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시스(Peter Sis/1949~)
처음 피터 시스의 작품을 만난 것은 이제 막 '이'가 흔들리기 시작한 아이의 이야기를 다룬 '마들렌
카'에서 였습니다.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 그 색다른 느낌은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성장기 아이라면 누구나가 다 겪는 이 특별하지만 평범한 사건을 아이의 눈높이에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 때문이 아니라(사실 이가 흔들린다는 소재도 다소 신선합니다) 독자가 도저히 기대하기 힘든 관점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방식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거기에 'Pointillism'이라 불리는 점묘법과 비슷한 기법이 보여주는 섬세하면서도 신비로운 그림은 이러한 느낌을 한층 더 배가시켜줍니다. 볼 때마다 새록새록 새로운 것을 발견해서 한번 보고는 도저히 덮어둘 수 없게 만드는 그의 작품들은 보면서도 '어휴~'하는 한숨이 나올 정도의 꼼꼼하고 완벽합니다.어른이 보기에도 충분할 만큼 많은 것을 담고 있지만 절대 어린이의 눈높이를 놓치지 않는 작가가 바로 피터 시스입니다.
피터 시스(Peter Sis)는 1949년 체코슬로바키아 브르노에서 태어났습니다. 프라하 실용 미술학교와 영국 런던의 왕립 예술대학에서 그림과 영화를 공부하고는 다큐멘터리 영어화제작자였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영화제작자로 일을 시작했지요. 1980년 서베를린 영화제의 황금곰상을 비롯 여러 영화제에서 상을 받으며 영화에서 재능을 보였습니다.
1982년 체코 정부는 1984년에 열릴 LA 올림픽을 위한 영화제작을 위해 그를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보냅니다. 그러나 구소련과 동유럽이 올림픽을 보이콧 하는 바람에 영화제작은 취소되고, 정부는 그에게 귀환을 명령했지만 그는 미국에 남기로 결심을 하고 미국정부로 부터 망명승인을 받습니다. 그는 이곳에서 모리스 샌닥의 도움으로 어린이 그림책 편집자를 만나게 되었고, 1984년 뉴욕으로 옮겨 그림책 작가로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됩니다. 피터 시스는 시드 플레이쉬만이 글을 쓴 '왕자와 매맞는 아이(The Whipping Boy)'의 그림을 그려 1987년 뉴베리상을 수상함으로써 주목 받는 작가로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그후 '뉴욕 타임즈'에서 뛰어나 삽화에 주는 상을 다섯 번이나 받았고, 1997년에는 '갈릴레오 갈릴레이(Starry Messenger)'로, 1999년에는 '붉은 상자를 통해서 본 티벳(Tibet Through the Red Box)'로 2번의 칼데콧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또한 '마들렌카'는 혼북 '명예의 도서' 목록에 올랐으며, 뉴욕타임스에서는 '주목할 만한 책'으로, 퍼블리셔스 위클리에서는 '올해 최고의 어린이책'으로 뽑히는 다채로운 수상을 하면서 그림책 작가로서 그의 입지를 굳히게 됩니다.
한편 그는 그림책 뿐만 아니라 책표지, 포스터 등의 작업도 했는데 1984년 아카데미상을 받은 영화 '아마데우스'의 포스터도 그가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워싱턴, 발티모어 공항의 벽화나 또 뉴욕지하철 포스터, Joffrey Ballet의 발레무대 디자인도 하면서 종횡무진 활약을 하고 있지요.
<마들렌카>
피터 시스의 작품 세계
'마들렌카'시리즈와는 전혀 다른 색깔(그의 섬세한 기법은 여전하고, 그 치밀함에는 더욱 놀라지만)의 작품을 볼 때는 좀 고개가 갸우뚱해집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나 찰스 다윈의 전기인 '생명의 나무(The tree of life)'는 위인들의 일생을 다루고 있는데 갑자기 위인전이 튀어 나온 이유가 뭘까 상당히 의아하며 그 이유가 궁금했는데 '생명의 나무'에 실린 저자의 말을 읽고는 비로소 의문이 풀렸습니다.
"나는 철의 장벽으로 둘러싸인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자라났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는 텔레비전도 없어서, 책을 읽고, 듣고, 그림으로 표현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나는 탐험과 발견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좋아했지요. 빈센트 반 고흐, 마르코 폴로, 갈릴레오 갈릴레이, 그리고 찰스 다윈이 내 영웅들이었어요. 나는 위인들이 세상으로부터 많은 의심을 받았다는 것을 알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작가와 예술가로서, 이 혁신적인 사상가들을 기념하는 일을 해보고 싶었고, 그들이 발견해가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별세게의 전령 갈릴레오 갈릴레이>
위인들도 한때 어린 시절이 있었으며, 지금의 어린이가 내일의 다윈이 될 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아
들에게 말해주고 싶었고, 이러한 책을 통해 우리 자신과 세계에 관해 생각하는 방식을 변화시킨 특별한 사람의 매력을 함께 느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자신이 어린 시절 되풀이하며 읽고, 영향을 받았던 위인들의 삶을 책으로 만들어 나가고 있는 것이라고 하니 고개가 끄덕여지고, 그런 작업을 직접할 수 있는 작가가 부럽기 그지 없습니다. 물론 너무 힘들고 고된 과정이지만요.
그 외에도 작가는 여느 작가들처럼 성장하면서 겪은 다양한 경험들을 하나씩 하나씩 꺼내어 작품으로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자였던 아버지의 이야기를 담은 '붉은 상자를 통해서 본 티벳'이나 자신의 고향 체코슬로바키아의 영웅 젠 웰즐의 북극여행을 다룬 'A Small Tall Tale from the Far Far North', 돌아갈 수 없는 조국의 문화와 고향의 모습을 딸에게 전해주고픈 마음을 담아 만든 '세 개의 황금 열쇠' 등이 있습니다.
<붉은 상자를 통해서 본 티벳(Tibet Through the Red Box)>
어떤 작품도 쉽게 만들진 것 같지 않고, 또 많은 것을 담아 내기 위해서 치열하게 고민한 작가의 완벽주의의 흔적이 그대로 느껴집니다. 특히 '생명의 나무'의 작업은 3년 동안의 고된 과정을 거쳐 탄생하게 되었는데 그에게 가장 힘이 되어준 아버지와 그의 아내는 힘겨워 하는 그에게 포기하라고 까지 했다고 합니다. 끝내는 완성을 했는데 정확한 내용을 위해서 세 번의 확인 작업을 거쳤다고 합니다. 이 책은 2004년 볼로냐 라가치상(논픽션 부문)을 수상했고, 뉴욕타임즈 최고의 일러스트그림책으로 선정되었는데 작가의 이러한 노고가 어느 정도는 인정을 받은 것 같습니다.
한 인터뷰 기사에서 작품의 아이디어를 어디에서 얻느냐고 하는 질문에 미국에 온 지 10년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뉴욕에서의 모든 것이 10살짜리 꼬마의 눈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택시를 잡는 모습, 엘리베이터를 타는 모습...그가 자란 프라하에서는 그런 모습는 볼 수 없었다고 하네요. 그런 모습을 옮긴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늘상 있는 일들을 그린 그의 그림이 좀 색다르게 느껴졌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에게 있어 고향 프라하는 그다지 좋은 기억을 남겨 주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어느 도시를 가서도
느낄 수 없었다는 암울하고 두렵고, 차가운 느낌의 회색빛 도시는 외관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자유
가 결핍된 심리적인 장벽으로도 느껴졌을 것입니다. 오직 한 가지 종이, 한 가지 종류의 연필, 한 가
지 종류의 물감 밖에 사용할 수 없었던 기억, 미국에 온 후 그는 비로소 예술가로서 행복감을 느끼지요. 풍부한 재료들 덕분에......
<세 개의 황금 열쇠>
그 중에서 시스는 초기에는 유성파스텔로 작업을 많이 하다가 결혼을 하고 아이들이 생기면서 아이들에게 해가 될 것 같아 수성물감으로 바꾸게 됩니다. 수성물감은 마르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탓에 저녁준비를 하면서 오븐 앞에 작품을 놓아 두고서 말렸다고 합니다. 그 때문인 지 그의 그림에는 음식냄새가 배기도 하고, 때로는 소스가 묻기도 했다고 하네요...^^
그의 사랑스런 아이들은 작품의 영감을 주는 또다른 존재들이기도 합니다. '마들렌카'의 주인공은 시스의 큰 딸 '마들렌'이 모델이라고 하네요. 현재 그는 다큐멘터리 영화 편집자인 아내와 딸 마들린, 아들 매튜와 함께 뉴욕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림 외에 즐기는 것으로 '여행'과 '글쓰기'를 꼽았는데 특히 '터어키'를 가보고 싶다고 하네요. 동
서양의 문화가 공존하는 곳, 터어키를 다녀온 후 그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풀어 낼 터어키의 모습이
벌써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