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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르스름한 금속으로 된, 구부러지기도 하고 신축성도 있는 얇고 품위있는 이 면도날. 그녀는 면도거
울의 돋보기 쪽 앞에 다리를 벌리고 앉는다. 그리고는 살을 저며내기 시작한다. 피부를 문이 되도록
잘라내 자신의 몸 속으로 들어가는 구멍을 더 크게 만들려는 것이다. 그녀는 면도칼로 베는 것이 아
프지 않다는 사실을 그간의 체험으로 알고 있다.팔과 다리, 손을 자주 실험대상으로 사용해보았기 때
문이다. 그녀의 취미는 자신의 몸을 자르는 것이다. 우리의 입처럼 육체 속으로 들어가는 입구나 출
구도 대단히 아름답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꼭 필요하다. 그녀는 지금 스스로를 자신에게 완전히 내
맡기도 있는 셈인데, 다른 사람에게 내맡겨진 것보다는 어쨌든 이편이 훨씬 나은 법이다. 자신이 결
정권을 가지고 있고 자기 손의 감각에 따르면 되니까 말이다. 얼마나 깊이, 그리고 얼마나 여러 번 칼
을 대야 하는가를 그녀는 스스로 알고 있다. 틈새는 거울 고정나사 안쪽으로 잡아당겨졌고, 잘라낼
기회가 포착되었다. 누가 오기 전에 재빨리 끝내야 한다. 해부학에 대한 지식도 안전대책도 없이 이
차가운 칼날은 그녀가 구멍을 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곳을 이리저리 헤집고 다닌다. 둘로 갈라지는 변
화에 충격을 받아 피가 솟아나온다. 낯설지 않은 광경이지만, 이 피는 구태의연한 일상으로는 얻을
수 없는 어떤 것이다. 늘 그렇듯이 통증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녀는 원래 갈라져야 할 곳이 아닌 곳
을 잘라내 신과 어머니가 기묘한 합의 하에 붙여놓았던 것을 갈라놓는다. 인간은 이런 짓을 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보복을 받게 마련이다. 한동안 두 쪽으로 잘린 신체부위는 놀란 듯 서로를 노려보고
있다. 별안간 예전에 없었던 간극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동안 희노애락을 같이 해왔는
데 이제 서로를 떼어놓다니. 거울 속에서는 거꾸로 보이니까 어떤 반쪽이 자기 반쪽인지 둘 다 알아
보질 못한다. 갑자기 피가 용솟음쳐 나온다. 핏방울은 스며나와서 골을 이루고 다른 피와 합쳐서 물
줄기를 형성하며 이어진다. 여러 개의 물줄기가 한데 합쳐지가 빨갛고 가지런하고 평화롭게 흐르는
시냇물이 된다. 그녀는 온통 피투성이가 되어 자신이 무엇을 잘랐는지 알아볼 수가 없다. 그녀 자신
의 육체였지만 이 육체는 그녀에게 무섭도록 생소하다. 점이 찍혀 있고 선이 쳐 있고 점선이 있는 옷
감에 본을 뜨기 위해 룰렛으로 선을 그려나갈 때 아주 꼼꼼하게 살펴보면서 재단해야 되는 것처럼,
자신의 몸을 자를 때 아주 신경을 쓰고 조심해야 한다는 걸 이전에는 미처 몰랐다.
-엘프리데 옐리네크 '피아노 치는 여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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