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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버스를 타고 가던 아이와 엄마. 엄마가 창밖을 가리키며 이야기합니다. “저게 보물 1호 동대문이야.”그러자 아이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묻습니다. “그럼 보물 2호는 뭐야?” 그 순간, 엄마를 비롯해 버스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됩니다.
요즘 텔레비전에 나오는 광고의 한 장면입니다. 저도 이 광고를 보고는 머리를 긁적일 수밖에 없었지요. (덧붙이자면 보물 2호는 보신각종입니다.) 유명하다는 산에 가도 그 산이 그 산 같고, 그 무덤이 그 무덤 같고, 좋은 절을 찾아도 기껏해야 “좋다.”, “멋지다.”라는 표현 밖에 할 줄 몰랐던 저는, 고백하자면 ‘문화재에 깜깜한’ ‘문맹’입니다.
여기 저와는 달라도 아주 다른 아버지가 있습니다. 건축 잡지 편집장에 택시 기사까지, 특별한 이력을 지닌 이 아버지는 딸에게 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는 인문학 교육을 시키기 위해 10년 동안 주말마다 전국의 유명 건축물을 찾아 다녔습니다. 『아빠랑 함께 보는 우리 옛 건물』에서는 그중 경회루, 도산서원, 소쇄원, 여유당, 남산한옥마을, 숭례문 등 우리 옛 건물 열다섯 곳을 소개합니다. 아빠와 딸은 조잘조잘 대화를 나누며 옛 건물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 나갑니다.
우선 작가는 건축 전문가다운 지식을 유감없이 드러냅니다. 경회루에서 딸이 “아빠, 왜 바깥쪽 기둥은 사각이고, 안쪽 기둥은 원이야?”라고 묻자, “둥근 하늘과 네모난 땅의 모습을 나타낸 거야.”대답합니다. 바닥에 깔린 전돌 높이가 다른 이유에 대해서도 “바람이 단에 부딪치면 속도가 빨라지걸랑. 그래야 환풍도 잘 되고.”라며 막힘이 없지요.
하지만 작가가 진정 전하고자 하는 건 전문적인 건축 지식이 아닙니다. “아빠, 왜 향교에 가면 항상 은행나무가 있는 거야?” “공자가 만날 은행나무 아래 그늘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걸랑.” 경주향교에서는 신라의 역사, 신분 제도와 교육 제도를 이야기합니다. 경회루에서는 오행사상을, 도산서원에서는 조선 시대 과거 제도를, 낙선재를 둘러보면서 조선의 마지막 왕실 가족의 파란만장한 삶을 전합니다. 건축물이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진 인공 구조물인 이상, 그 안에는 사람과 역사의 흔적이 함께 합니다. 작가는 건물을 매개로 역사와 문화, 철학과 인생을 이야기합니다.
“원래 인문학적인 건축은 자연에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자연을 완성해야 되는 거야. 대나무와 새, 흐르는 물과 함께 하는 거지. 건축이 뭐 별건가.” “아빠, 조선시대의 건축가는 목수야?” “아니. 선비. 인문학적인 선비가 목수와 토론하면서 집을 만들어 가는 거야. 집주인인 선비의 학덕이 높으면 높을수록 위대한 건축이 만들어지걸랑.”이라며 인간과 문화를 중심으로 둔 자신의 건축 철학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주거니 받거니 끊임없이 이어지는 아빠와 딸의 찰떡같은 대화는 유쾌하지만, 짧게 끊어지는 문장과 거침없는 표현은 때로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책 자체가 그리 길지 않은 분량임에도, 온갖 역사와 문화를 종횡무진 넘나드는 터에 단번에 소화하기엔 버거운 부분도 있습니다. 이런 독자들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걸까요? “아빠, 잠깐! 알아 가는 건 좋은데 그 많은 문화재를 언제 다 알라는 거야? 나 다른 할 일도 많거든.” “하나씩 천천히 알아 가면 되니까 서두르지 말거라.”급한 마음을 다독여 줍니다.
작가가 제시하는 문화재를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별로 특별할 것이 없습니다. 그건 다름 아닌 ‘문화재 잘 알기’. “새로 전학 온 친구가 어떤 친군지 알아야 좋아지게 되는” 것처럼, 문화재도 잘 알아야 아낄 수 있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잘 알 수 있답니다. ‘알아야 참으로 보게 된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뻔한 말 같지만, 이걸 지키지 못한 우리는 올해 초에 국보 1호를 잃었습니다. 안타깝고, 미안하고, 부끄러운 이 마음을 갚기 위해 이제부터라도 ‘문맹’ 탈출을 시작해야겠습니다. | | |
| | | 책 소개 | | | 조상들의 얼이 살아 숨 쉬는 문화재 가운데 열다섯 개의 옛 건물을 찬찬히 살펴봅니다. 숭례문, 화성, 도산서원, 경회루, 현충사 등 국보 또는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들에 관련된 이야기가 다채롭게 펼쳐집니다. 건축평론가인 아빠와 딸이 옛 건물을 돌아보며 나누는 대화로 꾸며졌습니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조화롭게 지어진 옛 건물들. 그 안에 녹아 있는 역사, 정치, 문화, 사회, 예술, 철학 이야기를 통해 조상들의 자연관과 인생관을 접할 수 있습니다. 입말을 생생하게 담아 함께 답사하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 | |
| | | 작가 소개 | | | 이용재 | | | 1960년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명지대 건축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김중업의 작품에 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건축 잡지『건축과 환경』『월간 플러스』에서 기자와 편집장을 역임했습니다. 쓴 책으로 『좋은 물은 향기가 없다』『딸과 함께 떠나는 건축 여행』등이 있습니다. | | | 김이랑 | | |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서 목공예를 공부했습니다. 그동안 ‘cyber MBA 온라인 교육 과정’과 ‘이화여자대학교 멀티미디어 교육원 온라인 교육 과정’의 삽화 작업을 하였으며,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늘 주변을 기웃대며 이것저것 관찰하고, 재미있게 생각하고 낙서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린 책으로 ‘첫돌쟁이 놀이책 시리즈’, 『사막에서 북극까지 동물백과』『여우잡이 암탉 삼총사』『들춰보고 찾아보는 그림 낱말책』 『세상에서 젤 꼬질꼬질한 과학책』『별똥별 아줌마 우주로 날아가다』『우리 민족문화 상징 100』등이 있습니다. | | | |
| | | 본문 읽기 | | | “우리 한옥은 마당을 만들기 위해 방을 쭉 돌려서 만들어. 방을 만들다 보니 마당이 만들어진 게 아니란 말이지. 마당은 우주 속의 소우주가 되고 그 집 사람들의 삶이 되는 거야. 무엇도 담을 수 있는 장대한 소우주. 그래 한옥 마당엔 아무 것도 그리지 않아. 무념의 비워진 공간. 잔디도 깔면 안 돼. 백토 깔린 하얀 공간, 안도 밖도 없는 무한한 공간으로 만드는 거야.” “아빠, 왜 안마당에 잔디 깔면 안 되는 거야?” “우리 한옥은 건강에 해로운 석양빛을 막으려고 처마를 길게 뺏거든. 빗물 들이치는 것도 막을 겸. 마당에 깐 백토를 거울삼아 햇빛을 깊숙이 끌어들여서 자연 채광을 한 거야. 잔디 깔면 채광엔 쥐약이걸랑.” (본문 105~106쪽)
“왜 아빠는 조선시대의 한옥이 위대하다고 만날 그러는 거야? 내가 보기엔 불편할 거 같은데.” “자연 속에 들어가 자연을 완성하는 인문학적인 건축이걸랑. 낙선재는 단청도 하지 않은 자그마한 한옥이지만 창덕궁 안의 그 어떤 우람한 전각에도 뒤지지 않아. 빗물 잘 빠지고, 바람 잘 통하고, 햇빛 잘 들고. 방에 앉아 내다보이는 풍광은 절경이고.” (본문 108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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