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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5/12/25
 



Jermaine Jackson이 발굴하여 1975년에 데뷔한 모타운출신 밴드 Switch는 리드보컬 Phillip Ingram과 건반주자 Bobby DeBarge와 Greg Williams, 그리고 베이스의 Tommy DeBarge, 기타 Eddie Fluellan, 드럼 Jody Sims로 구성된 6인조 밴드다. 1978년 R&B차트 Top Ten곡인 "There'll Never Be," 와 "I Call Your Name" (1979) 그리고 오늘 포스팅한 "Love Over and Over Again" (1980)이 손에 꼽히는 그들의 히트곡이다. 1980년까지 밴드는 유지되다가  Phillip Ingram은 자신의 솔로활동으로 Bobby Debarge와 Tommy Debarge는 그들의 동생들이 결성한 DeBarge를 돕기위해 밴드를 떠나면서 맴버가 몇몇 교체되며, 1984년 결국 밴드는 해체하게 된다. (출처 : AMG)



연말이라 괜히 싱숭생숭하고... 그래서 좀 신나는 노래 좀 올려보려 했으나
요새 왜이리 업로드가 안되는지.... 쩝...

 (1980


탐나던 아이템이였는데.... 우연하게 이곳에 들렀다가 신청해서 받게 되었다.

비록 착불이긴하지만, 2500원에 20주년 기념뱃지와 프로그램 그리고 부클릿 두권은

정말 값진 성탄절 선물이 될 것 같다.




20주년 프로그램에 있는 기타리스트 김세황씨의 축하인사 중... 

자신의 곡을 MR 반주에 맞춰 재대로 노래하지도 못하는 가수들이 난무하는 현실 속에서,
이것마저도 Live라고 주장하는 말도 안 되는 외모지상주의에 세뇌되어 음악이 "주"에서 "부"로 전락하고 있는 바로 이 시점에서 개인적인 작은 소망이 있다면, 다음 세대에게도 계속해서 그동안 줄곧 해주셨던것처럼 음악이 "부"가 아닌 "주"로, 순수하며, 오늘날의 인스턴트 음악 같은 음악이 아닌 모래 속의 진주같이 소중한 음악세계로 계속해서 남아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전영혁의 음악세계 한국방송프로듀서상 음악부문 작품상 시상식 동영상

[스크랩] 당신이 여성을 유혹할 때 성공할 확률은? (여성 테스트 금지)

2006.12.12 09:26 | 묻고 답하기 | soulramp

http://kr.blog.yahoo.com/soulramp/1604 주소복사

 


당신은 최소한 연애를 할 때에는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는 표현을 분명하게 하지 않는 타입이다. 여자친구 혹은 남자친구와 음식점에 가면 아무거나 달라고 하는 경우가 많고, 특별히 영화나 책이나 놀이도 함께 하지 않는다. 그 덕분에 신중하고 내성적이고 사려깊다는 평도 받지만, 때때로 개성도 자기 생각도 없다는 오해도 받는다. (사실 연애가 아니면 매우 독창적이고 개성만점에 자신감 넘치는 사람일수도 있다.) 주로 말하기보다는 듣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연애할 때는 장점이자 단점이 될 수 있다. 당신은 연애를 할 때 스스로 판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을 매우 싫어한다. 어차피 세상의 많은 일들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흘러가는데 굳이 판단을 내릴 필요가 있겠는가 싶기도 하다. 어쨌든 이런 점들 때문에 당신은 연애를 아예 시작도 못하거나, 끌려다니거나, 관계를 끊고 싶어도 끊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당신은 연애를 할 때 적극적으로 상대를 리드하기 보다는 상대방의 뜻에 따르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소극적이라는 평을 많이 받는다. 말이나 행동의 실수가 적기 때문에 신중하다는 평도 듣는다. 연애의 기본 덕목은 상대의 말을 들어주는 것인데, 당신은 특별히 할 말이 별로 없기 때문에 상대의 말을 들어주기가 더 쉽다. 가끔 자상하다는 오해(?)도 받고, 많은 이성 친구가 당신에게 고민을 털어 놓기도 한다.

 

 

당신은 적극적으로 판단을 내리거나 주장을 하지 않기 때문에 연애 상대에게 우유부단하다는 평을 들을 가능성이 있다. 연애할 때는 상대방이 당신의 속을 알 수 없어서 답답해 하는 경우가 태만이다. 자신이 만족하지 못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애인에게 끌려 다니는 경우도 있다. 그러다 보면 불만은 쌓이고 해소할 길은 없으니 답답한 상황에 빠진다.

 


연애를 할 때는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뭐가 좋고 뭐가 싫은지 분명하게 말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준을 만든다면, 이후에 의사결정을 할 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는 장점을 살리라. 남들이 당신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들을 잘 정리해서 돌려주기만 해도 당신은 훌륭한 상담역으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브람스 (Johannes Brahms)

 
오스트리아 출신의 작곡가. 1833~1897. 아버지로부터 음악적 재능을, 어머니로부터 성실한 성격을 물려 받은 브람스는 전형적인 음악 모범생이자 경건한 신앙인이었다. 고된 정교 교육을 우수한 성적으로 마친 후 피아니스트로 데뷔한 브람스는 1853년 세계적인 거장이었던 슈만을 만나 그의 전폭적인 후원을 받게 된다. 슈만은 브람스의 천재성을 간파하고 그를 집에 초대해 한달 동안이나 머물게 했다. 슈만에겐 클라라라는 아내가 있었는데, 클라라는 남편 못지 않은 천재적 음악성에 뛰어난 피아노 연주력을 지닌 여성이었다. 슈만 부부는 브람스의 인생에 전부였다. 슈만은 브람스 음악 인생의 스승으로, 브람스는 스승 덕에 음악가로서 출세할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브람스는 슈만의 아내 클라라에 연정을 품으며 그녀를 평생 짝사랑한다. 1854년 스승 슈만이 정신병으로 투신 자살을 한 뒤로 브람스의 클라라에 대한 사랑은 더욱 애절해진다. 클라라는 당시 7번째 아이를 임신한 상태로 생활고에 시달리게 됐고, 브람스는 죽은 스승에 대한 존경과 클라라에 대한 연정으로 클라라와 그의 가족들의 생활을 평생 책임진다. 브람스는 자신보다 14살이나 연상인 클라라를 마음 속 깊이 사랑하는 까닭에 평생 다른 여자와 교제하지도 못했으면서, 스승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클라라에게 청혼을 하지도 못하고 33년간 주변을 맴돌았다. 1986년 클라라가 77세의 나이로 타계하자 브람스는 "내 인생 가장 고귀한 의미를 잃었다"며 절망에 빠졌고, 이듬해 그도 따라 숨을 거둔다.

 

 

 가우디 (Antonio Gaudi y Cornet)


스페인의 세계적인 건축가, 1852∼1926.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출생, 어릴 때부터 관절염을 앓아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어울리기는커녕 제대로 걷지도 못해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관찰"을 하며 보냈다고 한다. 어머니는 대학 시절 돌아가셨고, 그는 이후 아버지와 여조카와 함께 살게 된다. 어머니의 죽음은 가우디에게 씻을 수 없는 정신적 상처를 남겨, 그는 이후 평생 결혼도 교제도 하지 않으며 남은 가족들과 생을 함께 한다. 1911년 열병으로 죽다 살아난 가우디는 이듬해 여조카의 죽음, 그리고 구엘을 비롯한 수많은 후원자들마저 세상을 떠나자,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 매달리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그는 외부와 담을 쌓은 채 완전히 거지와 다름없는 삶을 살기 시작한다. 파밀리아 성당의 인부들과 함께 먹고 자고, 차림새는 오히려 인부들보다 훨씬 남루한 꼴이 돼 갔다. 그는 끝없이 일을 하다 지치면 길바닥에 누워서 잤고, 깨어나면 다시 일에 매달렸다. 그리고 1926년, 그는 한밤중에 길을 건너다 전동차에 치었으나 노숙자로 오인된 까닭에 병원으로 이송되지 못한 채 숨졌다. (가우디가 자신의 영혼을 바쳤고, 죽어서 그의 육신이 묻힌,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현재 세계 각국의 모금을 통해 계속해서 지어지고 있다.)

 

 

 

 앨런 튜링 (Alan Mathison Turing)


영국의 수학자, 컴퓨터 소프트웨어의 아버지. 1912년-1954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튜링은 어릴 때부터 수학과 과학에 비상한 재능을 보인 학생이었으나, 서툰 말투와 추레한 옷차림 덕에 항상 외롭게 지냈으며, 선천적인 동성애자로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천재 수학자였던 그는 독일군의 암호 이니그마를 해독하는 기계를 만들어 연합군이 전세를 역전시키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으며, 전쟁 후에는 컴퓨터의 소프트웨어 기초 이론 및 인공지능의 기초를 창안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러나 소프트웨어의 발명자이자, 알려지지 않은 전쟁영웅 튜링은 그의 동성애 기질 때문에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다. 당시 영국 법에 의하면 동성애는 명백한 풍기문란 죄였다. 1951년 어느 날 우연한 사건에 의해 튜링의 동성애 기질은 경찰들에 의해 발각됐고, 튜링은 1년의 구금형을 선고 받는다. 당시 영국에서 동성애자가 구금형을 받지 않으려면 약물치료로 형을 대신해야 했는데, 몸에 여성 호르몬을 주입하는 방법이었다. 동성애자의 성적 본능을 감퇴시켜 범죄의 재발을 막는다는 취지였다. 튜링은 감옥에 가지 않고 연구를 계속 하기 위해 호르몬 치료를 택했지만, 여성 호르몬의 영향을 받는 그의 연구 및 강연 생활은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튜링은 외부로부터 쏟아지는 수모와 공공연한 조롱에 엄청난 정신적 압박을 받았고, 결국 1954년, 자신의 집에서 독극물을 묻힌 사과를 먹고 자살한다. 튜링은 조국을 전쟁의 위기에서 구한, 인류의 기술산업 발전에 거대한 이정표를 세운 영웅이었으나, 영국에선 그를 기록에 남기려는 노력조차 없었다.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아일랜드의 화가, 1909~1992. 아일랜드의 시골에서 태어나 방 심부름하는 하인, 가구 디자이너 등을 전전하다 30세가 되어서야 그림 그리기를 시작했다. 그는 원래 돈 있는 중산층 집에서 태어났으나 정신적으로 여성이라는 이유로 집에서 쫓겨나 힘든 유년기를 보내야 했다. (그는 선천적인 동성애자로, 16살 때 집에서 자기 누이 옷을 훔쳐 입다가 격노한 아버지에 의해 집에서 쫓겨났다.) 얼떨결에 독립생활을 시작한 베이컨은 런던, 베를린을 전전하며 장식 미술가로 생계를 유지했다. 그 뒤에 노름에 미쳐 돌아다니며 몇 번의 소소한 전시를 거치다 전업작가로 전향한다. 기본적으로 베이컨은 지독히 폐쇄적인 완벽주의자로, 마음에 안 드는 그림 수백 점을 파괴했으며, 한 작품에 오랜 세월 매달리며 일부는 평생 완성시키지도 못했다. 그는 마구간을 개조해 만든 작업실에서 1961년부터 죽을 때까지 단 한번도 청소하지 않은 채, 그 누구의 접근도 허락하지 않으며(심지어 그림 모델과 같이 있는 것도 매우 싫어했다), 자폐증 환자처럼 창작에 몰두했다. 그는 작업실에 쌓이는 먼지를 방치해 먼지와 물감이 버무려져 발생하는 "특수 효과"를 만들어 내기도 했으며, 3일 넘게 수염을 깎지 않은 얼굴에 물감을 발라 붓 대신 쓰기도 했다. 아무런 교육도 받지 않은 채 바닥부터 시작한 그의 그림은 무시무시한 잔혹성, 엽기적 비주얼을 특징으로 하면서도 그 안에 엄청나게 심오한 철학적 깊이를 담고 있다. 그는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비싸게 팔리는 화가에 속하며, 20세기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화가 10명, 그리고 그 중 최고의 창조자로 선정됐다.

 

Michel Petrucciani - Love Letter (Live)

2006.12.12 08:29 | 날(生)로 듣기 | soulramp

http://kr.blog.yahoo.com/soulramp/1603 주소복사












Michel Petrucciani 내한 공연, 민망했던 에피소드


페트루치아니가 내한 공연을 가졌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국제적인 명성에도 불구하고 그는 국내 재즈팬들에게는 지명도가 낮은 편이었다. 그의 내한공연은 97년 11월 24일 라마다 르네상스 호텔에서 열렸다. 국제문화교류협회라는 단체가 그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정보에 따라 마침 일본에서 공연중이던 그를 급히 섭외해 이루어진 공연이었다. 급조된 공연인 만큼 민망한 헤프닝들이 벌어졌던 것으로 전해진다. 과연 어떤 사건이 벌어졌던 것인지 당시 팬들의 경험담을 통해 재연해 본다.

그날 공연은 주최측이나 공연장측이나 준비가 무척이나 허술했다. 우선 골절의 위험이 많은 그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었다. 페트루치아니는 누구의 부축도 받지 못한 채 손수 피아노 높이를 조정하고 애를 쓰며 의자 위로 올라서야 했고 팬들은 주최측의 배려 부족에 눈살을 찌푸렸다. 사건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가 연주해야 할 피아노는 공교롭게도 줄 서너 개가 끊어져 있었다. 연주를 마친 후 그는 무척이나 애를 먹었다고 토로했다. 게다가 스피커는 어디가 이상이 있는지 터졌다 먹통이 되었다를 반복했다.

장소 선택도 문제가 있었다. 일반 공연장과는 달리 객석이 좌우로 죽 길게 늘어서 있어 관람자들이 마음 편하게 관람할 수 없었다. 한 팬은 연주자나 관객이나 고문받는 느낌의 망신살이 뻗친 연주회였다고 비꼬았다. 그러나, 그런 여건 하에서도 1시간 30분 동안 거의 쉬지 않고 진행된 열정적인 공연은 사소한 불만쯤은 한번에 날려 보낼 수 있었다. 연주하는 동안 그는 다소 고통스러운 표정이었지만 셔츠는 물론 겉 양복까지 땀으로 흠뻑 젖을 정도로 최선을 다했다. 공식 연주가 끝나자 팬들은 전원 기립박수로 앵콜을 청했고 현악 4중주와 어우러진 베사메무초로 한국 팬과 이별을 고했다.

출처 :
(시각장애인을 위한 홈페이지
'seoul eye'http://www.metro.seoul.kr)
함께 걸음 2001년 4월호
제목 : 이현준의 장애우이야기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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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도 아니고... 그 옛날 GoldStar 세대인 우리집 TV가 드디어 기나긴 생애를 마감했다.

사실 몇년전에 한번의 위기가 있었다.

잘 나오던 TV가 갑자기 채널이 안잡히는 것이었다.

기존에 잡히던 채널이  VHF방식(초단파 : very high frequency)이었는데

우연히 우리집에 재주 좋기로 소문난 친구가 와 우리집 TV에 UHF방식(극초단파 : ultra high

frequency)을 적용시켜 패품처리될 위기에서 우리집 TV를 구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몇년후..... 2006년 12월 어느날...

오전까지도 잘만 켜지던 TV가 저녁 11시무렵 갑자기 전원이 켜지지 않으면서

15년 넘게 이어온 우리의 인연이 끊기게 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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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TV에게



TV야 그동아 수고했다.

비록 리모컨 없이 수동으로 채널을 돌려야했지만 너와 함께한 시간이 적지 않아서인지

막상 이순간이 다가오니 매우 섭섭하구나....


언젠간 다른 녀석이 네 임무를 대신하겠지만....

내 이 사진을 보며 너를 잊지 않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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