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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해가 뜨기 시작할 무렵. 검은 침묵에 잠겨 있던 붉은 황야가 떠오르는 태양에 의해서 자신의 붉은 색을 되찾기 시작할때 키노는 여느 날처럼 눈을 떴다. 모든 게 무사한지 확인하고 적당한 운동과 패스에이더 연습을 하고 난 뒤 키노는 천막 밖으로 나갔다.
밖에는 벌써 일어나 가축들을 돌보거나 망을 보거나 물을 나르고 있거나 그밖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중에는 철창을 다루는 연습을 하던 울댄스도 있었다.
"간밤에 잘 잤는지? 생각보다 일찍 일어났군."
"그쪽도."
"해가 뜰때 눈도 같이 뜨는 게 전사다운 모습이지."
한참 창술을 연습하던 울댄스는 연습을 끝내고나자 이마에 맺힌 땀들을 손등으로 훔치면서 키노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사실은 난 어젯밤 잘 못잤어. 전사가 되었다는 사실에 너무 흥분되어서..지금도 가슴이 두근거려."
"어쩐지 눈이 빨갛더라. 하지만 안색은 좋아보이네."
"전사가 된 이상 가깝든 멀든 언젠가는 적대시하는 이웃 부족과 싸우게 된다...그러니 미리 항상 최고의 몸 상태를 유지시켜야해."
키노와 울댄스가 대화를 나누고 있을대 근처에 어떤 남자가 다가왔다. 키노도 어제 봤던 '곰 발톱'이라는 칭호를 가진 전사였다. 곰 발톱은 어제처럼 여전히 표정 변화 없이 말했다.
"늑대 어금니, 젊은 전사여."
"무슨 일인지. 곰 발톱."
"이제 곧 전사들이 소집된다. 오늘 아침내로 서쪽 방향으로 정찰을 나갈 것이다. 그러니 되도록 빨리 모든 무장을 갖추고 말을 준비시키고 족장님에게로 모이도록 하라. 이게 내 용무의 전부다."
"알겠다. 곧 가지."
곰 발톱이 말을 끝내고 그들에게서 멀리 떨어져나가자 울댄스는 어깨를 한번 으쓱거리며 말했다.
"원칙적으로는 전사들끼리 모두 평등하다고 하기 때문에 나이와는 관계없이 서로에게 반말을 써도 괜찮다고 하지. 족장님만은 예외지만 말이야."
"그런데..정찰이라니?"
"그런 전사들을 모아서 주기적으로 다른 부족들의 상황을 살펴보는 것을 말하는 거야. 한번 나가면 며칠씩 걸리지."
"알았어. 몸 조심해."
"헤헷. 별로 걱정할 필요 없어. 별로 위험한 일은 아니니까."
울댄스는 시간이 별로 없으니 빨리 서둘러야 겠다며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덧붙였다.
"아마 지금이 우리가 만날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겠지. 그러니까 미리 작별 인사를 해두겠어. 키노도 앞으로 여행할때 몸조심하도록 해. 만나서 즐거웠다. 그럼 안녕."
그 말을 끝으로 그는 키노 앞에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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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벌써 떠나게?"
자신의 천막으로 돌아온 키노는 에르메스를 깨우고 서둘러 자신의 짐을 정리해서 챙겨넣기 시작했다. 여느때보다 급하게 서두르는 키노에게 에르메스가 잠이 반쯤 덜깬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 늦어도 아침중에는 출발하려고."
"난 상관없지만. 한 나라마다 3일씩 머문다는 키노의 규칙은 어쩌고?"
"별로..나라하고 하기도 뭐하고 오래있어봐야 딱히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아."
"이상한데. 평소의 키노 답지 않아."
키노는 출발 준비를 끝마치자마자 곧바로 부족장에게 찾아가 떠나겠노라고 알렸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앉아있는 듯한 족장은 노인 특유의 목소리로 말했다.
"오랜만에 찾아온 손님이신데 벌써 떠나려 하시다니, 편치 않은데라도 있는건가. 아니면.."
"아닙니다. 단지 일찍 출발하는게 제 습관이기 때문에."
옆에 있던 에르메스가 키노에게만 살짝 들릴 정도로 아주 작게 속삭였다.
"거짓말."
"그래도 소중한 손님이시니 가시더라도 뭐라 선물을 드려야겠네. 내 미리 말을 해놓을테니 조금만 있다가 약소한 것이지만 받아가시게나."
족장이 말했다.
조금 기다리고 있으니 족장이 말한대로 부족원중 한 사람이 말린 고기와 마실것이 들어있는 꾸러미를 키노에게 주었다. 키노는 감사의 뜻을 전한뒤 꾸러미를 짐가방 속에 집어 넣었다. 그리고 에르메스에 올라타고 시동을 걸었다. 몇몇 부족원들의 환송을 뒤로 한채 그곳을 떠났다. 울댄스를 비롯한 전사들은 이미 한참전에 떠난 뒤였다.
키노의 앞에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고 붉은 황야만이 펼쳐져 있었다. 인상적인 붉은 빛으로 가득한 끝없는 황야는 피빛 바다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매혹적인 광경이었다. 그러나 키노는 그 광경에는 무심한채로 오로지 모토라도 운전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그런데 키노, 길은 알고 가는거야?"
"그래 알고 있어. 서쪽으로 가기만 하면 돼."
"서쪽이라. 언제나 서쪽이군. 해가 지는 방향이야."
얼마나 달렸는지 정확히 알수 없을 때였다. 태양이 바로 머리위쯤에서 떠있어 그림자가 거의 지지않은 시간대였다. 에르메스는 한참 운전에 몰두해있던 키노에게 말을 걸었다.
"말을 탄 사람들, 꽤 많군. 10여명 정도 될까?"
"어느 쪽?"
"이대로 서쪽으로 가다보면 마주치게 될 꺼야."
"내 생각에는 오늘 아침에 떠났다던 전사들 같아."
"만나볼꺼야?"
"글쎄.."
키노는 잠깐 생각하는듯이 운을 뗐지만 바로 대답했다.
"위험하지는 않을테니 만나볼까."
에르메스의 말대로 키노가 향하고 있는 방향에서 말을 타고 있는 사람들의 형상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키노는 에르메스의 속도를 살짝 줄여가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캐논'과 '숲의 사람'이 제대로 있는지 확인했다.
"탄환, 안정장치, 장전상태. 전부 이상없군."
그러는 사이 눈 앞의 황야 가운데 갑자기 솟아오른듯한 말과 사람들의 형상이 점차 또렸하게 보였다. 그쪽에서도 키노와 에르메스를 발견한 듯 질서를 갖춘 대형을 이루었다.
더욱 더 가까이 다가서자 키노는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니군. 그 부족 사람들이 아니야. 뭔가 달라."
키노는 에르메스를 안전할만큼 먼거리에서 멈추고 오른손은 캐논의 손잡이을 지긋히 움켜쥐었다. 언제라도 꺼내서 쏠 수 있도록 대비를 하자 그쪽에서도 말들을 세우고 키노를 바라보았다. 약 15명 정도. 모두들 말을 타고 있었다. 말 중에는 사람을 태우지 않은 말도 하나 있었다. 다들 창이나 칼, 활, 손도끼 같은 무기를 가지고 있었으나 무기를 노골적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말을 탄 사람들의 모습은 키노가 만났던 부족원들과 거의 흡사했지만 그들은 머리카락을 길게 기르지도 않았고 피부에 색을 칠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모두 머리카락을 짧게 깎아놓고 귀나 코에 둥그런 철제 장신구를 달아놓았다. 그들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선두에 있던 한 남자가 키노에게 조심스레 말을 걸어 왔다.
"경계할 필요는 없다 여행자여. 우리는 비록 이웃 부족들과 싸우고 있기는 하나 길을 가는 여행자에게까지 적대적이지는 않다. 해를 끼칠 생각은 없으니 싸울 필요도 없다."
키노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래도 손을 패스에이더에서 떼지는 않았다.
"당신들도 정찰을 하러 나온 것인가요?"
이번에는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하다. 아마 그대는 우리의 적인 이웃 부족과 먼저 만난 것 같군. 우리는 아직 그들의 정찰대와는 만나지 못했으나."
"아직 만나지 못했다는데 '저것'은 뭐죠?"
키노가 왼손을 들어 가리켰다. 키노가 가리킨 쪽에는 사람이 타지 않고 있는 말 한마리가 있었다. 정확하게는 가죽 같은 것으로 쌓여있는 사람만한 무언가가 말 등위에 얹혀 있었다. 그리고 그 무언가에서부터 붉은 방울이 조금씩 땅에 떨어지고 있었다. 완전히 가죽으로 쌓여있지 않은 한쪽에는 '사람의 발'인듯한 기다란 것이 툭 튀어나와 있었다.
"제 생각이 맞다면 '시체'인것 같은데."
"통찰력이 있는 여행자군."
남자가 약간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 당신이 옳다. 저것은 시체다. 그러나 우리 부족원은 아니다. 우리가 죽인 것도 아니다. 붉은 황야에 버려져 있는 누군가의 시체를 우리가 발견했다. 우리는 절대로 시신을 내버리지 않는다. 그게 설혹 우리의 적이라고 할지라도. 반드시 땅에 묻어 흙으로 되돌려 보낸다. 저 시신도 그렇게 할 것이다."
"그럼 누구의 시체인지 모른다는 것이군요."
"누군지는 모르지만. 이웃 부족, 우리가 적으로 삼고 있는 부족원임은 확실하다."
키노는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는 않았으나 남자의 말에 순간적으로 눈동자가 흔들리는 동요의 흔적을 남겼다. 남자는 그것을 바로 알아보았다.
"아무래도 궁금한 모양이군 여행자여. 어쩌면 그대와 만났던 적이 있는 자일지도 모르지. 누구인지 확인하고 싶은가? 불안한 의구심은 깊은 슬픔보다도 더욱 안좋은 감정이니. 원한다면 시신의 얼굴을 확인시켜 주겠다."
키노는 조금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알겠어요."
"조심해. 키노. 함정일지도 모르니까."
에르메스가 조용히 충고해주었다. 키노는 에르메스에서 내려서 시체가 얹혀있는 말까지 천천히 다가갔다. 조금도 경계심을 늦추지 않은 채로 언제라도 캐논을 꺼내서 사격할 수 있도록 오른손으로 캐논 손잡이를 쥐고 있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말을 타고 있는 자들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무기를 꺼내들고 있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마치 키노에게 관심이 전혀 없는 듯한 모습이었다.
키노는 말에 가까히 다가가 시체를 감싸고 있는 가죽을 조심스레 들쳐보았다. 가죽으로 쌓여 있고 흘러내리는 피로 더럽혀져 정확히 알아보기는 힘들었지만 이 얼굴은 키노가 분명히 알고 있는 사람의 것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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