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독서가 진정한 영어 실력을 갖추게 하는 필수적인 훈련이라는 것쯤은 누구나 잘 아는 상식이겠으나, 어떤 책들을 어떻게 읽어야 좋은가에 관해서는 아직도 이견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을 찾는 일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유학 준비를 할 때나 미국대학에 입학한 후에 성공적으로 학업을 수행한 사람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그것이 저절로 드러나기 때문이지요.
영어 교육의 실제 성공사례에 대한 폭넓은 연구 조사도 없이 단순히 가상 이론에 따르거나 소위 학계에서 권위를 인정받는 사람이 주관적으로 잘못 내린 결론 때문에, 그리고 그 결론을 다른 사람들이 되풀이 인용했기 때문에 우리 아이들에게 혼란만 일으키게 한 “잘못된 지침들”이 있는데, 그 중 네 가지만 여기에서 언급하고자 합니다.
(가) “고전(Classic)을 많이 읽어야 독해력이 향상된다.”
사실이 아닙니다. 책을 읽는 직접적인 이유는 어려운 책을 읽어서 단어실력을 높이자는데 있는 것이 아니고 글 전체를 볼 줄 아는 독해능력을 키우자는데 있거든요.
실제로 미국의 하버드, 예일 등의 명문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이 즐겨 읽었던 책은 고전이 아니고 비교적 근래에 출간된 인기권장도서들이었습니다.
제가 낸 통계에 의하면 이들은 주로 본인들의 흥미가 이는 책이라면 가리지 않고 읽었고, 어려운 단어들이 많이 나오고 진부한 표현이 가득한 고전들을 사실상 멀리했었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한인 학부모들 중에는 자녀들의 흥미에는 상관없이 헤밍웨이의 소설이나 러시아 문호들의 영문 번역서 등을 읽도록 강요하는 분들이 많은데, 그런 과정을 겪은 아이들은 대개 어린 나이에 책을 멀리하기 시작합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 책을 쓴 저자의 의도나 글의 이면에 흐르는 사회적 배경, 사상 등을 이해할 수 있는 정신적 연령이 되어야 가능합니다.
그런데 친구들과 술래잡기 놀이나 해야 어울릴 초등학교 4학년 아이가 톨스토이의 부활을 읽었다는 말을 들을 때면, “그 불쌍한 아이가 엄마 등쌀에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까?” 하는 동정심이 먼저 일고, “그 아이는 머지않아 책을 멀리하거나, 아니면 단순히 엄마를 기쁘게 하려고 이해도 안 되는 어려운 책들을 고통스럽게 붙들고 있겠구나.” 하는 걱정이 이어집니다.
사춘기의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아이가 남녀 간의 뜨거운 사랑을 상상이나 하겠으며, 이제 막 소꿉놀이를 끝낸 나이에 사회사상의 격동을 어찌 들여다 볼 수나 있겠습니까?
훌륭한 독서인이 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두 개의 과정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쉬운 책부터 단계적으로 수준을 높여가는 이해력 성장과정이고, 또 하나는 어쩔 수 없이 나이의 영향을 받는 정신연령 성장과정입니다. 물론 독서량이 많으면 정신연령도 그만큼 앞당겨져 자라겠지요. 그러나 이해력이나 정신연령 모두 부모가 원하듯 “잭의 강낭콩나무”처럼 하루 밤새에 자라는 것이 아닙니다. 세월이 흘러야 하고, 읽은 책의 쪽수도 각자 자기 수준에서 채워져야 하지요.
그래서 고전보다는 아이들의 현 수준에 걸맞고 흥미를 유발하는 책, 또는 한 권을 읽으면 다음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시리즈 물이 일단 독서에 깊은 취미를 갖게 하는 훌륭한 권장 서적들입니다. 이 주장은 가상적 이론이 아니고 실제로 대부분의 영재들과 작가들이 거쳐 온 길을 분석한 가운데서 나온 것입니다.
(나) “책을 읽은 다음에 독후감을 쓰게 하면 1석2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이 말 역시 가상적 근거에서 나온 낭설입니다. 자녀들이 책을 읽고 나서 독후감을 쓰도록 요구하는 한인 학부모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독후감은 책 안에 나오는 문장 중에서 몇 개 따다가 늘어놓는 것이 아니지요. 그런데 독후감을 어떻게 쓰는 건지 학부모들 자신도 모르고 자녀들에게 가르쳐 준 적도 없이, 단순히 “독서와 작문을 한꺼번에 해결 할 수 있다”는 욕심 하나만으로 자녀들을 어려운 길로 몰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글짓기는 배워서 터득해야 하는 하나의 기술입니다. 물론 여기에 상상력과 창의력이 가미되면 훌륭한 작가가 될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아무 기술도 배운 적이 없는 목수에게 집을 지어내라고 하듯, 독후감 샘플 하나도 본 적이 없는 아이에게 독후감을 쓰라고 하니 고통이 이만 저만 큰 게 아니에요.
어떤 글을 쓰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그 글의 뼈대를 세우는 것입니다. 자기 의견을 발표하든 한 사건을 전개해 나가든 그 글을 읽을 사람들 모두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순서에 따라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글이 갖춰야 하는 형식입니다.
이러한 기본 규칙을 모르고 쓴 글을 읽으면 여기 저기 끊어진 길을 따라 차를 몰고 가야 하는 운전자처럼 마음이 불편해지고, 목적지에 도착하고 나서도 “내가 여긴 뭐 하러 왔나?”하는 후회밖에 남는 게 없겠지요. 하물며 그렇게 무질서한 글을 매번 써야 하는 아이들의 심정이야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어려서부터 독후감을 쓰도록 강요 받은 아이는 훗날에 작문은커녕 책도 안 읽는 아이가 되기 쉽습니다. 책을 읽고 있으면 나중에 독후감을 써야 한다는 스트레스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제동이 걸려서 점차 독서하는 스피드도 느려지지요.
게다가 그런 부모들은 읽을 책을 아이가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게 하고 손수 골라주시는 경향이 강한데, 대개 재미없는 것들입니다. 그 아이들에게는 독서가 즐거움을 주는 취미가 아니라 싫어도 해야 하는 의무가 되어, 책이 고통의 상징처럼 느껴져 심리적 부담을 주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책을 점차 멀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독후감을 쓸 것을 강요하는 부모와의 관계도 점차 악화되지요. 독서와 작문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한꺼번에 잡으려다 오히려 둘 다 놓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겁니다. 독서와 작문 훈련은 별개로 분리 시켜야 한다는 의견 역시 교육 현장에서 영재들과 그 부모들에 대한 오랜 관찰에서 얻어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