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정한 노동의 세계에서 한 사람이 위대해지는 과정 -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여섯 시간의 투쟁 후에 커다란 다랑어를 육지에 내려놓으면 당신은 정화되어 아주 나이 많은 신들의 존재 속으로 겁내지 않고 들어갈 수 있을 겁니다.
- 헤밍웨이, 「스페인에서의 다랑어 낚시」
용기, 정직, 기술은 그 규범의 중요한 규칙들이다. … 이 도덕의 관점에서 존경받기 위해선 패배를 받아들이고 훌륭한 운동선수가 되고 고통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게임의 규칙을 엄수하고 게임을 아주 노련하게 수행해야 한다. … 감정을 몇 개의 허사로 응축하거나 의도적으로 억눌러야 한다.
- 헤밍웨이
그것은 잔인하지 않다.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본 것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다시 말해 다른 어떤 것보다 많은 용기와 기술과 다시 용기를 필요로 한다.
- 헤밍웨이, 「투우에 관하여」
내가 헤밍웨이를 처음 읽은 것은 로키의 주제가를 배경음으로 깔고 여자 로키(나중엔 밀리언 달러 베이비)가 되어 바닷물에 뛰어들기 좋아하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에는 헤밍웨이가 아마 그레고리 팩처럼 생겼을 것이라고 짐작했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이두박근이 있는 클라크 게이블처럼 생겼다고 한다. 헤밍웨이가 뱉은 말 때문에 나는 마초 같은 남자들에게 육식성의 호감을 갖게 되었는데 이를테면 이런 말들…
- 영광, 명예, 용기, 신성 같은 추상적인 단어는 구체적인 마을, 이름, 도로, 번호, 강, 이름, 부대의 번호, 날짜에 비하면 추잡스러웠다.
- 용기는 가능한 결과들을 무시하는 능력이다.
- 글을 진지하게 쓸 수 있으려면 먼저 지독한 상처를 입어야 한다.
- 세상에 대해서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그렇게 해라. 중요한 것은 꾸준히 계속해서 자기 일을 완수하는 것이다.
에서 나는 뭔가 완수하고 하늘로 올라가 황소자리의 별자리가 되는 남자의 비극적 아름다움을 보았던 것인데 (비극적이지 않은 남자는 남자 같지 않고 이루어지는 사랑은 사랑도 아니라는 사춘기적 감수성으로…) 헤밍웨이의 처세 중에 제일 맘에 들었던 것 중 하나는 어느 날 누군가에게 남자답게 보이기 위해 가슴에 가짜 털을 붙이고 다니는 사람이란 비난을 듣고 뒤이어 나온 책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1940년 판에 수염을 깍지 않고 털북숭이 얼굴로 소매를 말아 올려 유달리 털이 많은 팔뚝을 드러낸 채 타자기 앞에 있는 자신의 사진을 실은 것이었다. 그가 한 아름다운 말 중엔 “절정에 이른 거짓말쟁이는 벚나무나 사과나무에 꽃이 피었을 때처럼 아름답다. 도대체 누가 이 거짓말쟁이들을 없애버릴 수가 있단 말인가?”라는 게 있는데 헤밍웨이의 인생을 생각하면 이 말이 바로 자기 자신을 변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평생 행동보다는 예술, 진실보다는 전설에 더 끌렸던 헤밍웨이는 젊어서부터 자신의 경험에다가 약간의 거짓말과 과장을 섞어서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명성과 명예를 끌어내고 만들어 낼 줄 알았고 경험을 얻고자 하는 열망(경험하고자 하는 열망이 아니라), 용기를 끌어내고자 하는 열망에 가득 차 있었다. 폭넓은 경험만이 사람을 키운다고 생각한 그는 미국, 아프리카, 쿠바, 파리, 스페인을 돌아다니면서 살았는데 뿌리 뽑힌 추방자의 모습으로 섞이지 못한 채 구슬프게 돌아다닌 게 아니라 있는 곳 어느 곳에서라도 최대한의 쾌락을 끌어내 즐겼으며 많은 것을 보고 겪고 좋은 것은 나중에 챙겨 두었다가 소설로 썼다. 그가 방에 나타나면 사람들은 그 방의 산소가 다 사라져 버리는 게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 그의 정력은 대단했고 그의 삶에 대한 욕구는 주위 사람들에게까지 흘러 흘러가 모두들 그 밤에 뜨거운 마음이 되곤 했다. 스파링 파트너가 없으면 커다란 다랑어를 파트너로 삼아 권투 연습을 하던 권투 선수였고 투우애호자 겸 낚시광, 사냥꾼이었던 그는 운동 능력과 문학적 재능을 겸비한 최초의 일류 작가란 평가를 받았고(심지어 젊어서는 유별나게 잘생긴 사람으로 통했다.) 기자로 기사를 쓰고 ‘전보’를 보내는 일을 하면서 문체를 배웠기 때문에 형용사를 완전히 뺀 문장을 즐겨 쓰며 ‘빙산의 움직임이 위엄 있어 보이는 것은 그것이 8분의 1만이 물 위로 나와 있기 때문이다.’란 문체론을 펼쳤다.
자기 자신의 전설을 정력적으로 만들어 내는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그는 실제로는 평범하게 살았던 순간에도 그 일상을 신나고 이국적인 어떤 것으로 바꾸어 말할 줄 아는 능력이 있었고 모든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호기심이 많았고 질문과 경쟁, 도전을 즐겼고 강하고 단순한 사람들을 좋아했다. 헤밍웨이 소설 속 남자들은 손재주같이 실리적인 기술을 활용하며 자기가 하는 일과 자신을 일치시키는데, 그들의 큰 덕목은 어떤 특정한 일을 잘 해내는 데 외에는 큰 관심이 없고(『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 게리 쿠퍼가 최고의 다리 폭파 전문가인 것처럼) 마치 운동선수에게 운동의 규칙이 가장 중요한 것처럼, 그들의 실용적 기술을 삶의 법칙으로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는 것이다. 야외에서 천막을 치고 말뚝을 박고 불을 피우는 방법, 낚시대를 던지는 방법, 낚시한 물고기의 배를 한칼에 자르고 내장을 꺼내는 방법이 헤밍웨이의 소설에서 그렇게나 중요하게 자주 등장한 것은 사람은 자신이 하는 말이 아니라 행동을 통해서만 세계와 조화될 수 있고 불꽃 튀는 전장에서조차도 두려움과 허무함 없이 죽음 앞의 임무를 완수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는 헤밍웨이식 답변일 것 같다.
영화 <노인과 바다(1958)>의 한 장면
뛰어난 소설가이기 이전에 뛰어난 기자였고 논픽션의 대가였던 그의 기사와 그의 인생 초기 소설 중 대단히 통찰력이 있는 장면들은 수도 없이 많은데, 책을 거꾸로 들고서 읽고 있는 무솔리니의 사진으로 파시즘의 본질을 한순간에 확 드러내 보인 것, 장미 덤불 가득한 정원에서 그리스 왕과 왕비와 소설가가 위스키를 나눠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모든 그리스인처럼 왕과 왕비도 미국으로 가길 원했다.’라는 문장(소설 『우리 시대에』 중에서)으로 전쟁의 끔찍함을 묘사한 것, ‘한 매춘부의 아주 슬픈 이야기’로 전쟁과 예술, 춤의 혼합에 대해 설명하는 것 등등은 우리 삶 역시 논픽션과 픽션 사이에 양다리를 걸치고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를테면 용산의 철거될 건물의 옥탑에 신혼방을 마련한 새댁이 1월 20일 추운 아침 손을 호호 불며 시아버지와 남편의 아침상을 차리는 한 장면(우리 권력과 자본과 개발과 결혼의 꿈에 대해 알 수 있다.) 혹은 ‘당신의 라이프 스타일 컨설팅’ 같은 새로운 간판을 단 점집을 나와 취업 성형을 위해 성형외과 문을 두드리기 전 여자가 거울 앞에서 「캘리포니아 드리밍」을 들으며 머리칼을 만지는 장면(우리는 불안과 취업의 절박함을 알 수 있다.) 혹은 총알과 최신식 무기가 쏟아지는 레바논의 뒷골목에서 <디어 헌터>의 로버트 드니로 같이 러시안 룰렛 게임을 즐기는 아이들 모습 뉴스를 들은 사람이 평화 유지군으로 상처받은 로봇의 이야길 담은 만화 『플루토』에 빠지는 장면(우리는 우리 몸이 슬픔과 무기력에 서서히 감염되고 있지만 동시에 강한 힘과 희망을 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혹은 용역업체에 갓 취업한 젊은이가 철거할 건물의 화염에 쌓인 망루의 아비규환을 올려다보는 장면(사라진 청춘의 꿈) 혹은 한 잔 하면서 그 잔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한 남자의 등판(고단함과 욕망의 저울)에서 우리는 이런 이야기들을 한도 끝도 없이 만들어낼 수 있는 세상에 있다. 이런 이야기들의 진실과 힘은 ‘이 모든 이야기가 꾸며낸 것이라면’이라는 각주를 마지막 문장에 조그맣게 달아보면 알 수 있다(우리는 모두 이미 꾸며낸 것이 아니란 걸 알고 있으니까).
자신이 쓰는 소설 속의 인생을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언제든지 살 준비가 되어있던 그는 ‘아빠, 군인, 권투선수, 투우사, 작가, 미식가, 용맹한 사람, 유미주의자, 대단한 사내, 작가, 연인, 운동가, 전사’이자 이 모든 것의 총합인 어니스트 헤밍웨이로 매일 매일 살았던 것인데 나중엔 매일 매일 바로 그 어니스트 헤밍웨이로 사는 게 너무나 힘들어져 버렸다. 바로 그런 그의 인생 후반기에 쓴 작품이 바로 『노인과 바다』이다. 『노인과 바다』에서도 그가 사랑했던 삶의 자세랄까 믿음이랄까 그런 것이 여전히 등장하는데 이를테면 ‘인간은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 ‘연민은 오직 그것을 요구하지 않는 사람들만 얻을 수 있다.’ 같은 것들이다.
헤밍웨이는 1938년 쿠바에서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노인 산티아고의 모델인 그레고리오 푸엔테스를 자신의 배의 요리사 겸 선장으로 고용했다.
『노인과 바다』의 산티아고 할아버지는 작은 조각배를 한 척 가지고 멕시코 만류를 타고 혼자서 고기잡이를 한다. 그는 84일 동안이나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는데 노인은 그것 때문에 마을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진 않았다. 그와 마주친 나이 든 어부들은 슬프지만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그날의 조류나 태풍, 날씨에 대해서만 대화를 나눈다. 노인 역시 부끄럽긴 하지만 그것 때문에 어부로서의 자부심에 상처를 입지는 않았다. 그냥 자기 자신이 좀 겸손해졌단 느낌을 갖는다. 노인은 양키스 디마지오의 열렬한 팬이라 디마지오를 데리고 고기잡이에 가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노인에겐 제자가 하나 있는데 그 소년은 “솜씨가 좋은 어부도 있고 훌륭한 어부도 더러 있지만 할아버지가 세계 제일이에요.”라고 늘 말한다.
85일째 되는 날 노인은 조각배를 타고 자기 힘의 3분의 1을 조류에 떠맡기고 다시 바다로 나간다. 먼 바다로 나가 어두운 해류에 낚시줄을 똑바로 드리운 노인은 ‘나는 틀림없지, 다만 운이 내게 없단 것뿐이지. 아무튼 매일 매일 새 날 아닌가? 재수가 있다는 게 좋기는 하지만 나로서는 정확하게 하는 거다. 그래서 운이 돌아와 주면 나는 준비를 다하고 기다리고 있는 셈이니까… 지금은 꼭 한 가지 일만을 생각할 때야. 그것을 위해서 내가 한 평생 살아오지 않았는가?’라고 혼잣말을 한다.
영화 <노인과 바다(1958)>의 한 장면
『노인과 바다』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 중 하나는 노인이 청새치를 잡던 어느 날을 회고하는 부분이다.
노인은 언젠가 한 쌍의 청새치 중에서 한 마리를 낚았던 일을 기억했다. 먹이를 발견하면 항상 수컷이 암컷에게 그 먹이를 먹게 했다. 그때 낚시에 걸려든 것이 암컷이었는데 그놈은 사방으로 날뛰면서 공포에 쌓여 필사적으로 투쟁을 하다가 기진맥진해졌다. 그 동안에도 수컷은 계속 암컷 옆에 붙어서 낚시줄을 넘어 다니기도 하고 암컷의 주위를 맴돌았다. 그놈이 너무 가까이 따라다니기 때문에 줄을 끊어버리지나 않을까 노인은 염려가 되기도 했다. 아무튼 그놈의 꼬리는 큰 낫처럼 날카롭고 모양도 크기도 큰 낫과 비슷했다. 노인은 갈고리대로 암컷을 끌어당겨서 몽둥이로 후려쳤다. (…) 이윽고 소년이 도와서 그놈을 배안으로 끌어올렸다. 그때까지도 수컷은 한시도 뱃전에서 떠나지 않았다. 노인이 낚시줄을 치우고 작살을 준비하는 동안에도 수컷은 자기의 짝이 어디 있는가를 알려고 뱃전 옆에서 공중으로 뛰어올라 암컷의 모습을 확인하려는 듯한 시늉을 하고는 다음 순간 물속 깊이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날개처럼 생긴 그놈의 가슴지느러미 줄무늬가 넓게 활짝 펴졌던 모습이 노인의 눈에도 아직도 선했다. 아름다운 놈이었지. 끝까지 도망가려고 하지 않았지. 하고 노인은 그때의 추억을 되새겼다. 내가 당한 일 중에서도 제일 슬픈 사건이었어, 하고 노인은 생각했다.
그리고 드디어 물고기가 걸렸을 때 노인과 물고기의 관계는 이 혼잣말로 정리된다.
나는 너를 좋아하고 더더구나 존경한다. 하지만 오늘은 기어코 끝장내고 말 테다.
자신의 배보다 2피트가 더 큰, 야구방망이만 한 주둥이와 보랏빛 가슴지느러미를 가진 물고기의 한 차례 도약을 본 노인은 물고기도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봐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그때 노인이 보여주고 싶어 했던 것은 이미 쥐가 나 쓰지 못하게 된 왼손이었다. 『노인과 바다』를 주도하는 장면은 노인이 청새치와 밧줄을 사이에 두고 공포의 곡예를 벌일 때 ‘너처럼 멋진 놈은 처음이구나, 너처럼 고결한 놈은 처음이구나.’ 물고기에 감탄하면서 그의 오른손과 왼손과 오른발 왼발을 쓰는, 즉 그가 유능한 숙련 노동자로 몸을 쓰는 장면들이다. 그런 장면의 아름다움은 노인의 혼잣말ㅡ‘인간은 패배하도록 만들어진 것은 아니야!’라든가 바다에선 어떤 인간도 외롭지 않다고 되뇌는 장면ㅡ을 불필요하고 썰렁하고 싱겁게 만들 정도로 강하다.
이 일은 노인의 삶 전체로 보면 며칠 동안의 일에 불과하지만, 이런 체험들이 흘러 흘러 삶이 되고 한 사람이 된다는 것을 말해준다는 점에서 따뜻하다. 아마 이런 부류의 노인들은 살아가다가 어느 날 하루 자기의 지난날 발걸음을 돌아보기도 하겠지만 그것은 돌아보지 않는 것과 별 차이가 없을 것이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Ernest Miller Hemingway 1899~1961)
결론적으로 『노인과 바다』는 이국의 바다 예찬에 대한 글이 아니고 신비롭고 난폭한 모험에 관한 글도 아니고 노동에 관한 글이다. 이 글은 직업윤리에 관한 글이고 게임의 법칙(게임의 규칙)에 관한 글이고, 일하는 공간에서의 정직함이나 고독에 대한 글이며, 불안해하지 않고 홀로 존재하는 방법에 대한 글이고, 그리고 노동의 동작들과 그 동작들이 주는 긴장감, 거기서 생기는 위엄이나 우아함에 관한 글이며, 아주 오래 한 작업을 계속한 다음에야 얻을 수 있는 개인주의의 승리에 관한 글이다. 흰 수염 달린 현인들의 이야기에 언제나 귀를 기울이는 아름다운 전통을 가진 우리는 산티아고 할아버지의 이야기에도 자연스레 귀를 기울이는데 노인의 이야기는 새가 날아오르는 동안 오히려 시선을 낮추는 어떤 사람의 모습을 생각나게 한다. 그 사람은 새의 날아간 쪽, 새의 비상에 관심이 없듯이 인생의 도약에는 관심이 없다. 그저 새가 날아왔던 이유, 물고기의 흔적, 노동의 이유가 중요할 뿐이다.
일자리와 정직한 노동이 가장 큰 관심거리인데도 우리의 노동이란 게 이상하게 미숙하고 불안정하게 느껴지는 오늘날의 세계에서 『노인과 바다』는 다른 무엇보다도 한 사람이 자기 손과 등과 어깨와 밧줄과 바늘, 작살에 속하는 낮은 노동의 세계에서 위대해지는 과정을 그린 글로 읽힌다. 『노인과 바다』가 인생과 세계의 어떤 전환점에서 우리의 마음을 움직인다면 아마 이런 날들일 것 같다. 우리가 일하고 싶을 때, 자신의 노동과 완벽하게 밀착된 관계를 맺고 싶을 때, 대체 가능한 부품이 아니라 시적으로 일하고 싶을 때, 대단한 성취와 존경은 아니더라도 존중받는 일을 하고 맥주 한잔 놓고 지친 몸으로라도 웃고 싶을 때, 내 건강한 노동으로 내 정당한 돈을 벌고 싶을 때, 변명이나 이력서 말고 행동 안에서 자신이 되기를 바랄 때, 위로받고 연민의 대상이 되느니 움직이고 싶을 때, 자기 자존심은 자기가 챙기고 싶을 때, 부활하고 싶을 때, 그렇게 살면서 나이 들어가고 싶을 때, 바다가 바닷가에게 복종하듯 노동이 우리에게 (혹은 우리가 노동에게) 복종하길 원할 때, 바다와 파도가 서로 애무하듯 우리도 우리 일과 온몸으로 달래고 으르렁거리며 애무하고 싶을 때.
하지만 『노인과 바다』에서 진짜 슬픈 장면은 따로 있다. 소설의 맨 마지막에서 노인이 끌고 온 청새치의 거대한 뼈를 본 관광객 부인은 저 뼈가 무엇이냐고 호텔 종업원에게 묻는데 그 종업원은 “티부론이죠, 상어의 일종입니다.”라고 사투리 섞인 영어로 대답한다. 그의 노동은 과연 인정받은 것일까? 앞으로 인정받을 날이 또 올까? 나는 자신 없다.
쿠바의 고래잡이 노인과 일하던 횟집, 중국 식당 같은 생존과 노동의 공간을 잃을 용산의 철거민들의 이야기는 서인도제도 세인트루시아 시인, 1992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바마 당선 축시를 쓰기도 한) 데릭 월컷의 시 때문에 내 안에서 복잡하게 서로 엉켜든다.
(…) 우리 섬들에 대한 내 사랑이 짐이 되어야 한다면 내 영혼은 부패로부터 날개를 달라 그러나 저들은 이미 내 영혼을 독살하기 시작했다 저들의 거대한 집과 거대한 자동차, 대단한 카니발 멜로디로 막일꾼과 검둥이, 시리아와 프랑스계 이민자들로 그래서 나는 내 영혼을 그들의 손에, 그들의 카니발에 맡겼다 바다에서 멱을 감는 내가, 이미 길 저편으로 떠나버린 내가 모노스에서 나소까지 나는 이 섬들을 잘 알고 있다 바닷물처럼 푸른 눈을 가진 붉은 머리 일급 선원을 그들은 샤빈이라 불렀다 붉은 검둥이를 일컫는 방언으로 샤빈이라고 그리고 나 샤빈은 보았다 제국의 이 빈민가가 낙원이었던 시절을 나는 그저 바다를 사랑하는 붉은 검둥이 나는 자랑스러운 식민 교육의 수혜자 내 안에 네델란드인이, 검둥이가, 그리고 영국인이 있다
그리고 나는 아무도 아니거나, 한 나라이다
‘나는 아무도 아니거나 한 나라이다.’ 이 문장이 바로 앞으로 우리 시대를 관통하는 문장이 될 것이다. 나는 아무도 아니거나 한 나라이거나 한 시대다.
헤밍웨이는 어느 날 그의 친구인 화가 루이스 킨타니야가 스페인에서의 폭동을 사주한 혐의로 구속되자 그의 투옥을 청원하고 작품 전시회를 기획하면서 카탈로그 서문을 쓴다. 그는 행동하는 예술가를 이런 사람들과 비교했다.
총파업으로 굶어본 적이 없고 손을 들고 걸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 곤봉으로 머리가 깨지거나 벽돌을 던져 본 적이 없는 사람들 쇠지레에 맞아 부서진 비조합원의 팔뚝이나 공기 호스로 압축공기가 가득 채워진 선동가를 본 적이 없는 사람들 대도시에서 밤에 한 짐의 무기를 옮겨 본적이 없는 사람들 (…) 권총을 물통에 던져 버리고 군인들이 계단을 올라올 때 지붕에 서서는 톰슨제 권총의 백스핏 때문에 손가락과 엄지손가락 사이에 묻은 검정을 지우기 위해 손에 오줌을 누려고 애써 본적이 없는 사람들
- 루이스 킨타니야 전시회 카탈로그 중에서
이 카탈로그의 몇 문장은 겨울 공기 속에서 더욱 선명한 우리 도시의 스카이라인처럼 너무나 명백하게 무엇인가를 떠올리게 하는데 바로 그 스카이라인 앞에서 우리는 원망과 섭섭함으로 가득한 누군가의 법정 최후 진술문를 읽고 있는 것만 같다. 그러나 ‘나는 아무도 아니거나 한 나라이다’는 슬픔에 대한 각주만은 아닐 것이다. 추억과 회한의 볼레로만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나는 헤밍웨이가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쓴 세기의 칭송,
이런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는 여자 무엇이 그녀를 평화롭게 만들었을까?
이 문장을 오늘은 겨울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며 읽겠다.
책 좋아하는 사람이랑 수다떨기, 책에 나오는 남자주인공 사랑하기, 책에 나오는 여자주인공 따라하기, 책에 나오는 음료와 음식 먹어보기, 책에 나오는 음악 찾아듣기, 책이 알려주는 장소에 가보기, 읽었으면 행동하기 등 자칭 “책 행동학”(?)의 창시자이고 싶어한다.
“마치 사랑이 그렇게 하듯 인생의 우여곡절들을 무의미하게 만들고 덧없음이 착각인 것처럼 만들어주면서 내 속을 귀중한 실체로 채워주었다.” 프로스트가 『스완네 집 쪽으로』에서 말했던 이 문장의 주어는 사랑이 아니라면 책과 여행뿐이다. 신년엔 달빛 크로와상같이 부풀어오른 아름다운 다리를 보러가고 싶다. 신년엔 “자신을 돌보지 않는 아름다운 소녀가 바람속에 서있는 것 같은” 그런 도시들을 보고 싶다. 나 자신, 자신을 돌보지 않는 아름다운 소녀가 되어서 돌아오고 싶다.
대화를 부드럽게 굴리는 한마디 유머 ------------------------------------ 유머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좁힐 뿐만 아니라 대화의 분위기를 밝게 하고, 마음의 여유를 갖게 한다. 또한 협상에서 팽팽하게 줄다리기를 할 때, 유머는 좋은 해결 방법 중 하나가 된다. 유머는 속마음을 털어놓게 하고, 사고를 유연하게 만들어 준다. 아무리 힘들고 절망적인 상황이라도 유머가 있으면 웃음을 되찾게 되고, 그 웃음은 여유와 희망을 안겨 준다.
“여보세요. 목욕탕 수도관이 터져서 집안이 물난리거든요. 빨리 좀 와서 고쳐 주세요.”
“지금 당장은 못 가는데요. 순서가 있어서요. 좀 기다리셔야 하겠는데요.”
“기다리란 말이죠? 아무튼 최대한 빨리 와 주세요. 그 동안 애들한테 수영이나 가르치고 있죠, 뭐.”
유머는 모든 상황이 매끄럽게 돌아가도록 하는 윤활유와 같다. 재치 있는 말 한 마디가 어색하고 딱딱한 상황을 말랑말랑하게 바꾸기도 한다. 유머를 잘하는 사람은 어디서든 환영받는다.
반면 늘 듣기만 하는 사람은 ‘나도 남들을 멋지게 웃기고 싶다’라는 욕구를 갖게 된다. 좌중을 웃기는 사람이 늘 인기를 독차지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유머 감각이 부족하다고 생각되더라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유머는 여유를 가지려는 마음가짐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상황을 긍정적이고 낙관적으로 보면서, 사물을 남다르게 바라보는 관찰력을 조금만 키우면 된다.
■ 비유하면 같은 것도 재미있다
한 나그네가 하룻밤을 묵기 위해 싸구려 객줏집에 들어갔다. 그런데 방에 들어가 보니 빈대가 한 마리 있었다. “아이구, 여기 빈대가 있는 걸.”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이 빈대는 죽은 것입니다.” 주위에 다른 객줏집이 없던 터라 그 나그네는 할 수 없이 그 방에 묵기로 했다. 이튿날 아침 주인이 와서 물었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나리. 빈대는 확실히 죽은 것이었습죠?” “음, 확실히 죽은 것이더군. 하지만 문상객이 굉장히 많더군.”
빈대가 많다는 것을 죽은 빈대의 문상객이라고 바꾸어 표현한 것이 이 유머의 포인트다. 이처럼 유머는 사실을 비유하거나 다른 시각으로 볼 때 생겨난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기만 한다면 세상에 웃음이 사라지고 말 것이다.
독일의 철혈 재상이었던 비스마르크는 어느 날 대심원장을 사냥에 초청했다. 두 사람이 사냥터에 닿자, 바로 눈앞에 토끼 한 마리가 나타났다. “오! 저 토끼는 사형 선고를 받았어요”라며 대심원장은 자신만만하게 말하고 나서 총을 들고 겨냥했다. 하지만 목표가 빗나가 토끼는 깡충깡충 도망쳐 갔다. 비스마르크는 껄껄 웃으면서 대심원장에게 말했다. “보아하니 사형 선고를 받은 자는 당신의 판결에 동의하지 않은 모양이군요. 저 토끼는 그래서 대심원에 상고하기 위해 라이프치히에 갈 겁니다.” 사냥감에 불과한 토끼를 의인화함으로써 고급스런 유머가 되었다.
■ 고정관념을 깨고 뒤집어라
독일의 낭만주의 시인 호프만은 어느 날 돈 많은 상인의 집에 초대받았다. 식사 후 주인은 여러 가지 보물을 보여주고는, 하인들이 많다는 자랑도 늘어놓았다. “한 사람에 세 명의 하인이 딸려 있습니다.” 호프만은 이 잘난 체하는 주인에게 구역질이 났다. “그건 너무 적군요. 나에게는 내가 목욕을 할 때 시중 드는 하인만도 네 명이나 된답니다. 한 사람은 목욕을 끝냈을 때 타월을 준비하고, 둘째 하인은 물의 온도를 조사합니다. 셋째 하인은 수도꼭지가 상하지 않았는가를 조사합니다.” “그러면 넷째 하인은 무엇을 합니까?” 호프만은 빙그레 웃으면서 대답했다. “네 번째 하인 말입니까? 그 넷째 하인이 나 대신에 목욕탕에 들어갑니다.” 하인이 주인을 대신해서 목욕탕에 들어간다는 발상이 주효했다.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을 갖고 그것을 남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면 유머의 소재는 많다. 상상력을 총동원해 이리저리 비틀고 부풀리기도 하면서 폭넓게 사고하는 것이다. 다소 엉뚱하더라도 부끄러워하지 말고 생각을 계속 이어가라. 예전에는 미처 볼 수 없었던 사물의 다양한 측면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할 것이다. 남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허를 찌르는 것, 여기에서 새로운 유머는 태어난다. 때로는 뜻밖의 대답이 유머가 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이 신문을 손에 쥔 채 통곡하고 있었다. 그 신문에는 백만장자 로스 차일드가 죽었다는 기사가 씌어 있었다. “아, 당대의 부호 마침내 돌아가다. 아, 거부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이것을 옆에서 보고 있던 사람이 위로하며 말했다. “정말 그렇긴 하지만 당신은 로스 차일드의 친척도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니지 않소?” 그러자 울고 있던 사람이 대답했다. “그것이 슬프단 말입니다.”
■ 논쟁할 때도 유머로 응수하라
영국에 곤란한 질문으로 남을 골탕 먹이기 좋아하는 관리가 있었다. 유명한 소설가이자 목사인 스위프트를 만난 자리에서도 그의 악취미는 어김없이 발동했다. 관리가 거드름을 피우며 스위프트에게 물었다. “선생, 악마와 목사 사이에 소송이 일어난다면 어느 쪽이 이기겠습니까?” “당연히 악마가 이기지 않겠소.” “참으로 뜻밖의 대답이군요. 그 이유가 뭔가요?” 스위프트는 여유 있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거야, 관청의 관리들이 모두 악마 편이기 때문이지요.”
이 말을 들은 관리는 한 마디 대꾸도 하지 못하고 얼굴을 붉히며 그 자리를 떠났다. 스위프트가 성급한 사람이었다면 관리의 말을 듣자마자 버럭 화를 내며, 어떤 의도로 그런 말을 하느냐고 따져 물었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관리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기는커녕 오히려 그가 의도한 대로 경우 없는 사람 취급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만 분노를 다스리고 감정을 조절하여 상대방의 공격에 재치 있게 응수할 수 있다. 여유를 가질 때 이 모든 감정을 초월할 수 있으며,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찡그리고 자책하고 화를 낸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 오히려 상황만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때로는 유머가 위기를 넘기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유명한 사회자 래리 킹이 젊었을 때의 일이다. 새해 첫날 라디오 진행을 맡고 있던 래리 킹은 마이크 앞에 앉아 있다가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멘트 대신 코고는 소리가 전국에 생방송되었다. 그런데 방송국 벽이 유리로 되어 있어서, 그가 쓰러져 있는 것이 사람들 눈에 띄었다. 무슨 사고가 일어난 줄 알고 구조대가 몰려 왔다. 얼마 후 래리 킹은 사장실로 불려가 해고 통보를 받았다. 하지만 사장은 그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고 싶었다. “나는 자네의 재능을 높이 사고 싶네. 내가 자네를 해고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한 가지만 말해 볼 수 있겠나?” “제가 어제 왜 그랬는지 아십니까?” “아니, 모르겠네.” “마이애미 소방대와 구조대가 긴급 사태에 얼마나 빨리 출동하는지 시험해 본 겁니다.” 사장은 이 말을 듣고 기분 좋게 웃더니 해고를 취소했다.
■ 대화 속에 자연스럽게 유머를 구사하라
웃음은 자연스러운 가운데 나오는 것이지, 억지로 웃길 수 있는 게 아니다. 대화의 주제와 어울리는 유머를 한다면 분위기를 돋굴 수 있게 되지만, 동문서답식의 엉뚱한 유머를 구사하면 기대했던 즐거운 웃음보다는 실소를 자아내거나 분위기를 썰렁하게 만든다.
유명한 코미디언인 조지 번즈는 대화의 흐름을 타는 유머를 제대로 구사하는 사람이었다. 한번은 파티에서 건강 관리에 대해 얘기를 하고 있는데 누군가 곧 100살이 되는 조지에게, 요즘 의사들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하루에 시가를 열 대 피우고, 매일 점심 먹을 때마다 마티니 두 잔, 저녁에 또 두 잔을 마시죠. 그리고 젊었을 때보다 더 자주 여자들과 어울립니다. 그럼 사람들은 의사가 그 점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봅니다.” 그리고 좌중을 한 번 둘러보고는 태연하게 말했다. “그런데 내 주치의는 10년 전에 죽었어요.” 그러자 건강 관리 때문에 심각해져 있던 사람들의 얼굴이 활짝 피면서 폭소가 터졌다. 이 유머의 포인트는 상황을 제대로 살린 데 있다.
만일 그가 “여러분, 제가 들은 재미있는 얘기 하나 해드릴까요”라고 했다면 그것은 너무 의도적이고, 대화의 흐름을 방해했기 때문에 재미없었을 것이다.
이처럼 유머는 대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오게 해야 한다. 전문적인 코미디언들은 타이밍이 모든 것을 결정하며, 좋지 않은 타이밍에 개그를 하면 모든 것이 엉망이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아무리 재미있는 얘기를 들었더라도, 그것만을 일부러 말하기 위해 대화의 맥을 끊어서는 안 된다. 미리 준비한 유머가 있더라도 적절한 타이밍을 놓쳤다든지 웃을 만한 분위기가 아니라면 과감하게 포기하는 것이 좋다.
■ 유머도 준비하는 사람이 더 잘 한다
웃겨야 하는 직업을 가진 개그맨들은 유머 소재를 찾기 위해 많은 정보를 수집한다. 일상 생활에서 개그맨 수준이 될 필요는 없지만, 정보 수집은 필요하다. 새로운 이야기를 습득하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가장 쉬운 것은 정보 매체를 이용하는 것인데, 신문에 있는 ‘유머란’을 활용하면 손쉽게 소재를 얻을 수 있다. 또한 ‘시사 만평’이나 만화를 보고 재미있는 대목을 살짝 기억해 두었다가 적절히 활용해 본다. 이런 모방에서부터 새로운 이야기가 탄생하는 것이다. 신문뿐 아니라, 이야기를 모아 놓은 책이나 인터넷 사이트를 이용하면 더욱 다양한 유머를 만날 수 있다. TV의 토크쇼를 시청하거나 가족들과 유머를 교환해도 도움이 된다.
이렇게 유머를 수집하다 보면 어느덧 일상 생활에 유머가 살아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일상 생활에서 일어나는 일을 무심히 지나치지만 않는다면 충분히 재미있는 소재를 발견할 수 있다. 가족들과의 대화에서나 출근길에서 생기는 에피소드 등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재미있는 이야기 소재는 우리 주변에 널려 있다. 단지 그것을 얼마나 잘 찾아내느냐에 달린 것이다.
“나는 원래 유머 감각이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유머 감각은 타고나는 것이라기보다는 마음가짐이다.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침착하게 대처하는 여유 있는 마음에 유머가 실려 나오는 것이다.
또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재미있는 얘기를 알고 있거나 상황에 맞는 좋은 유머가 생각나도, 얘기를 꺼내는 것을 주저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내가 이 얘기를 했다가 아무도 웃지 않는다면’이라는 가정에 사로잡힐 필요가 없다. 솔직히 말해서 썰렁한 분위기를 만든 경험은 유머를 잘 못하는 사람보다 잘하는 사람이 훨씬 많을 것이다. 유머리스트는 그 썰렁한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잘 관찰하고 자신의 유머 감각을 새롭게 업그레이드해 왔던 것이다.
유머는 여유를 만들고, 여유는 다시 유머를 생산한다. 닭과 달걀의 관계처럼 유머와 여유는 서로 꼬리를 물고 연결되어 있다. 그 선순환의 고리 안에 그저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 그 순환 속에 빠져들면 쉽게 헤어나기 어렵다.
오바마의 미국이 시작됐습니다. 2009년 1월 20일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함으로써 미국 아니 전세계에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오바마의 정책도 정책이지만 다른 면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이 있습니다. 백악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백악관은 그 주인에 따라 내부 공간이나 시설에 변화를 겪어 왔습니다. 오바마 대통령도 후보 시절부터 실내 볼링장을 없애고 그 자리에 농구 코트를 만들겠다고 말했었죠. 이러한 내부 시설의 변화는 대통령, 퍼스트 레이디의 취미나 개인적인 관심사를 엿볼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꽤나 흥미로운 부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다사다난했던 시설은 수영장입니다. 백악관에 수영장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 시절입니다. 그의 소아마비를 치료하기 위한 목적이었죠.
존 F 케네디 대통령도 수영장을 좋아했습니다. 케네디는 수영장에 벽화를 그릴만큼 수영장에 애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동생이자 법무장관이었던 로버트 케네디와 함께 수영을 즐기며 국정에 대해 논하는 것을 즐겼다고 합니다.
하지만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반대였습니다. 언론을 혐오하던 닉슨은 백악관 로비에 위치한 기자실이 못 마땅했습니다. 기자들을 보기도 싫었던 것입니다. 결국 그는 백악관내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수영장을 기자실로 개조하고 기자들을 내쫓게 됩니다. 닉슨의 기자 혐오가 애꿎은 수영장만 사라지게 만든 것입니다.
덕분에 닉슨 다음의 대통령인 포드도 피해를 입었습니다. 포드는 수영을 아주 좋아했지만 백악관 리모델링 예산은 4년에 한 번씩 배정되기 때문에 임기가 지나가기 전에 수영을 하기 위해서는 개인 재산을 들여 야외 수영장을 지어야 했습니다.
오바마가 농구 코트를 짓는 것은 그가 농구광인 이유이기도 하지만 그가 ‘농구를 하면 이긴다’는 징크스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 징크스 때문에 대선이 열리는 날 아침에도 농구를 했다고 합니다. 미국 정치가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는 것은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 거리가 꾸준히 쏟아지기 때문입니다. 딱딱한 얘기로만 가득 찬 한국의 정치 이야기가 조금은 아쉬운 느낌이 듭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어떤 취미가 있어서 청와대를 어떻게 바꿨을까요? *한근태*
대한 날 아침, 눈이 내렸다. 갈증에 잠을 깨어 시원하게 냉수 한 잔 마시고 밖을 나가보니 한 점 한 점 흰 점들이 사람들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기온이 그다지 낮지 않으니 꽁꽁 얼지는 않겠지.
작년에는 하도 욕을 많이 먹어서 정말 오래 살게 생겼다. 여러 사람이 일을 하다 보면 별 수 없이 이런저런 욕을 먹게 되지만 분명히 내 일신의 영화를 위해서 한 일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를 매도하는 것은 참을 수가 없다. 낮에 잠깐 TV에서 본 유명한 외국 패션모델이 모델지망생에게 이런 말을 했다. "당신이 슈퍼모델이 되면 수천만의 사람들이 험담을 합니다. 이런 작은 일에서도 당신을 콘트롤 할 수 없으면 어떻게 세상을 헤쳐나가겠습니까?" 맞는 말이다. 그저 잠자코 욕을 먹고 있어도 된다. 하지만...입장을 바꿔 놓고 반대편에 서보라. 그대들은 참을 수 있겠는가? 자신이 한 일을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보라. 모든 일은 상대편의 입장에 서보면 진실이 보인다.
난 유명인도 아닌데 욕을 많이 해줘서 고맙다. 애정이 없으면 욕도 나오지 않는 것이지만... 그 작은개런티도 쪼개어 나눠준 내게 화살을 돌리는 짓은 이제 그만 해주었으면 좋겠다. 사실을 왜곡하며 진실을 욕되게 하는 사람들은 이제 없어질 때도 되지 않았나?
남을 욕 할 시간이 있다면 그대들의 업을 위해 더 처절히 투신하라. 그대들의 욕은 나의 정신을 절대로 좀 먹지 못한다. 잠시 화나게 할 수는 있어도 그대들이 의도하는 뜻을 이룰 수 없다는 말이다. 그래도 정 할 이야기가 남았다면 정정당당하게 앞에 나서서 이야기하라. 뒤에서 하는 이야기도 천리를 돌아 상대의 귀에 들어가게 되고 그대의 입을 떠난 악한 말은 다시 돌고 돌아 그대의 심장을 향해 치명적 독소를 뿜을 것이다.
남의 험담을 하면서 세상이 변하는 것을 기다리는 것보다 내가 세상을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는 것이 그대들의 미래를 위해 훨씬 유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