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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부머 은퇴] ① 그들은 누구인가
산업화.민주화의 주역..부동산자산의 50% 보유 정체성 혼란..은퇴후 설계는 미흡
이른바 ’58년 개띠’로 대변되는 ’베이비붐 세대’가 내년이면 본격적인 은퇴(隱退)를 맞는다.
한국 전쟁 후 급격한 출산붐을 타고 태어나 산업화와 민주화, 외환위기 등 격변의 세월을 겪어 온 이들은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우리 사회의 주역이다.
1955년부터 산아제한 정책이 도입되기 직전인 1963년까지 9년에 걸쳐 태어난 베이비부머들은 대략 712만명에 달하는 거대한 인구집단이다.
이들은 소비와 생산의 주도 세력이었고 부동산, 예금, 주식 등의 보유자산에서도 다른 세대를 압도하며 우리 사회를 이끌었다.
대기업의 평균 정년이 55세인 점을 감안할 때 내년부터 시작될 ’베이비부머(Babyboomer)’의 은퇴 러시가 우리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 우리사회 주역 ’베이비부머’
경제적 고도성장과 민주화 등 사회의 세찬 변화를 주도하며 어느 세대보다 좌절과 풍요를 함께 맛 봤던 세대지만 경쟁과 변화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면서 뚜렷한 정체성을 찾지 못했던 세대가 한국의 베이비부머들이다.
그들은 큰 몸집 만큼이나 오랜 기간 한국 사회의 중심에 서 왔다.
27일 현대경제연구원 등에 따르면 한국전쟁 이후 1955∼1963년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는 2010년 추계로 모두 712만명으로 총인구의 14.6%에 달한다. 일본의 베이비붐 세대로 불리는 ’단카이(團塊)세대’보다도 30만명이나 많다.
이들의 보유자산이 우리나라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베이비부머는 전체 토지의 42% 가량을 보유하고 있으며 건물 기준으로 전체 부동산의 절반이 넘는 58%를 갖고 있다. 주식시장에서의 파워도 막강해 전체 20%의 주식이 이들의 손아귀에 있다.
한국 전쟁 이후 불붙기 시작한 교육열 덕분에 상당수가 대학 등 고등교육의 혜택을 받았고 경제적으로도 성장기 주역으로 참여하면서 이전 세대는 이루지 못한 고도성장을 달성하며 혜택을 누리기도 했다.
정치적으로는 5.18민주화운동과 6.10항쟁로 이어지는 격동의 시기를 거치며 민주화를 이뤄내는 데 성공했지만 10년 뒤 외환위기를 맞아 경제적 난관과 마주하며 굴곡의 시간을 보낸 한국 사회의 명암이자 산증인이다.
손성동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 연구실장은 “한국 베이비붐 세대는 우리 사회의 모든 변화를 겪었으면서도 정작 발언을 자제했던 이들로 ’386’ 세대와는 다르다”면서 “정체성도 과거 농업사회와 오늘의 도시문화가 혼재돼 있다”고 설명했다.
1990년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뒤쳐진 자신을 발견하기도 했고, 아버지의 권위를 인정했지만 자신은 자식에게는 눈치를 봐야하는 처지. 이들은 직장에서도 선배에 치이다 이제는 후배에 밀려나야하는 세대교체의 압박을 받고 있다.
베이비부머로 현재 대기업 임원인 A씨는 “생존경쟁이 치열했고 애환이 많은 세대”라고 자신을 규정하며 “우리 세대가 사회 중추적인 역할을 해야하는 데 이젠 후배들에 밀려 고난의 세월을 맞고 있다”고 말했다.
◇ 깊어가는 주름살
베이비부머 712만명 중 실질적으로 2010년부터 ’은퇴 열차’에 탑승하게 될 이들은 311만명 정도다. 퇴직과 해고 등으로 경제활동을 중단하게 될 임금노동자들로 매년 30만-40만명이 은퇴 대열에 합류하는 셈이다.
이들의 은퇴는 규모도 규모거니와 노하우를 가진 인력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탓에 경제에 목숨을 건 정부에는 적지 않은 고민거리다.
세금을 낼 사람은 줄고 사회보장비용은 늘어 재정악화를 불러올 수도 있고 제조업 분야에서 숙련된 노동력의 이탈은 노동생산성과 기업경쟁력 약화로 이어져 경제 발전의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특히 베이비부머 대부분이 직장과 가족 등 현실에만 매달리며 노후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탓에 정부가 이들을 뒷받침하지 못할 경우 빈곤층이나 다름없는 취약계층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베이비부머의 은퇴 뒤 수요가 급격히 줄어 부동산 가격 붕괴를 경험했던 일본의 전례는 대부분 집 한 채가 재산의 전부인 베이비부머들을 곤혹스럽게 만드는 부분이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연금 지출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정부 재정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면서 “노하우를 가진 인력이 빠져나가면 국가와 기업생산성, 나아가 잠재적 경제성장률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재취업할 일자리가 마련되지 않고 연금 등 사회안전망마저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베이비부머의 은퇴는 사회 전반을 위협하는 악재가 될 공산도 적지 않다.
정년연장 의무화, 재취업 활성화 등 베이비부머들의 경제 여건을 뒷받침할 만한 다양한 제안들이 나오고는 있지만 여전히 수면 밑 논의에 불과한 까닭에 은퇴에 대한 우려와 걱정은 이들의 미래에 암운을 드리우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 이철선 박사는 “베이비부머의 은퇴가 위험하다는 이유는 55세이상 중고령자인데 반해 임금소득이 없게 되는 상황 때문”이라며 “청년실업은 혼자지만, 부양가족이 있는 이들에게 은퇴는 깊은 고민거리다”라고 말했다.
[베이비부머 은퇴] ② 막막한 노후
코앞 은퇴에 걱정만 태산..달랑 집 한 채 취약계층 전락하나..연금이 최후보루
#1. 황인수(가명)씨는 58년 개띠다. 한국전쟁 후에 태어난 대표적 베이비부머다. 어린시절 미군부대에서 나눠줬던 옥수수 죽을 먹었고 ’통일벼’로 지은 쌀밥을 처음 먹은 세대다. 그는 대학 졸업 후 12년간 몸담은 회사가 외환위기 속에 문을 닫으면서 일을 그만둬야 했지만 그 뒤로 계약직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성실하게 일하면서 가정을 이끌어오고 있다.
하지만 자신의 노후준비는 전혀 안된 상태다. 결혼 뒤 아파트 분양붐이 일 때 한 채 마련하려했지만 지금은 10배나 오른 아파트값에 스트레스만 쌓이고 있다. 은퇴 뒤 믿지 못할 국민연금에 의존할 생각을 하니 앞날이 어둡기만 하다.
#2. 굴지의 대기업 임원으로 있는 김영석(가명)씨도 황씨처럼 1958년생이다. 전쟁 직후 보릿고개를 경험했고 고교 때는 지상과제인 명문대를 가기 위해 밤잠을 설쳤던 모범생이었다. 대학에 입학해서는 독재 반대 데모에 숱하게 참가했지만 1980년대 회사에 입사하며 수출역군의 길을 걸었다. 1997년 금융위기 속에도 꿋꿋이 버티며 임원자리까지 올랐지만 그의 수중에는 서울 목동의 집 한 채가 전부다.
퇴직 후에 집을 담보로 잡고 생활비를 받는 역모기지론을 이용해 볼 생각도 해봤지만 자녀가 있는 입장에서 쉽사리 결정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 준비 안된 노후에 걱정만 ’태산’
은퇴를 앞둔 베이비부머에게 노후 준비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지상 과제지만 당장 해결할 수도 없는 고민거리다. 멀찌감치 떨어져있던 것만 같았던 은퇴가 코 앞으로 다가왔지만 걱정 외에는 별달리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직장을 다니며 부모를 봉양하고 자녀 교육비로 월급을 써 온 탓에 남아있는 재산이라곤 잘해야 집 한 채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조금씩 모아놓은 저축통장이 있지만 잔고가 집을 살 때 은행에서 빌린 대출금에도 못미치는 게 현실이다.
일부에서는 은퇴한 베이버부머가 쏟아져나오면서 실버시장이 급속히 확대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지만 정작 여유롭게 노후자금을 쓸 여력이 있는 베이비부머들은 시장의 기대만큼 크지 않은 게 현실이다.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가 지난 3월 서울.수도권 55세 이상 은퇴자 500명을 상대로 설문 조사한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75%가 은퇴 전까지 노후준비를 전혀 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은퇴 준비를 했더라도 40대 이전에 준비한 경우는 5%에 불과했고, 그나마 50대에 은퇴준비를 시작한 경우도 16%에 그쳤다.
응답자의 61%는 은퇴 준비를 못해 당장에 생활고에 시달린다고 대답했다.
준비가 부족했던 이유로는 59%가 ’자녀에 대한 과다한 투자’를 꼽았고 다음으로 ’소득부족(38%)’, ’은퇴준비에 대한 인식부족(28%)’을 들었다.
자녀교육에 목을 매다 노후 준비를 놓쳤다는 말인데 여전히 소득의 많은 부분을 자녀 사교육비로 지출하는 은퇴 전 베이비부머에게는 남의 얘기가 아니다.
은퇴 후 가계 소득도 은퇴 전에 비해 상당히 낮아진 것으로 조사됐다. 응답자의 43%는 현 소득이 은퇴 전의 소득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답했다.
은퇴 후에도 생활비와 교육비 등으로 씀씀이가 크게 줄어들지는 않는 반면 소득은 절반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노후부담이 가중되고 있는 것이다.
황인수 씨는 “노후준비가 전혀 없는 상태다. 먹고 살기 바쁘다보니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지금도 여전히 아이들 교육비가 많이 들어간다. 국민연금이야 나오겠지만 믿을 수가 없다”고 답답한 현실을 토로했다.
◇ ’취약계층 전락하나..’ 대책 시급
상황이 이렇다보니 은퇴를 앞둔 베이비부머들의 노후는 암담하다.
소득이 줄면서 생활 수준 전반이 하향 조정될 것이라는 예상을 넘어 취약계층으로 추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직장 생활동안 목돈을 마련치 못한 많은 베이비부머는 은퇴 뒤 국민연금 외에 별달리 돈이 나올 구석이 없는 데다 재취업이라는 것도 말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다.
최소한 경제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매달 들어오는 임금 소득이 필수인데 정부의 재취업 대책은 중고령자(55∼64세)보다는 고령자(65세 이상)에게 여전히 초점이 맞춰져 있어 적절한 지원도 기대하기가 쉽지 않다.
재취업에 성공했더라도 퇴직 전 임금수준을 보장받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피델리티자산운용이 지난해 7월에 낸 ’피델리티 은퇴백서’에 따르면 국내 근로자 가계의 은퇴 뒤 희망 생활비가 은퇴 전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나타내는 목표소득대체율은 62%였지만 은퇴 후 예상소득이 은퇴 전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인 은퇴소득대체율은 41%에 불과했다.
월 500만원을 벌던 사람이 은퇴 뒤 310만원 정도의 소득을 원했지만 실제 소득은 기대치에 한참 못 미치는 205만원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소득 자체도 기대에 떨어지지만 여기서 비롯되는 심리적 박탈감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런 박탈감은 사회 전반에 심각한 문제를 끼칠 수 있다. 노인 자살자수가 최근 10년간 2배 가량 급증했고, 자살 충동을 느낀 노인의 41%가 그 이유로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했다는 설문조사 결과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전문가들은 “베이비부머들의 소득은 계속 늘었지만 자녀에게 투자를 많이 하다보니 남아 있는 게 없다”면서 “임금 소득이 없는 상황에서 오래 견디기란 힘에 부치는 일이다”라고 지적했다.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최성재 교수는 “은퇴 이후 일자리를 마련해주고, 사회적으로 재고용하거나 기회를 마련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그에 앞서 노후를 새롭게 인식하는 ’은퇴 준비교육’이 활성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베이비부머 은퇴] ③ 국가경제 후폭풍 우려
성장.경쟁력 추락..세수↓.세출↑로 재정악화 소비둔화.산업구조 변화..청년실업 해소엔 도움
고도성장을 주도했던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는 우리 경제에 큰 도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저출산과 고령화 추세 속에서 전체 인구의 14.6%(712만5천347 명)를 차지하는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는 노동력의 양과 질을 떨어뜨리려 노동생산성과 기업경쟁력 저하, 잠재성장률 하락, 국가 재정 부담, 소비 둔화로 이어질 수 있다.
이들의 은퇴는 실버시장 확대, 자산시장 변화 등 산업구조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 노동력 양.질 하락..잠재성장률 추락
고도성장을 주도했던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하면 노동 공급시장에 커다란 공백이 생겨 경제성장을 둔화시킬 수 있다.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본격화되는 2010년부터 2018년까지 생산가능인구(15∼64세)의 비중은 전체 인구의 72∼73%지만 55세 정년으로 은퇴하는 55∼64세 인구를 빼면 이 비중은 57.8∼62.6%로 감소한다.
우리나라 베이비붐 세대가 2차 세계대전 이후 탄생한 일본의 베이비 붐 세대인 단카이(團塊) 세대(1947∼49년생)보다 30만 명 정도 많고 총인구 비중도 9% 포인트 높아 이들의 은퇴가 본격화되면 노동력 부족은 일본보다 훨씬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의 이철선 연구위원은 “단카이 세대의 은퇴로 노동력이 부족했던 ‘2007년 문제’가 우리나라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며 “특히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은퇴할 베이비붐 세대는 제조업 분야에서 숙련된 기술을 갖고 있지만, 이들을 대체하는 신규 인력은 기술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아 노동생산성과 기업경쟁력 감소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동력은 저출산 등으로 말미암아 2015년 63만 명, 2020년 125만 명 부족할 것으로 전망된다. 2020년은 베이비붐 세대의 막내인 1963년생들이 은퇴한 지 2년 뒤다.
노동력의 부족은 경제성장률 둔화로 연결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07년 ‘고령화 파급 효과 및 정책과제’ 보고서에서 “현재 합계출산율(1.19명)이 유지되고 고령화가 이어진다면 잠재성장률은 2020년 4%대 초반에서 2020∼2030년 2.94%, 2030∼2040년 1.60%로 떨어진다”고 추정했다. 베이비붐 세대가 완전히 은퇴하는 2018년 이후 잠재성장률이 2%대 이하로 떨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 세수는 줄고 쓸 곳은 늘고..재정 악화
국가 재정의 악화도 우려된다. 베이비붐 세대를 대체할 유입 인구가 적어 세수는 줄지만, 베이비붐 세대가 65세 이상 노령인구로 편입되면 돈 쓸 곳은 늘어나기 때문이다. 생산가능인구 감소→세수감소와 사회보장비 증대→재정수지 악화라는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베이비붐 세대가 9년에 걸쳐 은퇴하는 동안 15세 이상 인구 유입은 547만2천18 명에 그쳐 생산가능인구에서 165만3천329 명이 부족해진다고 밝혔다. 올해 1인당 조세부담액 467만 원을 적용하면 생산가능인구의 부족으로 7조7천210억 원의 세수가 줄어들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국민연금의 연간 연금 급여 지급액은 2010년 9조8천520억 원, 2020년 31조3천640억 원, 2030년 85조5천250억 원 등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베이비붐 세대는 2016(1955년생)∼2026년(1963년생)에 국민연금을 받게 된다.
의료비 부담도 걱정거리다.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면 보험료 수입이 감소해 부족분을 국고에서 지원해야 한다. 장기요양보험, 기초노령연금 등도 있어 베이비붐 세대가 노령인구로 유입되면 국가 재정의 부담은 더 늘어나게 된다.
◇ 내수 둔화·세대 간 형평성 문제
베이비붐 세대는 은퇴 이전까지 소비의 주도 세력이었지만 은퇴 이후 나이가 들수록 소비를 줄일 것으로 보여 내수 소비의 둔화가 예상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실제로 60대 이상 가구의 소비 규모는 40대 가구의 65%, 50대 가구의 70%에 그친다.
또 자녀 교육과 주택 마련에 ’올인’하다 보니 노후에 쓸 자금을 충분히 모아두지 못한 베이비붐 세대는 새로운 빈곤 계층이 될 가능성이 있다. 베이비붐 세대 자산의 80%가 유동화가 쉽지 않은 부동산이다. 그렇다고 일자리를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은퇴한 50대 중·후반 이상의 중고령자가 돈도 없고 일자리까지 못 구하면 가계 대출이 부실해지고 이는 금융부분의 부실로 연결될 수 있다.
고령자 부양에 대한 세대 간 형평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노인 1명을 부양하는 데 필요한 생산가능인구는 2008년 7명 정도였지만 베이비붐 세대가 65세가 될 무렵인 2018년 5명, 2027년 3명으로 줄어든다. 우리보다 일찍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를 경험했던 선진국에서처럼 세대 간 갈등이 생길 수도 있다.
◇ 실버시장 확대·산업구조 개조..청년 실업 해소 기대
긍정적인 영향을 기대할 수도 있다. 안정적이고 소득 수준이 높은 양질의 일자리를 갖고 있던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면 다음 세대들이 빈자리를 차지해 인사적체가 풀리면서 만성적인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LG경제연구원의 이지평 수석연구위원은 “베이비붐 세대가 (취업시장에서는) 기득권 세력이었기 때문에 젊은 사람들이 들어올 공간이 생긴다”며 “일본에서도 단카이세대가 은퇴하고서 대졸 취업이 좋아졌던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면서 고령인구에 포함되면 실버시장이 더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베이비붐 세대들이 이전의 시니어 세대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소비활동을 할 것이라는 기대에 근거하고 있다.
자산시장에서도 은퇴 이후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위해 부동산시장보다는 연금·보험 등 금융시장이 활성화되고 의료, 관광산업에서도 은퇴한 베이비붐 세대가 가세하면서 늘어날 시니어들을 잡기 위한 변화가 예상된다.
[베이비부머 은퇴] ④ 자산시장의 새 회오리
전문가들 “부동산 不敗 깨진다” vs. “교체수요 만만찮다” 주력부대 40대 인구 감소로 증시엔 부정적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한국 사회에 미칠 거대한 파장 중 하나는 바로 자산시장의 변화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부동산 공화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주택 구입의 열기가 뜨겁고 집값 상승에 대한 믿음이 견고한 나라다. 만약 베이붐 세대의 은퇴가 ‘부동산 불패’의 신화를 깨뜨린다면 어떻게 될까.
단순한 억측이라고 무시할 수도 있지만 이웃나라 일본이 바로 베이비부머의 은퇴로 부동산 가격의 폭락을 경험한 나라다. 그들의 경험을 좇아 집값 장기하락의 시대로 접어들 지 아니면 부동산 불패의 신화를 이어갈 지 여부는 우리에게 너무도 중요한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 日 집값 붕괴로 ‘15년 악몽’
1970~1980년대 일본의 집값 상승은 마치 하늘로 높이 솟아오르는 로켓과 같았다. 1976년을 100으로 봤을 때 1980년 146이었던 도쿄의 주택지 토지가격은 1985년 199, 1988년 337 그리고 1990년 477에 달했다. 14년 새 4.8배로 뛰어오른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부동산 붐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1990년 이후 일본의 부동산 가격은 오피스빌딩, 주택, 상가 등을 가리지 않고 ‘붕괴’ 수준의 가격 하락을 겪어야 했다. 도쿄 주택지 가격의 경우 1995년 332, 2000년 253을 거쳐 2005년 197로 떨어졌다. 1985년보다 못한 수준으로 폭락한 것이다.
일본의 제조업 경쟁력이나 경상수지 등 펀더멘털이 여전히 탄탄한 가운데 일어난 거품 붕괴에 대해 학자들은 오랜 기간 답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그 해답 중 하나는 바로 베이비부머의 은퇴였다.
흔히 일본의 베이비부머는 2차 세계대전 직후 태어난 ‘단카이 세대’를 일컫는다. 하지만 그에 앞선 베이비붐 세대가 있으니 바로 1929~1938년 세대다. 1930년대 전쟁 호황과 군국주의 정권의 출산 장려책 등으로 생겨난 이 세대는 무려 2천100만여명에 달한다. 단카이 세대가 1천만명에 미치지 못하는 것에 비춰보면 엄청난 규모다. 이들이 중장년층에 접어들어 내집 마련에 나선 1970~1980년대 일본의 집값 폭등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이들이 60대에 이르자 은퇴 러시가 벌어졌다. 주택을 구입하는 주 연령대인 35~54세 인구도 덩달아 줄어 1990년 3천680만명에서 2006년 3천350만명으로 감소했다. 집을 살 사람이 매년 20만명 넘게 줄자 집값도 장기간 하락세를 면할 수 없었다. 중장년층의 주식투자가 줄자 증시도 비슷한 운명을 겪어 1990년 40,000에 육박하던 니케이225지수는 2002년 8,000대까지 떨어졌다.
◇ ‘부동산 불패’ 신화 깨질까
문제는 한국의 인구구조도 일본과 비슷한 궤적을 그리게 된다는 점이다.
1985년 862만명이던 우리나라의 35~54세 인구는 지난해 1천626만명에 달해 23년만에 두배로 늘었다. 주택을 구입하는 주 연령층의 인구가 매년 30여만명씩 늘어난 셈이다. 이 시기는 아파트를 비롯한 우리나라의 주택 가격이 급등한 시기와도 일치한다.
하지만 35~54세 인구는 2011년 1천657만명으로 정점에 달한 후 더 이상 늘지 않게 된다. 오히려 2011년 이후에는 매년 10만명씩 줄고 2020년을 넘기면 매년 20만명씩 급격히 줄게 된다.
710만명에 달하는 1955~1963년생 베이비붐 세대가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은퇴하면서 한국전쟁 이후 처음으로 주택 구입 연령대의 수가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상황을 맞게 된 것이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이러한 상황이 부동산시장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고 진단한다.
건설산업전략연구소의 김선덕 소장은 “어느 나라나 인구 변동과 주택가격의 변화는 거의 일치하는 모습을 보인다. 베이비부머가 은퇴하면 집값이 장기적으로 하락하는 추세가 이어질 것이다”고 말했다.
‘베이비붐 랠리’의 저자인 김영호 재정전략연구원장은 “베이비부머 은퇴로 인한 수요 감소에 판교, 김포, 동탄 등 2기 신도시 입주가 불러올 공급과잉이 겹치면 2010년대 집값은 예상 밖의 약세를 보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는 주식시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일부 전문가들은 진단했다.
HMC투자증권의 이종우 리서치센터장은 “여유자금이 많아 가장 적극적으로 주식에 투자하는 층이 40대인데 베이비부머 은퇴로 40대 인구가 점차 감소한다면 주식 수요도 덩달아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주택 수요 탄탄해 걱정없어” 반론도
베이버부머 은퇴 후 집값 하락에 대한 우려가 많지만 그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인구구조 변화가 집값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인이기는 하지만 거시경제적 측면이나 사회문화적 요인 등 집값에 영향을 미칠 다른 요인들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고령화로 집을 새로 사려는 수요가 줄 수는 있지만 실질소득이 꾸준히 상승할 경우 새 아파트나 넓은 평형으로 이사하려는 교체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해 이를 보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건국대 부동산학과의 정의철 교수는 “우리나라는 은퇴 후에도 주택을 처분하지 않고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려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며 “주택 교체 수요나 소득 증가, 문화적 요인 등을 감안할 때 집값이 2030년까지는 강세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베이비부머의 은퇴를 주식시장의 침체와 바로 연결짓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도 있다.
우리투자증권의 박종현 리서치센터장은 “주가는 결국 기업 이익을 좇아간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글로벌 기업의 증가, 기술 혁신, 생산성 향상 등으로 국내 기업의 수익성이 좋아져 주가 또한 중장기적으로 상승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고 말했다.
베이비부머의 은퇴 등 전반적인 사회 변화를 고려한 보다 신중한 재테크 전략을 짤 필요는 있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했다.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114의 김희선 전무는 “베이비부머의 은퇴가 집값 하락으로 바로 이어지지는 않더라도 부동산 시장의 전반적인 상승세가 둔화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며 “앞으로는 부동산 일변도의 투자전략에서 벗어나 예금, 펀드, 연금 등 다양한 재테크 수단을 비교, 선택하는 지혜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베이비부머 은퇴] ⑤ 선진국은 어떡했나
오랜 산업화의 경험 속에서 인구비율 변화에 적응해온 선진국들은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와 고령화에 비교적 슬기롭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그러나 베이비붐 세대의 퇴장에 대한 공포감은 이들 국가에서도 적지 않았다.
특히 전후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1990년대 말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된 미국 사회의 경우 주요한 사회적 이슈와 갈등요인이 됐으며, 최근 건강보험을 둘러싼 세대 간 갈등의 이면에도 사실은 이런 구조적 요인이 배어있다는 지적이다.
빠른 고령화 진전과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를 동시에 극복해야 하는 우리로서는 각국이 겪은 시행착오와 개별적 상황을 검토하고 이를 토대로 주도면밀한 대응책을 마련하는 일이 시급한 상황이다.
◇ 미국
미국의 베이비붐 세대는 2차대전 이후인 1946년에서 1964년 사이에 태어난 약 7천600만명을 가리킨다.
이들은 50년대와 60년대에는 학교를 가득 메웠으며, 70년대와 80년대에는 노동시장으로 몰려들었고 주택시장의 수요도 크게 늘렸다. 또 수십년간 소비형태의 변화를 지속적으로 몰고 왔고 생애의 중요한 시기마다 경제패턴까지 달라지게 만들었다.
미국의 베이비붐은 한국전쟁이 끝난 1955년-1963년에 이뤄진 한국의 베이붐 보다 10년가량 빠르게 시작됐다. 그런 만큼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는 1990년대 말부터 미국의 중요한 사회적 이슈로 등장했다.
미국의 경우 퇴직 이후 소득은 대체로 사회보장, 개인연금, 개인저축 등 3가지에 바탕을 두고 있다. 퇴직 노인들의 삶은 2차 대전 이후 꽤 괜찮았다. 최소 생계비도 안 되는 돈으로 생활하는 노령층의 비율이 1959년 35%에서 1995년에는 11%로 크게 떨어졌다는 통계치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베이비붐 세대의 본격적인 은퇴가 시작되면서 노인들의 미래는 종전과 달라졌다. 한마디로 불확실해졌다. 사회보장시스템의 불균형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미국 정부는 복지혜택을 줄이거나 세금을 올려야 하는 어려운 선택에 직면하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이후 삶의 불확실성은 수명 연장과 주택의 가치, 자산시장, 건강보험 비용, 경제적인 여건에 의해서도 더욱 가중돼 왔다. 미국의 주택가격이 하락하는 현상을 겪는 것에는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로 35~54세 인구가 감소한 것도 한 원인이 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65세 노인의 예상 잔존 수명은 과거 20여년 동안 계속 늘어났고 점점 더 길어지고 있다. 이는 한정된 돈을 더 오랜 기간에 걸쳐 사용해야 한다는 점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사회보장 혜택 수령연령을 현재는 66세에 시작되지만 2027년부터는 67세로 높아지게 돼 있다. 그만큼 베이비붐 세대의 노후 부담도 증가하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는 그들 자신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이후 세대에 세금증가라는 큰 부담을 안겨주고 있으며 미국의 눈덩이 재정적자를 더욱 키우는 중요한 원인의 하나가 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경우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에 따른 사회적인 충격은 한국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적은 편에 속한다. 저출산에 따른 고령화가 한국만큼 극단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의 출산율은 60년대 4.0에서 현재 1.18 수준으로 급격하게 낮아졌지만 미국은 수십년 동안 2.1을 유지하고 있다.
◇ 유럽
한국 같으면 이미 ‘뒷방’으로 물러났을 나이에 젊은이들 못지않게 쟁쟁하게 활약하는 노인들이 유럽에는 꽤 많다.
2차 세계 대전이후 출생했던 베이비붐 세대가 고령화되면서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사회보장제도의 틀에 안주해있던 유럽 각국이 고용을 통한 고령자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섰기 때문이다.
한때 조기 퇴직의 천국으로 통했던 유럽에서는 연금 등에 대한 국가 부담이 커지면서 연금 수급 연령을 늦추기 위한 차원에서 은퇴시기를 연장하고 고령자 일자리를 알선해주는 추세가 자리잡았다.
사회보장제도의 수혜자였던 고령자를 활용함으로써 노동력 부족 현상을 극복하고 청년층의 노인층 부양부담도 덜어주자는 취지다.
유럽연합(EU)은 2000년 11월 기본고용평등지침을 통해 회원국들이 연령 등을 이유로 고용차별을 하지 못하도록 법제화했다.
EU는 아울러 2006년 회원국들에 근로자 정년을 65세 이후로 늦추도록 했으며, 회원국들은 이 지침에 맞게 정년을 이미 늦췄거나 늦추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2010년까지 고령자 고용률을 50% 이상으로 높이는 소위 ‘스톡홀름’ 목표도 추진해오고 있다.
영국의 경우 2006년 고용평등연령규칙(Employment Equality Age Regulations.EEAR)을 제정해 채용과 승진, 직업훈련 등에서 나이를 이유로 차별하지 못하도록 법제화했다.
6개월 이상 실직상태인 50세 이상에게는 취업이 될 때까지 고용지원센터를 통한 상담을 제공하고 각종 취업훈련을 받을 수 있는 비용도 지원한다.
현재 65세로 돼있는 법정퇴직연령이 은퇴 시기를 늦춰 연금 고갈을 막으려는 정부 방침에 반하고 강제 퇴직을 강요하게 한다는 노인 지원단체들의 항의가 빗발치면서 이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이다.
독일의 경우 연방노동청 산하 노동시장.직업조사연구소(IAB)의 조사에 따르면 55~64세의 취업률이 1998년부터 2008년 사이에 뚜렷이 상승해 53.8%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연금 수급연령이 67세로 상향조정된데다 조기연금을 제한하는 등 고령자를 노동시장에 좀 더 머물게 하는 제도에 힘입은 것으로 풀이된다.
독일은 50세 이상 실업자가 기존의 일자리보다 보수가 낮은 일자리에 취업할 경우 공적연금액 감소를 완화시키기 위해 보험료를 일부 지원하고 있다.
또한 55세 이상 장년층의 실업급여 기간을 32개월에서 18개월로 줄이고 이후에는 최저생계비만 지급함으로써 조기퇴직을 방지하고 있다.
이밖에 프랑스는 기업들이 인원을 감축할 때 연령을 유일한 기준으로 삼을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을 노동법에 규정해 놓고 있으며, 네덜란드는 조기퇴직을 폐지하고 변형된 형태의 주5일 근무제를 통해 65세 이후에도 저임금으로 일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 일본
일본에서는 2차대전 패전 직후인 1947~1949년의 베이비붐 시기에 태어난 세대를 ’단카이(團塊) 세대’로 부른다. 3년에 국한된 것은 1948년까지 피임이나 중절, 불임수술이 금지돼 있다가 1949년에 관련 법 개정으로 ’경제적 이유’ 등으로 인한 중절수술을 인정, 출생률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이들이 2007년부터 일제히 정년퇴직을 맞으면서 일본 내에서는 ’2007년 문제’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후생노동성의 통계로는 단카이 세대의 인구는 약 800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2007년부터 올해까지 3년간 정년퇴직을 하는 사람은 280여만명이며, 이들이 받았거나 받을 퇴직금 총액이 50조~80조엔에 이를 것이란 조사 결과도 나온 바 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2007년 문제로까지 불리면서 사회적인 관심이 집중됐던 단카이 세대의 집단 정년퇴직이 예상 외로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정부와 기업이 나서서 이들의 집단 퇴직에 따른 문제를 막기 위해 정년 연장이나 재고용 등의 조치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특히 인구 감소에 따른 노동력 부족이란 문제에 직면해 있던 각 기업은 종업원의 정년을 60세에서 65세로 연장했다. 물론 정부도 정년에 관계없이 65세까지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계속고용제도를 의무화했다.
이미 2007년 4월에 고령자고용안정법을 개정, 각 기업에 대해 정년 상향조정, 정년 폐지, 고용계약 갱신 가운데 실정에 맞는 것을 채택하도록 했다.
세계 유수의 컴퓨터제어 공작기계 메이커인 화낙은 일본 내 제조업체로는 처음으로 2007년에 정년을 65세로 끌어올렸다. 또 도요타자동차와 도쿄전력은 정년 후 주 2-3일 가량 근무하는 제도를 도입해 희망자에 대해서는 계속 일을 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화낙은 60세를 넘더라도 노동시간 등의 근무 형태에는 변함이 없을 뿐 아니라 급여도 59세 시점과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설정했다.
이런 문제점들과 함께 단카이 세대가 퇴직하면서 받게 되는 퇴직금의 경제적 효과에 대한 기대도 높았다. 일본 내 경제연구소들은 3년간의 단카이 세대의 퇴직으로 인한 소비증가 규모가 6조6천억엔, 경제 효과는 15조엔 이상으로 추산했다.
물론 지난해 하반기 리먼 브라더스 사태로 인해 단카이 세대의 지갑이 굳게 닫히면서 이런 추산은 적지 않게 빗나간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정부와 기업이 나서서 정년 연장 등의 대책을 내놓으면서 이들의 일시 퇴직에 따른 사회적 충격을 상당히 흡수할 수 있었다는 점에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견이 없다.
[베이비부머 은퇴] ⑥ 생각을 바꿔라
자녀 ‘올인’은 접어라..역모기지도 활용 평생현역 “원하는 일하며 보람 찾는다”은퇴를 앞둔 베이비붐 세대들의 고민은 대체로 비슷하다.
자녀 교육과 회사 생활에 몰두하다보니 은퇴생활을 준비할 겨를이 없었는데 회사를 그만둘 날은 다가오고 앞으로 살 날은 수십년이라 막막하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으로는 생활이 안되고 그렇다고 따로 개인연금을 들어 미래를 준비하지도 못했다. 여기에 자녀들이 아직 학생이거나 졸업을 했더라도 미혼이라면 앞으로 자녀를 위해 들어갈 돈에 머리가 지끈 아파온다.
체력은 충분하지만 일을 더 하고 싶어도 마땅한 자리가 없는 것같고 정부에서 뾰족한 해법을 제시해줄 것같지도 않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막다른 벽에 부닥친 것처럼 막막하다고 토로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은퇴 전문가들은 30-40대부터 면밀히 준비했으면 은퇴 생활이 훨씬 더 수월할 수는 있었겠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말한다.
우선 자녀를 위한 지출을 줄여야 하고 비록 보수는 넉넉하지 않더라도 지금이라도 자신이 원하는 일을 찾아 활력있는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 자녀 ‘올인’은 이제 그만
은퇴를 앞둔 이들이 가장 걱정하는 부분은 모아놓은 돈이 없다는 점이다.
지금이야 은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져 젊어서부터 개인연금 등에 가입하며 은퇴를 준비하는 이들이 적지 않지만 베이비붐 세대들은 자녀와 일만 알았지 은퇴생활을 챙기는데는 무관심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들은 1970∼1980년대 고도성장을 이끌며 이전 세대에 비해 경제적으로 풍족했으면서도 은퇴에 대비한 자산은 부족한 경우가 많다.
가장 큰 이유는 자녀에 대한 투자다.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가 작년 8월 서울 및 수도권의 55세 이상 은퇴자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은퇴자산 준비부족의 이유로 59%가 ‘자녀에 대한 과다한 투자’를 들었다.
상황이 이런데도 자녀에 대한 이들의 ‘사랑’은 멈추지 않는다.
50대 은퇴자의 상당수가 여전히 ‘자녀의 결혼자금을 준비중’(39%)이거나 ‘자녀의 학자금을 부담한다’(32%)는 것이 미래에셋 조사결과다. 퇴직금까지 자녀들을 위해 털어넣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이다.
정경희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저출산고령사회연구실장은 “은퇴 뒤까지 자녀를 위해 자산을 쏟아붓기보다는 자신의 남은 인생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녀를 먼저 생각하는 경향은 은퇴자의 ‘최후의 보루’라고 할 수 있는 부동산 관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은퇴자의 상당수가 재산이라고는 달랑 살고 있는 집 한 채지만 현금 자산화하는 것을 꺼린다. 남겨뒀다 자녀들에게 물려주기 위해서다.
주택을 담보로 매달 연금을 지급하는 상품인 ‘역모기지론’(주택연금)은 도입된지 2년이 지났지만 가입자가 이제 갓 2천명을 넘었다. 미국의 경우 1년에 11만 명이 가입하는 등 역모기지론이 은퇴준비의 한 축을 맡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김형목 주택금융공사 주택연금부 차장은 “현금자산이 적어 넉넉치않은 은퇴생활을 하면서도 집 한 채는 자녀들에게 물려줘야 한다는 인식 때문에 가입을 꺼리는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류재광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 연금연구팀장은 “적금으로 모은 돈을 쓰듯 부동산 자산도 때가 되면 깨서 쓸 줄 아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면서 “꼭 주택연금은 아니더라도 40-50평대 아파트에 살고 있다면 집을 줄이고 나머지 돈은 연금상품에 가입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라고 말했다.
◇ ‘평생현역’..원하는 일을 해라
신문사에서 업무직으로 근무하다 2007년 퇴직한 박병창(56)씨는 요즘 콩나물 생산에 한창이다.
올 1월부터 비영리단체(NPO)인 주거복지연대의 생활복지마을기업 ‘인천남동생활복지센터’의 센터장으로 일하며 콩나물공장 운영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에 불과한 보수는 넉넉하지 않지만 이 일을 통해 저소득층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이윤의 일부를 영구 임대주택 단지 주민들에게 환원한다는 보람에 피곤한 줄도 모른다.
박씨는 “보수는 정상적인 생활이 안되는 수준이지만 봉사의 보람이 있다”면서 “풍족한 돈을 가지고 은퇴해 여생을 즐기는 것도 좋겠지만 보람있는 일을 하면서 사는 것도 가치있는 삶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씨는 NPO인 ‘희망발전소’가 운영하는 퇴직자학교 ‘행복설계아카데미’를 통해 작지만 돈도 벌면서 사회에 봉사하는 ‘제2의 삶’을 찾았다.
전문가들은 박씨의 사례처럼 재정적으로는 여유롭지 않더라도 퇴직 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느냐가 삶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지적한다.
전기보 행복한은퇴연구소 소장은 “은퇴이후 생활에서 돈이 중요하긴 하지만 이보다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전 소장은 따라서 미리부터 은퇴생활을 고민하고 이를 위한 투자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젊을 때라도 은퇴준비에 쓸 200만원이 있다면 100만원은 금융상품에 넣더라도 나머지 100만원은 은퇴 이후를 위한 자기계발에 투자하는 것이 나중에 보면 더 이익이라는게 그의 지론이다.
손성동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 연구실장은 “은퇴 뒤 여행이나 다니겠다는 생각은 몽상에 가깝다”면서 “1∼2년이야 즐겁겠지만 수십년을 그렇게 살 수는 없으니 ‘평생현역’이라는 생각으로 일자리를 찾는 것이 제일 좋은 노후준비”라고 말했다.
눈높이를 낮춰 일자리를 찾는 것도 중요하다. 퇴직 전 직장에서 받았던 월급만 생각하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는게 현실이다.
손 실장은 “배우자를 비롯한 가족들이 은퇴자가 눈높이를 낮출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워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베이비부머 은퇴] ⑦ 정책적 '妙手' 없나
정년연장-임금피크 활성화..사회적 합의 필요 멋진 은퇴 설계 위한 ’공적영역 은퇴교육’ 절실노령화 사회가 급속도로 진행되자 정부도 1990년대부터 관련 법을 정비하는 등 나름대로 대책을 마련해 왔다.
정부 대책의 초점도 대다수 전문가의 의견과 마찬가지로 베이비붐 세대를 비롯한 고령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데 맞춰져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고령자들의 은퇴에 대비한 사회 안전망은 크게 부족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고령자들이 은퇴를 미루고 다니던 직장에서 계속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도입한 여러 제도들은 아직 크게 실효를 보지 못하고 있고 퇴직자들의 재취업을 위한 지원책의 효과도 제한적이다.
특히 전문가들이 일자리 제공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지적하는 공적영역에서의 ‘은퇴교육’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 “정년 늦춰야”..임금피크제도 대안
전문가들은 숙련된 업무능력을 지닌 베이비붐 세대가 한꺼번에 빠져나가면 노동력 부족과 기업 경쟁력 약화, 조세부족에 의한 재정악화 등의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를 막기위한 가장 효율적이고 직접적인 대책은 베이비붐 세대의 퇴직을 최대한 늦추는 것이라는데 대다수 전문가들의 의견이 일치한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에 따른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일하는 기간을 늘려 은퇴를 늦추는게 최선”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현재 권고사항으로 돼 있는 정년을 강제화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노동계와 학계는 물론 정부 일각에서도 제기되고 있다.
‘고용상 연령차별 금지 및 고령자 고용촉진에 관한 법’에는 ‘사업주가 근로자의 정년을 정하는 경우에는 그 정년이 60세 이상이 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돼 있다.
하지만 따로 처벌규정이 있는 것은 아니어서 현실은 정년은 57세(300인 이상 사업장 대상 노동부 조사)이며, 실제 퇴직하는 연령은 53세(통계청의 고령층의 경제활동 부가조사)에 머물고 있다.
정부도 정년을 늦추는 방법의 하나로 정년 의무화를 고려하고 있다.
정성균 노동부 장애인고령자고용과장은 “2013년이 되면 국민연금 수령연령이 61세로 늦춰지니 정년도 여기에 맞출 필요가 있다”면서 “내년쯤 (정년 의무화에 대해) 공론화를 추진하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년을 의무화하면 기업 부담이 만만치 않은 만큼 정부가 의지를 갖고 추진한다해도 사회적 합의가 원만하게 이뤄질 지는 불투명하다.
따라서 현실적 대안으로 일정 연령이 되면 임금을 삭감하는 대신 일정기간 고용을 보장하는 임금피크제를 보다 확산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임금피크제는 노사합의의 어려움과 고령자에게 적합한 직종이 부족하다는 등의 이유로 아직은 사업장의 5.7%(2008년 기준) 정도만 도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는 임금피크제 확산을 위해 임금삭감액의 일부를 근로자에게 직접 지원하는 ‘임금피크제 보전수당제’를 지난 2006년 도입했지만 작년 신청자가 997명에 그치는 등 아직 크게 활성화되지는 못하고 있다.
태원유 삼성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임금피크제 보전수당을 54세부터 신청할 수 있는데 실제 퇴직은 그 이전에 발생한다”면서 “한시적으로라도 보전수당 신청연령을 50세로 하향 조정해 50대 초반의 인력들에 대한 고용유지를 유도하는게 좋다”고 제안했다.
정부는 임금피크제 보전수당제를 더욱 확산시키기 위해 노사합의에 따라 임금피크제가 도입된 경우에 한정하던 것을 개인적으로 임금피크제를 선택한 근로자에게도 지급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 일자리 알선ㆍ은퇴교육에도 힘써야
정년 연장 등 다니던 직장에서 계속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못지않게 퇴직 뒤 새 일자리를 찾는 퇴직자들을 위한 지원도 강화돼야 한다.
우리나라에도 비영리단체와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고령자인재은행, 중견전문인력 고용지원센터, 고령자 취업알선센터 등을 운영하며 고령자의 재취업을 돕고 있지만 효과는 제한적이라는 지적이 많다.
고령자인재은행 등에서 주선하는 일자리가 대부분 가정도우미나 간병인, 경비, 주차관리 등 단순직이어서 전문성을 살리기 힘들기 때문이다.
중견전문인력 고용지원센터도 ▲정부기관 4급 이상 ▲교원 ▲공공기관 과장급 이상 ▲상장기업 부장급 이상 ▲금융기관 과장급 이상 등으로 대상자가 제한, 도움을 얻지 못하는 이들이 적지 않아 대상자를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일자리 제공 못지않게 은퇴교육에도 신경써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금융기관 등에서 은퇴설계에 대한 세미나를 개최하기도 하지만 여기에는 아무래도 경제적인 이해관계가 끼어들 수밖에 없으니 공적 영역에서 은퇴교육을 맡는게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전기보 행복한은퇴연구소 소장은 “정부가 은퇴자에 대해 직접적으로 지원하는 것보다 퇴직을 앞둔 이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해 스스로 은퇴를 준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성재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퇴직자들이 긴 노후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고 미리 계획을 세우고 준비할 수 있도록 돕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출처: 연합뉴스/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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