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다.
전 5부로 완성된 '토지'는 말 그대로 한국 현대문학의 근간이 될만한 대작이다. 등장인물이 700여명에 권수로는 21권, 원고지 4만장에 달하는 분량, TV드라마로도 3번 만들어졌다.
그러나 손수 퇴비를 만들고 창고에 집없는 고양이들을
돌보며 많은 경작을 손수하던 마당은 잔디가 깔려있었다.
마당 한 옆으로 약간의 농사가 그때의 흔적인듯 남겨져 있었다. 생명을 살리는 일에
몰두하셨던 분...
맨드라미 더미와 함께. 선생님의 채취를 느끼게 했다.
'원주와서 넒은 집에 혼자 살아온것도 칠팔년
늘 참말 같지가 않았다. (....) 꿈을 꾸고 있는 걸까,
정수리 자르며 지나가는 시간,
저승길 헤매고 있는 거나 아닐까.
'글을 쓸 때는 살아 있다/ 바느질할 때 살아있다
풀을 뽑고 씨앗 뿌릴 때 살아있는 것을 느낀다
서쪽에서/ 빛살이 들어오는 주방/
혼자 밥을 먹는 적막에서/나는 내가 죽어 있는 것을 깨닫는다.
-꿈 2
월간 현대문학 4월 호에 마지막으로 발표한 신작시에는
성찰과 회한도 묻어났다.
"어머니 생전에 불효막심했던 나는 / 사별 후 삼십여 년 / 꿈 속에서 어머니를
찾아 헤매었다 / …(중략)…꿈에서 깨면 /
아아 어머니는 돌아가셨지 / 그 사실이 얼마나 절실한지 /
마치 생살이 찢겨나가는 듯했다" ('어머니' 중)
그토록 미워했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쳐서...
"모진 세월 가고 /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옛날의 그 집' 중)
선생님을 만났던 친구 얘기론 못말릴 줄담배 셨다고 했다.
토지를 완성해낸 그런 질김,..대문 밖에는 늑대와 여우,
하이에나까지 있었다는 그분의 인생역정...돌아가시기 전해
7월 폐암 선고를 받고도 담배를 끊지 않고 치료도 거부해왔던 것은 자연에
순응하는 질김이었다고 생각된다.
원주의 문학관 전시실.
박경리 문학공원 주변은 '토지의 중요인물인 '홍이 동산'이란
소공원이 있고, 간도 용정의 이미지를 살려 용두레벌이란
우물과 돌무덤, 일송정 소나무 언덕도 있다.
고 박경리 선생은 평소 '고향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에 따라 통영시 산양읍 신전리에서
농장을 경영하는 정대곤(54·양지농장 대표)씨가 3000여㎡의 터를 희사, 선생의 유언대로
묘지를 조그마하게 만들어 안장했다. 고향의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산자락이다.
2008,5.5일 타계한 故 박경리 선생의 안장식이 열린 9일 오후 경남 통영시 산양읍
신전리 장지에서 故 박경리 선생의 외동딸인 김영주 토지문화관장과 사위
김지하 시인이 흙을 덮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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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통영에 있는 고 박경리 선생 묘소에 설치된 친필 표지석. |
정대곤 씨는 "지난해 12월 고 박경리 선생과 진의장 시장이 농장 내에 있는 자신의 펜션에 하룻밤 묶으면서 '이 곳이 너무 좋다'는 감탄사를 자아낸 것이 계기가 되어 진 시장과 의논 끝에 선생이 안장될 터를 희사했다"고 말했다.
48억 원을 들여 올해부터 오는 2010년 2월 완공을 목표로
통영시 명정동
충렬사 앞 주택 터 2154㎡에 박경리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박경리 문학관(2층)을 건립할 계획도
진행중이었다.
참고 글 : 토지문학관 팜플릿, 경남도민일보, 조인스닷컴,
통영시민이 찍은 상여사진, 김봉준님 그림,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