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 제 236호 충렬사. 임진왜란이 끝난 7년후 선조의 명으로
지었다. 이순신장군을 추모하고, 신위를 봉안하고 연중 5회의
제사를 모신다. 음력 2월 춘계 향사, 음력 8월 추계향사, 양력
4월 28일 공의 탄신제와 음력 11월 19일 기신제, 지방문화
행사인 한산대첩 기념제전에 고유제를 봉행한다.
강한루, 1840년인 헌종 6년에 지었으나 큰 비로 무너져,
1988년에 복원하였다.
충렬사 동백나무는 수령 370년의 거목으로 충무공의 붉은
충절의 표상이다.
그러나 동백꽃이 피지않은 이철에 역시 향기와 눈길을 사로
잡는건 금목서 였다. 이 사당 경내에 이렇게 금목서 은목서가
많은줄 처음 알았다.
하얀꽃이 핀 은목서.
충렬사 내삼문. 현판은 1663년 현종 4년에 임금이 사액하고, 문정공 송준길 선생이 글을 썼다.
신위를 모신 사당 1606년, 선조 39년 건립.
제 187대 통제사 신관호가 채색화로 그린 '팔사품도'병풍
보물 제 440호인 '명조 팔사품 진품'은 임진왜란 마지막해
조선과 명나라 연합 작전시, 충무공의 인품과 전략전술에
감복한 명나라 수군도독 진린이 명나라 신종황제에게 주청하여 충무공에게 내려준 8가지 물품을 말한다.
(도독인, 영패, 귀도, 참도, 독전기, 홍소령기, 남소령기,
곡나팔- 종류는 8가지지만 개수는 15가지를 명조 팔사품이라
한다)
태산목 가지와 잎사귀
충렬묘비, 지방유형문화제 제 113호
충무공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숙종 7년인 1681년에
제 60대 통제사 민섬이 세웠다.
비문은 광해군 6년, 1614년 당시 좌의정이었던 이항복이
지어 여수 좌수영에 대첩비를 세웠다. 6년후 이곳에 비를
건립하면서 원문 그대로를 송시열이 글씨를 썼다고 한다.
오후 1시, 충렬사 관광을 끝으로 서문시장에 삼삼오오
흩어져 먹고 싶은 식당으로 들어갔다. 등산대장이 일인당
오천원씩을 주었는데, 복국집으로 간 사람들은 7천냥, 장어집, 매운탕집 모두 달랐다.
나와 몇사람은 서호시장의 유명하다는 '시락국집'으로 갔다. 4천냥. 너무 좋아서
추천하고 싶다. (food 폴더에 올리겠음.)
귀경길에 들리기로 계획했던 사천 다솔사는 빼버리기로 하고 3시 40분 버스는
서울로 향했다. 운전하는 정기사를 빼곤
모두 골아떨어졌다. 통영구경 쎄게 한 탓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