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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친네 큰아들네가 왔구만.》
삽작문을 밀고 들어서는 우리 일행을 보고 아버지가 반겼다.개털모자에 누비솜신까지 받쳐신은 모습은 일하러 나온 맵시다.설날인데 무슨 일을 하십니까.
《왔나.음력설에 온다구 해서 기다리지두 않았는데. 온 이놈 보라이.이젠 지 애비보담 더 컸네.며느린 얼굴이 더 핀것 같구.》
어머니가 허치럭거리며 검정다이야고무신을 잘잘 끌며 바삐 나왔다.끼끗하게 자라는 손자와 해해 간사를 떠는 며느리가 자못 대견한지 어린아이 대하듯 궁둥이까지 뚝떡뚝떡 쳐준다.
《우리 최동문 고기 한점 생겨두 부모님들을 외우는데 좋은 술안주 얻어놓구 어찌 혼자 자신다구,설이라서 따로 온것이 아님다.그저 놀러왔씀다.》
안해가 슬쩍 나서서 해들거리며 서방을 효자로 하늘공중에 번쩍 추켜올린다.헤헤.하긴 나도 효자노릇을 하려고 눈치보는 놈이렸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택시짐칸에서 힘겹게 끌어내리는 여러개의 포장박스를 보며 고개를 기웃거린다.
《뭔데?...어허.이게 쇠족발이 아닌가.》
아버지는 맨나중에 끌어내린 박스를 들여다보며 무척 반기는 기색을 지었다.
《근데 무슨 쇠족발이 이리도 많다냐?》
꼭 아귀가 맞는 열개니까 적지 않다.
《뭘 이리 많이 꿍져오우?다니기두 불편하겠는데.》
돼지우리쪽에서 막내동생이 건너오며 씩ㅡ웃었다.일하던 맵시로 손에는 실장갑까지 걸려있었다.
《말두 마라 엊저녁 한숨도 못잤니라.돼지가 새끼를 낳아서..열세마리 낳았는데 몽땅 살았네라.숫놈이 좋아서 그런지 충실하다.》
그제야 나는 피발이 건너간 아버지의 눈과 피곤으로 푸석푸석해진 동생의 얼굴모습을 알아보았다.
《어.너 귀경하겐?》
앞장서서 돼지우리안으로 들어가는 아버지의 빈약한 두어깨에 아지랑이 같은 기쁨이 가물가물 피여올랐다.
다섯칸으로 지은 돼지우리는 모두 비닐박막으로 덮혀있었는데 맵짠 바깥날씨와는 상관없이 제법 훈훈했다.뜬김으로 돼지우리안은 안개가 덮인듯 시야가 흐렸고 거기에서 시큼털털한 냄새가 불쾌하게 떠돌았지만 상관이 없었다.따로 만든 새끼우리에는 촉수가 높은 전등이 매달려있었는데 그 아래에는 하얀 몸뚱이를 오밀조밀 부착시킨 새끼돼지들이 앙증맞은 자세로 잠자고있었다.
《이제 열흘안으로 세놈이 또 새끼를 낳아야 하네라.》
다른 우리안에는 만삭이 된 커다란 배를 드리운 큰 어미돼지들이 《태평성대》를 만난듯 쿨쿨 잠들어있었고 그옆 우리에는 황소같은 숫종자돼지가 목털을 사납게 일으켜세우고 낯선 사람들을 흘기고 있었다.
돼지우리에서 나오자 그 사이에 어머니는 쇠화로에 불을 지피고있었다.하얀 연기가 끄물끄물 피여올랐다.
《겨울해는 한뼘인데 서둘러야 하네라.》
아버지와 나는 손을 맞추어 족발 굽는 일에 달라붙었다.꺼끌꺼끌한 털이 불에 그을기 시작했다.
덜러렁-덜러렁- 헐망한 손풀무가 《헐망한》소리를 내자 쇠화로에서 쏴-불이 세차게 일어났다.매캐한 누린내가 연기와 함께 섬돌밑에 기여들었다가 다시 삭은 처마를 핥으며 반공중으로 사라진다.
아버지와 함께 보내는 이런 시간이 제일 즐겁다.아니,나에게는 진짜 향수다.하기에 화염방사기로 반나절이면 말끔히 끝낼것도 마다하고 이렇게 아버지한테 끌고 와서 시골방법으로 세말작업을 한다.
《세제(세말작업)하기가 지지해서 그렇지.안주감으로야 소족발만한 음식이 없지무.》
맞는 말이다.흠흠한 맛,느끼하지 않고 담백한 맛,이 두가지 맛이 진짜 소발족 맛이고 서민들의 맛이다.거기에 그을음 맛이 더 첨가되면 바베큐료리쯤으로 착각하기 쉽상이고.
아버지는 쇠부지깽이로 족발우에 앉는 재티를 부지런히 다듬는다.접어올린 털모자의 귀막이가 까마귀날개처럼 제멋대로 흔들흔들 춤춘다.코밑에 또다시 코물이 흘러나와 질척거린다.호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건네주었지만 아버지는 아랑곳없이 그 투박한 손으로 코밑을 썩 훔쳐서는 솜신뒤축에 문대버린다.
《옛날말이다.생산대시절엔 어쩌다 소잡이를 하다나니 이 발족싸움을 많이 했니라.허허,천규라고 니도 알재?훈춘 간 그 천규말이다.금마(그 사람)는 괴기는 안먹고 젠탕(전문)족발괴기허구 곱창만 죄겼는데(먹었다)족발만 보문 꼭 거기에다 투르르 침을 뿜어댔지.》
《침을?왜서유?》
《허허.지 혼자 처먹자구 기랬지무.금마 쌍침이 묻은 족발 더러워서 뉘기 먹는다고…아무튼 먹새 하나만은 쨈쨈한 늠이였는데…이사가서 시장 나가 쇠잽이해서 돈두 꽤나 벌었다던데 풍을 맞아 지눕이(쓰러져)한지도 몇년되구.또르르한 며느리두 외국 보냈다가 뺏겼다구들 하던데…》
아버지는 주근주근 나와 옛이야기를 잘 한다.
《진해 애비성묵이도 말이지.금마는 쇠잽이만 하문 꼭 투구쓰고 개팔질했는데 족발하고 꼬리를 꼭 모래불에 가만히 꼼치워놓군 했지무.그리고는 밤에 우무룩히(가만히)나가서 뚜져와서는 새벽녘에 죄겼는데.허허…모래두 함께 어적어적 씹었지.괴기에 붙은 모래는 아무리 잘 세제해두 잘 떨어지지는 않는 뱁이지.》
《훗훗훗…》
두 부자간의 쿡쿡 웃어댔다.
《먹새에 몸을 혹사하더니…궈즈를 앉은 자리에서 서른하나 죄긴늠이였는데.》
《뜬소문이 아니였씀두?》
《뜬소문이라니.내눈으로 봤는데 72년도 겨울 도문으루 벼짚채서(처서) 가서 콩물도 없이 그렇게 먹었니라.난 세개밖에 못먹었는데 허허.두부도 양념없이 열댓개씩 조겼으니께… 가만보문 몸이 홰친홰친한 늠덜이 더 많이 먹드라.》
말그래도 구수한 옛말들이다.할머니와 아버지는 이런 구수한 옛이야기로 나를 작가로 키워주셨다.
아버지와내가 족발을 구우며 주근주근 옛이야기를 주고받는 동안 아들놈은 삼촌의 일손을 돕는다고 돼지우리에서 금방 쳐낸 거름을 밀차에 실어날랐다.중학생의 얼굴에 홍조가 감돌았다.일에는 너무 숙맥이였지만 무슨 일이 그리 즐거운지 계집애들처럼 연신 까드득 거린다.
집안에서 어머니와 마주앚아 남새를 다듬던 안해는 어머님의 검정다이야고무신을 잘잘 끌며 구정물 던지러 뻔질나게 나든다.소털이 타는 누린내가 싫은지 코를 쫑긋거리며 피하는 눈치다.
겨울의 빨간 해가 소외양간마루밑으로 굴러떨어질무렵 족발의 세말작업이 끝났고 동생과 아들놈의 거름 나르기도 끝났다.아들녀석은 자기삼촌이 만만해보이는지 자꾸 씨름하자고 시달군다.
《쩌쩌.언땅에 몸 상할라.한겨울에 무신 씨름이나.》
어머니가 질색했다.어머니에게는 아들과 손자라 어느쪽이 이기든 지든 상관없이 그저 몸이 상하는것만이 근심이다.
아버지와 나는 일손을 놓고 이들의 씨름을 구경했다.
《허 됐수.형님, 임마가 어느사이에 몸이 이리도 단단해졌수.작년까지만 해도 버들가지같이 햇칠햇칠했는데…졌다.내가 졌어.》
동생이 가쁜 숨을 헐헐 쉬며 조카곁에서 물러나며 투항하는체했다.
《걔는 이제 무우같이 우썩우썩 힘만 자랄것인데..두고 봐라.이제 여름방학쯤에는 우리 가문에서 걔를 당할 사램이 없을게다.》
아버지는 손자를 대견하게 바라보며 우둔한 소리를 했다.
서쪽하늘가녘으로 떨어지는 해를 뒤쫓아가듯 몇마리의 까마귀가 날아갔다. 돼지우리곁에 선 산백양나무가지우에서 깍깍 울어대던 까치들은 친구라도 만난듯 바삐 날아올라 까마귀들과 합세했다가 불덩이 같은 태양아래로 까만 점으로 사라진다.
집안에서 족발이 익어가는 구수한 냄새와 남새을 볶는 기름냄새가 흘러나와 후각을 진동시켰다.
아버지와 동생은 돼지들의 저녁끼니를 준비했다.한끼에 마른 사료가 백여근되고 물이 십여동이 된다니까 그일도 뻐근할것이다.나와 아들녀석은 부지런히 물을 날랐다. 끼니는 사납게 으르렁거리는 수돼지에게 제일 먼저 차례졌다.마른 사료에 길들여진 돼지들은 목이 터지게 마른사료를 먹어댔다.
겨울날의 저녁어둠은 여름날의 소낙비처럼 갑작스레 덮쳐든다.이글이글 타던 해가 산밑으로 곤두박질한듯 굴러떨어지자 뒤어어 어둠이 달음박질하듯 밀려왔다.
쏴르르ㅡ바람이 터지며 초가집뒤에 세워놓은 울타리에 매달렸다.
쏴르르ㅡ《말》달리는 소리다. 아버지는 올해에도 에이제없이 울타리를 세웠다. 울타리가 없으면 마음이 빈것 같다면서 울타리를 고집하신다.
아침에 떠날때 약조가 있었던 누님과 매형,누이동생내외도 때맞추어 들이닥쳤다. 조카들도 따라왔다.
집안은 대뜸 들레기 시작했다.
《꼬부랑로친 오늘 지낙엔 큰상놓구 모두 한상에 앉자이 뭐라.신식으로 해야지.옛날엔 시애비 며느리가 겸상했다문 하늘땅이 맞붙게 큰일났지만 시방에야 그게 신식멋이지무.》
음식이 오르자 아버지는 우리가 따라올리는 술을 사양도 없이 모조리 받아마셨다.
《에구,거 코물이나 좀 훔치꽈이.훗훗.뜨스한 집안에서두 코물이우.》
아버지는 추워도 코물.취해도 코물건사를 못하신다.
《허허.젊어서는 죽어지내더니 늙으면서 대드는 벱을 알아. …허허.나말이다.오늘 이 자리에서 너들에게 숙제 하나 내겠는데 듣겠나?》
《뭐.숙제요?》
《그래.숙제지.큰 숙제.내 묻겠는데 돈이란 뭔지 알아?》
《뭐.돈이요? 세삼스레…》
우리는 실실 웃어댔다.
《웃을 일 아니야.인생이 무상하고 재무상하다는 말이 어떻게 나왔는지 너들은 아마 잘 모를거야.》
아버지는 며느리가 받쳐올린 휴지로 코밑을 훔쳤다.
《돈이란 말이다.뭐드라 신식말로….그렇치.꽃샘 따먹는 샛바람이지.임자가 따로 없는 샛바람,솔솔 불어노는가 싶었는데 어느결에 훔쩍 스쳐지나가는 바람.극서으로 끝나버리지.그리고 또 있어,돈이란 여름밤에 내린 비지.잠 자는 사이에 소르르 왔다가 해볕에 뽀송뽀송 말라버리는 비말이야.》
처음 실실 웃어대던 우리는 웃음을 그쳤다.
《그러니까 돈이란 임자가 따로없다.그말이구.너무 욕심내지 말라 이거지.장구하고 가장 비싼게 가족이구 피줄이야. 그러니까 조금 궁색해두 외국 나가 가족들과 헤여지는 고생을 말라 이거다.》
량반계급의 《경전사상》이다.유가를 숭상해온 조상님들의 《선비정신》같은 말씀이다.
쏴르르ㅡ
밤이 깊어가자 뒤울안에서 《말》달리는 소리가 유난히 요란하다.
두만강 건너서 불고개 넘어서니 흐으으
땅 좋구 물이 좋아 호박 하나에 집채만하구
옥쉬(옥수수)하나에 한술기라네(수레)
보따리 챙기세
우리도 그곳 가서 잘살아봅자이…
술이 거나하면 어김없이 터져나오는 아버지의 18번 함경도 메나리곡조다.
《말》달리는 울타리는 울부짖으며 아버지의 메나리곡조를 반주한다.
설날밤은 기쁘게 깊어만 간다.
[최국철작 연변녀성2002년 3기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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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은실 2008.03.04 11:30 [218.27.20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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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하구몇몇 글들을 내 블로그에 모셔감다.내 삼촌이여서가 아니라. 다시봐도 삼촌언어는 일품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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