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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모든 매체가 한결같이 쏟아 붓는 내용이 있다. 바로 한국교회의 비뚤어진 모습을 지적하고 있는 기사이며 토론이다. 물론 이러한 보도와 기사를 액면 그대로 인정한다는 얘기는 절대 아니다. 그렇다고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는 우리 속담이 잘 말 해주고 있듯이 근거 없는 내용도 아니라는 데 주목해야 한다. 또한 종교적 특수성이 있기에 일반 언론에선 종교문제를 다루는 것은 한계가 있으니 자제해야 한다는 비판 섞인 우려도 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그들의 지적이 어쩌면 냉정하며 객관적이기에 오히려 귀 기울여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만만치는 않 다. 그들을 두둔하고자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우리는 신앙인이기에 말씀으로 판단을 해봐도 그게 그렇게 잘못된 것은 아 닌 것 같다. 말 못하는 나귀를 들어 어그러진 길을 가는 발람을 책망하는 말씀(민 22:)이 있다. 중요한 것은 누가 어떻게 하고 안 하고가 아 니라 그 지적이 사실이냐 아니냐가 더 중요한 것이다. 사실이라면 인정하고 고쳐야 하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자꾸 본질을 피해 가려는 버릇은 좋지 않다. MBC의 ‘뉴스 후’에서 성직자 세금 납부에 관해 방영된 후 조용기 목사는 주일 ‘거부(巨富)는 타락한 것 아냐’라는 제목의 설교를 통해 헌금을 강요, ‘십일조는 축복의 통로’이며 그 축복은 ‘재물의 복’으로 연결된다고 설교했으며, 세계적인 거부(巨富)들이 바로 그러하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이름을 앞세워 말씀을 선포하려면 그 입에서 자기의 생각과 말이 아닌 하나님의 생각과 말씀이 나와야 한다. 그래야 그 입에서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깨달아 믿음생활을 하지 않겠는가. “대저 제사장의 입술은 지 식을 지켜야 하겠고 사람들이 그 입에서 율법을 구하게 되어야 할 것이니 제사장은 만군의 여호와의 사자가 됨이어늘(말 2:7)” 이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을 믿으라고 입으론 외치지만 사실은 자기를 믿고 따르라는 것밖에 안 되 는 것이다. 성경 그 어디에도 그런 가르침은 없다. 세상의 생활과 신앙생활은 구별된다. 성경에서 가르치는 복의 의미는 세상재물의 복이 절대 아니다. 주시겠다는 복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깨달아, 그 말씀대로 이 세상에서 믿어 행한 후에 받는 ‘영원한 생명’임을 성 경을 통해 우리에게 약속하고 있다(시 133:3, 요일 2:25, 요일 5:13, 요 5:39). 그렇다면 하나님을 모시고 부자가 되지 않은 사람은 저주를 받았다는 얘긴가. 또 박봉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지킨다고 꼬박꼬 박 십일조를 냈는데 거부가 되지 않았으니 이들은 도대체 무엇인가. 성경은 오히려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다. “네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는 예수의 분부에 “그 청년이 재 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마 19:22)”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마 19:24)”라고 기록된 어느 부자청년이 주는 교훈이 있다. 그리고 일각에선 대형교회 또는 부분적인 일로 한국교회 전체를 부정적으로 보지 말라는 시각도 있는 듯하다. 그 역시 옳은 말 이다. 그런데 한 가지 간과해선 안 될 것이 있다. 그것은 그들이 한국교회를 이끌어가는 종교 지도자라고 자타가 인정하고 있다 는 사실이다. 수많은 하나님의 양들을 책임지고 있는 사명 앞에서 자신의 명예와 권력 그리고 부까지 차지하고 그것이 마치 성경적이라고 항변을 한다는 것은 듣고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개탄하지 않을 수 없게 하고 있는 것이다. 기부를 잘해야 사함 받고 십일조를 잘 해야 부자가 된다는 가르침은 성경 그 어디에도 없다. 성도들이 바른 깨달음을 받지 못한 증거는 그 설교를 들으면서 ‘아멘’을 외쳤다는 것이다. 아멘의 뜻은 ‘믿습니다’임을 잊어서도 안 되며 함부로 사용해서도 안 된다. 만연된 한국교회의 병폐를 임기응변으로 얼버무리려 해서도 안 된다.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을 어찌 속일 수 있겠는가. 말 못하는 나귀를 들어 책망할 때 그 어그러진 길을 돌리지 않는다면 그 나중은 어찌 감당하겠는가. 이 혼탁한 종교 세상에 거 짓말로 성도들을 더욱더 어지럽고 혼란스럽게 기망하는 일이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된다. 신앙인이라면 오직 말씀만이 기준이 되어야하며, 그 말씀 안에는 생명 곧 진리가 감추어져 있음을 깨닫게 해주어야 한다. 섹스피어는 ‘장미에서 나는 그 향은 장미 의 이름이 바뀐다 해도 그 향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람의 사정에 따라 변하는 사람의 말이 아니라, 영원히 변하지 않는 생명의 말씀만이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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