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 "우리 옛 이야기의 매력"
연사 - 동화작가 서정오

1. 옛이야기 되살리기 대부분의 우리 나라 아이들은 글자를 깨치면서부터 서양 옛이야기를 듣고 읽는다. ‘백설공주’와 ‘신데렐라’로 대표되는 유럽 옛이야기는, 이야기 자체의 문학성이나 효용성과는 별개로 그 이야기가 탄생된 나라 고유의 정서를 품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이른바 세계명작동화는, 대부분 19세기말에서 20세기초에 걸쳐 구미 몇몇 나라에서 지어진 것이라 그 시대 그 나라 사람들의 보통 정서를 담고 있어서 우리 정서와 그대로 통할 수는 없다. 인물전기의 문제도 지나쳐 볼 일이 아니다. 위인이 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무언가 달라야 한다는 생각은 봉건왕조시대 지배 이념의 찌꺼기에 지나지 않으며, 어린이들이 이런 이야기를 읽고 꿈과 용기를 얻을 것이라는 기대는 지나치게 순진한 것이다.
옛이야기는 이 모든 문제를 푸는 대안이 될 수 있다. 우리 옛이야기에는 우리 겨레 보편의 정서가 들어 있고 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백성들의 건강한 가치관이 녹아 있다. 옛이야기는 편협한 읽을거리와 문화 환경 때문에 어린이들이 가질 수 있는 편견과 해독을 깨끗이 걸러 줄 것이다.
2. 옛이야기에 대한 편견 없애기
(1) 옛이야기의 비합리성과 초현실성 : 온전한 줄거리를 갖춘 옛이야기라면 대개 합리성이 없고 상상과 현실의 세계를 마음대로 넘나드는데, 이것은 약점이 아니라 장점이다.
(2) 옛이야기 속의 잔인한 장면 : 많은 사람들이 옛이야기의 어떤 장면은 매우 잔인해서 알맞게 순화해야 한다고 믿지만, 본격 옛이야기의 경우 이런 성가신 일은 전혀 불필요하다.
(3) 옛이야기의 주제나 교훈 : 이야기마다 고정된 주제가 있다고 보는 것은 어른들의 굳은 생각일 뿐이다. 어린이들은 옛이야기를 저마다 자기 경험과 의식의 범위 안에서 받아들인다.
(4) 귀로 듣는 이야기와 눈으로 읽는 이야기 : 이야기를 듣는 것은 책읽기와 다르다. 같은 이야기를 몇 번이고 되풀이 들어도 좋은 까닭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5) 그림과 상상력 : 상황을 더 잘 설명하려고 자세한 그림을 곁들이면 어린이의 상상력은 눈에 보이는 장면 속에 갇히게 된다.
3. 옛이야기의 성격 몇 가지
(1) 약한 자의 편에 선다(민중성) : 옛이야기가 가진 성격 중에서 가장 독특한 것이 약자를
편들어 강자를 적대하는 것인데, 이 성격은 매우 완고하고 철저해서 예외가 없다. 약자가 강자와 겨루되 힘이 아니라 꾀를 써서 이기는 설정은 현실 바로 비추기인 동시에 현실 거꾸로 뒤집기다. 이 소중한 생각의 틀(민중성)은 다치거나 허물어뜨리지 말아야 한다.
(2) 가르침은 재미 속에 숨어 있다(교훈성) : 옛이야기에 들어있는 교훈 또는 교육성은 듣는 이가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재미와 감동 뒤에 숨어 있다. 탐욕이나 겉치레 같은 공동체 안의 약점을 꼬집거나 무자비한 권력을 풍자할 때 이 방식은 매우 쓸모 있다.
(3) 초현실 세계는 현실 세계의 또다른 모습이다(초현실성) : 옛이야기 속의 초현실은 ‘현실 거꾸로 뒤집기’로 일상의 고달픔과 질곡을 이기거나 잠깐 피해 가고자 한다. 그러나 그것은 다시 ‘현실 바로 비추기’로 치열하게 삶 속에 다가선다. 초현실 세계는 현실 세계의 거울과 같다.
4. 옛이야기의 서술 방식
(1) 단순한 되풀이(반복) : 옛이야기의 서술에서 복잡한 변화는 전승을 어렵게 한다.
단순한 되풀이는 강한 인상과 구성진 가락을 얻어 옛이야기에 전승력의 갑옷을 입힌다.
(2) 뚜렷한 맞섬(대립) : 옛이야기의 구성요소들은 때때로 서로 상대편의 성질을 더 뚜렷 이 하려고 그에 맞서는 자신의 성질을 과장한다. 인물일 경우 더 그렇다. 옛이야기에 나오는 인물에게 개성은 없다.
(3) 점점 차오르는 틀(점층) : 하나가 있으면 둘이 있고 셋이 있다. 셋 다음에 다섯이 오고 넷이 올 수는 없다. 차오름 틀은 결국 원하는 것을 얻어야 끝난다.
(4) 흥겨운 가락(음악성) : 되풀이와 맞섬, 차오름 구조는 필연으로 구성진 가락을 만든다. 능숙한 이야기꾼은 자신의 이야기를 산문이 아니라 노래로 다시 창조한다.
(5) 언제나 주인공에게 머물러 있는 시점(시점고정) : 옛이야기를 향유하는 사람들은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언제나 주인공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만약 시점이 다른 인물로 옮아가면 그 순간 동일시는 깨어진다.
(6) 시간에 따라 펼쳐지는 사건(평면성) : 시간은 언제나 앞으로 흐른다. 사건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순리로 펼쳐지고, 이는 필연으로 단순하고 간결한 형식미를 얻는다.
(7) 세세한 설명과 묘사를 꺼림(간결성) : 옛이야기에서 앞뒤 사건의 인과관계나 합리성을 설명하는 일은 군더더기에 속한다. 심리 묘사와 장면 묘사는 더더욱 필요치 않다. 옛이야기 서술은 오로지 사건을 따라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5. 옛이야기 들려 주기 (1) 화롯가 분위기를 살려서 : 옛이야기는 아늑한 분위기에서 해야 제 맛이 난다. 이야기판은 단순한 전달의 장이 아니라 온몸으로 교감하는 마당이다.
(2) 이야기 주고 받기 : 이야기꾼은 어떤 경우에나 이야기 도중에 듣는 이의 참견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듣는 이가 너무 얌전해서 반응이 없으면 일부러 군소리를 집어넣어서라도 참견을 이끌어낸다.
(3) 이어서 들려 주기 : 긴 이야기는 몇 도막으로 자른 다음 이어서 들려 준다. 다음 이 야기가 궁금해지는 대목에서 끊으면 더 좋지만, 언제나 화소 단위로 끊어 줄 것.
(4) 읽어 주기 : 읽어 주는 재미는 들려 주는 것에 미치지 못하지만 기억에 부담을 느낄 때나 잠을 재울 때는 효과가 있다.
(5) 같은 이야기와 새로운 이야기 : 화소를 조금만 바꾸면 새로운 각편이 탄생한다. 이야 기꾼은 단순한 전달자가 아니라 창조에 참여하는 사람이다.
(6) 이야기의 이해 : 이야기 속 사물의 설명에 매달려 흐름을 놓쳐서는 안 된다. 다만 듣 는 이가 궁금해 할 때는 간단히 설명해 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