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상복 <배려>
교보문고에서 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 책을 읽으려다, '배려ㅡ남을 나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라는 말에 시선이 사로잡혔다. 남을 나와 같이 생각하는게 뭘까? 황당하게도 이 점에 대해 거의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배려를 해본 일이 없는걸까? 스무 살 이후의 세계는 마치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어린아이와도 같이 교과서 이외의 것은 뭐든 생소하고 처음 접하는 것 만 같다. 학교가 아닌, 사회속으로 뛰어들었기 때문이리라.
곧 잘, 그리고 최근엔 더욱 나는 모든 문제를 남의 탓으로 돌렸다. 그저 문제의 옳고 그름을 떠나 내 속을 알아주기만 바랐다. 알아주기만 하면, 조금 나을 것 같았다. 점점 나빠지는 상황속에서 나는 정말로 외곬수와도 같이 시선을 내 안으로만 옮기며 꽁 박혀있었다.
내가 힘드니까, 다른 사람도 나와 같이 힘들겠지. 나는 힘들면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못한다. 그러니까 남들도,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여유를 갖고 있지 않겠지. 라고 까지 생각할 정도였다. 그러나 갈등이 심화될 수록 정말로 답답했기에,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갈등이 생기는 이유가 뭔가요? 정성껏 달아준 리플들 속에서 나는 최근의 나의 상태를 거울로 비추어 볼 수 있었다. 나 스스로가 속상하지만, 그것을 이해해주지 않는다고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러한 불평은, 해결될 방안 없이 줄줄 늘어나기만 했다. 누가 보아도 불평불만만 늘어놓고, 남탓을 하고, 또 알아주지 않는다고 더욱더 맘상해하고. 이것은 끊기지 않는 순환고리를 만들며 며칠간이나 반복되고 있었다. 나는 그랬던 것 같다. 내 마음을 온전히 알아주는 사람을 만날때까지, 그렇게 계속 남탓만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한바탕 주위사람들을 지치게 만들어놓고 나서야, 그들의 모습을 통해 아차, 내가 괜한짓을 했구나라고 생각했다. 아무도 맘이 시원하도록, 내 맘을 알아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알아달라고 불평을 늘어놓는 것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내 논리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주변을 초토화 시켜놓고 나또한 한참이나 지친 후에야 그래도 마음이 진정된 나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귀를 기울였다. 그들의 관점에서라면, 내 문제의 해결이 보이리라.
자세를 바꾸고 나서 어떻게 마음이 풀어졌는 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반복하지 않으면 좋겠다.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짓은, 정말로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내 속을 알아달라'라고 말하는 것은 바보 같다. 그것은 부처를 기다리는 일이다. 일단 나 스스로가 그렇게 되고보자. 타인의 마음을 알아주도록 귀를 기울이고, 상대의 관점에서 생각해보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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