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교육의 의의와 원리
2007년 5월 23일 / 직위:교사 /성명:최복순(진천여자중학교)
1장. 독서의 필요성과 불필요성, 독서의 긍정성과 부정성
지식인은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주된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지식인이란 결국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이다. 물론 진정한 지식인은 책을 제대로 읽고 제대로 생각하고 실천하는 사람이겠지만 잘못된 지식인들이 대체로 책을 많이 읽은 것만은 분명하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독서가 불필요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독서 그 자체가 절대 가치(선)가 아니라는 점이다. “독서=진리, 인성” 따위의 도식 행위가 오히려 독서의 가치를 내려깎는 행위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 독서가 인간에게 좋은 점
1) 간접 경험을 할 수 있다.
2) 사고력, 비판력, 상상력이 증대된다.
3) 지식, 정보를 얻을 수 있다.
4) 감정이 풍부해져 삶의 질을 윤택하게 한다.
5) 여가를 생산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6) 어휘 구사력, 글쓰기 실력 향상 등 자기 표현력이 증대된다.
7) 자아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다.
8) 교훈을 얻는다.
9) 문제 상황 해결 능력이 증대된다.
10) 타인에 대한 이해심이 증가한다.
11) 미래 설계에 도움이 된다.
12) 전통의 이해와 공동체 참여의식을 높여 준다.
▶ 독서가 인간에게 나쁜 점
1) 선입견(편협된 생각)을 가질 수 있다.
2) 잘못된 정보 습득의 우려가 있다.
3) 판단력 부족시 모방범죄의 우려가 있다.
4) 현실과 비현실 세계의 구분능력 부족으로 현실 감각이 떨어진다.
5) 무조건적인 독서(지식쌓기)는 가치관의 혼란을 일으킨다.
6) 시간활용의 비효율성이 있다.(시간을 많이 빼앗긴다)
7) 지적허영심을 부추긴다.(잘난척 등등)
8) 무조건적인 비판론자(궤변론자)가 될 우려가 있다.
9) 일상생활에 지장을 준다.(책읽느라 다른 일을 못한다)
10) 살아 숨쉬는 경험이 아니다, 돈이 많이 든다.
2장. 독서의 개념
글이나 책을 읽는 행위를 독서라 한다. 글이나 책은 일종의 매체다. 누군가(저자)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낸 의미나 정보를 지닌 매체라는 것이다. 결국 매체를 독서한다는 것은 매체는 하나의 매개작용을 하거나 도구의 구실을 한다는 것이다. 책은 글자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기 때문에 글자라는 말보다는 기호라는 말을 쓰는 경우가 많다. 또한 우리가 독서한다는 것이 꼭 책만 읽는 것은 아니다. 신문도 독서하고 종이 쪼가리도 독서한다. 따라서 책보다 넓은 의미를 지닌 텍스트라는 말을 쓴다. 작은 경고판도 텍스트인 셈이다. 결국 독서란 기호나 텍스트와의 상호작용이라 할 수 있다.
1. 독서와 읽기
독서와 중첩해서 또는 다른 전략으로 쓰이는 말이 '읽기'다. 읽기의 개념은 두 갈래로 쓰인다. 독서 분야 가운데 유아나 어린이들이 소리내서 문자를 읽는 행위만을 가리킬 때도 있지만 글이나 책 이외의 기호까지 포괄한 이른바 텍스트와의 의미작용 과정으로도 쓰인다. 그러니까 앞쪽 개념으로 읽기는 독서의 하위 분야가 되지만 뒤쪽 개념으로는 독서의 범위를 넘어선다. 그래서 그런 의미로서의 읽기 대상을 텍스트라 부르기도 한다.
한편으론 문자와 문자 외 기호의 통합적 의미 읽기가 요즘의 일반적 현상이므로 독서라는 말보다 읽기라는 말이 더 선호되기도 한다. 그런쪽이라면 책이나 문자에 비대한 의미를 부여하는 현상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읽기라는 용어를 전략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책도 읽고 비디오도 읽고 디자인도 읽어 통합적 의미읽기 또는 의미작용이 필요한 것이 요즘 세상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멀티미디어 세대다. 또한 네트워크 사회다. 정보 통신 매체를 도구로 수많은 텍스트, 그것도 가지각색의 텍스트가 수없이 난립하고 교차하고 의미를 생산한다. 독서가지고 될 문제가 아니다. 읽기를 통해 끊임없이 상호작용하고 의미를 생산하고 소비해야 한다. 그렇다고 독서라는 용어와 의미를 폐기하자는 뜻이 아니다. 어차피 읽기 텍스트의 중심은 책이요 문자다. 독서가 읽기의 중심이다. 다양한 매체와 텍스트의 상호작용도 중요하지만 모든 텍스트의 중심은 책이다. 책 때문에 다른 매체나 텍스트를 무시하는 이분법적 논리와 태도를 경계하자는 것이지 책이 다른 텍스트보다 좀더 나은 위치에 있다는 것을 부정하자는 것은 아니다. 책은 텍스트의 왕이며 그 자리는 변하지 않아도 그리 나쁠 것이 없다.
2. 독서와 독해
‘독해’라는 말도 독서와 중첩되는 말이다. 독해는 독서의 분명한 하위 분야이지만 독서행위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독자적인 영역으로 독서와 경쟁하는 말처럼 쓰인다. 독해는 그야말로 독서를 통한 이해와 해석 과정을 가리키는 말이다. 대부분의 독서행위는 결국 독해 과정이다. 독해 과정에서 이해와 해석은 구별할 필요가 있다. 이해는 텍스트 정보나 내용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라면 해석은 그러한 이해를 자기 나름대로 풀이해 재구성하는 과정이다. 해석을 비판적으로 할 때 비평 또는 평가라는 말을 쓴다. 의미 비중으로 본다면 ‘이해-해석-비평/평가’로 설정할 수 있다.
3. 독서교육의 개념
독서에 대한 다양한 뜻넓이나 개념 전략에 독서교육의 개념이 다 녹아 있다. 다만 독서의 가치나 역할에 양면성이 있었지만 ‘독서교육’속의 ‘독서’는 긍정적 의미로만 설정된다. 교육의 속서이 바로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첫머리에서 언급한 것처럼 잘못된 교육 방법이나 철학 때문에 독서의 부정적 가치가 드러날 수는 있는 것이다.
독서교육은 크게 두 갈래로 갈라 볼 수 있다. 독서에 대한 교육과 독서를 통한 인성 교육이 그것이다. 전자를 좁은 의미의 개념이라 하고 후자를 넓은 의미의 개념이라고 규정한다. 독서에 대한 교육은 그야말로 독서 자체에 대한 교육이다. 그러니까 독서 그 자체가 교육의 목표일 수 있다. 독서의 필요성이나 개념부터 방법론까지가 그 핵심이다. 그런데 독서를 통한 인성교육에서는 독서는 목표가 아니라 하나의 수단일 수 있다. 인격 수양 따위의 인성교육을 위해 독서를 활용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좁은 뜻과 넓은 뜻이 확연히 갈라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독서’의 개념 속에 이미 인격수양 따위의 상위 목표나 의미작용이 내재되어 있으므로 결국 좁은 뜻으로 보든 넓은 뜻으로 보든 독서교육의 개념은 만나게 되어 있다. 따라서 넓은 뜻과 좁은 뜻이 위계적으로 정해지는 것은 아니다. 좁은 뜻의 교육이 필요해야 넓은 뜻도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책은 왜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동기와 목표, 책은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방법론, 책은 누가 어떤 환경에서 읽는가에 대한 독서주체와 환경 설정 이 모든 것을 가르치는 것이 독서교육이다. 굳이 좁은 뜻 넓은 뜻으로 나눌 것이 아니라 독서교육의 실체를 가시화시키는 개념 전략이 좋다.
4. 독서교육과 독서지도
독서교육과 비슷한 말로 ‘독서지도’라는 말이 있다. ‘지도’라는 말은 독서지도 분야에서뿐 아니라 거의 모든 분야에서 교육의 구체적 과정을 가리킨다. 그래서 독서교육사라는 말 대신에 독서지도사라는 말을 주로 쓴다. 구체성 외에 더 중요한 의미 전략이 있다. 지도는 말 그대로 길을 가리키는 것이다. 독서는 애들이 하는 것이지 교사나 어른이 하는 것은 아니다. 애들이 스스로 독서의 길을 잘 갈 수 있도록 부추겨 주는 것이 독서 교사이다. 책을 읽는 아이들의 먼 길을 대신 가 주는 것이 아니라 찬 것 한 사발 들이키게 해서 먼 길을 갈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지도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지도라는 말은 구체적인 교육 전략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 역시 양면적인 맥락을 지닌다. 독서교육이 독서지도로서 구체적인 전략의 성격을 띨 때 국어교육의 하위 분야로 설정되게 된다.
좀 순진하게 독서지도라는 말을 문자 그대로 해석해보자. 지도라는 낱말의 사전적인 뜻은 “바르고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가리키거나 가르쳐주어, 앞으로 잘 나아가도록 이끎‘이다. 따라서 무엇을 지도한다고 할 때는 무엇이 ’바르고 옳은‘지에 대한 객관적이고도 보편 타당한 기준이 있어야만 한다. 예를 들어 ’생활 지도‘의 경우, 바르고 옳은 생활 습관을 위하여 남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 편한 대로 하는 행동을 억제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밥그릇을 방 가운데 가져다 놓고 손가락으로 집어 장난하다가 먹다가 돌아다니다가 하는 유아의 즐거움은 식사 습관 지도에서는 제한당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서 유아의 행동을 무조건 자율에 맡길 수 없고 타율에 의해 ’바르고 옳은‘ 방향으로 이끌어가야 한다. 이런 경우라면 ’지도‘는 유아의 특성과는 상관없이 꼭 필요한 일이 된다. 그러나 ’독서‘의 경우는 이런 식으로 ’지도‘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독서의 경우, 과연 어떤 것이 바르고 옳은 방향일까? 문자를 해독할 수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책(문학 작품)을 읽을 수 있고 읽는 방식은 저마다 다를 수 있다. 하나의 텍스트를 두고도 줄거리만 좆아갈 수도 있고, 등장인물 중의 한 사람을 자신과 동일시하면서 그 심리의 추이에 주목할 수도 있으며 마음에 와 닿는 몇 개의 구절만을 자기 것으로 할 수도 있다. 또 한, 독자가 같은 텍스트를 여러 번 읽어도 매번 다른 방식으로 읽을 수도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책은 보편 타당한 어떤 외부로부터의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최대한 자율적으로 읽을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자율적인 방식으로 행해지는 독서만이 ‘책과의 만남’이라는 독서의 본질적인 의미에 부합될 수 있다. - 최윤정(2000), 슬픈 거인-어른들을 위한 어린이 책 길라잡이, 문학과지성사
위와 같은 지적은 교육과 지도의 과도한 목표설정이나 일방적 측면을 고려해 보면 매우 타당한 지적이다. 그러나 이런 지적은 사실 독서지도 뿐만 아니라 모든 교육이나 지도 행위의 본질적인 양면성이다. 단순한 물리적인 습득이건 고차원적인 정신 함양이건, 그것이 생활지도이건간에 자율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일 수 있다. 자율은 학습 주체의 능동성과 창의성 또는 뛰어난 주체성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완전한 자율이란 있을 수 없다. 관계 속에 존재하고 관계 속에 의미를 획득하고 가치를 이뤄나가는 것이 인간이고 보면 인간은 자율과 타율의 복합체이다. 문학작품의 즐거움을 자율적으로 얻고 또 그것을 소중한 것으로 키워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최소한 똑같은 텍스트에 대해 내가 느낀 즐거움 가운데는 영원히 나만의 즐거움으로 간직할 것도 있지만 일부는 내가 느낀 즐거움이 제대로 된 즐거움인지 성찰해 볼 필요도 있고 또는 내가 느낀 즐거움이 남이 느낀 즐거움과는 무엇이 같고 다른지를 통해 새로운 즐거움으로 나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진정한 독서지도는 자율적인 즐거움을 훼손하거나 망치려는 것이 아니라 좀더 나은 즐거움 또는 진정한 자율을 통한 즐거움의 확장을 돕자는 것이다. 물론 최윤정의 비판 맥락은 분명하다. 독후감을 강요하는 식의 독서지도를 비판한 것이다. 그런식의 비판은 당연한 것이다. 잘못된 독서지도를 비판한 것이지 독서지도에 대한 근본적인 부정은 아니라고 본다.
5. 독서교육과 국어교육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독서교육을 넓은 의미와 좁은 의미로 갈라 볼 수 있다. 좁은 의미로 설정했을 경우는 국어교육의 하위 분야로 볼 수 있다. 책을 통해 제대로 읽고 말하고 쓰는 기능 위주의 교육으로 보면 그렇다. 그러나 국어교육도 사고력이나 문화, 인성교육이라는 상위 목표 속에서 규정하는 맥락이라면 독서교육의 범위는 넓어진다. 넓어진다는 말은 국어교육 차원에서 그리 말한 것이지 독서교육의 본질은 통합교과다. 국어교육과의 긴밀한 관련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독서교육을 통합교과 차원에서 규정해야 그 의미와 가치를 제대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어교육에서는 과학이나 역사, 예술 과목이나 학문 영역에 대해 일부러 신경쓸 필요는 없다. 그러나 독서교육에서는 그 어떤 소재나 제재의 글이건 삶의 문제로 끌어오기 위한 토론을 끊임없이 지향한다. 그것이 진정한 독서교육이기 때문이다. 독서교육이 책이나 문자라는 텍스트에서 맴돌면 국어교육과 다를 바가 없어진다. 책이나 문자가 우리 삶의 다양하고 복합적인 무늬랑 끊임없이 교차하는 맥락을 주목할 때 진정한 가치가 있다.
3장 독서교육의 의의와 목표
1. 네 가지 목표 설정
(1) 인성 가치 영역
- 자아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다.
- 타인에 대한 이해심이 증가한다.
- 교훈을 얻는다.
- 전통의 이해와 공동체 참여의식을 높여 준다.
(2) 지혜-사고력 측면
- 사고력, 비판력, 상상력이 증대된다.
(3) 언어 능력 측면
- 어휘구사력, 글쓰기 실력 향상 등 자기 표현력이 증대된다.
(4) 삶의 효율성 측면
- 문제 해결력이 증가한다.
- 지식, 정보를 얻을 수 있다.
- 미래 설계에 도움을 준다.
- 감정이 풍부해져 삶의 질을 윤택하게 할 수 있다
- 여가를 생산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2. 네 가지 차원의 목표
1) 가치 차원
선현들이 독서를 하면 인격 수양이 된다고 한 것이 바로 이 측면이다. 하지만 인격이나 인성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는 쉽지 않은 문제다. 인성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체성이다. 자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믿음과 열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정체성이 자아의 확고한 신념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정체성은 잘 변화는 측면도 있고 잘 변화하지 않는 측면도 있다. 또한 중요한 것은 정체성은 남과의 관계 속에서 규정된다는 점이다. 친구 또는 가족 또는 학교와 같은 집단이나 공동체 관계 속에서 규정된다. 독서는 바로 이런 정체성 찾기를 도와주는 진정한 길이라는 것이다.
다음은 남에 대한 배려, 곧 봉사성이다. 봉사성은 크게 두 가지로 규정한다. 하나는 이타주의적 휴머니즘 차원에서의 봉사이고 또 하나는 타자윤리 차원에서의 봉사다. 이타주의는 남보다 더 뛰어난 나로부터 출발한다. 그러나 타자윤리는 남이 있기에 내가 있다는 발상에서 출발한다. 그렇다면 이타주의 차원의 봉사는 선택이 될 수 있지만 타자윤리 차원은 필연이 된다. 우리는 되도록 후자 쪽의 봉사가 되도록 노력한다.
진실성은 올바르게 사는 가치의 본질이고 성실성은 그러한 가치를 향한 노력의 자세를 말한다.
2) 지혜 차원
독서는 언어가 주된 매체다. 언어는 그 자체가 사고력의 결정체다. 언어는 사물이나 지시 대상에 대한 일반화 추상화를 통한 기호의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또한 수많은 생각(사고)가 담겨 있는 글을 읽는 과정은 당연히 사고의 과정이기도 하다. 다만 사고의 실체를 어떻게 규정짓고 어떻게 이뤄나가느냐가 중요하다.
첫째는 사물이나 대상을 체계적으로 뜯어보고 의미를 부여하는 분석력을 들 수 있다. 이러한 분석력은 전체를 조감해 보는 통찰력이 전제되어야 한다. 물론 통찰력은 분석력이 전제되어야 한다. 교육적으로 보면, 직관에 의한 창의력보다 분석에 의한 창의력이 더 가치가 있다. 비판력은 차이의 근거를 중심으로 시시비비를 가리는 사고력이다. 추리력은 이미 있는 것을 바탕으로 미루어 짐작하는 것이므로 차이를 확장해 나가는 과정이라 볼 수 있다. 상상력은 그 차이를 아예 건너뛰는 것이지만 추리력은 차이를 통해 새로운 것을 미루어 짐작해 내는 능력이다. 상상력을 추리력의 확장이라고 볼 수도 있다. 자기 멋대로 미루어 짐작하는 것이 상상력이기 때문이다.
3) 매체 차원
언어는 모든 교육의 도구이지만 언어 관련 주제에서는 그것이 대상이 되기도 한다. 어휘력과 표현력, 구성력, 이해력/독해력 따위가 바로 의미 읽기를 위한 도구이기도 하지만 그러한 능력이 국어교육의 교육목표가 된다. 이러한 교육을 위해 우리는 말하기(토론/대화) 듣기 읽기 쓰기가 자연스럽게 몸에 배게 하는 총체적 언어교육과 책을 중심으로 미디어를 결합하되 책으로 돌아오는 책중심의 미디어 통합교육, 언어의 다의성에 주목하는 맥락 중심 어휘 교육을 중점 사항으로 삼는다.
4) 삶의 효율성 차원
삶의 문제의 복합체이고 문제의 연속이다. 문제의 끝은 없다. 진짜 문제는 문제나 사건을 어떻게 해결해 나가느냐에 있다. 독서는 문제해결의 직접적 열쇠를 제공하기도 하고 간접적인 열쇠를 제공하기도 한다. 그것은 책이 가지고 있는 정보 가치에서 출발한다. 책은 이렇게 딱딱한 정보와 문제 해결에 머무는 것은 아니다. 일과 일상의 스트레스를 벗어나 맘껏 즐거움에 빠지게도 하기 때문이다.
4장 독서교육의 원리
독서교육의 원리는 당연히 목표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정해진다. 바로 ‘왜’에 해당되는 것이 목표 설정에 해당된다. 그에 따라 대상(무엇), 시기(언제), 환경(어디서), 방법(어떻게), 누가(주체)의 원리가 설정된다. 그러니까 '왜‘ 영역은 원리의 일부를 구성하면서도 다른 원리를 포괄하는 상위 원리가 된다.
1) 가치 설정 원리
‘왜’의 가치 영역은 다른 영역에 비해 상위 영역이라 볼 수 있다. 독서는 왜 하는가에서부터 독서교육은 왜 필요한가라는 문제의식이 맥락적 지혜로 연결될 때 우리는 제대로 된 독서교육을 할 수 있다. 이런 과정에서 도덕적 강박관념에 따른 계몽주의 접근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 스스로 ‘왜’라는 물음을 던질 수 있는 분위기 조성이다. 교사의 '왜‘라는 질문은 확인과 평가 영역으로 흐를 수 있지만 아이들 스스로 던지는 ’왜‘는 탐구와 비판과 맥락을 구성하고 따지는 통로가 된다. 바로 이 원리가 목표를 구성하는 원리다.
2) 텍스트 구성 원리
무엇을 읽을 것인가, 어떤 책을 읽을 것인가에 대한 원리이다. 여기서는 우선 두 가지를 경계한다. 양서와 악서라는 이분법은 필요하지 않다. 제대로 된 책 또는 제대로 되지 않은 책 또는 적합한 책, 적합하지 않은 책은 있을지언정 선악의 이분법으로 딱히 갈라지는 책의 구분은 없다. 이른바 저질 만화책이나 하이틴 로맨스로 상징되는 삼류 소설이라는 것도 그보다 더 나쁜 사회 환경이나 아니면 그런 책에 비해서는 선의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순돌이에게 나쁜 책이 만순이에게는 좋을 책일 수 있다. 이러한 상대주의적 맥락을 고려할 때 우리는 제대로 된 텍스트를 선정할 수 있다.
다음으로는 권장 도서에 안주하는 독서지도를 경계할 필요가 있다. 권장 도서는 그야말로 권장일 뿐이다. 권장 도서가 절대적 잣대가 될 때 오히려 독이 된다. 독서 수준이 낮거나 독서교육이 척박한 환경에서 권장 도서는 무척 유용한 2차 텍스트가 된다. 그러나 가장 이상적인 것은 권위적인 권장 독서보다 다양한 주제와 취향의 목록이 만들어질 때 진정한 가치가 있다.
3) 시기 적절성 원리
정신과 육체의 발달이라는 양적 시간을 고려한 독서지도와 욕구와 취향의 변화를 고려하는 질적 시간을 고려한 독서지도 모두를 가리킨다. 성장 과정에 맞는 텍스트와 방법을 적절히 배치함으로써 독서의 효과를 최대한 누리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도식적인 발달 단계와 또래와의 관계를 고려한 획일적인 단계에 의해 설정되는 독서지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따라서 학년별로 위계화되어 있는 권장 도서는 문제다.
이러한 발달 단계에 따른 독서지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역동적인 욕구와 취향 변화에 따른 독서를 제대로 할 수 있게 열어주는 것이다. 욕구와 취향은 삶의 문제를 해결해 가는 과정이고 독서가 그런 과정을 도와주거나 부추기는 구실을 해야 한다.
4) 환경 구성 원리
(1) 생활 환경 구성
어떤 환경에서 크느냐에 따라 아이들의 독서 습관은 사뭇 달라지게 된다. 가정은 가정대로 학교는 학교대로 사회는 사회대로 제대로 된 독서환경을 구성해 줄 필요가 있다. 이를 생활 환경 구성이라고 할 수 있다. 늘 텔레비전이 켜 있는 집안 환경에서 좋은 독서 습관이 나올 가능성은 적다. 또한 도서관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은 학교나 지역사회도 마찬가지다. 획일적인 교과서를 강요하는 국가 권력 시스템도 여기에 포함될 것이다. 이밖에 교사 입장에서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프로그램 환경과 활동 공책 환경이다.
(2) 프로그램 구성
프로그램은 전략이다. 재미있고도 알찬 프로그램이 있다면 아이들은 쉽게 독서습관이나 독서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교사의 독서지도는 프로그램 구성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옳다. 프로그램은 교사의 독서지도 능력이 결집되는 곳이다. 동기 부여부터 목표 설정과 이룸까지의 구체적인 전망을 보여주는 것이 프로그램이다.
(3) 활동 공책 구성
프로그램이 거시적인 환경 조성이라고 한다면 활동공책(워크북, 도움책)은 미시적인 환경조성이다.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활동공책은 아이들을 독서의 세계로 쉽게 빨아들이게 해 줄 것이다.
5) 방법 설정 원리
결국 독서지도는 발문과 독서활동을 통해 이루어진다. 교사의 아주 뛰어난 발문보다 어눌한 아이들 물음이 더 소중하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발문을 통해 독서교육의 목표가 어떻게 설정되는지를 보자.
6) 주체 구성 원리
독서지도의 궁극적 목표는 아이들 스스로 책을 즐겨 읽고 책을 통해 삶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자율적이고도 능동적인 힘을 길러 주는 데 있다. 독서 주체인 아이들이 그런 힘을 기르는 과정이 독서 주체가 구성되는 과정이다. 독서 주체는 책의 주체인 저자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자리매김이 정해진다. 독서 자체가 성찰과 깨달음의 과정이므로 주체가 만들어지는 것 역시 가변적이고 역동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