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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3/10/08
 

K형! 기어코 동경 왔오. 와보니 실망이오. 실로 동경이라는 데는 치사스런 데로구려!
-- 1936년 11월 14일, 이상(李箱)

PyPy 프로젝트를 오랫동안 지켜봐 왔는데, 이번에 도쿄에서 스프린트를 한다고 해서 참여할 궁리를 했습니다. 지금 일본에 와 있으니 성공했네요. 자비로 왔습니다. 무슨 지원 받은 거 아니에요. 흑흑.

공식 일정은 내일 10시부터 시작입니다. 까먹기 전에, 오늘 일지를 적어야겠습니다.

04:00 기상
04:50 의정부역 공항버스 정류장
06:10 인천공항 여객터미널 (가면서 주로 잤습니다)

일본항공 카운터는 06:30에 열린다고 하길래, A 구역 뒤에 병무 신고 센터 가서 신고하고, E 구역 뒤에 SK 센터에서 휴대전화 로밍을 신청했습니다. 티켓 받고, 짐 부치고, 공항 서점에 가서 슈타인호프님의 대체 역사 소설 "봉황의 비상"을 읽고 (엉?), 악 늦었다 소리 지르고 출국 심사를 받고 들어가니 08:00 즈음 됐습니다. 탑승은 08:25부터 시작이어서, 쇠고기버섯덮밥으로 아침을 먹고 46번 게이트로 JL 950편에 올랐습니다. (사실 이런 내용은 아무도 관심 없음 -_-)

잘 기억은 안 나는데 09:30 다 되어서야 이륙했던 것 같고, 기내식은 종이도시락 나오길래 물만 마시고 안 먹었고, 가면서 헤드셋 꼽고 "게이샤의 추억" 영화를 보는데, 한창 재밌을때 쯤 착륙한다고 벨트를 매라더군요 (먼산).

10:50 나리타공항 착륙
12:10 입국심사 마치고 짐 찾음

막상 어디로 가야되는 지 몰라서 헤매다가 안내소에 가서 일본어를 모르니 벙어리가 되어 뻘쭘하게 서 있다가 쭈뼛쭈뼛 Akihabara라고 글씨를 그려 주니 (이런) Tokyo Metro Guide라는 안내지를 가져와서는 형광펜으로 어떻게 가서 어디로 갈아타면 된다고 친절하게 알려줍니다.

12:40 공항 제2터미널역 (케이세이 연선)
13:50 닛포리역 (JR 야마노테선으로 환승)
14:10 아키하바라역

내려서 두리번두리번 하다가 역 주변 안내에 보니 중앙개찰구로 나가면 바로 아키하바라 워싱턴 호텔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바로 앞이더라구요. 14:40에 체크인 했습니다. (14:00부터 체크인 됩니다.)

방에 들어와서 짐 풀고, 랜선이 어디 붙어있는지 몰라서 한참 찾고, 찾고 나서는 방 키를 홀더에 넣지 않으면 전자 기기가 다 안 되는 걸 몰라서 당황하고, 막상 노트북을 켜려니까 전원 어댑터를 안 준비해서 패닉 상태가 되었다가 어차피 옆이 "세계 최대의 전자상가" 아키하바라니까 -- "아키하바라 가이드 맵"이라고 친절하게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는 안내지에 그렇게 써 있네요;; -- 하나 사서는 노트북을 켜서 #pypy 채널로 달려가서 왔다고 신고(?)하고... 잤습니다. (새벽 4시에 일어났다니까요 -- 그럼 비행기 안에서는 왜 안 잤는데? -- 묵묵부답)

18:00 즈음 일어나서 "아키하바라 가이드 맵"에서 식당을 찾아서 눈 감고 아무거나 찍어서 "홈 메이드 커리"로 저녁을 먹고 걸어서 주변 구경을 좀 했습니다. 갑자기 생각이 나서 방으로 돌아와서는 5년간 쓰던 구식 핸드폰과 보상판매로 바꾼 카메라가 되는(!) 새 핸드폰을 가지고 나와서는 (한국어는 문장을 계속 안길 수 있으니 재미있죠?) 아키하바라역하고 워싱턴 호텔, 저녁 먹은 곳 간판 등을 찍었는데 이미 주변이 어두워져서 잘 안 나오네요.

음음, 그리고 앉아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럼 다음 편은 내일 이 시간에...

오랫동안 글이 없었는데, 벌써 광복절이다. "친절한 금자씨"하고 "웰컴투 동막골"을 봤다. 이 글은 어떻게든 블로그를 채워보려고 발버둥치는 시도이지만 실패한 듯 싶다.

SF의 빅 3의 하나인 아서 클라크의 작품 중에 "낙원의 샘(The Fountains of Paradise)"이 있다. 시공 그리폰 북스 013으로 출판되었는데, 운 좋게도 제때 사서 책꽂이에 꽂아놓을 수 있었다.

이 작품은 우주 엘리베이터를 다루고 있는데, 워낙 좋은 작품이라 직접 구해서 읽어보라는 말 외에는 딱히 할 말이 없다. 애초에 그 이야기를 하려던 것도 아니다. 다만 34번째 절, 한국어판에는 216-217쪽에 다음과 같은 매우 흥미로운 문단이 있다.

"그러나 일련의 귀찮은 일들을 제거해 준 그 똑같은 기술이 더 힘드는 일을 만들어 냈다. 그 가운데도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도 개인 관심 프로필의 설계일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새해 첫날이나 새일에 자신의 PIP(Personal Interest Profile)를 최신 정보에 맞추어 정정하였다. 모건의 명단에는 50개의 항목이 있었다. 수백 개의 항목을 가진 사람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깨어 있는 모든 시간을 정보의 홍수와 싸움을 하며 보낼 게 틀림없었다. (중략)

물론 대체로 자기 중심주의와 직업적인 필요성 때문에 가입자 자신의 이름이 모든 항목의 첫 번째에 올라 있기 마련이었다. 모건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 다음에 이어지는 항목들은 약간 특이했다.

탑, 궤도 / 탑, 우주 / 탑, (지구) 정지 궤도 / 엘리베이터, 우주 / 엘리베이터, 궤도 / 엘리베이터, (지구) 정지 궤도

이 말들은 언론 매체에서 사용되는 같은 말의 변종 대부분을 포괄하고 있었으며, 그럼으로써 모건은 이 프로젝트에 관한 뉴스 아이템 가운데 적어도 90퍼센트는 볼 수 있었다. (하략)"

"낙원의 샘"이 출판된 것이 1978년의 일임에 주목하라.

반네바르 모건이 오늘날에 산다면 구글 알리미를 좋아했으리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혹시 구글 알리미에 대해 아직 모른다면, 매끄러운 한국어로 번역된 FAQ를 읽어보고, 위 SF 소설 속의 묘사와 비교해 보라.

"Q. 구글 알리미란 무엇입니까?

A. 구글 알리미는 귀하의 검색 용어에 대해 새로운 구글 결과가 추가되면 자동으로 발송되는 이메일 서비스입니다. 현재 구글에서는 세 종류의 알리미('뉴스', '웹' 및 '뉴스 & 웹')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Q. '뉴스', '웹' 및 '뉴스 & 웹'은 어떻게 다릅니까?

A. '뉴스' 알리미는 구글 뉴스 에서 새로운 기사가 귀하의 검색어에 대한 검색 결과 순위 중 상위 10위 안에 들면 이메일을 보냅니다. '웹' 알리미는 새로운 웹 페이지가 구글 웹 검색 에서 검색 결과 순위 중 상위 20위 안에 들면 이메일을 보냅니다. '뉴스 & 웹' 알리미는 새로운 기사가 구글 뉴스에서 검색 결과 순위 중 상위 10위 안에 들었거나 새로운 웹 페이지가 구글 웹 검색에서 검색 결과 순위 상위 20위 안에 들었을 경우 이메일을 보냅니다."

우리는 SF가 예견한 세상 속에 살고 있다. 구글은 멋진 회사다.

언어학 이야기를 한다고 했다.

많은 잎들을 영어로 옮기면 many leaves가 될 것이다. "많"에는 m과 n이 있고, many에도 그렇다. 마찬가지로 "잎"과 leaf는 닮은 것 같다. 한국어와 영어는 같은 뿌리에서 나왔나? 이 단어들은 정말로 연관되어 있을까?

이럴 때 먼저 확인해 봐야 할 곳은 Online Etymology Dictionary이다. 한국어의 계통은 알려진 것이 별로 없는 것과 달리, 영어의 계통은 아주 잘 알려져 있다. 위 사이트는 온라인에 있는 영어 어원 사전 중에서는 가장 괜찮은 것으로, 진짜 책으로 출판된 어원 사전들의 내용만 실려 있어서 가짜 어원들에 속을 염려가 적다. 현대 영어가 한국어와 비슷해 보인다고 해도, 고대 영어 형태가 영 딴판이라면 그러한 비교는 포기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영어 단어가 비교적 새로 생긴 단어이고, 다른 인도 유럽 언어들에 대응하는 형태가 없다면, 그러한 비교 역시 포기해야 한다.

다행히도 many는 인도 유럽 공통 기어(Proto Indo-European, PIE로 줄여 쓰기로 한다) monogho에 소급함을 알 수 있다. leaf는 PIE leup에 소급한다. 다행히도 두 단어 모두 매우 오래된 어원을 갖고 있고, 영어에서 새로 생긴 단어는 아니다.

마찬가지 이야기를 한국어 쪽에도 할 수 있다. 최소한 중세 한국어 형태를 확인하고, 가능하다면 터키어, 몽골어나 일본어에서 사촌 뻘이 되는 단어를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 터키어 사전이나 몽골어 사전이 있다면 좋겠지만 집에 그런 게 있는 사람은 아주 드물테고, 괜찮은 온라인 자료는 Webster's Online Dictionary, Rosetta Edition이다. 전세계 100여개 언어의 단어들을 조금씩이지만 다 갖고 있다. 어차피 이런 언어간 비교에 쓰이는 단어들은 비교적 기본적인 단어들이기 때문에 대개는 충분하다. 일본어야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테고, 네이버 한일사전 정도면 차고 넘친다.

many와 "많"에 대해서는 따로 글을 적었다. (UTF-8 인코딩이다.) 아마 온라인 자료만으로는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잎"은 다행히 Rosetta Edition에서 찾을 수 있지만, 알타이어의 음운 대응을 모르는 채로는 찾기가 쉽지 않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몽고어 навч터키어 yaprak이 중세 한국어 "닢"과 대응한다. (키릴 알파벳으로 된 몽고어를 로마자로 적으면 navch가 된다.) 몽고어의 ch와 터키어의 rak은 나중에 붙은 접미사이며, 남은 어간 niph, nav, yap의 조상 형태는 *liap이 된다. 그런데 이것은 PIE의 leup에 정말로 대응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어-영어 비교에서는 가운데 모음이 "이"인 것이 눈에 띄었지만, 사실 이것은 거의 우연의 일치이고, 자음은 zero/l, ph/f로 오히려 다르지만 (ph는 우리말의 ㅍ을 이렇게 적었는데, h는 유기성(aspiration)을 나타낸다) 조상 형태로 올라가면 l-p로 일치하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한국어로 "많은 잎들"을, 영어로 "many leaves"를 이야기할때, 어쩌면 우리는 몇천년, 어쩌면 만 몇천년 전에 "managa lapa"라고 말했던 사람들의 후예라는 것을 드러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벗과 놀았다.

PuzzletChung(정경훈)씨랑 만나기로 한 것은 목요일날 급작스레 정해졌다. 언제? 어디서? 몇 마디만에 토요일 1시에 강남역 7번 출구에서 만난다고 정해버린 거다. 핸드폰 번호도 서로 모르는 처지에 베짱이 대단했다.

내가 15분 정도 늦었다. 놀부부대찌개를 먹었다. 커피 마시러 들어갔는데 나는 커피를 마실 줄 모른다. 카페 모카는 초콜릿을 넣은 거고 카페 라테는 우유를 넣은 거라고 했다. 모르는 세상은 무조건 신기해 보인다. 그 와중에도 계속 이야기를 했다.

현대 수학과 현대 음악의 공통점은 둘 다 이해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점이라는 데 동의했다. 수학과 음악은 자기네만의 기호 체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도 닮았다. 언어학 이야기도 했다. 내가 알타이 어가 어쩌고 인도 유럽 공통 기어가 어쩌고 하면서 설을 풀었는데 아마도 헛소리가 많았을 것이다. 그게 정말 맞는 줄 알고 얘기했다가 창피당할까봐 걱정이다. 별로 이해하는 사람이 없는 학문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입자물리학 이야기도 했고 왜 나왔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P=NP나 암호학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그리고 더 많은 이야기들을 했다.

언어학 이야기는 다음 글에 더 자세히 해야겠다.

집에 왔다.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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