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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편지]
I
술마신 다음날 아침이면 나는 지하철을 타고 출근한다. 지하철 5호선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빈 자리에 앉기 위해 잠깐 생기가 엿보이던 사람들의 얼굴은 다시 굳어지고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자발적인 가사(暇死) 상태에 빠져든다.
깊은 우물 속에 가라앉은 돌맹이 같은 얼굴, 얼굴들, 2호선으로 갈아타기 위해 왕십리역에서 내려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에스컬레이터와 계단을 번갈아 오르내린 후 기어이 어둠 속으로 빨려든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갑자기 내 자신의 삶이 낯설게만 느껴진다.
전철에서 내려 영화제목 ‘트레인 스포팅’을 떠오르게 하는 고가 전철 밑을 따라, 다닥다닥 붙은 철공소를 지나가야만 파견사무실이 있다. 나는 매번 그 앞을 지날때마다 쓸쓸한 두려움을 느낀다.
보행에 불편을 주는, 인도까지 나와있는 철물들을 피해가면서도 항의 한 번 못했다. 항의는 커녕 그들과 눈 한번 제대로 못 맞추고 애써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곤 한 까닭은 그들의 팔둑의 문신이나 담뱃불로 지진 자국 때문만은 아니다. 요즘세상을 닮은 그들의 황무지 같은 얼굴표정때문이다.
출근시간을 조금 앞당기기 시작한 지난 해 여름부터 아침마다 마주치는 여자가 있다. 촌스러운 머리모양과 세련되지 못한 짙은 화장, 어울리지 않는 짧은 치마와 자전거, 그리고 자전거 바구니에 가득 담긴 프라스틱 보리차 병들.
그녀는 20대 중반쯤으로 선정적인 웃음과 차가운 보리차병을 문신과 담뱃불로 지진 팔둑의 사내들에게 건네고 사내들은 짖궂은 농짓거리와 빈 플라스틱병을 그녀에게 건넸다.
그녀는 활짝 웃는 얼굴로 한 손으로 자전거 핸들을 잡고 다른 한 손은 뒤쪽의 사내들을 향해 흔들며 내 앞을 스쳐 지나갔으며 문신의 사내들은 전과는 달리 기분좋은 미소로 일하기 시작한다.
나는 그녀에게 매료당했다.
그녀는 커피나 보리차만을 배달하는 것이 아니라 다소 선정적이기는 하나 친근한 삶의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
II
한낮이었다.그리고 머리위의 태양은 발밑의 아스팔트를 흐물거리게 했다.
언제나 그렇듯이 서울역 광장엔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가고 있었으며 나는 그때 그곳에 있었다.
내가 그때 그곳에서 본 것은 경이로운 충격이었다.
두 팔을 잃은 사람이 두 다리가 없는 사람을 특별하게 만들어진 지게로 업고 있었다.
두 사람이면서 한 사람이었다.
완벽한 두 다리와 양팔이 그때 그곳에 그렇게 있었다. 자세히 보지않으면 그들은 잃은 게 하나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때는 월남전이 한창 치열했던 때로 그들이 월남에서 부상당한 전우라는 것을 업힌 사람의 혀꼬부라진 소리로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자랑스런(?) 상이용사인 것이다.
그들의 두 팔중 왼쪽 손이 햇빛을 받아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스테인레스 스틸의 손,
그 갈꾸리 손에는 껌이 끼워져 있었고 그때 나는 껌을 팔아주고 싶었지만 몹시 겁을 먹고있었기 때문에 가까이 다가갈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들도 내가 너무 어렸기 때문에 내겐 오지도 않았다. 그들은 어른들에게만 껌을 팔았다.
나는 그때(이제와서 생각이지만) 인간의 사지, 아니 모든 육체가 도구였다는 것을 알고 새삼스럽게 놀랐다. 생명이 육체의 도구 속에 싸여있는 인간의 모든 외모가 생명의 수단이 되는 도구의 모양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때의 목격은 3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생생한 이미지로 남아있다.
그리고 그것은 내게 있어서 어떤 의미에서의 감동이 아닐 수 없다. 나는 그때의 감동을 대학시절에 작품(?)으로 나타내려고 시도한 적이 있었다.
[신체장애자의 복지회관 설계안]이 그것이다.
다리를 잃은 사람과 팔을 잃은 사람의 결합처럼 부분적으로 부족한 사람들끼리 모아서 서로 보완하여 생활할 수 있도록 그들을 도울 수 있는 건축물 (휠췌어에 의지하는 하지장애자와 시각장애자와의 상호보완하는)을 설계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나의 의도를 건축으로 표현하는 것은 그들의 결합보다도 용이한 것이 아니었다.
난자질당한 사람들끼리 서로 돕는다는 게 불가능(?)한 것처럼 건축공간이 사람을 위한다는 것이 여러가지 의미에서 서러운 것이 아닐 수 없었다.
결국 그것으로 대한민국건축전에서 입상까지 했지만 내가 설계한 그것은 ‘괴물’, 바로 그것이었다.
III
지난 주 토요일 늦은 오후,
인사동을 지나다가 밀란 쿤데라의 ‘불멸’를 연상케하는 (쿤데라의 소설 ‘불멸’후반부에 주차차량들의 타이어를 상습적으로 펑크내고 다니는 대학교수가 철학적으로 묘사되어있음) 전시포스터를 보고 인데코 갤러리에 들렀다가 깜짝놀랐다.
도취로서 이해되는 디오니소스적 아름다움하고는 거리가 멀다 할지라도 그곳에는 틀 안에 사로잡힌 그리하여 ‘박제된 공상’이 있었다.
무명(?)의 청년작가 j의 첫 번째 개인전인 것이다.
그녀의 그림들은 로고스의 암호를 해독하려는 조광호의 예술세계와 닮아 있었다. 그녀의 말대로 색채는 밝고 가벼우나 내용은 다소 어둡고 무거웠다.
깊은 공허감, 심리적인 불안과 정신적 분열 그리고 추락의 공포감과 같은 꿈에서나 볼 수 있는 불합리하고 비논리적인 영상들로 가득차 있었다.
손에 잡힐 것 같은 비합리적인 영상들은 합리적인 맥락이 아니라, 애매한 초현실적 상태에서 제멋대로의 상상의 날개를 펴볼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그러면서도 관객을 기만하지않는 순수함이 배어 있다.
또한 그녀는 세기말의 혼돈속에서도 결코 꿈을 잃지않고 있다. 갇혀진 자아에도 불구하고 비상할 수 있는 여운을 남기고 있으며 그림들마다 언뜻 무한한 자유가 엿보인다.
나는 그녀에게 매료당했다.
그녀는 현실의 우울함을 시각이 빚어내는 놀라운 이미지와 환상으로 뒤섞고 있으며 꿈과 현실, 의식과 잠재의식, 정상과 비정상간의 혼돈을 강한 이미지로 가식없이 표현함으로써 아직도 소진되지 않은 순수미술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고있는 것이다.
그녀의 첫번째 개인전을 관람한 지난 토요일 오후부터 나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의 이러한 느낌을 무어라 말을 할까, 그만 둘까.
말을 할까, 그만 둘까. 몇 날을 망설였다.
처음의 개인전을 이와같이 발가벗겨진 채로 내보여 준다는 것이 쉽지 않았으리라 짐작됩니다.
주제넘은 얘기이나 더욱 정진하여 창작활동에 큰 결실을 거둘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1999. 0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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