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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쟤가 때렸어요!
1학년 아이들의 하루 시작과 끝은 울음과 이르기 연속이다. 하루에 가장 많이 발생하는 민원(?)이 누가 누구를 놀렸고 때렸다는 이야기다. 오늘 아침만 해도 교실에 들어가 가방을 정리하기도 전에 “아~ 으앙!” 하는 울음소리가 들렸다. 앞니가 다 빠진 재민이가 눈물범벅이 돼 가방을 멘 채 내 자리로 왔다. 그 모습이 안쓰럽기보다 귀여워 돌아앉아 “으~흐” 하고 웃었다. 자꾸 삐져나오는 웃음을 참고 얼른 재민이 손을 잡았다.
선생밥을 10년쯤 먹고 나면 직감적으로 알게 되는 일이 여러 가지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아이들 울음소리를 듣고 ‘억울해서 우는 건지 자기를 봐달라고 과장해서 우는 건지’를 바로 느끼는 일이다. 그런데 오늘 아침 재민이 울음은 무척 억울하다는 표현이다. 우는 애 손을 꼭꼭 힘주어 잡고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러곤 까닭을 알기 위해 재민이를 울게 한 여자애를 불렀다.
그 애는 내 옆에 오자마자 변명을 하더니 다른 아이의 말과 재민이의 억울함을 듣고 곧 자기가 한 일을 인정했다. 왜 그랬냐고 물으니 “그냥”이란다. 재미 삼아 또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는 뜻일 것이다.
“재민이는 네가 한 말 때문에 무지 속상했나 본데?”
눈물을 그친 재민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여자애에겐 앞산을 쳐다보며 동무를 속상하게 한 것을 찾아보라고, 재민이에겐 억울한 마음을 가라앉혀보라고 했다. 입이 툭 불거져 나온 두 아이는 창문 밖을 쳐다보며 서 있었다. 다른 아이들 아침 자습을 봐주느라 왔다 갔다 하다 보니 두 녀석이 언제 그랬냐는 듯 바짝 붙어 서서 낄낄거리고 있다. 속상한 일이 다 풀렸냐니까 멋쩍게 웃으며 그렇단다. 교실에서의 작은 전쟁은 그렇게 끝이 났다. 나는 더 이상 아이들에게 꼬치꼬치 묻지 않았다. 답은 아이들 스스로 내렸을 테고, 어찌해야 할지도 알고 있을 테니. 아이들에겐 스스로를 맑게 비추는 천진함과 직관의 감각이 살아 있으니.
“아, 이제 개미집 다 부서지겠다.”
“맞아, 지난번에 송용준 니네도 개미굴 부셨잖아!”
근우 말에 용준이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다. 깜깜한 어둠에 놓인 개미들이 우왕좌왕하자 멀찍이 앉아 있던 세운이가 “쟤들 저기 비상구로 나가면 되는데”라며 혼잣말을 한다. 그리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씨익 웃는다.
결국 문제를 해결한 건 아이들이 그렇게 비웃던 이나였다. 이나는 아수라장에서 침착하게 그동안 모아두었던 닿소리와 홀소리를 조합하여 근원적인 질문을 한다. 아이다운 천진함과 직관으로 문제의 본질을 꿰뚫는다. ‘왜 무엇 때문에 전쟁을 하느냐’고. 그 물음에 답을 못하고 고민하던 장군은 군복을 벗어던지고 발가벗은 채 평원으로 달려간다. 그렇게 평화는 왔다. 근원적인 질문은 이렇게 엉킨 실타래처럼 꼬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보탬이 된다. 무엇 때문인지, 왜 그런지 생각하다 보면 내면에 숨은 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다툼이 있던 아이들이 동무를 속상하게 한 일을 찾아보라고 하면 자기를 정직하게 들여다보고 자기 고백을 하면서 평화를 얻는 것처럼.
우리도 글자 줍는 개미가 되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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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꽃은 꺾으면 노란색 즙이 나오는데 그게 마치 아기의 똥 색이랑 비슷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어요. 꽃잎은 네 장이고….”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여기저기서 “애기똥풀이다, 애기똥풀” 하며 ‘ㅇ’ 자 가진 아이와 ‘ㄱ’ 자 가진 아이, ‘ㅣ’ 소리를 가진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나온다. 서로 네가 위다, 내가 위다 하며 어수선하다. ‘ㄸ’을 어떻게 만드나 했더니 발 빠른 사내 녀석 둘이 여자애들 손에 들린 ‘ㄷ’을 빼앗아 두 개를 합쳐 앞으로 내밀고 자기들은 얼른 도화지 뒤로 몸을 숨긴다. 글자가 조금 복잡해서 시간이 제법 걸렸다. 그렇게 ‘비목나무’며 ‘수영’ 그리고 ‘생강나무’ 글자 만들기를 했다. 평소 글자 쓰기에 자신이 없던 녀석들도 놀이처럼 공부하니 신이 났다.
나중에는 모둠을 갈라서 누구네가 먼저 글자를 만드나 내기를 했다. 승부욕이 강한 녀석은 다른 애들에게 소리를 지르느라 쇳소리를 낸다. 처음에는 20분가량만 할 요량이었는데 경쟁이 붙은 아이들이 졸라대는 바람에 한 시간을 훌쩍 넘기며 글자 줍는 개미가 되어 신나는 국어시간을 보냈다. 흥이 가시지 않은 몇 명은 내일 또 하자고 졸라댔다. 몸을 바삐 움직이느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아이들을 보며 늘 이렇게 놀이처럼 공부를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한 권의 그림책으로 어수선한 마음밭도 일구고 국어 공부도 한 것을 일기장에 적으며 문득 교실에서 문학작품을 활용할 때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까 하는 고민을 한다. 오늘 나는 『글자 줍는 개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지나치게 도구화시킨 것은 아닌가, 작품에서 읽고 나누어야 할 것을 아이들과 함께 마음으로 교감하기보다는 학습활동의 도구로 쓰거나 기능화에 치중한 것은 아닌가 하고. 문학작품을 만날 때 오롯이 그 자체의 맛을 즐기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스스로에게 이런저런 두서없는 질문을 해본다.
최은희(아산 거산초등학교 교사, 『그림책을 읽자 아이들을 읽자』 저자) / 2008년 05월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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