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소전쟁 당시 전화(戰禍)로 피폐된 소련인들의 생활상을 엿볼수 있는 희귀한 컬러 장면들]
독일의 침략에 따라 하루 아침에 점령지가 되어버렸던 지역의 소련 국민들이 입었던 고통과 피해는 이루말할수가 없었다. 전쟁으로 인한 농경지의 소실과 점령군의 식량 몰수에 따라 전시에 소련 국민들이 최소한 목숨을 연명할 정도의 식량마저 구할수 없었던 입장이 제일 큰 문제였던 것이었다. 이미 소련의 국민들은 전쟁전 국가 체제가 공산주의 사회였던 만큼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는 국유화된 토지에서 농사를 경작 할수밖에 없었다. 독일군 또한 소련 점령지에서 경작된 밀을 거의 몰수하다시피한 입장으로 소련인들은 멀리까지 가서 식량을 구할수 있는 지역의 일가,친척들을 찾아서 피난을 가거나 도주하였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빼고픔을 해결하기 위해서도 자연히 빨치산 세력으로 흡수되어 삼림지역으로 숨어 들었다. 밀의 수확기 때에 경작지에 파견된 독일군과 게쉬타포들이 소련 공산주의 당시의 감시원 보다도 더 지독스럽게 밀 낟가리를 일일이 세어 체크를 해가며 수확물을 빼돌리지 못하게끔 몰수해가는 독일군의 점령지 정책에 등을 돌렸던 것이다. 전쟁통에 식량의 공급이 전적으로 부족하여 아사자가 급증하자 스탈린은 수확물을 전량 국가가 거두어들여 배급을 주는 그제까지의 공산주의식 정책 형태를 완화시켜 농가와 도심 주변의 자그마한 텃밭에 개인이 암암리에 경작한 작물의 수확과 판매를 어느정도 인정하였다. 그러자 그것은 대단히 믿기 어려웠던 수치로 나타난다. 그 수치는 독소전쟁전 소련 전체의 대단위 경작지 집단농장에서 생산된 농작물량의 근 40%에 육박하는 수치로 나타났었기 때문인데 그것은 바로 국가가 국민의 사유재산을 일부라도 인정하자 나타난 독소 전쟁 당시 소련의 기이한 현상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