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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9/10/16
 


 제목: 사악한 헛소리와 기독교!!
                                    
  “원세호씨의 글! 그 진실은...?”



 문선명의 문란한 성생활?
 


1945.10월부터 경기도 파주군 임진면 이스라엘 수도원 원장 김백문씨에게 새일교단교주 이유성씨와  전도관 또는 천부교 교주 박태선씨와 함께 6개월간 수련을 받았.

^^^^^^^^^^^^^^&

문샘은 파주엔 간 적이 없다. 이러니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오직 김백문<金百文이란 이름이 가진 뜻= 金은 文을 증거(百)한다>이 서울에 세운 상도동 집회소에서만 6개월을 쭉 있었다. 김흥수교수 논문이 그 증거: 수도원 창설 직후 약 2개월 후  1945년 후반 20대 중반의 문선명이 찾아와 김백문을 받들면서 주로 서울 상도동 집회소에서 활동하였다. 1946년 4월경 문선명은 김백문을 떠나 해방 후 성주교단 평양교회 신도들을 찾아 평양으로 갔다. 후일 문선명은 한학자라는 여인과 재혼하는데 그녀의 어머니도 이 교회 신자였다.
[출처] 김흥수 교수- ‘한국교회 이단이란 무엇인가?’ 와 통일교 분석|작성자


무슨 일이 있었는가? "민경배 저 <한국기독교회사>"라는 유명한 책에 보면 내용이 나옵니다. 문샘이 김백문을 떠나기 전에 기이한 현상이 있었다는 것이 나오죠. 바로 김백문이 문샘을 솔로몬의 영광으로 온 메시아라는 증거를 하는 것이지만 민경배씨는 그것은 의도적으로 생략하죠. 

"수도원과 집회소를 통해 김백문은 서울과 경기 일원의 신령파 동지들을 끌어 모으는데, 수도원 창설 직후인 1945년 후반 20대 중반의 문선명이 찾아와 반년 가까이 김백문을 받들었다. 1946년 4월경 문선명은 김백문을 떠나는데, 그가 떠나기 직전 김백문은 30여 명이 참석한 한 집회에서 신비스런 체험을 한다. 집회를 "시작했을 때 찬송에서부터 그 앉은 자리는 진동하기 시작했고 둘러앉은 사람들과 그 주위는 연기에 가득찼다."

"대낮에 흰옷을 입으시고 내 눈 앞에 나타나신 주님을 뵈올 때는 내 왼 정신은 모든 맥박이 다 거두어진 것 같았던 거외다.……거기에서, '주의 현현이나이다' 하고 선포를 했던 겁니다. 그와 동시에 그 자리에 앉았던 사람들은 전부가 다 의식을 잃고 나가둥그러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

[출처] 김백문에 의한 문선명 선생 축도 장면 | 작성자

1948.2.22. 오전 10시 김종화 여인(남편있는)과 어린양혼인잔치를 치루고 김종화 여인의 남편의 고소로 1948.4.7 에 5년 실형을 받고 1948.5.20 함경남도 흥남형무소로 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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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교를 반대할 때 쓴 박정화씨의 책에는 김종화 여인의 남편이 고소한 것이 아니라 동네 사람들이 고소한 것으로 나오죠. 그런데 나중에 박준철씨는 김종화 여인의 남편이 고소한 것으로 둔갑시키죠. 박정화(기독교인들이 떠드는 소문을 책으로 낸 사람) 박준철(박정화씨의 책을 거의 베낀 사람)이나 다 거짓말장이지만 서로 이렇게 달리 기록하죠. 정말 웃기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북한은 공산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성적인 자유를 대체로 인정하는 체제의 특성상 이런 자유 영역의 문제로 징역 5년이란 중형으로 정치범수용소인 흥남감옥에 굳이 가둬둘 리가 있느냐 하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문샘께서 성주교 김성도 여인 등 당시 평양의 온갖 신령한 집단의 사람들을 모조리 모와 엄청난 세력이 되는 현상을 보고 놀란 기성교단의 시기세력 즉 목사와 장로들의 투서가 불씨가 되어 공산주의자들이 종교말살정책의 일환으로 흥남감옥에 넣었다는 것입니다.

1950.10.14에 유엔군 진주로 석방되었고, 남하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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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군 진주로 이들에 의해 감옥에 갇혀 있다가 석방된 것이 아니라 유엔군(정확히는 미美공군)의 융단 폭격으로 흥남감옥의 옹벽들이 파괴되는 바람에 간수들이 도망가고 그 틈을 타 감옥문을 열고 자력으로 탈출 하였던 것입니다. 이러니 원세호씨의 말이 완전 거짓말이라는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1946.6월경 평양에서 남녀혼숙 및 혼음관계와 사회혼란죄 8월2일 구속 처벌 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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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화씨의 책에는 대동보안서에 갇히게 된 이유가 달리 나온다.

그는 "공산주의 체제 속에서 이와같은 집회가 허용될리가 없다.  근처의 사람들이나 기성교회 신자들, 특히 교회의 목사들과 장노들이 문선생의 소행을 이단시하였다. 이 이상스런 집회를 하고 있다고 경찰에 고발하였기 때문에 문선생은 평양으로 와서 2개월째인1946년 8월 2일 대동보안서에 체포되어 약 100일간 구속되었다  .... (생략)"


1945.4.28 최선길씨와 결혼. 정득은씨와 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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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수 교수의 글에는 정득은 방식의 파가름(혼음)의 정의가 달리 나온다. 피가름이라는 것은 손의 피를 전수하는 것으로 말이다. 이러니 원세호씨의 글이 얼마나 거짓인지 똑똑히 알게 된다.

"1947년 초반 정득은 이라는 여인이 김백문을 찾아왔다. 그녀는 평양에 거주하던 신령파였는데, 월남하여 서울에 도착한 후 서울역 앞에서 20여 명의 신도와 함께 집회를 가지면서  김백문의 집회에도 가끔 참석하곤 했다. 그 무렵의 어느 날 그녀가 독방에서 기도 하는데, “손을 잘라 그 피를 김선생에게 먹여라”는 계시를 받는다. 그녀는 면도칼을 구하여 김백문의 방으로 가 그 계시 내용을 이야기하고 막 손가락을  자르려고 하였는데, 김백문이 만류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남한사회에서는 이른바 성혈 전수(피가름)의 의례가 이렇게 전수되고 있었는데, 이 의례를 일종의 구원의례로 여긴 사람 중 하나가 훗일 전도관을 창교하는 박태선이었다. 박태선이 피가름 행위에 참여한 것은 1949년이었다."

[출처] 김흥수 교수- ‘한국교회 이단이란 무엇인가?’ 와 통일교 분석|작성자


1960.4.11, 40세인 문선명씨는 18세 여고3년생인 한학자와 어린양 혼인잔치를 했고 14명의 자녀를 낳았음(이단종합연구 이대복저 p.7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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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나이로 최근에까지 만16세면 부모의 허락으로 충분히 결혼할 수 있는 나이였다.(지금은 18세로 바뀌었지만) 그리고 1960년대는 얼마든지 어린 나이로 남녀가 결혼하는 것이 허용되었다고 한다. 내가 아는 할머니는 그 즈음에 15세에 시집을 왔다고 했다. 이것이 어떻게해서 성문란인지 원세호씨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원세호씨 어머니는 몇세의 나이에 결혼했는지 묻고 싶은 것이다. 문샘은 실제로 '45년부터 하나님의 명으로 월북하여 광해교회를 세우는 등 여러 집회소를 두고 원리 곧 새말씀을 전하면서 한국전쟁, 부산피난민생활 등 1960년까지 숨가쁘게 살아왔다. 1955년엔 그 유명한 이화여대사건으로 서대문감옥을 가기도 하는(음란죄로 구속되나 완전 무죄 석방됨) 등 통일교에는 초창기 수난의 연속이었다. 그러니 재혼 그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 더우기 한 아내에게서만 13자녀 이상을 두어야 '야곱의 4 아내 간의 갈등과 대립'을 탕감복귀할 수 있기 때문에 더더욱 결혼대상자가 나이가 어릴 수 밖에 없었다고 보는 것이다.


합동결혼식:1960.4.11 교주와 그의 부인 한학자와 결혼을 시작 1960.4.16. 3가정, 1961년 33가정, 1962년  72가정, 1963년 124쌍, 1968년 430쌍, 1999.2. 4만쌍(한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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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을 축복결혼시킨 것도 문샘의 성문란 항목에 들어간단 말인가? 아님 문샘이 제자들을 성문란하게 가르쳤다는 말인가? 참으로 주제와 관련없는 내용이로군요.


1951년도 부산 수정동에 있는 장**박사의 며느리 김모연인과 복귀사건(혼음사건)

특히 모녀 두 딸을 각각 복귀식을 한 경우(혼음)도 있다.

장녀는 청진동에서 어린양잔치를 했고, 차녀는 1964년 도미하여 사무엘 문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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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이 끝나지 않은 상황이고, 아무 것도 없이 월남한 피난민 입장에서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판인데 무슨 혼음을 했다고 이렇게 흉악하고 사악한 거짓말을 날조하여 세상에 전한단 말인가? 금수만도 못한 놈! 두평남짓한 토담집에서 살거나 이집저집 전전하면서 무슨 혼음을 했다고! 장**박사의 실명이나 공개하라!  며느리 김모여인과 모녀 두 딸도 마찬가지로 실명이나 공개하라! '51년에 두 딸과 복귀식을 했으면 그 딸들로부터 수도 없이 많은 자녀들이 탄생했을 것 같은데 그 자녀들에 대해선 왜 언급이 없는 것인가?  그리고 차녀가 '64년에 도미하여 사무엘문을 낳았다고! 아니 문샘의 최초 미국 방문은 1965년인데 이게 어떻게 설명되죠. 차녀만 먼저 임신을 시켜 '64년에 도미시켰다는 것인지? 참으로 묘한 설명이군요.


※ 한마디로 기독교목사들의 새빨간 거짓말 잔치들의 시리즈로군요.
최근에도 그랬죠.
청소년순결운동본부에서 순결 캔디를 만들어 청소년에게 먹일 때 그 캔디에 문샘의 정액을 넣었다고 흉악한 거짓말을 했었던 이들! 외환위기 때는 통일그룹이 부도맞았는데도 불구하고 돈이 넘쳐 한국을 돈으로 사서 국교를 추진했다고 하는 간악한 유언비어를 퍼뜨렸었던 이들! 정말 금수만도 못한 기독교 목사들! 추하기 이를데 없는 자들! 언제까지 세상을 미혹할 참인지. 그들의 거짓말에 속아 그대로 전하는 무뇌충같은 기독교 양들은 또한 어떤가!


미국, 한국, 일본 등의 여인들을 앞세워 의원들에게 성공세를 퍼붓고 현장녹음 위협했던 사건이 폭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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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 의원들을 놓고 성공세를 했다면 벌써 통일교는 망했을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하나님! 인간의 배신으로 만신창이가 되신 하나님! 원세호씨를 포함한 당신의 목자들이 왜 이렇게 참혹한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까?
상상할 수 없는 거짓말로 불쌍한 국민들을 미혹하는데도 가만 두시냔 말입니다. 엄연한 인간인 예수님을 신으로 둔갑시켜 신격화시키는 그들이 오히려 통일교가 인간인 문선명 샘을 신격화시킨 바 없는데도 신격화한다고 세상에 전하고 있는 꼴을 보는 것도 가슴아픈데 순결을 목숨처럼 생각하는 우리들이 어떻게 미인계(성공세)를 써서 의원들에게 성상납을 한다고 흉악하고 흉칙하고 더러운 거짓말을 하니 전 어떻해야 합니까? 

인간의 배신으로 만신창이가 되신 하나님!
이렇게 사악하기 그지없는 기독교 목사들을 하나님 어떻게 처리할렵니까?
제가 이들 사악한 자들을 용서해야 하는 것인가요?
당신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70번씩 7번이라도 용서하라 하셨고... 통일교 창시자이신 문선명 샘은 원수와 결혼할 수 있어야 천국간다고 하셨는데...(참사랑의 뜻) 전 정말 이 원수같은 자들을 무던히도 저주하고 싶은데... 님들은 값없이 용서하라 하니 전 어떻게 해야 한단 말입니까?
당신들의 요구 조건은 저에겐 너무 가혹합니다.

이상 평생 참사랑의 화신으로 사시고 있는 문선명 샘을 존경하는 통일교인이 전합니다.


 

[출처]
재림 '메시아'를 죽인 기독교!!  | 작성자 / 실로암


평화밀사님! 부탁이 있습니다. 사악한 짓!으로... 신성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통일교를 흠집내기 위해! 기독교가 비방의 글로 일삼아 개! 지랄을 밥먹듯 하는 john91jk91 블로그에 전해주시오 실로암님은 사악한 놈!의 스팸신고로 전할수가 없군요? 네 놈!들의 사악한 짓을 이젠! 인정하는 구나!!  http://kr.blog.yahoo.com/ubtoto88/1028 올리는 댓글까지 삭제을 하는 걸 보니 알만 하구나! 스팸이라 신고를 해 간사하고 사악한 것, 네 넘!이 하나님 아버지의 깊은 뜻을 어찌 알 겠느냐? 한심한 놈! 왜 '사악한 헛소리와 기독교!!' 글은 올리는 즉시 삭제하는 것이냐? 사악한 너희의 정체가 들어나니 부끄러운 것이냐? 열심히 삭제 해보거라 한심한 놈!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라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마16 : 27] 그러니 네 놈! 이라고 욕을 처먹는 것이니라 잘 알겠느냐? 그리고 똑! 똑히 알찌어다. 사악한 너희 기독교의 핍박과 반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뜻이 40년이상 연장 되었다는 것을...

분명히 예수님은 말씀 하셨다. [마11:13],“모든 선지자와 율법이 예언한 것은 요한까지니”라고! 아직도 무지한 자들이 구약을 생각하며 기다리므로 누가복음 18장 8절으로 예수님은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하시고 누가복음 17장 20절에 “하나님의 나라는 볼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라고 하셨는데! 도대체 너희는 무엇을 바라고 기다리느냐? 만일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하늘로부터 재림[再臨]하신다면, 이러한 예수님을 모시고 받들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말4:5] 엘리야 처럼! 예수님이 지상에서 탄생하시는 몸으로 나타나시면 기독교에 이단자[異端者]로 몰리어 고난을 당하게 될 것이 예상되었기 때문에, [눅17:25]에 '이 세대에 버린 바 될 것'으로 말씀 하셨던 것이다. 너희가 바라는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는 볼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누가복음 17장 20절,동22절에 “인자의 날 하루를 보고자 하되 보지 못하리라”고 하신 말씀이 있다. 그러니 [계1:7]절로 오시는 주님을 찌르는 인간들이 바로 네 놈!들 기독교인들 이니라.


'인자의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눅17:26].


"It will be just like this on the day the Son of Man is revealed.

마태복음24장
37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As it was in the days of Noah, so it will be at the coming of the Son of Man.
38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For in the days before the flood, people were eating and drinking, marrying and giving in marriage, up to the day Noah entered the ark;
39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and they knew nothing about what would happen until the flood came and took them all away. That is how it will be at the coming of the Son of Man.

데살로니가전서 5장
4~6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하여, 깨어 있는 자들에게는 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몰래 임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새천년을 맞이하면서 하나님의 섭리는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된 것이다. 문선명선생의 섭리적 삶을 통해 이 땅에 하나님의 왕권이 정착된 것이다. 지난 2001년 1월 13일 참부모님 주재로 경기도 청평 국제수련원에서 "하나님 왕권 즉위식" 이 거행됨에 따라 창조본연의 새로운 질서가 세워지고 선주권(善主權)의 세계가 출발하고 있다. 물론 섭리적 변화란 섭리의 눈을 가진자에게만 보인다. 그래서 '늘 깨어 있으라'고 성서는 가르친다. 그로부터 역사적인 2004년 3월 23일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현직 국회의원들의 추대로 ‘평화의 왕’ 대관식이 거행되었다는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참부모님께서는 천일국시대의 만왕의 왕으로써 세상 앞에 선포를 하시게 된 것이다.

"이 땅에 65억 인류가 살고 있지만 그 어느 누구 하나 이해하지 못하는 광야노정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여섯 번의 옥고를 치르면서도 끝까지 섭리의 키를 놓지 않고 살아온 본인의 삶이었습니다".
- 평화 메시지중에서 -


-《 '天宙平和의 왕' 대관식 》-
http://kr.blog.yahoo.com/ubtoto88/16

-《 '天宙平和의 왕' 참부모 》-
http://kr.blog.yahoo.com/ubtoto88/11


                     [동방의 등불]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기에

                      빛나던 등불의 하나인 코리아

                      그 등불 다시 한번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마음에 두려움이 없고

                      머리는 높이 쳐들린 곳

                      지식은 자유롭고

                      좁다란 담벽으로 세계가 조각조각 갈라지지 않은 곳

                      진실의 깊은 속에서 말씀이 솟아나는 곳

                      끊임없는 노력이 완성을 향해 팔을 벌리는곳

                      지성의 맑은 흐름이 굳어진 습관의 모래 벌판에 길 읺지 않은곳

                      무한히 퍼져 나가는 생각과 행동으로 우리들의 마음이 인도되는 곳

                      그러한 자유의 천당[천국]으로

                      나의 마음의 조국 코리아여 깨어나소서.
                                                                                                           - 타고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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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의 기도 [소망 편]


      
  

      아버지께 영광 찾아드릴 수 있는 자녀 되게 하소서

 


       사랑하는 아버님이여!

       눈물과 눈물이 교류하는 그 한 곳에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천륜의 정리(情理)가

       통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천륜의 정이 통하는 곳에는

       생명의 인연이 연결되어서

       천상에 감추어졌던 사랑의 인연이

       나타나게 되는 것을 알고 있사옵고,

       또한 그것이 땅을 통하여 이어져야 하는 것이

       천륜의 법도인 것도 알고 있나이다.

 

       아버님!

       하늘의 소원하시는 복귀된 동산은

       전체가 사랑의 동산이요,

       승리의 동산이요,

       영광의 동산이라는 것도 알고 있사옵고,

       그러한 동산을 이루기 위하여,

       오늘날 저희 일신이 봉사의 생활을 통하여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생명과 사랑과 영광을 다시 찾음과 동시에,

       자기 자신을 가다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도 알고 있나이다.

 

       그러하오니 아버지여,

       창조 이래 품어 오셨던 복귀이상의 기준을

       저희를 통하여 세우시옵소서.

       그리하여 그 기준을 터로 하여

       천년왕국을 건설하고

       아버지의 이상권(理想圈)까지 나아감으로써,

       억조만년 영원무궁토록 미쳐지는

       아버지의 내적 심정을

       이 땅 위에 있는 인간들이

       온전히 옮겨 받을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하늘땅을 대신한 존재로서

       사탄 앞에 참소받을 수 있는

       어떤 조건 하나라도 남기지 않고

       완전복귀를 성사하여 완결지어 드릴 수 있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전체 가치의 영광을

       다 찾아드릴 수 있는 자녀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인간이 알지 못하는 생활에 있어서,

       마음에 있어서,

       생명력에 있어서,

       사랑의 노정에 있어서 승리의 주인공이 되지 못하면

       그러한 일이 완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고,

       사탄과의 싸움에서 끝까지 승리하지 않는 이상

       그 일이 완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저희가

       하나에서부터 전체의 싸움과정을 거치어

       아버지 앞에 서서

       아버지의 마음을 저희의 마음으로 옮겨받기 위하여

       축복의 말씀을 아뢸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옵고,

       승리의 인연을 조성하여

       아버지의 뜻을 대신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의 모든 것을

       아버지의 것으로 돌려드리고

       사탄 대하여 싸워 승리함으로써

       아버지의 영광의 유업을 계승할 수 있는 자,

       만물을 완전히 복귀하여

       승리적인 주인공의 자격을 갖춘 자가 될 때까지,

       아버지,

       보호하여 주시옵고,

       성삼위신이 협조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오면서,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써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

 

                                                                  - 1956년 7월 3일 -   




             영광의 왕관




▲  위 시는 문선명선생께서 하늘의 소명을 받은 16세때 쓰신 작품으로 2002년 세계시인협회에서 주관하는 세계 시경시대회에서최우수상을 수상했습니다.






      과학적 신관
[
神觀] 
                                                                                                              작성자 /  선문대문화컨텐츠학과  김성배 교수


이글은 지난 11월 28일부터 12월 2일까지 일본 동경의 게이오 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제20차 통일사상 국제 심포지엄에서 행한 기조연설입니다.

  

인류의 사상사의 흐름을 단적으로 표현해 볼 때, 그 기저에 거대한 神觀의 싸움이 깔려 있습니다. 인류역사는 有神論과 無神論의 싸움, 그리고 여러 형태의 신관을 놓고 한판 승부수를 건 신관의 투쟁의 역사라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닙니다. 플라톤이 세운 인류 최초의 대학인 ‘아카데미아’와 그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가 세운 리케이온학파의 학문의 기반도 신학이었습니다. 신학(theology)라는 말을 최초로 사용한 사람도 플라톤이었고,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인 세계관의 궁극적 정점에도 不動의 원동자(Unmoved Mover), 즉 神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의 신은 형상의 형상(eidos of eidos)으로서, 순수한 정신적 존재이며 이 신관이 스콜라 철학을 거쳐 기독교 정통신학의 신관의 기초로 자리매김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는 것처럼, 중세시대 전체를 흔들었던 보편논쟁의 사상적 논쟁의 중심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신관이 있었고, 이 신관이 가톨릭 역사의 정통 異端論爭의 척도였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근세는 물론, 현대문명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중세문명의 영향을 벗어나려는 끊임없는 치열한 투쟁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근세와 현대 과학문명의 배후에 깔려있는 무신론 사상들은 바로 중세시대부터 제기되어온 기독교 정통주의의 신 개념에 대한 도전에서부터 출발되었기 때문 입니다.  

현대에 이르러 마르크스와 다윈, 프로이드, 과학적 유물론 등은 과학의 이름으로 기독교의 신관에 도전하였고, 니체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신 죽음의 신학이나 현대철학의 주류를 이루는 논리 실증주의도 이 기독교 신관과의 싸움이었습니다. 현대문명은 실로 기독교 정통주의의 하나님과 한판의 대판 승부를 가르는, 치열하고도 지독한 신관의 싸움의 전쟁터에서 발생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기독교 정통주의의 신관이 올바른 신관이었다면 현대문명의 무신론적인 도전은 의미를 잃고 패배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태는 그렇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서, 무신론적인 도전들이 오히려 판세를 장악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生物學 분야에선 다윈의 進化論이 과학적 진리인 것처럼 행세하여 전 세계 모든 교육현장에서 학습되며 무신론적 생물학을 培養해 나가고 있습니다. 헤겔 좌파인 슈트라우스는 하나님 대신에 다윈의 진화론이 세계를 보다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뛰어난 이론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는 그리스도 대신에 다윈의 진화론이 倫理의 근거가 된다면 하나님의 은총이나 연민, 사랑 등 윤리 대신에 ‘만인에 대한 투쟁’과 ‘적자생존’(survival fittness)의 강자의 힘이 새로운 윤리가 될 것이라고 예견하였습니다.  

다윈은 하나님의 ‘창조’를 ‘자연선택’으로 대체함으로써 하나님의 창조 없이도 원숭이 같은 생물 종은 자연선택에 의해서 인간으로 진화한다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원숭이가 인간으로 진화했다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함으로써 인간적인 분노의 감정에 호소하려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약동과 창조의 신비로움을 싸늘한 유물론적 생물학과 기계론으로 환원해 버린 진화론의 비정함을 지적하려 합니다. 그러면 적자생존의 투쟁사상과 생명에 대한 무자비성, 그리고 정작 진화론이 갖는 교리인 무신론에서 배제된 신, 다시 말하면 생물학과 생명현상에서 배제된 하나님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습니까?  

과학적 유물론의 배후에는 과학적 지식이 가장 믿을만한 실증적 지식이라는 전제와, 물질이 세계의 가장 기본적인 실재라는 전제의 두 가지 전제가 깔려있습니다. 과학적 유물론자들은 과학만이 객관적 지식이고 보편적 지식이며 동시에 진보적이라고 주장합니다. 과학적 유물론에서는 물리현상, 자연현상, 심지어 생명현상도 기계론에 의존하여 설명되며, 모든 과학의 영역은 궁극적으로 唯物論으로 還元될 수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과학적 유물론에는 하나님이 개입할 여지가 전혀 없습니다. 과학자들은 하나님의 보조 가설 없이도 물리, 화학, 생물학 등 여러 경험과학의 분야를 성공적으로 정립할 수 있으며, 하나님을 배제한 채 유물론만으로도 성공적인 과학의 탐구가 가능하다고 강조합니다. 천체물리학자 사강(Carl Sagan)은 과학적 방법만이 영원한 우주에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으며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과학의 궁극성에 위배되고, 인간의 공경의 대상은 하나님이 아니고 자연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과학의 영역에서 배제된 하나님은 심지어 신학의 영역에서조차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동방정교회의 배후에는 플라톤의 철학이 있으며, 가톨릭교회의 배후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있으며, 프로테스탄트 개신교의 배후에는 칸트의 철학이 그 기초적 사상을 제공한다는 것은 이미 주지되어 온 사실입니다. 그러나 기독교 정통주의 신학은 중세의 신학 논쟁을 통해 형성된 가톨릭에 기초하며, 따라서 역사적으로 그 신학의 기초를 정초한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과 신관이었다. 오늘날 니체가 신의 죽음을 선포한 이래 신학 내부에서 일어난 신 죽음의 신학은 기독교 정통주의의 정신적 신관에 대한 저항과 거부의 몸짓으로 그 특징을 드러냅니다. 신 죽음의 신학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신적 신관이 성서종교인 기독교와 아무런 관련성도 없다는 것을 선언하면서, “도대체 아테네와 예루살렘이 무슨 관계가 있느냐?”는 형태로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성서종교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적 신관을 排除시킬 것과 성서종교의 전통에서 새로운 신관을 정립하자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론을 그들의 신관으로 대체하고 있습니다. 이 도전은 신관의 투쟁사에서 매우 치열한 싸움의 한 측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신 죽음의 신학이 내세우는 예수그리스도 자신을 성서에서 계시된 신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역사적 예수를 하나님 자신으로 이해한다면 구약의 전승사에서 나타난 창조의 하나님과 이스라엘 구속사를 통해 섭리해 온 초월적 하나님은 아무 의미도 없기 때문 입니다. 여기서는 이 문제를 더 깊이 다룰 수 없지만, 결론적으로 기독교 정통주의의 첫 번째 오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신적 신관을 기독교 정통주의의 신관으로 받아드린 것이고, 두 번째 오류는 아버지의 신과 아들의 신 예수를 三位一體論으로 일치시킨 교리입니다. 성서는 성부와 성자의 존재론적 차이를 분명히 지시하고 있으며, 창조주 하나님과 역사적 예수를 동일시하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역사적 오류에서부터 헤겔 철학이 잘못된 전제로 출발하며, 세속신학과 신 죽음의 신학과 같은 엉뚱하기 짝이 없는 논리의 신학이 출현하게 되었습니다.

정통 기독교의 신관에 반해 현대의 과학문명은 과학적 유물론과 무신론적 신관을 제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여기서 무신론을 신관의 한 형태로 명명한 이유는 현대사상의 무신론적 기조가 매우 강력한 조류를 형성하고 있어서 ‘신론’을 단지 거부하는데 그치지 않고 전투적인 무신론적 패러다임을 구축하려는 맹목적인 종교적 성향을 띠기 때문입니다. 비유하건데, 현대의 과학문명은 하나님을 퇴위시키고 추방하여 사상적인 혁명과정을 거쳐 하나의 무신론적 정권을 수립하려는 일종의 권력투쟁의 양상을 띤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가치중립적 과학’의 기치를 내세우면서 보편적이며 객관적인 지식을 자랑하던 과학은 자신의 의도와 달리 가치편향적인 性向을 드러내게 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과학은 객관적인 사실들을 설명하기 위한 이론탐구의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과학자들은 어떤 전제를 깔고 과학적 탐구를 수행하게 됩니다. 그 전제와 편견이 곧 유물론과 무신론입니다. 그런데 유물론과 무신론은 객관적인 사실을 탐구하는 과학의 영역을 벗어나는 일종의 가치체계입니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알게 모르게 唯物論과 無神論의 가치체계를 전제로 과학적 탐구를 수행하고 있는데, 이것이 오늘날 과학이 처한 실상이며 가치중립성을 강조하는 과학의 아이러니이기도 합니다. 
 
현대인들, 특히 현대의 과학자들은 과학-유물론의 패러다임과 과학-무신론의 패러다임을 무의식중에 받아드리고 과학이 마련해준 정원에서 느긋하게 소일거리를 즐기고 있습니다. 과학자들에 있어서 과학-무신론의 패러다임이 성립할 수 있다면, 역으로, 과학-유신론의 패러다임도 성립할 수 있겠지만, 과학자들은 그것을 애써 외면하고 있습니다. 과학에서 하나님을 배제하고 과학-유신론의 패러다임을 배척하면 할수록 더욱 과학다운 과학으로 인정되며, 과학에서 무신론을 선포하고 과학-유물론의 패러다임을 주장하면 할수록 훌륭한 과학으로 인정되는 무신론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입니다. 급기야 과학의 정원에서 과학-무신론의 패러다임은 정통 적자로 군림하고 과학-유신론의 패러다임은 이단적인 것으로 위축 되어버렸습니다.

원래 갈릴레오, 케플러, 뉴턴 등 대부분의 근세 과학자들은 과학-유신론 패러다임의 신봉자들이었습니다. 뉴턴의 물리학은 무신론자들의 도전에 대해서 신을 증명하기 위한 동기에서 시작하였습니다. 역학과 물리학, 천문학 등의 근세 과학은 우주법칙에 내재한 하나님을 찾아나서는 작업으로 고무되었습니다. 그런데 무신론이 난무하는 현대사회에서 과학이 처한 사정은 처음과는 다른 양상을 띠게 되었습니다. 과학의 영역에서 하나님을 배제시킨 현대 과학자들은 이젠 하나님뿐만 아니라 정신(의식)까지도 그 영역에서 추방하려고 시도 합니다. 그들은 치밀하게 준비한 과학-유물론의 패러다임을 구축함으로써 과학의 영역에서 하나님과 정신을 모두 추방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순수한 유물론만을 옹호하고 유물론자로 남아있으려는 경향을 뚜렷하게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무신론시대에 걸맞게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그 대세에 밀려 과학-무신론 패러다임에 그냥 편승하려는 경향을 보입니다. 그런데 과학-무신론과 과학-유물론의 한 쌍의 패러다임은 단순성에 호소한다는 장점도 지니고 있습니다. 과학에서 이 한 쌍의 무신론과 유물론의 패러다임은 하나님이나 정신의 매개변수를 도입하지 않고도 물질만을 함수로 한 과학이론을 세울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흔히 칸트-라플라스 가설로 불리는 성운설을 밝힌 라플라스는 “과학에서 하나님을 가정할 필요가 없다”고 역설하였습니다. 그들은 과학에서 하나님과 정신을 배제한 과학적 유물론이 단순한 이론을 선호하는 과학의 이상에 오히려 걸 맞는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단순한 이론일수록 좋은 이론이라는 과학의 목표와 맥락을 같이한다고 자랑합니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과 정신을 배제할수록 훌륭한 과학자가 될 수 있다는 역설이 성립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상황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과학은 하나님과 정신을 매개변수를 고려하지 않으면 과학이 처한 상황을 타개할 수 없을 정도로 위기에 몰렸으며, 더 이상 전진할 수 없는 한계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물리학의 양자이론과 빅뱅이론, 카오스이론, 그리고 뇌 생리학의 최신 이론의 배후에는 분명히 우주의 설계자에 대한 구상과 우주 전체의 생명체적인 관련성의 유신론적 패러다임이 깔려있습니다. 노벨상을 수상한 에클스의 뇌 생리학과 또 다른 노벨 수상자인 프리고진의 산일구조(질서를 만들어내는 창조의 구조)에서는 정신의 실체성과 유신론적 패러다임을 명료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유신론과 무신론은 가치체계입니다. 그리고 과학에서 유신론과 무신론은 둘 다 동시에 진리일 수 없습니다. 그 중 어느 하나는 진리이며 다른 하나는 거짓일 수밖에 없습니다. 엄밀하게 보면 ‘가치중립적’이라는 과학의 이상은 일종의 환상이며 과학적 신화에 불과합니다. 과학은 가치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가치 의존적이며, 따라서 가치를 떠나서 성립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실(과학)과 가치를 전혀 별개로 본 칸트의 사실-가치의 이분법은 설득력을 잃게 되었으며, 가치를 떠난 맹목적인 사실은 성립할 수 없음이 입증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꽃을 볼 때, ‘꽃이다’라는 사실판단과 그 꽃을 보고, ‘아름답다’라는 가치판단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얽혀져 그 ‘아름다움’과 ‘꽃’을 한꺼번에 보면서 우리는 미소를 짓습니다. 우리는 ‘꽃(사실)’과 ‘아름다움(가치)’을 따로 보고 판단하지 않습니다. 이 단순한 일상의 경험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사실의 가치의존성은 사실에 기초한 과학에서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모든 사실은 가치 의존적이고 사실에 기초한 과학도 가치 지향적입니다. 그 점에서 플라톤은 옳았고 칸트는 틀렸습니다. 과학은 유신론이든 무신론이든, 그리고 유물론이든 물심이원론이든 어느 한편의 가치체계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이 양자를 모두 수용하거나 모두 거부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절대가치의 기초 위에 과학이라는 건축물을 세우려고 뜻하신 문선명 선생님의 통찰력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국제통일과학회의를 제창하고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여 하나님 중심의 새로운 문명을 창조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 선생님의 눈물과 땀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선생님이 제창하신 절대가치는 하나님을 중심한 가치이며, 그 회의는 하나님 중심의 과학세계의 건설을 의미합니다. 선생님이 제창하신 절대가치는 플라톤의 신(Teos)인 선의 이데아를 상기시키는데, 플라톤에 있어서 신은 곧 가치의 기준인 절대가치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국제통일과학회의는 무신론적인 시대에서 추방당한 하나님을 되찾아 하나님을 중심한 문명을 건설하기 위해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필연적인 과업입니다. 국제통일과학회의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현대 과학문명을 해석하는 문 선생님의 관점을 이해해야 하며, 나아가 과학과 절대가치, 하나님에 대한 정의, 그리고 긴박하게 그 회의를 주재하지 않을 수 없는 시대적 필연성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국제회의가 현대 과학문명에서 잃어버린 하나님과 절대가치를 어떻게 회복하여 되찾아 오는가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현대 문명에서 잃어버린 하나님은 누구이며,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현대문명에서 가장 궁극적이고 현실적으로 중요한 주제는 하나님의 문제이며, 올바른 신관을 정립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고 근본적인 작업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은 새로운 神觀을 정립하는 통일사상의 작업과도 관련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혹자는 통일사상을 신학이 아닌가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철학과 신학은 모두 하나님을 탐구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공통적이지만, 철학은 이성을, 그리고 신학은 신앙을 바탕으로 탐구한다는 점에서 다릅니다. 이처럼 신학이 신앙을 통해서 啓示를 추구한다면, 철학은 이성을 통해서 眞理를 추구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통일사상은 신앙을 전제하지 않기 때문에 계시를 근거로 한 계시신학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신학이 다루는 주제를 이성의 범위에서 다루는 한, 그것은 통일사상의 탐구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통일사상은 문선명 선생님의 말씀 중에 보편적인 사상과 가르침에 주의를 기울이고, 우리의 이성에 의해서 알려진 진리를 체계화하려 합니다.

세계의 학자들은 통일사상이 신학이나 철학은 물론,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그리고 예술분야에 이르기까지 학문의 전반을 다루고 있다는데 놀라움을 표시할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한다는 측면에서 또 한번 경탄하게 됩니다. 통일사상의 옳고 그름을 떠나 그것이 학문의 모든 분야를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대해 적지 않은 놀라움을 표시합니다.
그렇다면 통일사상은 철학입니까, 신앙체계입니까, 이데올로기입니까, 아니면 학문이론입니까? 세계학자들에 의한 통일사상의 연구와 토론이 깊어질수록 통일사상의 성격에 관한 문제가 대두하게 됩니다. 통일사상의 하나님 이해는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론적으로 혹은 도덕적으로 논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참다운 모습을 확실하게 아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문선명 선생님은 자연만상과 성서의 핵심적 내용을 세밀하게 연구한 끝에 하나님은 이성성상의 하나님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 후, 그것을 우주 자연과 역사와 성서의 내용에 각각 적용해 보았고, 그것이 틀림없다는 확신을 얻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 이해에 관한 통일사상의 방법은 과학에서 사용하는 가설 연역적 방법과 같은 학문 이론의 방법론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과학에서 통용되는 뉴턴의 역학이론, 이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등의 과학이론에도 기본적으로 가설 연역적 성격을 갖습니다. 오늘날 과학이론은 경험을 근거로 한 귀납의 과정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과학자의 직관과 상상력에 의해서 가설 연역적으로 얻어진다는 것이 널리 통용되게 되었습니다. 과학이론은 ‘경험’과 ‘귀납’을 기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성’과 ‘연역’에 기초하여 만들어집니다.

이처럼 과학이론은 근본적으로 가설 연역적 성격을 갖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종교적 진리와 과학적 진리는 심리학적인 면에서 서로 유사한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계시나 종교적 직관에 따라 이곳저곳을 순례하는 아브라함의 삶이나, 과학적 직관에 따라 이런저런 이론을 제시하는 과학자의 삶은 모두 직관과 추론, 상상력, 그리고 그렇게 될 것이라는 미래에 대한 믿음에 의존합니다.

原相論에 대한 통일사상의 방법론은 과학적 방법론과 마찬가지로 가설 연역적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방법론적인 면에서 살펴볼 때, 통일사상의 원상론은 가설 연역적 체계입니다. 그런데 과학적 이론과 마찬가지로, 직관적 앎을 통해 얻어진 원상론의 그 이론체계가 단순히 가설적 체계에 머물지 않고, 진리로 남아지기 위해서는 경험적 사실에 의해서 검증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통일사상의 원상론은 우주 자연이나 인류역사, 그리고 성서의 어느 내용에 적용시켜 보더라도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을 증명해 주기 때문에 여러 가설 중에 하나의 가설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확고한 기반을 갖춘 이론이요 진리 체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통일사상에서 인간의 문제, 우주만물의 문제, 사회와 세계의 문제, 그리고 예술, 가치, 문화, 역사, 교육 등 여러 문제들은 모두 하나님에 관한 원상론에서 도출되는 이론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상론은 모든 이론의 근거가 되며 기준이 되는 이론인 것입니다. 그리고 원상론은 단순한 가설체계가 아니라 모든 학문 영역에서 경험적 사실로 확인되고 검증된 것이므로 확실한 학문의 이론체계이며 진리체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통일사상의 진면목을 금년(2008년) 9월4일부터 4일간 일본 아타미 시에서 ‘제1회 국제 통일사상 전문 세미나’를 통해서 볼 수 있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모인 25명의 물리학 전공 학자들은 ‘통일사상으로 본 물리학’의 주제를 열띠게 토론하였고 훌륭한 성과를 거두게 되었습니다. 지면 관계상 자세히 언급할 수 없지만 그 국제회의를 통해, 현대의 물리학은 통일사상의 이론적 정당성을 입증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였고, 통일사상을 기반으로 한 물리학을 정립하자는데 의견을 모았습니다. 신학이나 철학보다 오히려 순수 학문인 물리학이 통일사상의 이론체계와 잘 조화된다는 사실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고 봅니다. 통일사상이 진정한 학문이론이라면, 그것은 신학이나 철학은 물론 물리학을 필두로 한 자연과학, 사회과학, 인문학, 예술분야에 이르기까지 그 이론적 우수성이 입증되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통일사상은 신학이나 철학 등 특정 영역의 학문이 아니라, 과학을 포함한 모든 학문의 기초학문으로서 학문의 방법론과 체계를 갖추고 있으며 모든 학문이 그 기초위에 세워질 수 있는 진정한 학문 이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신이 죽었다고 비웃으며 신 없이도 잘 살수 있다는 세속화 문명 속에서 신의 現存을 선포하고 신을 찾아 모시어 모든 학문의 영역에서 유신론적 가치관과 유신론적 패러다임을 구축하려는 ‘하나님주의 사상’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心情인 절대가치를 기반으로 모든 학문을 체계화하여 학문 본래의 위상을 정립하려는 문선명 선생님의 사상이기도 합니다. 실로 인류 최초의 대학인 아카데미아의 목적도 선의 이데아(절대가치), 즉 신을 정점으로 한 학문의 구축에 있었으며, 이 학문의 이상은 통일사상의 학문 모델을 통해 비로소 본래의 위상을 회복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과 국가에 하나님의 은총이 풍만하길 기원합니다.





[출처]
<天一의 窓> 과학적 신관[神觀] 
 / 작자 | 실로암 



      원상론[原相論]                                                                                                    
                                                                                                              작성자  /  선문대문화컨텐츠학과 김성배 교수


1975년 자유월남이 패망한 후 세계의 세력균형이 역전되어 미국이 소련으로부터 몰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미 미국 턱 앞에 있는 쿠바와 니카라과의 적화에 성공한 소련은 멕시코에 이어 미국을 용공화(容共化) 시킨다는 전략을 갖고 있었습니다. 미국의 정계(政界)와 관계(官界)에 소련 KGB의 앞잡이들이 침투하였고, 미국에서 승공운동을 주도하는 통일교회를 말살하기 위해서 미국 하원의 프레이저 청문회가 열린 것도 바로 이때였습니다. 문선명 총재님은 이 청문회에서 통쾌히 승리하셨고, 그렇게 기세등등하던 프레이저 의원은 이듬해 열린 선거에서 참패하여 영원히 정계에서 은퇴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조국 대한민국이 잠들어 있을 때에도 문 총재님은 세계도처에서 공산주의의 적화야욕과 싸우셨습니다. 세계도처에서 공산당 활동이 저지되자 소련 KGB는 뒷조사를 하여 그 배후에 문 총재님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문 총재님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꾸몄습니다. 그리하여 1987년 11월에 일본의 좌익 테러집단인 적군파 25명을 동원해서 미국 동부의 문총재님의 숙소에 침투시켰습니다. 그런데 문총재님 숙소의 인근 도시에 접근한 후 이들이 활동을 개시하였지만, 하나님이 보우하사 도로상에서 경찰의 불심검문에 발각되어 체포되었기 때문에 모든 계획이 폭로되었습니다. 이 사건의 전모는 미국 CIA에 의해서 공식적으로 확인된 사실입니다. 당시 소련의 고르바쵸프는 암살계획을 배후에서 사주하였지만, 그 계획이 실패하자 문 총재님이 주재하는 언론인대회에 소련 KGB 요원들을 참석시켜 정보를 입수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대회에서 문 총재님이 고르바쵸프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정책)를 지지하는데 놀라서 그 발언의 진위를 알아보기 위해서 통일교회 운동의 역사와 배후를 세밀히 알아보았답니다. 알아보니 자기들이 조사한 정보가 모두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문 총재님이 한국 중앙정보부나 미국 CIA의 앞잡이 인줄 알고 있었으나, 전혀 그렇지 않을 뿐 아니라 도리어 한국과 미국으로부터 온갖 박해와 감옥에 갇히는 억울함을 당하면서도 옳은 일을 위해서는 물러서지 않고 홀로 꿋꿋이 싸워왔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모스크바 대회에서 역사적인 고르바쵸프와의 만남이 이루어 진 것입니다. 문 총재님은 고르바쵸프에게 소련을 살리려면 하나님을 받아들이라고 충고하셨고, 고르바쵸프는 총재님의 말씀에 따라 소련내에서 종교의 자유를 허락하였습니다.
 
공산주의를 누가 멸망시켰습니까? 공산주의 종주국인 소비에트 연방공화국이 붕괴된 데에는 여러 가지 정치 경제적인 요인을 들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공산주의를 멸망시키셨다고 보아야 하며, 그 섭리의 선봉에 문 총재님이 우뚝 서 계셨기 때문에 공산주의의 멸망이 가능하였던 것입니다. 역사가들은 이 사실을 반드시 역사에 기술할 것입니다. 공산주의는 문 총재님의 손에 의해서 멸망하였다고...

문 총재님은 오직 하나님, 하나님 밖에는 모르시는 분입니다. 문 총재님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을 암살하려한 고르바쵸프를 용서했습니다.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그런 참사랑을 베푼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사랑한다는 것이 매우 나이브하고 비현실적인 방법 같지만, 가장 강력하고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라는 것이 입증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문 총재님이 가르치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입니까? 공산주의의 멸망에 왜 하나님의 문제가 등장합니까? 그것은 공산주의와 자유 민주주의의 싸움은 궁극적으로 무신론과 유신론, 유물론과 관념론의 사상의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아니, 오늘날 까지 인류역사상 모든 철학과 사상의 싸움의 배후에는 神觀의 싸움이 근본적으로 깔려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부정하는 공산주의의 유물론 철학도 알고 보면 나름대로의 무신론적 종교의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공산주의를 종교적 중립성을 지닌 단순한 정치 경제현상으로만 파악해선 안 됩니다.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공산주의의 출현을 가리켜 기독교에 대한 고발이요, 참소라고 하였습니다. 공산주의는 일종의 무신론적 영적 종교현상이며, 전투적 무신론이며,(토인비가 지적한데로)기독교의 사생아인 것입니다.

따라서 공산주의는 모든 문제를 독자적으로 해결하는 일종의 교리와 절대성을 요구하는 일종의 광신적 신앙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공산주의는 기독교의 神에 대한 도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신적 실체로 규정하여 껍데기뿐인 기독교의 神, 현실의 어려움을 외면한 채 저 높은 천상세계에서 觀照하기만 하는 그런 神은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神 대신에 이 땅에서 빵을 탈취하자는 사상이 공산주의입니다.

실존주의 철학자 니체는 神의 죽음을 선포하였습니다. 한때 니체의 사상은 전 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는 서구문명을 지배해온 역사적 기독교의 신관이 잘못되었고, 신을 정신적인 존재로 믿어온 기독교를 고발하였습니다. 그리고 역사적 기독교가 규정한 정신적 신의 죽음을 선포했습니다. 그 대신 그는 나름대로의 神을 찾던 중 大地(땅)의 신을 찬양하고 육체의 열정과 강자의 욕망을 상징하는 超人사상을 외쳤습니다. 대지의 신이 그의 신관이요, 초인사상이 그의 메시아사상인 것입니다. 니체가 신을 버린 것은 나름대로의 진정한 신을 찾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모든 사상적 싸움의 배후에는 신관의 싸움이 깔려있고, 무신론조차도 사실은 신관의 싸움인 것입니다. 따라서 올바른 신관을 제시하는 것만이 이세계의 난문제를 풀 수 있는 유일한 길인 것입니다. 문 총재님이 제시한 신관은 간단합니다. 그러나 이때까지 해결하지 못했던 모든 철학과 사상의 본체론과 신관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해주는 놀라운 진리입니다.
 
문 총재님이 가르쳐준 하나님은 마음과 몸의 통일을 통해서 비로소 만날 수 있는 아버지 하나님입니다. 문 총재님이 깊은 영적체험을 통해서 처음으로 찾은 진리가 바로 하나님과 인간의 父子의 관계입니다. 하나님은 저 천상에서 정신적 관조만을 즐기는 정신적 실체가 아니라, 정신과 물질, 즉 마음과 몸이 합일하는 경지에서 우리의 생활에 구체적으로 현현하는 ‘아버지’인 것입니다. 얼마나 쉽고 간단합니까? 그런데도 인류는 물질이냐 정신이냐, 유신론이냐 무신론이냐 하며  본체론의 문제를 붙들고 얼마나 싸웠습니까?
 
우주의 본체는 정신도 물질도 아닙니다. 정신과 물질은 유일한 하나님의 두 속성에 불과합니다. 정신만을 실체로 보는 관념론과 물질만을 실체로 보는 유물론은 둘 다 옳지 않습니다. 기독교가 보는 것처럼 하나님은 정신적인 존재일 수만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물질적 존재는 더욱 아닙니다.
 
두 번째로 문 총재님이 가르쳐준 하나님은 참사랑으로 하나된 남편과 아내의 사랑의 보금자리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하나님 부모님입니다. 이것은 인류 최초의 한 남자(아담)와 한 여자(해와)가 하나님의 모습(Imago Dei)이라는 성서의 말씀과도 일치하는 내용입니다(창세기1:27). 얼마나 놀라운 발견이고 놀라운 진리입니까?
 
모든 철학이나 종교의 가르침은 여기에 귀결되고 여기에서 완성되어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철학과 종교의 목적이 개인의 완성과 개인의 구원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통일사상에서는 개인의 완성만으로는 인간의 궁극적 완성이 이루어 질 수 없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모습은 참사랑을 통해 완성한 부부의 모습과 완성한 가정에서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추상적이고 정신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가정 안에서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 그리고 형제의 사랑등 분성적 사랑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사랑인 것입니다.
 
이처럼 통일사상의 하나님은 우리 삶의 현실에서 뗄 레야 뗄 수 없는 살아계신 하나님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참된 신관만이 오늘날 종교인과 무신론자, 물질주의와 향락주의, 그리고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이념적 문제까지도 근본적으로 해결해 줄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모든 종교와 사상의 뿌리가 되는 본체론의 문제도 문 총재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완전히 해결될 수 있는 것입니다.




[출처] <天一의 窓> 과학적 신관[神觀] / 작자 | 실로암


      본성론[本性論]
                                                                                                              작성자  /  선문대문화컨텐츠학과 김성배 교수



 1. 김일성 주체사상의 성격
 
문 총재님은 북한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 그리고 남북한이 다 함께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주의를 받아들여서 총재님이 전개하는 하나님의 뜻을 중심한 평화적인 남북통일에 동참하는 길이라고 가르치고 계십니다. 1991년 12월, 문 총재님은 김일성의 초청에 의해 북한을 방문하였습니다. 모스크바에서 고르바쵸프와의 회담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김일성 주석과의 역사적인 만남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문 총재님은 김일성 주석의 면전에서 인간중심의 주체사상으로는 북한이 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역설하시고 하나님주의를 받아드릴 것을 권고하셨습니다. 그 당시 이 말씀은 목숨을 건 용기가 없이는 상상할 수 없는 발언이었습니다. 문 총재님을 수행한 수행원들이 살아서 북한을 빠져나가기는 틀렸다고 생각했을 정도였으니까요. 지금도 그렇지만 1991년 당시 북한이 어떤 곳 입니까?

북한을 지배하고 있는 김일성주체사상의 정체는 과연 무엇입니까? 김일성은6ㆍ25동란의 패전의 책임을 놓고  오기섭(吳琪燮)등의 국내파, 박헌영(朴憲永)을 비롯한 남노당파, 허가이등의 소련파, 무정(武亭)을 위시한 연안파들 모두를 처형 또는 제거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숙청이 끝난 뒤에 김일성은 그동안의 여러 파벌의 주장이 교조주의이거나 사대주의 또는 형식주의에 불과하며, 자기의 주장만이 공산주의의 정통이요, 주류(주체)가 된다고 주장하였던 것입니다. 스탈린주의나 모택동사상과 마찬가지로 김일성주체사상도 피의 숙청을 합리화하면서 1인 독재를 강화하면서 세워진 이론인 것입니다.
 
그리고 1960년에 표면화된 소위 중ㆍ소 이념분쟁으로 말미암아 어느 편도 들 수 없었던 김일성은‘사상에서의 주체, 정치에서의 자주, 경제에서의 자립, 국방에서의 자위’등 4대「지도적 원칙」을 발표하고(1966년 8월), 우상화작업의 일환으로 소위「주체사상(主體思想)」을 당 대회에서 정하게 하였던 것입니다(1966년 10월). 그 후 그것은 김정일에 의해 보완되어「주체사상에 관하여」라는 책명으로 발간되었습니다(1982년).
 
김일성주체사상의「철학적 원리」의 중심이 되는 명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 사람(특출한 물질적 산물)이 모든 것의 주인이다.
② 사람은 그 특성으로서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지닌다.
③ 세계에서 사회적 관계를 맺고 사는 것은 인간뿐이다.
 이 명제들은 공산주의적 표현인 계급적 인간, 모순적 존재, 착취와 억압, 계급투쟁 등의 표현은 한마디도 없고 인도주의적 표현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에 누구나 주체사상이‘공산주의가 아니고 일종의 인도주의, 또는 인간주의’라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사회역사 원리」에서 ‘주체는 인민대중(노동자계급)’이라는 혁명이론의 성격을 본격적으로 드러냅니다. 즉, ①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기 때문에‘인민대중이 역사 발전의 주체’이며, ② 사람의 특성이 자주성ㆍ창조성ㆍ의식성이기 때문에 (ⅰ)인류역사는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위한 투쟁의 역사이고, (ⅱ)인민대중은 역사와 사회를 창조적으로 변혁(혁명)해야 하며, (ⅲ)인민대중은 모두 자주적인 사상의식, 계급의식을 가지고 혁명투쟁에 나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상에서 보듯이 김일성주체사상은 겉으로는 인도주의나 민족주의 같지만 깊이 들어가 보면 계급투쟁과 폭력혁명을 목표로 하는 완전한 공산주의 이론인 것을 알게 됩니다. 그것은 마르크스ㆍ레닌주의의 알맹이에 인도주의와 민족주의의 껍질을 입힌 작업이었습니다. 북한에서는「김일성주체사상」의 명칭을 선전하면서, 주체성을 가진 자비로운「어버이 수령」으로 인도주의와 민족주의를 부각시키려고 하지만, 실은 계급투쟁의 혁명이론인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주체사상에서 진정한 ‘주체’는 누구일까요?「사회역사 원리」에서는 인민대중(노동자계급)을 혁명의 주체로 내세우지만,「수령 영도령」을 보면, 진짜 주체는 공산당을 이끄는 어버이 수령 김일성 뿐 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김일성은 지구상에 없지만 여전히 북한을 철옹성처럼 지배하는 것은 주체사상의 진짜 주체인 김일성입니다. 북한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대형 선전물은 “김일성 수령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선전문구입니다. 김일성의 생물학적인 생명은 끝났더라도 사회 정치적 생명은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상적인 부활을 믿는 주체사상이 종교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주체사상이 일종의 무신론적 전투적 종교이며 북한사회는 일종의 열광적인 종교집단이라고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종교적 신앙에 가까운 주체사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능가하는 강력한 사상이 아니면 안 됩니다. 문 총재님이 제시한 통일사상은 이미 쏘비에트 연방체제를 붕괴시키고 공산주의를 종언하도록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그 실효성이 이미 입증된 이론입니다. 대한민국의 어떤 정권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을 문 총재님 홀로 이루신 것입니다. 문 총재님의 통일사상 만이 주체사상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사상인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2. 3대 주체사상과 김일성주체사상

문 총재님께서 김일성 주석에게 권유한 하나님주의는 하나님이 인류의 부모가 되고 주인이 되는 진정한 주체사상입니다. 그렇다고 헤겔의‘절대정신’이나 기독교의 ‘절대예정론’처럼 인간의 역할은 하나도 없이 하나님만 역사의 주인이 되는 사상이 아니라, 하나님과 자녀인 인간이 함께 주인이 되는 사상입니다.

김일성 주체사상에서 말하는 인민대중은 진정한 ‘주체’가 아니라 혁명을 선동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세운 ‘주체’입니다. 그러나 통일사상은 본래적인 의미에서의 진정한 ‘주체’를 말하고 있습니다. 통일사상의 3대 주체사상에서 주체는 ‘부모’와 ‘스승’과 ‘주인’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부모는 가정의 중심이요, 스승은 배움 터(학교)의 중심이요, 주인은 다스림(治理) 터의 중심인 것입니다. 3대 주체사상은 김일성 주체사상을 비판하기 위해서 만든 의도적인 이론이 아니라, 통일사상의 본성적 인간이해(본성론)에서 당연히 도출되는 참된 이론인 입니다.
통일사상에서 하나님의 신성은 심정, 이법(로고스), 창조성이므로, 이것을 닮아난 본성적 인간은 심정적 존재, 이법적 존재, 창조적 존재입니다. 여기에서 본성적 인간으로서 심정적 존재란 참사랑을 지닌 부모로 표상되며, 이법적 존재란 우주의 로고스와 진리를 갖춘 스승으로 표상됩니다. 그리고 창조적 존재란 우주의 진정한 창조자요 주관자인 주인으로 표상됩니다.

이것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사랑과 심정의 궁극적인 근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구체적으로 인류에 대한 부모의 사랑으로 표현됩니다. 하나님의 부모의 심정을 중심삼고 마음과 몸이 통일을 이룬 사람이 심정적 존재 입니다. 그리고 부모이신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한 사람만이 진정한 부모의 자격을 갖출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닮은 이런 부모야말로 가정에서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말씀(로고스)으로 우주를 창조하셨기 때문에, 참 진리의 본체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종교적 진리이든 자연과학적 진리이든 피조세계의 모든 진리의 궁극적인 근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를 구현한 사람이 이법적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만이 진리를 가르칠 수 있는 스승의 자격을 갖출 수 있습니다. 역사상의 위대한 성현과 현철들은 모두 이 진리를 가르친 스승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닮은 이런 스승이야말로 배움의 현장(학교)에서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우주만물은 예외 없이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창조주이며 동시에 피조물을 주관하는 주인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성(주관성)을 닮아 주관의 자격을 갖춘 인간을 창조적 존재라고 합니다. 이러한 창조적 존재만이 주관(다스림)의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창조성을 닮은 주인이 다스림의 터전(단체나 국가)의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

인민대중을 주체로 내세우는 김일성 주체사상과는 달리, 통일사상은 부모와 스승, 그리고 주인을 창조본연의 3대주체로 내세웁니다. 그리고「수령영도령」에서 인민대중(주체)을 이끌 주체의 주체를 김일성 수령이라고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통일사상에서 3대 주체의 주체는 곧 하나님입니다. 왜냐하면 부모, 스승, 주인 등 3대 주체는 궁극적 주체인 하나님을 닮은 주체들이며, 또한 그들은 하나님의 신성(기능)인 심정, 이법, 창조성을 대표적으로 실천하고 베푸는 으뜸 주체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원래 본성적 인간은 하나님의 신성(심정, 이법, 창조성)을 한 개체에서 이루도록 되어있기 때문에, 한사람이 동시에 부모, 스승, 주인의 3주체가 되어야합니다. 이것을 한 중심의 3주체성이라고 합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이 3주체의 근본이시니 모든 주체는 하나님의 3주체성을 닮으라는 말입니다. 예를 들면, 가정에서의 부모는 부모의 역할 뿐만 아니라 자녀를 훈육하는 스승의 역할과 가사를 보살피고 관리하는 주인의 역할을 같이 수행하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학교의 스승은 가르치는 일 뿐만 아니라 학생을 부모처럼 보살피고 학교를 주인처럼 관리하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단체의 長도 관리인의 역할 뿐만 아니라 사원을 자녀처럼 보살피고 스승처럼 훈육하여야 한다는 우리가 이런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고 이런 주체가 가정과 사회곳곳을 행복하게 가꿀 때 어디에 김일성 주체사상이 파고 들어올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3대 주체사상에서 하나님의 신성을 닮은 본성적 인간과 김일성 주체사상의 인간관을 비교해보면,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3대 주체사상에서 인간의 본성은 하나님의 신성을 닮은 심정, 理法(로고스), 창조성이며 김일성주체사상에서 인간관은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입니다. 3대주체사상에서 심정적 존재란 하나님의 완전성을 닮은 존재를 말하며, 이것은 주체사상의 자주성에 대비됩니다. 3대 주체사상에서 이법적 존재란 하나님의 번식성과 규범성을 닮은 존재를 말하며, 이것은 주체사상의 의식성에 대비됩니다. 그리고 3대 주체사상에서 창조성은 그대로 주체사상의 창조성에 대비됩니다. 형태로 볼 때는 두 사상이 유사해 보이지만 3대주체사상은 하나님으로부터 유래한 본연의 인간성을 말하는 반면, 주체사상은 사회혁명을 유도하기 위한 거짓된 인간성을 말합니다. 이것은, 예를 들어 예수님에 의한 통일 이상세계에 앞서 거짓 이상세계인 로마제국이 온 것처럼, 참에 앞서 거짓이 먼저 나온 예에 해당한다 하겠습니다. 

그리고  3대 주체사상에서 인간은 하나님을 닮은 존재인데 반해서, 주체사상은 인간을 특출한 물질의 산물에 불과하다는 철저한 유물론의 입장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본성이 하나님에서부터 유래하지 않은 채, 어떻게 주체사상이 말하는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이 물질에서 나올 수 있습니까? 주체사상의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은 정신에 해당하며, 정신적 본질을 공산주의의 유물론적 인간관에 적용시킨 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주체사상의 인간관이 공산혁명을 위해 날조한 인간관이기 때문입니다. 

이「3대 주체사상」을「김일성 주체사상」과 비교해 볼때 얼마나 심오하고, 위대하고, 완벽한가 하는 것을 곧 알 수 있게 됩니다. 김일성주체사상은 김일성만을 주체(어버이)로 받들고 인민대중은 허울뿐인 주체가 되는 사상이며, 지배계급, 반동분자. 반공인사, 기독교인등을 모두 증오의 대상으로 보고 이들을 타도하기위한 미움의 사상이며 폭력혁명의 사상입니다. 이에 반하여 3대주체사상은 3대 주체를 통해서 가정, 사회, 학교, 국가에 하나님의 참사랑을 충만케 함으로써 참된 평화와 행복, 번영과 통일을 정착시키고자 하는 화합의 사상인 것입니다. 한 마디로 김일성 주체사상은 계급성과 당파성을 띤 거짓이론이고, 3대 주체사상은 보편성을 지닌 진리인 것입니다. 따라서 남북통일을 위해서는 김일성 주체사상을 단호히 거부하고, 누구든지 하나님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3대주체사상’을 수용하고 무장하여야 하겠습니다. ‘3대 주체사상’만이 북한도 살리고 남한도 살릴 수 있는 이념이며, 우리민족을 평화롭게 통일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기 때문입니다.




[출처] <天一의 窓> 과학적 신관[神觀] / 작자 | 실로암 



      역사론[歷史論]
                                                                                                              작성자  /  선문대문화컨텐츠학과 김성배 교수


 역사란 무엇인가

총재님은 남북통일에 앞서 선차적으로 이루어야 할 통일이 우리의 마음과 몸의 통일이라고 가르치십니다. 마음과 몸이 갈라짐으로 말미암아 마음세계에 해당하는 유신론, 종교, 윤리, 정신문명, 민주세계와 몸의 세계에 해당하는 무신론, 정치, 경제, 물질문명, 공산세계의 분열이 초래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분열 중 하나가 한반도에서 좌익과 우익의 남북분단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신론과 무신론, 민주와 공산, 좌익과 우익을 통일할 수 있는 것은 좌우의 어떤 사상을 갖고도 안 되는 것입니다. 북한의 적화통일이냐 남한의 흡수 통일이냐의 문제로 많은 논란이 되고 있지만, 어떤 일방적 통일도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좌익과 우익을 넘어서서 양자를 포용할 수 있는 주의와 사상이 아니면 남과 북의 통일은 불가능 한 것입니다. 그것이 문 총재님이 제안하신 頭翼사상이요, 하나님주의입니다. 이제 역사관을 중심하고 통일사관과 주체사상을 비교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로부터 2000년 동안 900회가 넘는 수많은 외침을 당하면서도 이웃을 보복하고나 침략한 일이 없으며, 외침으로 침략을 당할 때마다 신앙적으로 사상적으로 뭉치곤 하였습니다. 예컨대 몽고군의 침략을 팔만대장경을 판각하는 불교정신으로 막아냈고, 을사보호조약으로 주권을 빼앗은 일본에 대해서 3?1 독립운동 때 천도교, 기독교, 불교 등을 중심으로 전 민족이 뭉쳐서 결사항쟁 했던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민족사를 함석헌선생은 ‘선민의 역사’로 해석했고, 북한의 민족주체사관‘ 인민대중의 항쟁의 역사’로 보고 있으며, 통일사관은 ‘탕감복귀의 역사’로 보고 있습니다.
 
요즘 새 정권이 출범할 무렵, 김일성 항일무장투쟁인 보천보전투를 고등학교 교과서에 싣는다고 보도되어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나라가 어떻게 세워진 나라인데 이 모양이 되었는가를 한탄하는 우익 인사들도 많습니다. 우리는 북한의 역사관이 남의 문제가 아니라 내 자녀의 문제가 되어버린 현실에 살고 있음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북한의 33권으로 구성된「朝鮮全史」는 공산주의 유물사관에 맞도록 역사를 변조한 것입니다. 그것을 간단히 살펴보면, 선사시대의 유인원들이 노동하는 동안 두뇌가 발달하여 원시인이 되면서 원시공동체사회를 형성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후 생산력의 발전에 따라 생산수단(농기구, 토지, 기계 등)의 소유문제로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이 발생하여 민족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로 꾸며져 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역사발전의 원동력은 인민대중의 영웅적인 투쟁이며 민족사의 최종목표는 공산주의 사회인바, 현재 북한은 그 직전 단계인 사회주의사회에 진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남은 과제는 남북이 통일된 통일사회주의국가를 이룬 다음 위대한 김일성수령의 영도하에 공산주의국가를 건설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북한의 고려연방제는 우리나라에서 용공세력이 정권을 잡은 다음 과도정부를 세워 적화하겠다는 것이며, 이 점에 있어서는 아직까지 그 주장을 한번도 후퇴한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내부의 의식화 운동권이 이를 부 추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체사관은 한국사를 계급투쟁의 역사로 해석할 뿐 뚜렷한 증거를 대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만 기원전 8~9세기 때부터 계급사회인 노예사회가 형성되었고 기원후 1세기에 이르러 봉건사회가 세워진 후 신라, 고려, 조선으로 이어졌다고만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한국의 역사가 계급투쟁의 역사가 아니기 때문에 그 증거를 찾아보려고 해도 찾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됩니다.

역사상 선편과 악편을 가르는 데에는 종교가 그 기준 역할을 합니다. 자고로“順天者는 흥하고 逆天者는 망한다.”는 사실은 역사를 통해 증명된 철칙입니다. 혹자는 종교가 역사의 전환에 무슨 역할을 하였는가 하고 의아하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섭리는 종교를 중심으로 한 섭리이고 이것이 역사의 큰 방향을 이루었습니다. 이 점에 관해서는 A. 토인비의 문화사관에서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는 인류문명의 태동을 종교의 祭儀에서 찾고, 21~26개의 종교 중심의 문명권이 현대의 5대종교 중심의 문명권으로 흡수 통일되었다가 앞으로 새로운 기독교 중심의 통일 문명권을 지향한다고 예언하였습니다.

아무튼 역사를 살펴볼 때 종교를 박해한 권력이 급격히 멸망한 예를 얼마든지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기독교를 박해한 로마를 게르만 민족의 이동을 통해 멸망시켰고, 춘추전국시대를 평정하고 대 통일의 과업을 수행한 秦始皇帝도 유교서적을 불사르는 분서갱유 등 天道를 배반하여 결국 망했던 것입니다. 李氏朝鮮 때에도 풍양조씨, 안동김씨 등의 외척들이 세도정치를 하면서 천주교인을 마구 학살하였고, 대원군마저 쇄국정책을 구실로 기독교를 박해하여 李氏朝鮮이 망하게 된 것입니다. 김일성 주체사상이 무신론을 주장하며 종교를 박멸하는데 앞장 서는 한 망할 수밖에 없는데, 그 이유는‘역천자는 망한다’는 역사의 법칙 때문입니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天道를 중심으로 볼 때, 인류역사는 종교를 중심으로 한 선악의 투쟁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역사발전의 원동력을 설명하는데 있어서도 통일사관은 다른 역사관보다 큰 설득력을 갖고 있습니다. 통일사관은 역사발전의 원동력을 유물변증법이나 인민대중의 혁명역량으로 보는 혁명사관과는 달리, 그것을 하나님의 섭리와 인간 의지의 협동으로 봅니다. 예를 들어 석기시대에서 철기시대나 청동기시대로 문명이 발전하였는데, 그 원동력은 이상세계를 지향하는 하나님의 뜻(95%)을 중심하고, 거기에 인간(5%)의 기술력이나 창의력, 노동력 등이 합쳐져서 이루어 진 것입니다. 통일사관은 오직 하나님의 절대예정 섭리만을 역사발전의 원동력으로 보는 기독교의 섭리사관이나 인간의 이성만을 역사발전의 원동력으로 보는 진보사관의 어떤 입장도 한 쪽만을 주장한 것이라고 봅니다. 역사의 발전은 하나님의 섭리(95%)와 인간의 책임분담(5%)이 합쳐질 때 비로소 이루어집니다.
 
통일사관이 주장하는 하나님주의란 인간의 구원과 심판조차도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예정한 절차를 밟을 뿐이라는 기독교의 섭리사관과는 다릅니다. 헤겔도 절대정신(神)이 스스로 변증법의 전개과정에 따라 나타나는 것을 역사라고 이해하기 때문에, 섭리사관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의지와 노력은 무용지물이 되고 맙니다. 이렇게 되면 인간은 마치 神에 의해서 조종되는 꼭두각시에 불과하게 됩니다. 하나님만이 모두이고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은 옳지 않습니다. 어느 부모가 꼭두각시 같은 자녀를 부리면서 즐거워하겠습니까? 하나님주의는 하나님이 중심이 되어 자녀인 인간과 어우러져 함께 뜻을 완성하는 주의 사상입니다. 하나님이 부모가 되고 인간이 자녀가 되는 참 사랑의 사상입니다.     
 
끝으로 김일성주의를 극복하기위해서는 새로운 가치관운동을 전제하여야 합니다. 공산주의나 김일성주의는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고발과 참소를 생명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고발과 참소에 의해서만 그 생명력을 강화할 수 있는 것입니다. 소련 공산주의와 마찬가지로 김일성주의도 대한민국 내부의 모순과 병폐를 침소봉대하여 고발하면서 북한동포를 지배해 왔습니다.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과 병폐가 남아있는 한, 공산주의는 되 살아 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산주의를 이 땅에서 제거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사회의 고질적인 병폐를 없애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마약과 범죄, 부정과 부패, 성적 문란과 빈부의 격차 등 사회적 문제는 인간혁명과 정신혁명이 아니고서는 근본적으로 치유가 될 수 없습니다. 문 총재님이 참 가정운동을 중심하고 새로운 가치관운동을 전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출처] <天一의 窓> 과학적 신관[神觀] / 작자 | 실로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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