 느낌이다.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둔다고 해서 각 분야를 소홀히 하는 것은 아니에요. 소홀히 한다면 그 분야에 대해 안다고 할 수도 없겠죠. 그 만큼 노력이 더 필요합니다. 다만 새로운 무언가를 스스로 알아가는 기분은 날것을 씹어 먹는 상쾌함과 다르지 않아요. 하고 싶은 공부가 있을 때 혹은 관심 있는 분야가 있을 때 과감히 도전해 보세요."
"지금껏 공부가 참 즐거웠다"는 말의 의미를 알 것 같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 주머니가 바닥을 드러낼 때쯤 그제야 공부가 조금 지겨워질까. 현재 치의대생인 박씨가 앞으로 어떤 이름으로 불리게 될지 자못 궁금해진다.
베리타스 알파=이수희 기자 www.veritas-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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