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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야구의 혼, '작은 탱크' 박정태

2006.09.06 15:32 | 퍼나르기 | soulramp

http://kr.blog.yahoo.com/soulramp/1147 주소복사




[오마이뉴스 김은식 기자]

부산이 아닌 곳에서 박정태라는 이름은 그저 괴상한 모양으로 방망이를 휘두르던, 제법 성적이 괜찮던 타자에 대한 짧은 기억을 끌어낼 뿐이다. 그러나 부산에서 그 이름은, 다른 어떤 것도 대신할 수 없을 만큼 신나고, 흥분되고, 끓어오르고, 또한 안타깝고 애잔한 단어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제는 은퇴를 했을 뿐 아니라, 멀리 태평양 건너로 떠나버린 그가 있을 리 없는 부산 사직경기장에는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가 벌어지는 날이면 아직도
박정태의 얼굴이 큼직하게 박힌 플래카드가 내걸리곤 한다. '오늘은 무조건 이겨야 한다' 라는 그의 투박한 명언이 적힌 채로 말이다.

"신은 부산에 최고의 야구팬과 최악의 야구팀을 주셨다."

부산 사람들은 가끔 농담 삼아 이런 한숨 섞인 이야기를 한다. 정말 롯데 자이언츠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약한 프로야구팀이다. 물론, 원년의 꼴찌 신화 삼미 슈퍼스타즈가 있어 기억 속에 두드러지지 않을 뿐이지, 롯데가 쌓은 성적도 만만치는 않다.

01년부터 04년까지 기록한 초유의 4년 연속 꼴찌를 비롯해 25년 한국 프로야구사에서 무려 여덟번의 꼴찌가 롯데의 것이었다. 물론 84년과 92년, 두 번 우승을 하기도 했지만 유별난 부산 팬들에겐 98%쯤 부족하다.

그러나 그 초라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부산에서 벌어지는 야구경기는 언제나 전쟁터고, 축제고, 또 성스러운 의식이다. 내 어릴 적, 야구를 단순한 구경거리로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세상에 많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 것이 롯데 자이언츠 응원석 풍경이었다.


전정터 혹은 축제... 부산의 응원석 풍경

봉황기 결승에서 선린상고 '노준 오빠'의 발목이 으스러졌을 때 울먹이던 여고생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멀쩡한 아저씨 아줌마들이 스탠드에서 부둥켜안고 통곡하는 광경을 처음 보여준 것이 부산이었다. 때로는 불타는 쓰레기통이 날기도 했고, 자기 팀과 상대 팀을 막론하고 팬들에 대한 존중이 없이는 선수단 버스가 제멋대로 드나들 수 없는 것이 부산, 혹은 마산 야구장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최동원윤학길이 강호의 모든 방망이를 무릎 꿇리던 시절이나, 4년 연속 꼴찌에 허덕일 때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열기는 언제나 부산으로 원정 가는 팀들을 주눅 들게 했고, 롯데 자이언츠도 홈에서만큼은 언제나 강팀이었다. 올 해만 하더라도 7위 위로 올라오기 어려워 보이는 성적이지만 홈에서만큼은 3위권의 승률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 자이언츠다.

앞으로 10년쯤 연속으로 우승을 한다 하더라도 팬들의 성원에 다 값하지 못할 자이언츠가 부산팬들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 아마도 박정태일 것이다. 박정태는 단순히 독특한 타구폼을 가진 선수가 아니며, 단순히 야구를 꽤 잘 했던 선수도 아니다. 그는 '자이언츠, 아니 부산 야구의 정신'이라고 불리는 사나이다.

'탱크'라는 별명에 어울리지 않게 그의 키는 173cm에 지나지 않았다. 당시 프로야구 전체를 통해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단신이었다. 게다가 단신의 선수 치고는 다리도 빠른 편이 아니었다. 말하자면 파워나 스피드, 어느 쪽도 특출날 것 없는 선수가 박정태였다.

그러나 뻔히 가망 없는 타구를 날리고도 매번 죽자 사자 사지를 흔들며 달리는 모습은 덕아웃에서건 관중석에서건 보는 이들을 숙연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뿐인가. 덩치가 배는 됨직해 보이는 포수를 부숴버리기라도 하려는 듯 돌진하는 격한 홈 슬라이딩에는 브라운관 밖의 상대팀 팬들마저 끓어오르게 하는 힘이 있었다.

1993년 5월 23일. 그 때만 해도 프로 3년차 박정태는 잘 치고, 또 열심히 하는 기특한 선수에 불과했다. 그 날 1루에 나가 있던 박정태는 후속 타자가 병살타성 땅볼을 날리자 언제나와 같이 '죽자 살자' 달려서 '죽일 듯한' 슬라이딩을 날렸고, 태평양 유격수 염경엽과 충돌하며 쓰러졌다.

그리고 곧바로 경기장 밖으로 실려 나갔다. 발목뼈가 조각조각 부서지는 '복합골절'. 선수생활은 커녕 제대로 걸을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다는 의사의 진단이 내려졌다. 그 때까지의 타율이 3할5푼9리. 한창 방망이에 불이 붙던 시점이었다.

사람들은 유망한 젊은 선수 하나가 그대로 사그라진다고 했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그날은 오히려 진정한 '박정태 신화'의 출발점이었다. 부서져버린 발목을 세우느라 숱한 철심을 박아 넣는 다섯 번의 수술 그리고 당연히도 눈물겨웠을 초인적인 재활치료가 이어졌지만 그는 끝내 일어섰기 때문이다.


박정태 신화의 시작

  그는 침대 위에서마저 배트를 손에서 떼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한번도 그라운드에서 뛰지 못하는 자신을 떠올려 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1995년 5월 16일, 그러니까 1주일이 모자라는 만 2년 만에 그라운드로 돌아왔다. LG트윈스와의 경기였고, 절대적인 운동량 부족 때문에 '짝짝이'가 되어버린 두 다리로 돌아온 그는 첫 타석에서 거짓말처럼 안타를 때려냈다. 2년 전을 기억하는 모든 이들이 '신화'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순간이었다. 그 날의 성적은 4타수 3안타였고, 그 해 시즌 성적은 3할3푼7리였다.

그러나 박정태 신화가 단순히 눈물겨운 인간승리의 재활스토리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그 신화의 결정판은 1999년 10월 20일, 대구구장에서 벌어진 플레이오프 7차전이었다. 양대 리그로 치러진 그 해, 드림리그 2위 롯데는 매직리그 1위였지만 승률이 부족했던 삼성과 4선승제 플레이오프를 치렀고, 1승 3패까지 몰렸던 5차전에서 터진 호세의 역전 끝내기 3점 홈런과 6차전에서 박석진의 7이닝 퍼펙트로 회생해 최종전에 이르고 있었다.

그리고 또다시 0-2로 끌려가던 6회, 1점을 만회하는 홈런을 날리고도 관중석에서 날아든 물병에 급소를 맞은 호세는 흥분해서 관중석으로 방망이를 집어던졌고, 곧장 퇴장을 명령받았다.

뒤진 상황. 중심타자는 퇴장 당했고, 흥분한 관중석에서는 끊임없이 오물이 날아들었다. 암담한 순간. 그 때, 주장 박정태는 선수들에게 짐을 싸자고 했고 선수들은 짐을 쌌다. 그 순간 김명성 감독의 만류가 아니었다면 선수들의 경기거부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뻔 했다. 감독의 간곡한 설득에 다시 주저앉아 맥없이 글러브를 꺼내 드는 선수들에게 박정태는 한 마디를 던졌다.

"오늘은 무조건 이겨야한다."

30분의 경기중단 뒤에 나선
마해영은 퇴장당한 호세와 이어지는 '백투백' 홈런으로 동점을 만들었다. 7회에는 비록 전날에 이어 무리하게 등판한 박석진이 똑같이 김종훈과 이승엽에게 연속홈런을 내줘 재역전 당했지만, 이번에는 8회에 임수혁이 투런 홈런으로 동점을 만들었다.

그리고 10회말 만루 위기를 넘긴 그림 같은 호수비의 주인공 김민재가 연장 11회 초 때려낸 결승타와 11회말 주형광의 그림 같은 3연속 삼진 마무리까지.


푸른 유니폼에 자긍심을...


  비록 그 날, 박정태는 한 개의 홈런도 날리지 못했고, 역사적인 결승타나 호수비를 보여준 것도 없었다. 그러나 부산 팬들이 그날을 떠올릴 때 제일 먼저 떠올리는 것은 박정태다. 구슬을 꿰듯, 선수 하나하나의 가슴에 불을 붙여 롯데라는 하나의 불덩어리로 만들어낸 것이 그였기 때문이다.

롯데 자이언츠에서만 뛰었던 열세 시즌동안, 통산 2할9푼6리의 타격. 한 때 최다였던 31경기 연속안타와 5번의 골든글로브. 98, 99년 2년 연속 올스타전 MVP. 훌륭한 성적이지만 '최고중의 최고'는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애초에 그의 가치는 안타 몇 개와 홈런 몇 개가 아니라, 푸른 유니폼에 자긍심을 실어놓은 선수라는 점에 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자이언츠라는 이름에서 가슴 떨림을 느끼게 해준 선수라는 점에 있다.

그가 뛰는 경기를 보고 난 다음에는, 항상 가라앉지 않는 흥분에 한참 넋을 놓아야 했던, 박정태. 한 번 떠올려 글로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머릿속을 노곤해지게 하는 이름이여.

NAMIDA 2006.11.11  20:58

지난번 못 읽고 가서 들른김에 훑어보았네요
부산 야구의 힘이라...맞는 말이로군요
현역시절..그 단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포스가 장난 아녔는데..
일명 '흔들이'타법두 정말 독특했구요
타자들이 타이밍 잡기가 무척 고역이었다죠^^

92년도..어린게 겁도읎이 이글스 응원하겠다구 부산엘 원정응원 갔다가
을마나 무서벘던지...
3루 관중석에 낑겨 모기만한 소리로 이글스 홧팅을 외치던... ㅡ.ㅡ
부산 분들 기세가 정말 무서웠던 기억이 생생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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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lramp 2006.11.11  21:06

실시간이십니다. ^^; 근데 대단하십니다. 부산원정까지... 당시만하더라도 타구장원정가서 응원하기란 참 힘들던시대아니었나요? 그래도 요즘은 타구장응원도 용인되는 문화가 형성된거 같은데.... 전 고향이 부산은 아니고 부모님고향이 경남이라 응원하게 된 케이스인데요. 세월이 지나다보니 그냥 롯데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예전 이글스에대한 저의 감정은 안좋았었는데요 철없던 어린시절 해태라는 정의를 위협하는 악당정도로 제겐 비춰졌었던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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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lramp 2006.11.11  21:06

요즘이라면 해태를 응원하진 않겠지만 그땐 너무 어려서...^^; 작년엔 3위 올해는 2위하셨으니 내년엔 꼭 이글스가 1위 했으면 좋겠습니다. (롯데는 4위만해도 감지덕지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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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IDA 2006.11.11  21:15

아이고! 말도 마세요!
일루 응원석부터 삥 둘러 죄 다 알아먹지도 못하는 사투리의 바다였지요
흥분을 하시니 속도마저 빨라 당최 무슨 말씀들을 하시는건지....
게다가 귀청 떨어지게 부산 갈매기를 불러 제끼는 아자씨들 때문에
을마나 무서웠는데요 ^^

"학생은 으데서 왔노?"
어떤분이 묻길래 발발 떨다가 차마 대전이라고는 못하고
서울서 왔다 뻥을 쳤던 기억^^

내년엔 꼭 이글스가 우승을 했음 좋겠군요
아울러 롯데두 분위기 쇄신해 4위안에 들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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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lramp 2006.11.13  14:31

ㅎㅎ 외가가 부산이라 부산사투리에 좀 익숙합니다.
(갑자기 귓가에 맴돌기까지하네요.)
이렇게 구체적으로 말씀하시는것보니 진짜 기억이 생생하신가봅니다.
내년엔 한화가 1위 롯데가 2위하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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