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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같은 단발머리에 옅은 미소, 잔잔한 감동을 주는 글 때문에 사람들은 장영희 교수가 조용 하고 나직하기만 했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가까운 사람들은 그의 다른 모습도 기억한다.
빠른 서울 말씨로 단칼에 푹 찌르는 촌철살인. 어느 해 가수 조영남이 장 교수 생일잔치를 열어 주자 "둘이 결혼하는 거냐"는 우스갯소리가 나왔다.
장 교수가 한 마디로 주변을 잠잠하게 했다. "난 처년데 아깝잖아!" <파도... 꽃송이님!>

▶장영희 교수는 다섯 살이 될 때까지 제대로 앉지 못해 누워만 있던 소아마비 1등급 장애우 였다.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엄마 등에 업혀 학교에 갔고, 엄마는 그를 화장실에 데려가기 위해 두 시간에 한번씩 다시 학교에 갔다. 그 후에도 평생을 목발에 의지한 삶이었다.
그러나 장 교수는 '천형(天刑)'이란 말을 제일 싫어했다. 그를 버티게 한 건 삶에 대한 희망과 열정이었다.

▶"대학 2학년 때 읽은 헨리 제임스의 '미국인'이라는 책에는, 한 남자의 인물을 소개하면서 '그는 나쁜 운명을 깨울까 봐 무서워 살금살금 걸었다'는 표현이 나온다.
나는 그때 마음을 정했다. '나쁜 운명을 깨울까 봐 살금살금 걷는다면 좋은 운명도 깨우지 못할 것 아닌가.'
나쁜 운명, 좋은 운명 모조리 다 깨워가며 저벅저벅 당당하게, 큰 걸음으로 살 것이다, 라고."('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장 교수가 생산하는 희망의 바이러스는 그의 아름다운 문장을 통해 역경에 부딪히고 삶에 지친 동시대 사람들을 어루만져 주었다.
2004년 완치된 줄 알았던 암이 재발하자 그는 "신은 다시 일어서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넘어 뜨린다고 나는 믿는다"고 썼다.
일산 국립암센터의 환자들을 위한 서가에 장 교수가 쓴 책들이 그렇게 많이 비치돼 있고 손때가 묻어있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어떤 사람은 장 교수의 글이 주는 치유의 힘을 '장영희 효과'라고 했다.

▶장영희 교수가 8년에 걸친 암 투병 끝에 9일 천국으로 갔다.
"남보다 느리게 걷기에 더 많이 볼 수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던 장 교수였으니, 짧은 생애 였지만 보통 사람보다 많이 보고 갔을 것이다. 그리고 남보다 더 많은 것을 남겼다.
그는 조선일보에 연재한 '영미시 산책'에서 "'내 힘들다'를 거꾸로 하면 '다들 힘내'가 된다" 고 했다.
힘들어도 다들 힘을 내 자기 안에 있는 용기와 인내, 열정의 깃발을 다시 흔들자는 얘기였다.
장영희 교수의 명복을 빈다.
'내힘들다' → '다들힘내' / 힘찬 파도처럼... 火石
조선 / 만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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