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진짜 문제는 그것이 정말 잘못 된 선택이었던 것인지 아닌지는 그 때도, 그 때가 지나서도 확인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타임렉. 문제가 발생하면 몇 단계의 타임렉이 발생을 하는데 제일 첫번째 단계가 인지체제의 문제다.
문제가 진행되고 있는 데 느끼지 못하는 것.
1.
초록색 띠가 둘러진 긴 연필을 든다. 연습장에 주욱- 사색의 곡선을 긋는다.
"후우..."
한 손은 핸드폰이 까딱까딱... 밧데리가 한칸을 아슬아슬하게 남겨두고 있다.
온 세포가 그에게 맞춰져 있다.
온 신경이,
온 행동이.
"흠..."
하찮은 문자 하나 오지 않는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를 못한다.
"바쁘겠지 뭐..."
하...... 그럴바에야 연애를 하지 않는게....낫겠다....
라고 머리 왼쪽 뒤편에서 누군가 외치는 순간, 입가에 미소가 쓰윽 지어진다.
거짓말 일 것이다. 연애를 해도 지옥, 안해도 솔로지옥. 뭐 그런 말도 있지만- 실은 그것이 주는 매일 매일의 충만함을 알고 있다. 세로토닌의 화학작용 때문이라도, 분명 매일 웃을 수 있다는 것은 충분히 좋은 일이다.
다만...
다만...
문제는 사랑 아닌, 외로움. 혹은 초조함...불안함...뭐 그런 말로도 대체할 수 있는 첨가 불필요한 감정과잉이 문제다.
만족할 줄 모르는 허덕임. 보상 받고 싶은 욕구. 밑지는 자존심...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 마음이 다하고 다해, 냄비가 끓어넘치듯이 생기는 거품 같은 감정이 문제다.
난 온도는 딱 99도가 좋던데...
때마침 하얀색 일색의 부엌에서 커피포트가 휘익 소리를 내며 부른다.
2.
더 많이 사랑한 쪽은, 더 먼저 사랑한 쪽은 행복한 만큼 외로움도 져야할 책임이 있다.
그렇게 이고지고 가다가 외로움에 가위 눌려 죽는거다.
아름다운 노을을 쳐다보는 건, 등 뒤로 긴 그림자를 메다는 일도 말하는 걸 것이다.
1+2.
문제가 존재할 때 그것을 인지하는데 시간이 걸리고, 그 다음에 인지를 하고 나면
원인을 분석하고 대책을 세우는 데에 또 타임렉이 걸린다.
종이의 양 극단을 가로지르는 긴 직선을 주욱 긋는다. 그리고 그 아래, 아무렇게나 선을 긋는다.
나란히 놓인 수평선.
그렇게 한순간 만나다...서서히 길을 달리하는 것..
처음부터그렇게 쓰여 있었으므로, 그러한 운명이라면 순응하는 것도 도리일 것이다. 두려움으로 일분 일초도 나란히 걷지 않으려는 어리석은 이들도 많다.
[응.]
단답형의 그 대답이 소름끼쳤다. 매일 같이 회사 얘기를 하는 것도 진부하고 불안했다. 궁금해하지도 않고, 공감하지도 않는다. 지겨운듯이 털어놓고 이젠 네가 얘기해봐. 라고 쏘아말하는 말투가 날카로웠다. 자야겠다. 라고 잘라 말하는 것이 이별로 가는 상투적 드라마 대본에도 써 있었다.
[쿵.]
알고 있다. 시작부터 감수하고자 했던 두 가지.
첫째, 내가 책임자므로, 행복에 대한 책임을 지므로, 나는 외로울 거 라는 것. 둘째, 공통사가 없어 같이 걷는 길이 생각보다 짧을지도 모른다는 것.
그러나 셋째, 그래도 앞뒤재보지 않고 해주고 싶은 만큼 하고 싶을 꺼라는 것....
3.
내가 좋아하는 강아지의 꼬리를 그도 좋아한다면 그가 좋아하는 아이들을 발랄함을 나도 좋아한다면
내가 좋아하는 인디음악의 무심한 가사에 그도 공감한다면 그가 좋아하는 대중가요의 통속적 가사를 나도 좋아한다면
내가 좋아하는 그림을 그릴 때 그도 그렇게 느낄 수 있다면 그가 좋아하는 신나게 놀기를 나도 따라할 줄 안다면
내가 좋아하는 영화보는 느긋함을 그도 좋아한다면 그가 좋아하는 야구관람의 재미를 나도 좋아한다면ㅡ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점심을 먹으러가는 붕뜬 시간에,
혼났을 때,
칭찬받을 일이 생겼을 때,
잠들기 직전에,
버스를 타러나가는 조용한 길에,
아마 마음이 조금은 더 가까워졌겠지.
[좋아하는 사람과 더 친해지고 싶을 뿐인데 마음은 어째서 매일 같이 외로운 걸까? 내 것을 공감하는게 하나도 없고 나는 자의적으로 질질 끌려다닌다. 자존심은 한없이 다치고 비밀은 자꾸만 는다.]
그때 이미 갈라진 길을 억지로 얽고 끌고 갔던 것이 아니었을까. 이미 시한은 마감됬는데, 죽은 사람을 소생시키듯 이치에 맞지 않은 일을 하고 있었던.
연이 아닌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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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기운이 일순 사라지고, 자는 모습조차 기괴해졌다. 잔뜩 헝크러진 마음의 형태와 같이 온몸을 삐둘고 잔다. 답답하구나,너.
청명하고 선연한 길이 보이는데, 어쩌면 사실 부득이한 일로 인해 비가 내리는 길을 밟아야 한다. 답답하다. 왜 나의 의지가 이제는 전해지지 않는걸까. 무엇보다 답답한 것은, 이제 약쇠해진 나 자신의 모습이다.
앞으로 반 해도, 마음의 열병을 안고 시름시름 거릴 것이다. 하지만 반해가 지나 새해가 와도 그 뒤로 근 일년 간은 숨을 죽이고 빗 속을 걸어야 한다. 답답하다. 그 다음해는 또 어떻게 될까. 늦지는 않았지만, 나름의 조급증이 있다. 하루하루 내공을 다지면 실력이 나아질 것이라는 확신이 있는데, 최소 몇 년간은 그것을 도로 방치해두어야 한다니, 억울하다.
잠들 수 없는 밤. 내가 커피우유를 좋아하는 것은, 부드럽고 향긋하게 목을 타고 넘어가는 그 식감이 좋아서 만은 아니다. 꼭 오후 여섯 시 이후, 밤 아홉시나 열 한시에도 그것을 자주 즐긴다. 하지만 나는 카페인에 약하기까지 해서, 잠들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먹냐고 자문해보니, 아마도 몽롱한 상태로 밤을 지새울 수 있다는 점에서 중독을 느낀 듯하다. 물론 음료를 섭취하지 않고도 밤새는 일이라면 불필요할 정도로 자신이 있다. 그러나 카페인의 농도가 희석된 것이므로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잠에 빠져들 것이다. 커피우유를 마심으로써, 밤을 여는 하나의 의식이 되고, 그것으로써 밤을 샌다는 것에 대해 알리바이를 제공받는 순환의 열쇠가 된다.
확실히 아침의 일이 걱정되기는 하지만, 그러한 심장의 고동마저도 쾌락이 되어 즐긴다. 게다가 커피우유로 열린 밤의 시간은 마치 하루를 연장받았다는 위안도 주는 것이다.
마음의 구동을 불 태우는 용광로에 물을 끼얹자, 강아지는 시도때도 없이 졸고, 잠을 자고, 심지어 일어 나기조차 싫어했다. 눈빛이 맹하게 사그라든 것이 그 증거였다. 그 녀석은 언제든 잠으로 빠져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조금 저만치 떨어져서 강아지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뭐 이렇게 단순한 견이...'
강아지를 움직이는 것은 양질의 밥도 아니고, 그렇게 좋아하는 잠도 아니고, 그저 '꿈'이었다. 강아지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것은 몽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엄연히 동공 밖으로 생생히 펼쳐지는 현실이었다. 그것들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생각하자, 가상의 것이지만 실제라 믿었던, 강아지는 완전히 시체였다. 죽어버렸다.
하룻 밤 심기일전할 때가 있다. 가령 보름 그 근처의 일이다. 그럴 땐 푸른 불빛으로 온몸을 감싼 듯 시퍼렇게 불타올라서 무엇이든 이뤄낼 듯 매진 하지만, 작심삼일에 그치는 요행이 아닐까도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거의 한달 간 강아지는 꿈을 향해 무모할 정도로 달려 들어왔는데, 그것이 신기루가 되어버리자 모든 것에 손을 놓게 되는 것이었다.
꿈이 없어진 강아지는, 시한부 판정을 받은 받은 사람 같았다.
삶의 의욕이 있는지, 사는 이유에 대해 다시 물어야 했다. 이유를 찾지 못하면 언제까지고 시체짓을 할것이 분명했다. 그것이 강아지가 사는 법이었다. 강아지는 강아지 그 자체로 먹고 자며 살아가는 것이 옳지만, 강아지는 지가 조나단인 줄 안다. 자기는 갈매기인데 갈매기가 아니라나. 원래 강아지들은 자신의 존재를 이렇게 저렇게 헷갈리기도 하는 것이다. 나는 강아지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