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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6/07/17
 

위대한 아들(안철수 교수 )뒤에 더 위대한 아버지 계셨네

2009.06.21 18:20 | 손님방(사랑방) | 발명가

http://kr.blog.yahoo.com/tdt119/8946 주소복사

위대한 아들(안철수 교수 )뒤에 더 위대한 아버지 계셨네

“능력 있는 사람이 사회에 베풀어야 한다




지난 17일 MBC 무릎팍 도사에 출연해 고매한 성품을 가진 소박한 천재의 모습을 보여준 안철수 교수가 네티즌의 환호를 받고 있는 가운데, 안철수 교수의 아버지 안영모(81) 원장 또한 화제가 되고 있다.

부산 범천동의 작은 병원, ‘범천의원’에서 46년째 진료를 해 오고 있는 안영모 원장은 사명감을 가지고 사회에 봉사하고 공헌하는 지성인 삶을 실천, 아들 안철수 씨에도 본보기가 돼왔다.

안 원장은 일제치하 시절 6년제 부산 공립 공업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 의대를 나와 7년간 군의관 복무를 마친 뒤 의사의 길을 걸어왔다. 1963년, 갓 돌이 지난 아들 안철수씨를 안고 당시 부산의 판자촌, 범천동으로 간 안 원장은 병원을 개업했다. 영양실조와 각종 고질병이 난무하던 가난한 동네에 병원을 차린 안 원장은 시내 병원의 절반만을 진료비로 받으며 형편이 어려운 이들을 치료했다. 


아들 안철수 씨가 초등학생이던 시절, 안 원장은 병원 앞에서 급작스레 교통사고를 당한 신문배달 소년을 병원으로 데려가 정성껏 치료해주고 “어린 학생이 무슨 돈이 있겠느냐”며 그냥 보내준 적이 있다. 이 일은 지역 신문에 기사가 실릴 정도로 많은 이들을 감동시켰고, 그 때 가장 크게 감명을 받은 사람이 아들 안철수였다. 아버지를 보며, “나도 커서 아버지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한 안철수 씨는 “대화를 하거나 직접 가르침을 받은 적은 없지만 항상 아버지의 생활을 보면서 자연스레 교육을 받았다”고 말했다.

현재는 연로해서 귀가 어두운 안 원장은 날마다 병원에 나와 진료를 하는 게 힘든 상황이다. 하지만 40년 넘게 같은 자리에서 이웃들을 위해 의술을 펼친 안 원장은 며칠에 한 번씩이라도 꼭 병원에 나와 환자들을 보고 있다.

안 원장은 자녀들에게 "금전에 눈을 두지 말고 명예를 중히 여겨라. 지금까지 좋은 일을 했더라도 앞으로 더 많이 해야 한다. 평생 남을 위하는 마음으로 살아라” 라고 강조해왔다. 안철수 교수의 “능력 있는 사람이 사회에 베풀어야 한다”는 인생철학은 아버지로부터 온 것이다.



가족들에게 알리지도 못하고 입소한 안철수


"남다를 것 없는 학생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공부도 못하고 운동도 못했다.

반에서 60명중 30등 정도로 중간 정도 했다"고 말하는 안철수.

하지만 그가 다른 사람과 달랐던 것은 바로 독서. 

"단지 제가 참 좋아했던 것은 책 읽는 것이었다. 약간 병적으로 좋아하는 정도였다"

종이가 바닥에 떨어져있으면 꼭 주워서 글자를 읽어야 직성이 풀렸다는 것.

또한 책을 읽을 때도 내용만 읽으면 뭔가 부족한 것처럼 생각이 되어서

페이지숫자와 저자, 발행연월일까지 읽어야 책을 다 읽었다는 기분이 들었다고. 


"활자 중독증이었던 것 같다. 제가 좋아했던 것은 과학책이나 소설책을 좋아했다.

교과서는 별로 안 좋아했다."


"초등학교 때 작은 도서관이 있었는데 거의 모든 책을 다 봤다.

매일같이 책을 빌렸다가 다음날 새로운 것을 빌리고 하다 보니 도서관 사서분이

대출카드에 이름 적는 장난치는 줄 알고 나중에는 책도 안 빌려주려고 하더라."


또한 안철수는 아이의 독서습관엔 부모의 솔선수범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책을 읽으라고 말만 하면서 부모님들이 한 번도 책을 읽는 모습을 안보여주면 아이들 역시

책상에 앉아서 책 읽는 흉내만 낼뿐 책읽기를 따라서 하지 않는다."며
 
아이들의 독서습관을 키워주기 위해선 말보다 부모의 습관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백신프로그램 연구하느라 입소날 새벽까지... ㅎㄷㄷ
그러고는 가족들에게 알리지도 않고 군대에 들어가 ㅋㅋㅋ


지난 17일 방송된 MBC 예능프로그램 '황금어장-무릎팍도사'에 출연한 안철수 카이스트 석좌교수에 대한 시청자들의 칭찬 릴레이가 이어지고 있다,
시청자들은 방송이 끝난 뒤 ‘시청자 게시판’을 통해 안 교수를 “세계 IT 전쟁을 승리로 이끈 장군님”, “외국산 소프트웨어의 공급에서 나라를 구한 이 시대의 독립투사” 등으로 칭하며 감동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일부 시청자들은 안철수를 차기 대선후보로 추대해야 한다는 의견을 올렸다.

안 교수는 서울대 의대를 나와 의사 생활을 하다가 백신 프로그램 개발에 뛰어들었다. 이후 국내 최대의 보안 소프트웨어 업체인 ‘안철수연구소’를 설립해 사장을 지냈고, 미국 MBA 유학을 다녀와 현재 카이스트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

시청자들은 혼신의 노력으로 개발한 백신 프로그램을 무료로 배포한 점을 칭찬했다.   “컴퓨터 시작하고 거의 20년간 V3를 사용하는 사용자”라면서 “당연하게 무료란 생각으로 사용했던 프로그램을 누군가는 긴 세월동안 연구하고 만들었다는 것을 너무 오랫동안 잊고 지냈다”고 반성했다.  “IT 세계대전에서 대한민국을 지켜주신 장군님 만세!”라고 썼다.

안 교수의 생활이나 소신 등을 보고 자신의 모습을 반성했다는 시청자들도 많았다.  “우리 사회의 한심한 모습에 비판만 하기 바빴는데 어제 많이 배웠다”며 “이런 사람이 많아지고, 정의를 알아주는 이가 많아지면 세상이 더 좋아질 것”이라고 했다.

일부 시청자들은 안 교수에게 차기 대선후보로 추대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올렸다.  “다음 직업으로 대통령에 도전해서 우리나라를 살기 좋은 나라로 한 번 만들어 보시면 어떨지”라고 했다.

한편 여야 정치권은 국회의원 선거가 있을 때마다 안 교수에게 비례대표 최상위권을 제의하며 영입을 시도했다. 하지만 안 교수는 “정치는 제가 할 일이 아니다”라며 번번이 거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의 빌게이츠'로 불리는 안철수 교수의 온화한 카리스마가 안방극장을 달궜다.


안철수는 17일 MBC '황금어장-무릎팍도사'에 출연해 시종일관 겸손한 태도로 출연진과 시청자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의사, 의대교수, 바이러스 백신 개발자, 기업가와 학생을 지나 지금은 카이스트에서 대학교수로 활동하고 있는 안철수. 그는 방송 출연 계기에 대해 "학생들이 이 방송에 출연하라고 권유해 나오게 됐다"며 자신이 고민의 고민에 대해 '평생 직업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안철수는 학창시절 공부를 잘 하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서울대 의대를 가게된 사연과 최연소 의대 교수가 된 사연을 전하면서도 시종일관 겸손한 태도를 유지했다.


서울대에 간 비결에 대한 질문에 안철수는 "어린시절부터 활자 중독같은 '병'이 있었던 것 같다. 교과서를 제외한 과학책이나 소설책 등을 많이 읽었다. 초등학교때 학교에 작은 도서관이 있었는데 그곳에 있는 책을 하루에 한권씩 모두 읽자 도서관 직원이 나를 의심하더라"며 "학창시절 공부는 잘 하지 못했지만 고 3때 머리가 늦게 깨어 운이 좋게 서울대에 갔다"고 설명했다.

또 "최연소 의대 교수가 된 것은 그 당시 의대 교수 수가 많지 않다 보니 순서대로 교수가 됐다.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밝혔다.


한국 최초 바이러스 백신을 개발한 사연에 대해 안철수는 "의대 공부에 필요해서 기계어를 배웠는데, 어느날 갑자기 바이러스를 발견하게 됐다"며 "의대 교수로 활동하면서 백신프로그램을 개발해야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시간을 정해놓고 새벽3시에서 6시까지는 백신을 위해 사용하고 나머지 시간은 병원을 위해 사용했다"고 전했다.


이어 "그렇게 10년쯤 지내던 중 한계가 오더라. 의사와 백신 연구가 중 한가지 길을 선택해야했다. 무척 많이 고민했지만, 내가 잘할수 있고 하고 싶은 일을 정하려고 교수직을 포기하고 백신연구에 몰두하기로 결심했다. 내가 계속 교수일을 하면서 백신 연구를 한다면 자기 인생을 걸고 의대에 진학한 학생들이 불쌍하지 않겠느냐"며 안철수연구소의 설립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비영리 목적으로 백신 개발을 하는 안철수 연구소는 2년동안 적자에 허덕여야 했다.


당시 상황에 대해 안철수는 "당시 소원은 2~3달치 급여를 현금으로 보유하고 있는 것"이라며 힘들었던 시간을 회상했다. 그러던 차에 안철수는 미국의 실리콘 벨리에 위치한 유명 보안회사로부터 1천만달러의 매각제안을 받게 된다.


미국 실리콘 벨리의 유명 보안회사의 회장은 안철수 앞에서 직접 프리젠테이션을 하는가 하면 회사를 매각하면 얻게되는 모든 이점을 앞세우며 안철수를 설득했다. 하지만 안철수는 회사 매각을 단칼에 거절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당시 1천만달러에 회사를 매각하는 것을 거절한 이유를 묻자 안철수는 "그 사람들의 목적은 한국진출이였다. 한국이 진출하려고 보니 안철수연구소가 많이 걸렸나보다"며 "하지만 그 회사에 회사를 팔 경우, 결론은 불보듯 뻔했다. 그 회사는 V3(안철수 연구소의 바이러스 백신 프로그램)를 폐기하고 한국시장을 장악하려했다. 지금 생각해도 안철수 연구소를 팔지 않은 것은 잘 한 일"이라며 백신 연구에 대한 남다른 소신을 전했다.

이후 안철수는 1999년 체르노빌 바이러스로 인해 제기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당시 바이러스로 인해 국내 PC 30만대가 먹통이 되고 사람들이 바이러스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되며 그의 사업은 번창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안철수는 여기서 안주하지 않고 미국으로 건너가 공부를 새롭게 시작했고, 현재는 카이스트에서 교수로 활동 중이다.


지난 삶에 대해 전하던 안철수는 "나는 돈보다 명예가 좋고 명예보다 마음 편한게 좋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하는 사람이다"며 "그때 의사를 그만두지 않았었더라면 지금보다 더 행복하게 지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지난 내 결정에 대해 후회하는 성격이 아니다. 내가 의사를 포기하고 백신 연구를 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나는 더 다양한 경험을 했다"며 "효율성 생각하면 내 인생은 실패한 인생이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가장 맞는 것을 찾는 것은 중요하며 가장 큰 선물이다"고 전했다.


시종일관 겸손한 태도에 대해 출연진의 칭찬에 그는 "내게 '청교도'적인 삶을 산다던 사람도 있었고, '어떻게 그렇게 참고 사느냐'고 말했던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참고 살지도 않았고 청교도 적인 삶을 살지도 않는다. 나는 그냥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하고 사는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방송 이후 시청자 게시판에는 안철수에 대한 호평이 쏟아졌다. 시청자들은 "어려운 컴퓨터 용어들도 쉽게 설명하고, 자신의 위치와 능력과 상관없이 늘 겸손하고 순진한 모습에 감동적이었다" "예능프로그램을 보면서 감동받아 울기는 처음이다. 멋진 강연회에 다녀온 것 같다" "이시대 기업인들의 진정한 롤 모델, 진심으로 존경한다" "도전하지 않는 내 삶이 부끄럽다" 등의 글들을 연이어 올리고 있다.


17일밤 방송된 MBC `무릎팍 도사`에 연예인 아닌 유명인사 한명이 출연해 화제를 낳고 있다. 컴퓨터 백신 개발로 잘 알려진 안철수(현 카이스트 교수) 교수로, MC 강호동의 말 마따나 이날 보여준 안 교수의 `온화한 카리스마`와 이슬만 먹고살 것 같은 `천상의 가치관`으로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줬다.

이날 안 교수는 초등교 시절 60등에서 30등했던 중간 가는 평범소년으로부터 의대 진학 - 의사 - IT 연구자, 그리고 현재 교수로까지 전직한 그의 직업 여정을 진솔하게 들려주었다. 겸손함속에 그는 초등교시절 도서관에 있는 책을 모조리 읽었고, 아내와의 캠퍼스 커플 시절에는 도서관 자리잡아주고 커피 빼먹고 의료봉사 다니며 연애하고 결혼한 학구파 커플의 에피소드도 밝혔다. 여기다 딸이 고3때에는 아내는 나이 마흔에 로스쿨을 공부하고 자신의 의학공부를 하고, 딸은 대입 공부를 하며 세가족이 같이 도서관서 공부한 아이비 리그 시절의 기묘한 풍경도 공개했다. 안 교수는 딸이 좀 챙피해했다고도 한다.

안 교수는 당시 IT업계에서는 기록적인 세후 순이익 100억을 기록한 `안철수 연구소`의 CEO를 그만 두고 카이스트 교수로 전업한 이야기도 했다. 그 이유를 그는 자신의 여러 경험을 혼자만 갖고있을 것이 아니라 학생들과 공유하고 싶어서라고 했다. CEO에 대해서도 그는 명언을 했다. "CEO는 직원들의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직원들과 하는 역할만 다른 수평적 관계"라는 것.

그는 어머니가 자신에 지금까지 존댓말을 하고 자신도 아내 딸에게 존대를 한다고 한다.

`한국의 빌 게이츠`란 별명에 대해서도 그는 "맞지 않는 것 같다. 규모가 다르고 불편한 비유"라고 솔직하고 겸손하게 말했다.

시청자들은 프로그램 게시판에 "존경합니다", "감동했고 배울 점도 많았다" "안철수씨는 보석같은 분" "역대 최고의 게스트"였다고 찬사를 쏟아냈다.

`무릎팍 도사 -안철수`편은 겸손속에 그의 천재를 감출 수 없었던 안철수의 `낭중지추`같은 방송이었다. 그의 솔직함속에 연구하는 백신개발자로써 회사를 운영하는 경영자로써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로써의 비범과 올곧은 철학을 보여주었다.



안철수의 패자부활론…"실패해도 기회 줘야"
 



["학생들 도전정신 있지만 사회가 안전 지향하게 만들어"]


다들 미국 실리콘밸리를 '성공의 요람'이라고 하는데, 사실은 '실패의 요람'이거든요."
안철수연구소 설립자이자 포스코 사외이사인 안철수 카이스트(KAIST) 석좌교수가 지난 17일 "실패한 사람에게도 기회를 주는 쪽이 결국 젊은 20대들이 보다 도전적인 정신을 갖게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안 교수는 MBC TV '무릎팍도사'에 출연, "많은 분들이 젊은 세대가 예전보다 안전 지향적이라 하는데 학생들을 가르쳐보니 개개인은 그렇지는 않더라"며 "문제는 그런 도전정신 강한 학생들을 안전지향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도록 사회가 몰아붙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안 교수는 "미국 실리콘밸리가 성공의 요람이라고 하는데, 사실은 100개의 벤처가 나타나면 하나만 살고 99개는 죽는 실패의 요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실리콘밸리에선 실패한 기업에게도 도덕적 문제가 없고 최선을 다했다고 하면 기회를 준다"며 "그것이 실리콘밸리의 성공 모델"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국내에 이른바 '패자부활' 풍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하며 "실패한 사람에게도 기회를 주는 쪽이 결국 젊은 20대들이 보다 도전적인 정신을 갖게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안 교수는 의사에서 바이러스 백신 개발자로, 경영자로, 또 교수로 직업을 바꿔온 데 대해 "(인생에서) 효율성이 전부가 아닌 것 같다"며 "정말 자신에게 맞는 분야를 찾기 위한 시간은 값진 시간이고 자기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스스로에게 가장 큰 선물"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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