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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코엔 형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작품상 등 4개 부문을 수상했다. 사진은 냉혹한 살인자 연기로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하비에르 바이뎀의 영화 속 모습. | | ⓒ 파라마운트 빈티지 |
에단 코엔과 조엘 코엔은 한국에서 마니아 영화팬들에게 잘 알려진 괴짜 감독들이다. 괴짜 감독들답게 만드는 작품들 역시 상당히 독특하면서 파격적인 형식미를 갖춘 영화, 그리고 영화학도들에게 모범이 되는 작품이 많았다. 그뿐만 아니라 이 두 형제는 많은 영화 작업을 함께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렇게 유별난 그들의 영화스타일은 한국에서 큰 사랑을 받기 힘들만큼 어려운 영화, 이해하기 힘든 영화, 난해한 영화로 분류되곤 한다. 하지만 코엔 형제는 이미 여러 영화제에서 자신들의 이름을 선명하게 새겨 놓은 감독들이기도 하다. 1991년 제44회 칸영화제 감독상을 <바톤 핑크>로 수상하였으며, 이후에 <파고>를 통해 미국작가조합상, 영국아카데미상, 런던비평가협회상, 그리고 2001년 54회 칸영화제 감독상을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를 통해 다시 수상하게 된다. 이렇게 다른 시상식에서 유달리 상복이 많은 그들이었지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상복 없는 감독들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올해 열린 80회 아카데미 시상식을 통해 드디어 코엔 형제도 인정을 받게 된다. 코엔 형제는 평론가들로부터 명작 스릴러 영화라고 극찬 받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통해 아카데미 감독상, 작품상, 남우조연상, 각색상까지 휩쓸면서 그동안 철저하게 외면당했던 한풀이를 한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아카데미 수상을 계기로 하여 약 2천여 개 이상의 상영관으로 확대 개봉되는 겹경사를 맞으면서 흥행 역시 호조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제자리인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미국에서 아카데미 시상식을 통해 제자리를 잡은 코엔 형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이지만, 한국에서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기본적으로 영화팬들의 층이 넓지 않는 현실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현재의 답보 상태는 영화를 좋아하는 마니아 팬들에게 속 쓰린 것이 사실이다. 물론 우리와 전혀 상관없는 아카데미 시상식을 통해 인정받은 영화를 굳이 한국에서 개봉을 연장하거나 확대할 필요는 전혀 없다. 하지만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꼭 아카데미 수상작이 아니더라도, 한국의 유수 영화제를 통해 인정 받은 작품성 있는 영화들조차 한국에서 제대로 개봉관을 잡지 못해 단명하거나, 아예 외국 영화제 출품을 목적으로 제작되는 경우가 허다하기에 이런 현상이 남의 일 같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다른 사족이 길었지만, 이미 여러 영화 평론가들과 영화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에게 극찬받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개인적으로 어떻게 보았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내가 보는 이 영화, 이렇다 아무리 좋은 영화도, 혹은 나쁜 영화도 영화를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혹은 개인차에 따라 다른 평가를 내릴 수 있다. 결국 누가 어떠한 평가를 내리던 반대 혹은 찬성이 있기 마련이다. 특히 너무나 명확하게 찬반이 나뉠 수 있는 작품이라면 그러한 논란이 조금은 덜 하겠지만, 영화가 너무 어렵거나 너무 난해하면 이러한 찬반의 논의는 상당히 거셀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찬반의 논의가 상당히 거셀 수 있는 작품이다. 최근 한국에서도 상당히 좋은 형식미를 가지고 있으면서 감독의 스타일까지 살아 있는 작품들이 많이 나왔다. 하지만 이 작품만큼 세밀하면서 차분하게, 그리고 감독의 의도대로 풀어가는 작품을 만나기는 힘들었다. 영화 속의 모든 장면, 그리고 영화 속의 캐릭터들이 보여주는 행동과 연기, 편집까지 모든 것이 하나의 고리로 연결되어 있으며, 상업적인 성공을 위해 자신의 스타일을 버리는 우둔한 짓 역시 하지 않았다. 그만큼 철저하게 코엔 형제의 작품이란 타이틀을 확실하게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이 영화는 무엇보다도 이러한 선결사항이 가장 중요한 요소란 생각이 든다. '코엔 형제'표 영화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영화를 보는 것과 '코엔 형제'표 영화가 무엇인지 모르고 영화를 보는 관객들 사이에 엄청난 괴리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화를 볼 때 약간은 세심한 사전 준비와 관람이 요구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코엔 형제의 작품들 중에 <파고>와 유사성을 찾을 수 있지만 <파고>보다 더 냉정하면서, 처절한, 그리고 가혹한 폭력성을 담은 작품이다. 그리고 이러한 폭력성은 관객들에게 다음 장면에 대한 예측조차 불가능하게 만들만큼 긴박감 있는 영화 신(sin)을 만들어 내고 있다. 특히 이러한 폭력성에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것은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상당한 충격을 안겨다 준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각각의 개성은 부여되어있지만 관객들이 생각하는 전통적인 방식의 영화 전개는 없다. 왜 그들은 서로 쫓는지, 살인마는 왜 그렇게 무차별 살인을 하는지, 그리고 영화의 결말 부분에 이르면 도대체 감독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의아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모든 것이 무시된 영화를 보면서 관객들은 스스로 바보가 되는 기분을 맛볼 수도 있다. 다르게 말하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속의 세상은 우리가 알고 있던 평범한 세상이 아닌, 코엔 형제가 만들어 놓은 그들만의 영화 속 세상을 관객들에게 무조건 강요하고 있다. 이러한 강요는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상당히 곤혹스러우면서 당혹스러운 일이다. 이유가 없는 폭력과 살인, 그리고 인간 세상의 복마전은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마음을 답답하게 한다. 아무리 냉정히 생각해봐도 영화 속에서 보여주는 인간 군상들이 제대로 된 사람들이 아닌 것 같기 때문이다. 이런 답답한 마음은 결국 영화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으로 이어진다. 코엔 형제는 도대체 이 영화를 통해 무엇을 전달하고자 한 것인가? 그리고 저 비정상적인 등장인물들은 무엇인가? 영화를 통해 전달되는 감독의 냉정한 시선은 과연 무엇인가? 이전 작품들과 비교했을 때 이 작품이 어떤 부분에서 더 뛰어난가? 이런 쉽지 않은 질문들이 이어진다면 영화는 더욱더 실타래처럼 얽히게 된다. 어떠한 결론도 쉽게 내릴 수 없는 영화적 전개와 설정은 관객들에게 쉽지 않는 선택을 분명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결국 영화에 대한 평가 쉽지 않다 결국 영화를 보고 나면 이 작품에 대한 평가는 쉽지 않다. 난해한 진행과 영화적 설정 등 모든 것이 기존의 영화 방식과 다르고 너무나 낯설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코엔 형제를 좋아하는 영화팬들이라면 둘도 없이 즐겁고 행복한 영화일 수 있겠지만, 기존의 영화 전개와 그 궤를 완전히 달리하는 작품을 보면서 당혹감과 충격을 느끼는 관객들에게는 두 가지 감정을 가져다줄 것 같다. 한 가지는 완전한 색다른 전개에 심한 문화적 충격을 받고 코엔 형제의 새로운 팬으로 편입되거나 아니면 새로운 시도에 박수를 보내는 관객이 될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이유도 없는 폭력과 살인극에 완전히 질린 관객들일 것이다. 만약 이후에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라면 과연 어떤 느낌을 받게 될 것인지 이 글을 적는 리뷰어 역시 상당히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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