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마로천문대의 태양은 김삿갓과 단종을 닮았다. 종일 손바닥 크기의 영월 하늘에서 김삿갓처럼 유유자적하던 태양이 무엇이 그리도 급한지 순식간에 파도처럼 굽이치는 희미한 능선 아래로 낙화한다. 단종의 고혼인 듯 서녘 하늘이 벌겋게 불타오르는 것도 잠깐. 동녘 하늘에서 쏟아지는 별빛을 신호로 반구형의 돔이 열리더니 거대한 천체망원경이 직녀별을 정조준 한다. 별빛 쏟아지는 한여름 밤에 ‘미지와의 조우’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이제 다 못 헤는 것은/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별 하나에 추억과/별 하나에 사랑과/별 하나에 쓸쓸함과/별 하나에 동경(憧憬)과/별 하나에 시와/별 하나에 어머니,어머니//∼’(윤동주의 ‘별 헤는 밤’ 중에서)
시와 별과 동강이 흐르는 강원도 영월.
동강과 서강이 두루마리 입체지도처럼 내려다보이는 봉래산(799.8뻍) 정상에서 밤마다 별들과 정담을 나누는 영월 별마로천문대는 찾아가는 길 자체가 별이 흐르는 한 편의 시다.
동강을 가로지르는 삼옥교를 건너 영월의 진산인 봉래산의 허리를 구불구불 감돌아 오르면 맨 먼저 별을 닮은 금계화가 반긴다. 길섶 야생화 단지에 무리지어 황금빛 꽃을 활짝 피운 금계화는 멀리서 보면 밤하늘의 은하수와 다름없다.
4.5㎞ 길이의 별마로천문대 진입로는 이름조차 멋스런 ‘밤하늘 가는 길’이다. 미인의 다리를 닮아 쭉쭉 뻗은 낙엽송 숲 위로 뭉게구름이 둥둥 떠다니는 낭만적인 숲길을 빙글빙글 돌고 산림욕장을 가로질러 정상에 서면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시가 흐르는 별마로천문대다.
‘별을 보는 고요한 정상’이란 뜻의 별마로천문대가 개관한 때는 2001년 10월. 가진 것이라곤 청정 환경밖에 없던 영월군에서 하늘의 별을 팔아보자는 다소 엉뚱한 아이디어로 국내 최대의 시민천문대를 만든 것이다. 별을 관측하기에 가장 좋은 곳은 광공해가 적고 안개의 영향을 받지 않는데다 강한 바람이 없는 곳으로 영월 봉래산은 천문대가 들어서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별을 볼 수 있는 관측일수도 국내 평균이 100일인데 비해 영월은 160∼190일.
별마로천문대는 해와 달,그리고 별이 뜨고 지는 천문현상은 물론 눈,비,안개,서리 등 온갖 기상현상에 사계절 풍경까지 더해져 ‘천의 얼굴’을 가진 절경이다. 그 중에서도 으뜸은 해와 달,그리고 별들의 잔치. 태백산에서 솟은 태양이 영월의 하늘을 가로질러 멀리 치악산 능선 아래로 가라앉으면 금세 서쪽하늘이 벌겋게 물든다. 곧이어 영월 하늘이 짙은 어둠에 물들기 시작하면 암청색 하늘을 도화지삼아 달과 별들의 잔치가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밤하늘로 떠나는 별여행은 지하1층의 천체투영실에서 시작된다. 어린 시절 평상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 밤하늘의 별을 보듯이 안락의자를 한껏 젖히고 누우면 캄캄한 반구형의 돔에 별이 하나 둘 나타난다. 별지기가 실타래처럼 풀어내는 별에 얽힌 유래와 전설을 듣다보면 어느새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처럼 무한한 상상의 세계로 빨려든다.
어린왕자가 살던 별인 소혹성 B612호를 찾는 기분으로 주관측실과 보조관측실의 망원경을 들여다보면 화성 목성 등의 행성은 물론 성운 성단 은하 등이 선명하게 보인다. 이곳의 망원경들은 미리 입력된 좌표를 따라 별을 찾기 때문에 별자리를 보기 위해 복잡한 망원경을 조작하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
여름철 별자리 중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별은 자정 쯤 머리위에 솟은 거문고(하프)자리의 직녀별(Vega). 은가루를 뿌려놓은 듯 은하수를 사이에 둔 직녀별과 견우별을 보고 우리 선조들은 슬픈 사랑이야기를 만들어냈고 고대의 그리스인들은 작고 귀여운 하프를 상상했다.
밤하늘 반딧불처럼 깜빡이는 별빛이 온 몸을 감싼다. 직녀별이 쏟아내는 연한 청옥색 빛은 26만 년 전의 빛이고,은하수를 날고 있는 형상의 백조자리 꼬리별인 데네브의 하얀 별빛은 1600만 년 전의 빛이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태초의 빛과 무언의 대화를 나누다 보면 밤하늘은 보석처럼 더욱 영롱해진다.
별은 밤하늘에서만 빛나는 것이 아니다. 천문대가 위치한 봉래산 정상에 서면 산 아래에서 반짝이는 무수한 별들을 만난다. 첩첩 산중에서 홀로 불을 밝힌 영월 시가지의 불빛은 마치 밤하늘의 별들이 살포시 내려앉은 풍경이다.
시와 별과 동강이 흐르는 영월 별마로천문대. 그곳엔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이 흐르는 윤동주의 시도 함께 흐른다.
영월=글·사진 박강섭기자 kspark@kmib.co.kr
■여행메모
중앙고속도로 제천IC에서 38번 국도로 갈아타고 영월에서 내린다. 동강과 나란히 달리는 지방도를 타고 어라연 방향으로 달리면 별마로천문대로 가는 삼옥교를 만난다. 천문대 관람시간은 오후 3시부터 11시까지(하절기)로 매주 월요일과 공휴일 다음날은 휴관한다. 입장료는 어른 5000원,청소년 4000원(033-374-7460). 별마로천문대 홈페이지(www.yao.or.kr)의 ‘사진자료실’을 찾으면 별지기들이 직접 촬영한 귀중한 사진들을 만날 수 있다.
영월군은 7월30∼31일 동강과 봉래산 일원에서 ‘자연과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동강축제를 개최한다. 행글라이딩과 패러글라이딩 등 레포츠 대회가 열리고,래프팅과 번지점프,뗏목타기,맨손 송어잡기,물속 줄다리기 등 다채로운 체험행사도 열린다(영월군청 문화관광과 033-370-2542). 7월23일부터 8월1일까지는 ‘동강사진박물관’ 개관을 기념해 동강사진축전도 열린다. 유명인사 사진전과 강원다큐멘터리 특별전,국제 대학생 사진캠프 등 다채로운 행사가 선보인다.
영월은 계곡과 박물관의 고장이다. 김삿갓의 풍류가 흐르는 김삿갓계곡과 태백산에서 흘러내린 칠랑이계곡,열목어가 서식하는 법흥계곡,뼈 속까지 시린 엄둔계곡,전인미답의 미사리계곡,자연경관이 수려한 내리계곡 등은 여름철 피서지로 각광. 자녀와 함께라면 곤충박물관,조선민화박물관,난고 김삿갓 문학관,영월책박물관 등도 둘러보자. 중동과 상동 중간쯤에 위치한 솔고개의 소나무는 모 제약회사의 상징으로 소개될 만큼 잘 생겼고,견훤이 퇴각할 때 주민들이 수라상을 바쳤다고 해서 수라리재란 이름이 붙은 고개는 고갯마루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압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