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빅 밴드의 거목 스윙의 왕 베니 굿맨(Benny Goodman)에 못지 않은 스윙 재즈의 대부 카운트 베이시(Count Basie)는 빅밴드와 어우러져 자연스러운 스윙을 구사한 위대한 재즈피아니스트다. 그는 패츠 월러, 제임스 존슨의 영향을 받은 스트라이드 주법의 피아니스트로 자신의 밴드를 이끌었던 탁월한 뮤지션이며, 점핑 리듬, 콤핑 주법 등 다양한 연주 기법을 만들어 냈다. 1920년대 미국 재즈의 스윙 시대를 풍미했던 빅밴드의 리더 중 최고로 꼽히는 그는 간결하고 치밀한 사운드를 펼쳐 정확한 음계를 짚어내는 연주자로도 정평이 나 있다.1904년 8월 21일 뉴저지 레드뱅크에서 태어난 카운트 베이시(본명 : William Bill)는 어머니로부터 피아노, 아버지로부터 혼(Horn)을 배웠다. 또 학창시절에는 학교 밴드에서 드러머로 활동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악기들을 다뤘다. 그러던 그는 패츠 월러(Fats Waller)와 제임스 존슨(James P. Johnson)으로부터 피아노를 배웠고, 특히 존슨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스트라이드(Stride) 스타일의 피아노 주법을 가르쳤다. 훌륭한 스승에게서부터 가르침을 받은 카운트 베이시는 20살쯤부터 프로 연주자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는 케이스(Keith)와 토바(Toba) 보드빌과 투어를 가졌으며, 블루스 가수들을 위한 음악 감독으로 활동했다. 1928년 월터 페이지(Walter Page)의 밴드 블루 데블스(Blue Devils)와 함께 자신의 밴드를 결성했다. 그 후 보컬리스트 지미 러싱(Jimmy Rushing)을 영입해 활동한 다음 그는 그룹을 떠나 베니 모텐(Bennie Moten)의 켄사스 시티 오케스트라(Kensas City Orchestra)와 함께 활동했다. 하지만 1934년 중서부 흑인 리더 중 최고인 베니 모텐이 죽고, 카운트 베이시는 그룹을 나와 다른 밴드를 조직했다.카운트 베이시는 부드럽고 릴렉스한 분위기에서 일정하게 스윙하는 훌륭한 리듬 섹션을 이끈 재즈 역사상 최초의 밴드 리더였으며, 리듬을 타고 건반을 노니는 듯한 '점프 리듬(Jump Rhythm)'의 황제로 명성을 날리게 됐다. 그의 이러한 독특한 연주 기법과 고급스러운 연주 스타일 덕택에 그의 이름 앞에는 '백작(Count)'이라는 별칭이 붙게 됐다. 1936년부터 40년대 전반에 걸쳐 그는 기타리스트 프레디 그린(Freddie Green), 베이시스트 월터 페이지, 드러머 조 존스(Jo Jones) 등과 함께 리듬 섹션을 이뤄 뛰어난 템포 감각과 경쾌함을 표출한 앨범들을 발표했으며, 그린-페이지-존스의 연합은 카운트 베이시라는 거대한 피아니스트에 의해 독특하지만 완벽한 스윙 사운드를 만들어 냈다. 또 그는 콤핑(Comping: 관악기 주자의 솔로 중 코드를 찔러주는 수법)으로 1936년에 싱글 [Shoe Shine Boy]를 발표, 빅 히트를 거뒀으며, 후에 그 주법은 허비 행콕(Herbie Hancock) 등 모던 재즈 피아니스트들에 의해 계승 발전됐다. 그 시기에 그는 'One O'Clock Jump'. 'Honeysuckle Rose', 'Lady Be Good' 등을 단순한 프레이즈의 되풀이 방식으로 연주, 대히트를 시켰다. 그 후 레스터 영(Lester Young)이 테너 색소폰 주자로 가담, 카운트 베이시 그룹에 활기를 불어 넣었고, 신선한 아이디어로 정확하고 길고 매끄럽게 스윙하는 음의 라인을 즉흥적으로 연주했다. 1939년부터 2년 동안 한창 전성기를 맞고 있었던 레스터 영과 함께 카운트 베이시 악단도 황금시대를 맞이했다. 악단은 자신들에 속해 있는 솔로 연주인들을 부각시키기 위한 소규모 앙상블도 녹음했는데, 이것은 '캔사스 시티 5, 6, 7' 등 인원에 따라 이름을 달리하는 캄보 연주로 이어졌다. 1944년 발표된 [Count Basie And His Orchestra]에 이 당시 카운트 베이시와 그의 밴드의 연주가 담겨 있다. 2차 대전을 겪고, 50년대로 접어들면서 베이시 악단은 연주 패턴의 변화를 맞았다. 솔로로 스윙하는 기회가 적어지고 짧아졌으며, 레코딩에서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부분에 가끔 솔로를 하는 정도로 변해갔다. 하지만 이런 변화 속에서도 카운트 베이시의 풍부한 스윙감과 신들린 즉흥연주는 인정받기에 충분했으며 당시 발표한 [Dance Session](1952)은 이런 그의 기량이 돋보이는 앨범으로 평가 받았다. 50년대 중반 이후 그는 엄청난 양의 앨범을 발표했는데 대표적으로 [April In Paris](1955), [The Atomic Mr.Basie](1957), [Basie Swings, Bennett Sings](1958) 등을 꼽을 수 있으며, 그의 리드미컬한 연주뿐 아니라 분위기 있는 보컬은 재즈 팬들의 가슴을 적셔주었다. 1963년 그는 처음으로 일본에 진출했고, 그의 명성은 미국 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됐다. 지칠줄 모르는 왕성한 연주활동은 헤아리기 벅찰 만큼 많은 양의 레코드로 변신했고, 그는 그곳에 일정한 박자를 유지하면서도 생생하고 경쾌한 감각이 살아있는 연주를 담았다 1970년대에는 트럼페터 디지 길레스피(Dizzy Gillespie)와 함께 연주하기도 했으며 [The Gifted One s](1977)는 많은 사랑을 받았다. 1976년 심장 마비가 오면서 건강이 악화됐으며, 결국 1984년 4월 26일 암으로 사망했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연주활동과 레코딩 작업을 게을리하지 않았으며 [On The Road](1979), [Get Together](1979), [Me And You](1983)등을 연달아 발표했다. 그의 사후에도 밴드는 계속해서 토드 존스(Thad Jones), 색소포니스트 프랭크 포스터(Frank Foster)와 활동하면서 그의 정신을 이어나갔다. 카운트 베이시 악단은 밴드를 시작하려는 팀들에게 본보기가 됐으며, 라이브 악단뿐 아니라 스튜디오 악단에게도 두루 영향을 줬다. 그리고 그의 연주가 담긴 앨범들은 강한 생명력을 갖고 지속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