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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4/08/13
 

필자의 노트 :

처음부터 잡혀 먹히기 위해
인간의 계획에 의해 태어나
비참하게 살다가
잔인하게 죽임을 당하고 짧은 삶을 마감한 뒤
그 시신이 여러 토막으로 잘려
아무 생각 없는 이들에게 먹히는 운명을 타고난
가축을 생각한다. 

이하 출처 : 민들레 홈
쇠고기가 국가적 차원에서 도마 위에 올랐다. 쇠고기가 이렇게 범국가적 관심사가 되기는 반만년 역사에 처음 있는 일일 것이다. 쇠고기 자체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긴 하지만, 미국산이든 한국산이든 광우병의 위험을 안고 있는 쇠고기에 대해 모두들 불안해하고 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염려하는 것은 광우병이 아니라 인간광우병이다. 병들어 주저앉고 죽어가는 소들을 보면서 측은한 마음을 갖기도 하지만, 인간에게 전염되는 병이 아니라면 이렇게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조류독감도 마찬가지다. 종간 전염이 확인되면서 신종 전염병으로 떠오른 이들 질병은 분명 21세기형 질병이다. 20세기에 뿌린 씨앗에서 발아한 이 질병은 반생명적인 축산업의 결과이자 최소 비용으로 최대 이윤을 내려는 자본주의의 산물이기도 하다.

소, 돼지, 닭 같은 대표적인 가축들이 오늘날 어떤 환경에서 살다 어떻게 죽어가는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다지 관심이 없다. 좀더 싸게 맛있는 고기를 먹을 수만 있다면 그걸로 만족한다. 30개월도 못 살고 비참한 환경 속에서 죽어가는 수많은 소와 돼지의 비명소리는 도시에는 들려오지 않는다. 그저 잘 포장된 그들의 살점이 보기 좋게 진열되어 있을 뿐이다. 아무 죄 없이 땅속에 생매장 당하는 수백만 마리 닭과 오리들의 외마디 비명도 우리는 짐짓 모른 척 한다. 하지만 인간의 탐욕에 희생당하는 생명들의 비명에 귀를 막는 한, 인간들도 비명을 지르게 될 수밖에 없다. 광우병과 조류독감은 그들의 비명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경고로 봐야 한다.

쇠고기 협상을 다시 해서 24개월 미만 소를 특정위험부위만 빼고 수입하면 문제가 해결될까? 이전 같이 아무 생각 없이 쇠고기, 닭고기를 먹으면서 그렇게 살 수 있으면 되는 걸까? 광우병과 조류독감에 대한 염려가 인간의 건강에 대한 염려를 넘어서 소와 닭들의 삶에 대한 염려로 성숙하지 않는 한 이런 사태는 양상만 바뀌면서 되풀이될 것이다. 육식을 하는 소의 몸속에서 ‘프리온’이라는 변형 단백질 대신 ‘패티온’이라는 변형 지방이 생겨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비참한 환경에서 자라는 닭과 오리가 독감에만 걸리지도 않을 게다.

광우병과 조류독감은 어찌 보면 인간이 자신의 탐욕을 깨닫고 한 단계 성숙할 수 있도록 자연이 배려한 장치인지도 모른다. 인간의 성숙이 이처럼 수많은 생명들의 희생을 치를 만한 가치가 있다고는 여겨지지 않지만, 자연을 거스른 인간에게 자연이 돌려주는 선물인 건 분명하다. 인간종이 다른 종을 대하는 자세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광우병은 차라리 인간종에게는 축복이 될지도 모른다. 자신의 어리석음을 돌아보게 하고 자각을 도울 것이다.

더 값싼 사료로 더 빨리 살을 찌우기 위해 초식동물에게 동족의 살을 먹여서 병들게 만들고, 반생명적인 환경 때문에 닭과 오리조차 면역력을 잃은 채 독감에 걸리도록 만든 인간종의 한 사람으로서 저마다 책임을 질 일이다. 그런데 인간은 제가 뿌린 씨앗을 거두는 거지만 소와 닭들은 무슨 죄가 있어서 그런 고통을 당해야 하나. 죄 없이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생명들의 희생 덕분에 인간들이 조금이라도 성숙한다면 그들의 삶과 죽음이 아주 헛되지는 않을 수 있을까.

짐승들이 겪는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느낄 수 있는 감수성이 깨어나지 않는 한 인간이 겪게 될 고통도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수천 수만 마리를 산 채로 땅속에 파묻으면서 ‘살처분’이라는 건조한 용어를 쓰는 것은 살아 있는 생명들을 생매장하는 자신들의 잔인함을 외면하는 교활함이다. ‘집단 생매장’ 또는 ‘대량 살육’이라는 표현 대신 ‘살처분’이라 표현한다 해서 행위의 본질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는 미국이 이라크를 무차별 폭격하면서 ‘지상 목표물에 대한 공중지원’이라고 표현하는 것처럼 교활한 짓이다.

자신들의 건강을 위협한다는 이유만으로 죄 없는 생명들을 땅에 파묻는 인간이 그 죄값을 치르지 않을 도리가 있을까. 우주는 그렇게 엉성하게 조직되어 있지 않다. 이 지구상에 생명체가 유지되는 것 자체가 아슬아슬하리만치 기막힌 조화 속에서 가능한 만큼, 그 조화를 깨트리고도 무사하리라 기대하는 건 가당찮다. 생명체를 지탱하는 대기권이 마치 야구공에 살짝 덧입힌 코팅막처럼 얇은 것이라는 사실도 자각하지 못한 채 그 막을 훼손시키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지금 제 목을 제 손으로 조르고 있다.

_현병호(민들레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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