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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와인 삼겹살 집들이 대 유행을 했다. 그런 스타일의 고깃집들은 지금도 꾸준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과연 삼겹살을 숙성시킬 때는 얼마나 좋은 와인을 썼을까. 아마도 색깔만 와인은 아니었을까. 아무튼 와인은 이렇게 삼겹살 한 점에도 고급스러운 환상을 심어주곤 한다.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의 대표적인 음식으로 꼬꼬뱅이 있는데, 그 동네의 토종닭을 그 지방에서 생산한 와인에 졸인 요리다. 와인에 고기를 재어두면 향은 풍부해지고, 육질은 부드러워지니 좋은 요리법에는 맞는 것 같은데, 우리나라의 난데 없는 와인 삼겹살 열풍도 그런 점에서 받아들이면 되는 것일까.
먼저 외국에서 하는 대로 돼지고기와 와인의 일반적인 매칭을 보면 무게감이 있는 화이트 와인이나 가벼운 레드 와인을 많이 권한다. 하지만 워낙 먹는 스타일이나 입맛이 다르다 보니 우리나라에서는 그보다 약간 범위를 확장시켜도 괜찮을 듯싶다. 유럽보다는 우리나라에서 훨씬 대중적이고 다양한 방법으로 돼지고기를 먹으며, 와인 또한 강건한 스타일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가장 대중적인 돼지고기 메뉴는 역시 삼겹살이다. 어딜 가나 삼겹살 굽는 냄새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자극적인 반찬들이 많이 곁들여지므로 너무 좋은 와인은 어울리지 않는다. 가장 대중적인 맛인 삼겹살에 역시 가장 대중적인 와인을 곁들이는 건 어떨까. 토스카나를 대표하는 끼안띠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와인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새콤달콤한 맛이 강해서 초보자들도 마시기에 편해서 삼겹살 집에서 마셔도 큰 부담이 없는 와인이다. 삼겹살은 기름기로 인해서 입안에서 씹힐 때의 느낌도 부드럽기 때문에 끼안띠 한 잔이면 삼겹살 집에도 즐거운 풍류를 제공할 것이다. 아니면 끼안띠처럼 새콤달콤한 맛을 지니고 있는 꼬뜨 뒤 론 같은 와인이 좋다. 우리나라에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삼겹살의 푸근한 맛에 새로운 자극을 주면서 고기 맛을 훨씬 좋게 만들어준다.
삼겹살의 기름짐이나, 돼지갈비의 묵직함이나 다 와인과는 어울린다. 양념 간이 되어 있는 돼지갈비에는 끼안띠나 꼬뜨 뒤 론과는 조금 묵직한 스타일의 와인을 곁들이는 게 나을 것 같다. 삐에몬떼의 바롤로나 바르바레스꼬는 돼지고기와 같이 먹기에는 부담이 간다. 하지만 이 지방에서 생산되는 중상급의 와인이라면 충분히 돼지고기의 맛을 커버해줄 것이다. 품질이 개선되면서 요즘 더더욱 인기를 끌고 있는 바르베라는 육질이 더 좋은 돼지갈비에, 그보다 약간 가벼운 양념을 한 돼지갈비에는 돌체또 같은 삐에몬떼 와인과 함께 마시면 고기나 와인이나 다 맛이 배가될 것이다. 부르고뉴로 간다 하더라도 역시 고급 와인을 돼지고기에 맞부딪히게 만들 필요는 없다. 그보다는 가장 평범한 부르고뉴 삐노 누아 와인이면 충분하다. 부르고뉴 삐노 누아의 멋들어진 느낌은 고기와 양념 맛이 어우러진 돼지갈비 한 대를 뜯을 때 충분히 맛을 내준다.
양이 많지 않아서 정육점 주인들만 몰래 먹었다는 ‘웃기는’ 마케팅으로 알려진 부위가 항정살이다. 약간 뽁뽁거리는 느낌과 부드러운 맛이 잘 어울리는 부위다. 입안을 가득 채우는 느낌보다는 씹는 맛이 살아있으면서 생동감이 넘치기 때문에 항정살이라면 화이트 와인이 무난할 것이다. 이태리 산 가비나 아니면 뿌이 퓌세 같은 와인은 화이트 와인이면서도 적당한 무게감이 있다. 항정살 정도의 중간적인 무게감이면 이런 화이트 와인을 마시면 시원한 느낌을 더하는 것도 괜찮다. 아니면 스페인 산 리오하 와인을 곁들이는 것도 좋다. 와인 맛의 풍부함보다는 과실 향이 자아내는 신선함이 있어서 기름지지 않으면서 누구나 쉽게 먹을 수 있는 항정살과 묘한 매칭을 이루어낸다.
프랑스에는 우리나라의 순대와 다름없는 앙두이에뜨나 부댕 같은 요리가 있다. 앙두이에뜨는 보졸레의 전통 음식이고 부댕은 알자스 쪽에서 많이 먹는데 우리나라의 순대와 비슷하다고 보면 적당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보졸레 누보 외에는 별반 관심이 없지만, 일반 보졸레 와인은 돼지고기와 마시기에 편한 와인이다. 싱싱한 풍미가 강하고 달콤해서 누구나 쉽게 마시기에 좋기 때문이다. 다만 길거리에서 파는 식용 비닐로 만든 순대가 아니라 돼지 내장을 써서 제대로 만든 순대와 먹는 게 당연한 얘기지만. 보졸레 누보처럼 새로움에 대한 환상은 없지만 보졸레의 신선한 가벼움은 순대 한 조각에도 낭만을 부여해준다. 순대와 함께라면 화이트는 알자스 쪽을 건드려 보자. 향기가 자극적인 게부르츠트라미네 와인은 순대에 새로운 풍미를 더해줄 테니까.
게부르츠트라미네라는 품종은 우리 음식과 함께 마신다면 무척 색다른 맛을 더해준다. 예를 들어 보쌈을 먹을 때도 한번 시도해볼만 하다. 대신 돼지고기를 김치와 같이 먹을 때는 돼지고기의 양을 좀더 넉넉하게 늘려줄 필요가 있다. 아니면 김치 맛에 모든 맛들이 치이기 때문이다. 기름진 돼지고기 사이로 적당히 우러나는 김치의 매운 맛과 게부르츠트라미네의 스파이시한 향이 어우러지면서 여러 가지 향신료들이 전해주는 느낌을 묘하게 변화시켜 준다. 장충동에서 족발을 먹을 때도 와인 생각이 나긴 마찬가지다. 독일 사람들은 유럽에서는 어느 나라보다도 돼지고기를 많이 먹는 편이다. 그 중심에 있는 게 바로 돼지 족발 요리인 아이스바인이다. 독일뿐만 아니라 프랑스에서도 알자스 지방에서 아이스바인을 많이 먹는다. 화이트 미트와 화이트 와인의 전형적인 매칭은 바로 이런 경계에서 이루어진다. 독일이나 알자스나 다같이 화이트 와인으로 유명한 곳. 게부르츠트라미네뿐만 아니라 리슬링이나 실바너 품종으로 만든 와인들을 곁들여 먹어 보면 레드 와인과 함께 먹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가 된다.
돼지고기와 함께 기억나는 몇 가지 와인이 있다. 나와 와인 동지들은 삼겹살 집에 갈 때도 항상 와인을 들고 다녔기 때문이다. 와인을 아는 사람들이 들으면 경악을 금치 못할 일이지만 삼겹살과 곁들여서 가장 많이 마셨던 와인 중 하나는 오르넬라이아 93년 산이었다. 지금은 몇 십 만원씩 가기 때문에 구경하기도 힘들지만 그때만 해도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던 슈퍼 투스카니 와인. 당시에는 가격이 그다지 비싸지 않았지만 지금은 최고급 레스토랑에서나 겨우 마실 수 있을 정도로 가격이 오르고 말았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삼겹살을 구우면서 오르넬라이아를 마시던 기억은 생생하게 남아있다. 프랑스나 이태리 사람이라면 돼지고기를 먹는데 보르도 품종들을 쉽게 권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보르도 와인을 마신다면 돼지고기에는 까베르네 소비뇽보다는 메를로가 부드러워서 훨씬 어울린다. 아니면 슈퍼 토스카나 와인들이 같은 보르도 품종을 쓰더라도 훨씬 부드럽기 때문에 돼지고기의 기름진 육질과 잘 들어맞을 것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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