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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엇이 근대화인가?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근대화라고 하는 것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물질적 부의 증대다. 물질적 생산이 늘어나고, 그로 인해 전체 재화의 가치가 상승하며, 그 세금을 통해 부국강병을 이루는 것이 곧 근대화다. 그것은 보수주의자든 진보주의자든 모두 같다. 그래서 그들이 보기에 GDP가 증대되고 공장이 서고, 각종 사회인프라가 구축된 일제강점기는 식민지 조선의 근대화가 이루어진 시기일 수밖에 없다.
물론 물질적 성장은 근대화의 한 부분이다. 산업화라고 하는 것은 근대를 이루는 커다란 틀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그것이 곧 근대화 자체라고 볼 수는 없다. 봉건적 사회에서도 산업화는 가능하다. 근대 대부분의 공장들을 소유하고 있던 이들은 옛봉건귀족들이었다. 그들은 토지를 기반으로 축적한 자본으로 공장을 세우고, 기업을 경영하여 자본가로서 새로운 시대 새로운 지배자로서 군림했다. 그것은 다시 말해 봉건사회에서도 산업화가 가능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하겠다.
실제 독일만 하더라도 그들이 공업화를 시작한 것은 아직 봉건적 잔재가 남아있던 19세기부터였다. 아니 독일제국이 성립한 뒤에도 아주 오랜기간동안 봉건적 질서가 남아 있었다. 일본 또한 마찬가지였다. 일본은 태평양전쟁 전까지도 신분제도가 남아있었다. 사족이라 부르는 귀족과 평민, 부라쿠민이라 부르던 천민으로. 그리고 사족들은 대부분 에도시대 다이묘나 사무라이 가문 출신으로 지역의 경제와 행정을 지배했다. 독일과 일본의 산업화는 이러한 봉건적 잔재 위에서 이루어졌다. 산업화와 봉건적 사회와의 연관성에 대한 의문을 던져주는 부분이다.
산업화가 근대화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단순히 공장을 세우고, 총생산이 증대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자본주의와 합리적 이성과 개인의 정치적 참여의 확대와 자유와 평등의 가치의 발견이라고 하는 사회적, 사상적, 정치적, 철학적 여건이 필수적이다. 그것은 곧 보편성의 추구다. 신분질서 등의 비합리적인 권위주의를 대신해 모든 개인에게 공평하게 적용되는 보편적 가치의 발견과 실현이다. 그것이야 말로 근대화의 근간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위에 말한 네 가지 근대화의 요소들은 산업화의 선행을 요구한다. 조선의 건국은 아마도 역사상 최초의 시민혁명이었을 것이다. 고려말 신진사대부들은 농업을 기반으로 부를 축적하고 유교적 소양을 통해 합리적 지식을 소유했던, 유럽의 상공업자 출신의 시민과 대비되는 농업형 시민이라 할 수 있었으니까. 조선의 건국은 그들 신진사대부들의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혁명이었으며, 따라서 조선은 당시 어느 나라도 견줄 수 없는 근대적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우선 신분제. 조선은 세습적 신분을 오로지 양인과 천인으로만 나누었다. 양인은 곧 과거를 보아 관직에 오를 수 있는 사람들. 과거 고려의 귀족들과는 조선의 지배계급인 양반은 이 양인들 가운데서 과거를 보아 그 교양과 지식과 실력을 인정받은 이들을 칭하는 호칭이었다. 혈연을 통해 세습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실력으로 자신의 지위를 쟁취해야만 하는 그런 사회였던 것이다. 그래서 혈통이 아무리 좋아도 유교적 소양이 낮으면 그대로 도태되어버렸고, 혈통이 조금 떨어져도 학식이 높으면 한 무리의 우두머리도 될 수 있었다.
더구나 양반이라면 누구나 정치에 참여할 수 있었다. 시골의 이름없는 한미한 선비라 할 지라도 글만 쓸 수 있다면 상소를 통해 나라의 일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것이 때로 국왕을 비난하고, 지배세력을 비판하는 것이라 할 지라도, 그 상소로 인해 처벌받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최소한 양반이라는 그 소양을 인정받은 이들에게는 언로를 활짝 열어놓은 것이다. 그야말로 유교적 민주주의라 할 수 있다. 근대 유럽의 노동자와 농민, 여성을 배제한 부르주아 시민민주주의와 유사한 형태의.
무엇보다 조선이 갖고 있던 가장 큰 근대성이라 하면 국민교육사상이라 하겠다. 이제까지 어느 왕조에서도 이런 예는 없었다. 왕실이 나서 국민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문자를 만들고, 책을 펴낸 예는. 조선왕조 내내 조선의 지배계급의 가장 큰 관심사는 국민들에 대한 유교적 교양의 보급이었다. 그래서 훈민정음이 창제된 것이고, 삼강행실도가 편찬된 것이었다. 굳이 왕실의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한 용비어천가를 훈민정음으로 펴낸 것이고.
그러나 그러한 조선의 혁명은 채 백 년이 지나기도 전에 크게 좌절되고 만다. 바로 물적 토대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혁명이 지속적으로 발전해가기 위해서는 일정수준 이상의 부를 축적하고, 지식과 교양을 갖춘 다수의 양인집단이 필요했다. 그러나 고려말, 조선초기의 양인들은 대개 그러한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 더구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양난으로 인해 다수의 토지가 유실되고 많은 사람들이 유민으로 전락하면서 그나마의 물적토대마저 붕괴되어 버렸다. 그것이 조선 중기 이후의 급격한 봉건적 사회로의 퇴행의 원인이 되었다.
조선의 예에서 보더라도 아무리 정치적 신념과 이상이 훌륭하다 하더라도 물적 토대가 없으면 그것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그런 점에서 산업화라고 하는 것은 근대화의 가장 중요한 선결조건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선결조건일 뿐 근대화 그 자체는 아니다. 물질적 부를 축적하고 군대를 강성하게 하는 것은 굳이 근대화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가능하니까. 아니 근대적 가치와 구조의 구축 없이는 오히려 봉건사회로의 퇴행까지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해 "산업화가 이루어지고 부국강병을 이루었으니 그것이 근대화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코끼리의 뇌가 인간보다 크니 더 고등한 동물이고, 상어가 인간을 잡아먹으니 더 진화된 동물이라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몽골제국이 중국을 지배했다 해서 몽골제국의 문명이 중국보다 앞선다 할 수 있을까? 게르만족이 서로마제국을 멸망시켰다 해서 그들의 사회가 서로마제국보다 발전된 사회라 할 수 있을까? 드라비다족의 인더스 문명을 멸망시킨 것은 야만인이던 아리안인이었다. 거란이 발해를 멸망시키긴 했지만 그들이 발해보다 문명사적으로 더 발달된 나라라고는 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오로지 근대화에 있어서만 물질적 부와 국가적 힘이 절대적인 기준이 되어야 할까?
그것은 물신주의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일본제국주의가 우리나라에 심어주고, 박정희가 군사독재를 통해 철저히 훈련시킨, 근대 일본을 지배하던 철저한 물질숭배사상. 그것이 근대유럽의 유물론과 하나가 되어, 오로지 현실적인 부와 현실적인 힘만을 인정하고, 그 드러난 현실에 대해서만 오로지 집착하여, 그것만을 근대화의 전부인 양 여기도록 되어버린 것이다. 그것은 군사독재에 부역한 친일세력이나, 서구적 유물론에 포섭된 진보주의나 다르지 않다.
2. 왜 식민지근대화론인가?
그럼 왜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은 산업화를 근대화의 전부인 양 이야기하고 있을까? 가장 첫번째 이유는 일본의 근대화라는 것이 곧 산업화였기 때문이었다. 일본이 근대화를 이루면서 추구했던 것이 산업화, 부국강병화, 그리고 서구화였다. 민주주의니, 자본주의니, 자유와 평등이니, 합리적 이성이니 하는 것은 지식인 사회에서의 지식을 위한 지식으로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오로지 필요한 것은 물질적 부를 늘이고, 국력을 신장시키며, 보다 유럽에 가까워지는 것 뿐. 그것은 메이지유신의 한계이기도 했다.
일본의 근대화를 촉발시킨 메이지유신의 주도세력은 주로 사무라이들이었다. 사이고 다카모리, 오오쿠보 도시미치, 가츠라 고고로, 다카스기 신사쿠 등의 존왕양이의 기치를 내걸고 막부에 반대하던 사무라이들이 메이지 유신의 주축이었다. 당연히 그들이 추구했던 것은 부국강병. 그들이 처음 존왕양이를 주장하던 그대로 유럽과 겨룰 수 있는 강한 무력을 갖고자 하는 것이 최우선 목표였다. 무사인 그들에게 있어 오로지 그것만이 국가의 발전이었다.
더구나 그들은 신분적으로 상위에 위치한 자들이었다. 심지어 사무라이가 평민을 베어도 죄가 되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사무라이와 평민이 갖는 신분상의 차이는 컸다. 그런 그들이 새삼 개혁을 하면서 굳이 그 기득권을 신분도 낮은 평민과 나누려 할 리 없다. 그래서 소수의 몰락한 사무라이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무라이들은 사족이라 하는 새로운 특권계급이 되어 평민 위에 군림했다. 당연히 민주주의니 자유와 평등이니 하는 가치는 그들에게는 거추장스러운 것일 뿐이었다.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무사들에 의한 근대화라고 하는 것은.
결국 무사들에 의해 오로지 부국강병과 서구화만을 외치며 추진된 메이지 유신은 일본 사회를 태평양 전쟁이 끝나기까지, 아니 끝나고도 한참을 봉건적 질서 아래 붙잡아 놓는다. 메이지 유신이 있고도 여전히 다이묘들이 지주로서, 지방의 유력자로서 지역사회를 지배하고, 자본가들이 기업이라고 하는 영지를 지닌 새로운 다이묘로 등장하는 산업화된 봉건제로서 이후로도 오랫동안 명맥을 유지해온 것이다. 일본이 굳이 산업화를 근대화 자체인 양 떠들어내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자신들의 역사의 정체를 감추기 위해서라 할 수 있다.
산업화 이외의 다른 것들을 기준으로 근대화를 이야기하자면 일본은 태평양전쟁이 끝나고도 오랫동안 근대화를 이루지 못한 것이 되어버린다. 서구화와 산업화와 부국강병이라고 하는 그들이 지향한 세 가지 요소를 제외할 경우 일본은 20세기 중반까지도 여전히 봉건사회에 머물러 있었다고까지 말해질 수 있게 된다. 당연히 그것은 일본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다. 그래서 근대화를 산업화와 동일시 시키는 것이다.
물론 미국과 유럽의 연구자들의 입장은 일본과는 약간 다르다. 그들이 식민지근대화론을 지지하는 이유는 서구중심의 그들의 역사관 때문이다. 서구의 가치, 서구의 사상, 서구의 기술, 서구의 문화, 서구의 물질문명등을 중심으로 근대화를 보고자 하는 그들의 역사관 때문이다. 사실 그것은 그들에게 있어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한 역사관을 통해 역사를 보아야만이 그들의 식민지지배가 정당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일정부분 일본의 연구자들과도 이해가 맞아 떨어지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제국주의 시대 식민지지배에 대한 도덕적 부채를 안고 있는 그들로서는 어떻게 해서든 그 부채를 덜어낼 필요가 있고, 그를 위해서는 근대화라고 하는 것을 서구화와 산업화 중심으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실제 그들이 식민지에 전해준 것이란 그 두 가지 뿐이니까. 결국 그러한 이해가 맞아 떨어져 일본과 서구의 역사학자들이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우리나라 역사학자들과 지식인들은 왜 식민지근대화론에 그토록 집착하는 것인 걸까? 그것은 대략 두 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하나는 친일의 역사에 대한 부담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서구중심의 유물론적 역사관 때문이다. 전자는 대개 일본과 서구의 식민지근대화론자들과 그 목적이 갖다고 할 수 있고, 후자는 서구의 근대성에 근거해 합리적으로 역사를 보고자 하는 근단적인 현실주의자들이다.
친일파나 그 후손들에게 있어서야 당연히 식민지근대화론은 자신들을 정당화하는 명분이 된다. 그렇지 않겠는가? 식민지 조선이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근대화되었다고 하면, 그들의 친일매국행위는 근대화에 대한 기여로서 정당성을 얻게 된다. 나라를 팔아먹은 게 아니라, 나라와 민족의 근대화를 위해 일본제국주의에 협력했다고 하는, 오히려 적반하장식 논리로까지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친일파나 그들에 협력하는 지식인 상당수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지지한다. 조갑제나, 지만원, 한승조 같은 이들이 그런 부류들이다.
물론 모든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이 모두 그들과 같지는 않다. 다른 이유에서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그들은 대개 우리역사를 객관적으로 보고자 하는 이들이다. 우리역사를 보다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유럽과 미국은 그래서 그들에게 있어 중요한 기준이 되어준다. 문제는 그들이 기준으로 삼는 그 유럽과 미국이 식민지 지배에 대해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 그러나 대개는 그러한 문제에 대해서 눈을 감고 있다는 것이 이들 또 하나의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의 한계다.
식민지근대화론의 주장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오로지 힘과 물질만을 중심으로 한 사고다. 어떠한 가치나, 어떠한 사회적 구조의 변화와 같은 것들은 배제한, 물질적 부와 군사적인 힘이 그 중심에 놓여 있다. 그리고 어찌되었든 경제가 발전하고 없던 것이 생기지 않았느냐 하는 결과론적인 사고가 뒤를 따른다. 그것은 미국과 유럽의 백인기독교문명권 학자들이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개발한 논리들이다. 특히 미국에서의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는 제국주의 침략을 긍정적으로 보고자 하는 의도가 숨겨진 논리들이다.
그럼에도 근대 이성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 유럽과 미국의 백인문명권이다 보니, 그러한 그들의 주장은 지성의 표준이 되어버린다. 지성과 이성을 갖춘 자로서 반드시 따라야 하는. 그래서 제국주의를 비판해야 하는 진보적 지식인들마저도 가치중립적이라는 화려한 수식어를 곁들여 식민지근대화론을 지지하는 것이다. 일본에서, 유럽에서, 미국에서, 근대화라 일컫는 것이 결코 가치중립적일 수 없다는 것을 외면한 채. 그래서 도저히 식민지근대화론을 지지할 것 같지 않은 이들조차도 어느새 식민지근대화론에 동조하게 되어 버린다.
말하자면 그런 것이다. 사대주의. 서구사대주의. 서구를 중심으로, 같은 가해자이며 공범일 수 있는 서구의 이성과 지식을 중심으로, 세계를 보고자 하는, 그것만이 옳다고 믿는, 조선시대 오로지 성리학으로만 세상을 보려 했던 양반들과 같은 서구에 대한 굴종. 그것이라 생각한다. 진보적 지식인들마저도 식민지근대화론을 지지하는 것은. 그것은 결국 서구 제국주의 열강에 대한 구한말 지식인들의 동경과도 같은 것이리라.
결국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일본에서 발생한 식민지 조선에서의 식민지근대화론은, 미국과 유럽에서 세를 얻고, 다시 우리나라로 수입되어 마치 그것이 진실인 양 널리 유포되게 되어버린 것이다. 근대성에 대한 고민 없이. 근대화에 대한 진지한 논의 없이. 오로지 경제가 근대화고, 군사력이 근대화라고 하는 물신주의적인 가치가 지배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한승조나 지만원 류의 주장은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원본: 모니터속의 탁상공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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