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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빛의 나라 -Sacrificial feast- (2)
에르메스의 끊임없는 궁시렁거림을 무시할수가 없어서 결국 키노는 울댄스에게 말했다.
"저..나도 그게 궁금한데 알려주실 수 있나요?"
울댄스는 흐믓한 웃음을 지으며 키노의 청을 받아들였다.
"좋아. 그렇게 나온다면 친절하게 알려주지. 그런데 말이야. 너와 난 보아하니 나이도 비슷한 것 같은데 굳이 존댓말을 쓸 필요는 없어. 나는 그런 거 불편하니까."
키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의식'이라는 것은 '전사'가 되기 위한 과정이지. 몇 가지 복잡한 순서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아까 전에 봤듯이 늑대 나 곰, 승냥이 같은 야생 육식 동물을 혼자 힘만으로 사냥해서 그 증거를 가지고 오는 거야. 그러면 부족장이 사냥한 동물의 흔적으로 '전사'의 칭호를 내려주고 부족원 모두에게 '전사'임을 인정 받지."
"그럼 '전사'라는 것은?"
키노가 다시 물었다.
"'전사'는 말 그대로 싸우는 사람이야. 싸울 수 있는 권리와 싸워야 하는 의무를 동시에 지녀. '전사'가 아닌 사람은 싸울 수 없어. 어른이 된다면 거의 필수적으로 '전사'가 되어야 하지. 이 붉고 거칠은 황야에서 살아남으려면 최소한 그 정도는 되어야 하니까. '전사'는 결국 어른이 되었음을 인정받은 것이기도 하지."
"그랬었구나. 잘 알겠어."
울댄스는 문득 시선을 서쪽 하늘을 향해 돌렸다. 울댄스와 키노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어느덧 태양이 산 너머로 넘어가 사방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런 시간을 너무 지체한 것 같은데. 난 이제 내 부족원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야 겠어."
울댄스는 그렇게 말하고 손가락 두개를 입에 넣고는 긴 휘파람 소리를 내었다. 고음의 휘파람 소리가 황야로 퍼져가고나서 얼마지나지 않아 어디선가 말 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멀리서 갈색 털을 가진 건장한 말 한 마리가 달려 오는 모습이 보였다. 갈색 말은 울댄스 옆에 다가오더니 얌전하게 멈춰섰다. 울댄스가 올라타기를 기다리는 듯 했다. 울댄스는 힘차게 땅을 박차고 올라 말에 탔다.
"키노와 에르메스도 원한다면 우리 부족을 방문해도 좋아. 비록 가진게 많지 않고 척박하지만 간만에 지나가는 여행자에게 쉴 자리도 마련해주지 못할 만큼 각박하지는 않으니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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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역시 가기로 했어."
"뭐가 '그래서'야."
앞장서서 말을 달려가는 울댄스의 뒤를 적당히 속도를 조절하며 따라가는 키노와 에르메스는 간간히 대화를 나눴다.
"쉴 자리를 준다는데 혹한거군. 키노다워."
"아무리 황량하더라도 야생 동물들은 위험하니까."
"야생 동물이라. 이런 황야에서 사람도 사는데 동물 정도도 당연히 살고 있겠지."
"삶은 어디서든지 계속 될 수 있고 그래야만 한다고 그러지. 사람이든 동물이든."
"그거 스승님이 했던 말 같은데."
앞서 가던 울댄스가 손을 들어 앞을 향해 가리켰다.
"저기 봐! 이제 다 왔어! 저곳이 우리 부족이 머물고 있는 곳이야!"
키노가 울댄스가 가리키는 쪽을 보니 커다란 천막 여러개와 소와 말 같은 가축 수십여마리가 주위에 있는 게 보였다. 그리고 몇몇 사람으로 보이는 형상이 일어서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게 보였다.
"예전처럼 이상한 차를 강제로 먹이려 들지만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박살나서 땅에 묻혀버릴뻔 했던 것도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아."
"나쁜 기억은 떠올리고 싶지 않지만 조심은 해야겠지."
키노는 자신의 허벅지에 언제나처럼 들어있는 캐논과 허리 뒤에 차고 있는 숲의 사람을 확인했다. 그러는 사이에 어느새 울댄스는 말을 세우고 내렸다. 키노도 울댄스를 따라서 에르메스를 멈추고 내렸다. 에르메스가 쓰러지지 않도록 사이드 스탠드를 세운뒤 울댄스 뒤를 따라 걸어갔다.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 에르메스."
"조심하라고 키노."
몇몇 부족원들이 신기한듯이 울댄스의 뒤를 따라가는 키노를 쳐다봤으나 곧 큰 흥미는 없는 듯 제각기 있던 장소로 돌아갔다. 울댄스도 그런 그들에게 딱히 관심을 두지 않았다.
키노는 울댄스를 뒤따라가면서 이 부족이 거주하는 장소를 살짝 둘러보았다. 부족장이 쓰는 커다란 천막이 가운데, 그 옆에 여러가지 목적으로 쓰이는 회관과 같은 천막. 그리고 그 2개를 중심으로 원형으로 다른 부족민들의 천막이 세워져 있었다. 부족민들이 타고 다니는 말들은 큰 천막 바로 옆에, 울댄스의 말도 거기에 묶어 두었다.
울댄스가 부족장의 천막을 향해 걸어가는 중 얼마 남지 않은 거리를 두었을 때였다. 뒤에서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여, 울댄스 벌써 돌아왔군. 꼬박 일주일쯤 걸릴 줄 알았는데."
울댄스를 부른 것은 큰 키에 건장한 체격을 가진 남자였다. 그도 울댄스처럼 길게 기른 머리를 땋아서 장식을 하고 있었으며 얼굴에는 검은색으로 무늬를 그려놓았다. 그의 주위에는 그와 비슷한 연령대의 남자 여럿이 같이 있었다.
울댄스가 그들을 힐끗 쳐다보더니 비웃음지으며 말했다.
"뭐, 난 운이 없다고 해야지. 병들고 늙은 늑대를 찾기가 어렵더라고. 그래서 아무놈이나 만나는데로 후딱 해치우고 왔지."
"아하. 그래서 지나가는 여행자 붙잡고 도와달라고 한건가? 아니라고 우겨대겠지만 안봐도 뻔하군. 수치스러운 놈."
남자가 키노를 가리키며 크게 웃었다. 울댄스는 순간 표정이 굳어졌지만 계속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여우 새끼 잡는 것보단 힘들었어. 만약 나도 여우 새끼 따위나 잡았다면 여행자한테 도움을 청할 필요도 없는데."
그러는순간 남자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얼굴이 일그러지며 분노를 표하더니 뿌득하는 이를 가는 소리가 들렸다.
"너 이 자식, 어디까지 뚫린 입이라고 지껄이는거냐."
"미리 말해두지만 네 쪽이 먼저 이죽거리며 시비를 걸었어. '여우 꼬리' "
여우 꼬리라고 불린 남자와 그 주위에 있던 다른 남자들도 험악한 인상을 지었다. 분위기가 일순 거칠어졌다. 단호한 표정으로 여우꼬리를 노려보는 울댄스의 옆에서 키노는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 키노와 울댄스 뒤에서 누군가 다가왔다.
"그만들 해라. 울댄스, 여우꼬리."
뒤에서 다가 온것은 여우 꼬리보다 약간 작은 체구의 남자였다. 아직 젊어보였지만 울댄스보다는 적어도 10살이상은 나이 많아 보였다. 표정 변화 없이 침착하고 차분한 말투 였지만 굉장히 무게감이 있게 들렸다.
"울댄스는 '의식'을 끝마치기 위해서 부족장님에게 가던 중이었다. 그런 그를 붙잡고 있어야 할만큼 아주 중요한 일이라도 있는건가? 여우꼬리?"
"아...'곰 발톱'..."
여우 꼬리는 언제 화를 냈었냐는듯 금방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황망히 등을 돌려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여우 꼬리와 같이 있던 남자들도 그와 함께 서둘러 사라졌다.
"고마워요. '곰 발톱' 도와줘서."
곰 발톱이라고 불린 사내는 여전히 표정 변화 없이 그러나 한결 부드러운 말투로 대답했다.
"네가 돌아왔다는 말을 듣고 오늘 중으로 되도록 빨리 의식을 끝내는 게 좋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네가 여기서 시간을 너무 지체하면 부족장과 모두에게 결례가 되니까."
곰 발톱은 그렇게 말한 뒤 울댄스에게 손짓하며 따라오라고 하였다.
"설마해서 말하는 것인데 그 여행자가 의식에 관여하지는 않았겠지?"
"물론이죠. 그냥 돌아오는 중에 우연히 만났는데 마침 날이 저물때라서 우리 부족이 있는 곳에 하룻밤 머물게 하면 좋을 것 같아서.."
곰발톱이 눈동자를 돌려서 키노를 쳐다보았다.
"여행자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은 올바른 일이지....그리고 의식에 관해서는 너를 믿겠다."
곰발톱은 부족들의 천막 중 가장 큰 부족장의 천막안에 들어갔다. 키노와 울댄스도 곧 같이 들어갔다.
"여기에서 다들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 곧바로 '의식'을 끝낼테니. 네가 가져온 증거를 족장님에게 부여주도록 해라."
곰발톱이 말하자 울댄스는 갑자기 매우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하게 말했다.
"아차. 그거 아직 말에 실어놓았는데 가져오는 걸 잊었어요! 죄송합니다! 빨리 가져올께요!"
그러고선 울댄스는 엄청난 속도로 밖으로 뛰어나갔다. 곰발톱은 그런 울댄스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더니 키노에게 말했다.
"그럼 당신은 잠깐 동안만 밖에서 기다려주겠소? 이 의식은 외부인에게는 보여주지 않게 되어있으니."
"알겠습니다. 그럼 밖에 나가있죠."
키노가 순순히 천막 밖으로 나가려 하자 천막 안에서 어떤 늙은 자의 목소리가 키노를 불러세웠다.
"기다리게나 여행자여. 굳이 나가있을 필요가 없네. 원한다면 여기 있어도 좋아."
"족장님?"
곰발톱이 놀란듯 되묻자 족장님이라고 불린 늙은 자의 목소리가 다시 말했다.
"애초에 우리 부족을 방문하는 여행자가 거의 없어서 의식을 보지 못했던 것뿐이지 일부러 못 보게 했던 것은 아니니까. 게다가..."
족장의 말이 일순 끊겼다. 그리고 다시 이어졌다.
"의식의 순간에 같이 있었다면 의식의 끝까지 같이 있어도 상관없겠지."
곰발톱의 무표정한 얼굴에 약간 변화가 있었던 것 같았지만 그는 공손하게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족장님."
그는 키노를 향해 말했다.
"여행자님? 원한다면 여기에 있어도 좋소. 족장님이 허락하셨으니. 허나 마지막까지 조용히 있어주시오. 방해가 되지 않도록."
"네. 그럼 여기에 있도록 하죠. 가만히 있겠습니다."
키노는 낮은 한숨을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게 내쉬며 천막 안에 적당히 자리잡고 앉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마도 족장으로 생각되는 몸집이 작은 노인이 가운데에 그리고 그 주위에 다른 나이든 자들이 둥글게 앉아있었다. 천막안이 어두워서 그들의 얼굴은 확실하게 보이지 않았다. 잠시 후 울댄스가 자루 더미를 들고선 천막안에 헐레벌떡 뛰어들어 왔다.
"자! 여기 증거를 가지고 왔습니다! 오래 기다리셨나요?!"
"숨부터 고르거라. 울댄스."
곰발톱이 전속력으로 달려와 숨이 턱까지 차올라 흥분해있는 울댄스를 진정시켰다.
일단 숨을 고른 울댄스는 자신이 가져온 자루-늑대이빨과 발톱과 가죽이 들어있는-를 족장 앞에다 내려놓고 열어보았다. 그리고 뒤에 물러서서 무릎을 꿇고 앉았다. 족장은 주름살투성이의 손을 뻗어서 자루 안에 들어있는 것들을 모두 꺼내놓았다.
족장은 피가 말라 붙어있는 늑대 이빨과 발톱과 가죽을 내려놓고 말없이 있었다.
"수가 좀 많군?"
조용히 있던 족장이 마치 혼잣말 하듯 갑자기 말하자 울댄스는 놀라서 되물었다.
"네?"
족장이 다시 말했다.
"한 마리가 아니었나?"
"네, 3마리였습니다."
"혼자서 동시에 3마리를?"
"네, 그렇습니다."
"다친 곳은?"
"없습니다."
울댄스와 족장 사이에 짧은 문답이 여러번 오갔다. 그리고 또 다시 침묵이 계속되었다.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 울댄스와 대조적으로 족장은 가만히 앉아서 뭔가를 생각하는 듯 지켜보고만 있었다. 시간이 더욱 흘러서 족장이 마치 잠들어버린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너무 조용히 있는듯 싶을때 느닷없이 입을 열었다.
"울댄스를 우리 부족의 '전사'로 인정한다. 앞으로 그의 전사의 칭호는 그가 해낸 업적에 따라 '늑대어금니'로 정하겠노라."
족장의 말이 떨어진 순간 울댄스의 얼굴에는 이루 말로 표현하지 못할 환희와 더불어 그것을 이 엄숙한 자리에서는 억지로 드러내지 않으려는 노력이 교차된 복잡한 표정이 떠올랐다.
키노는 그때까지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날 밤 늦게 부족에서는 아주 오랜만에 방문한 여행자를 환영하는 축제이자 부족에서 새로운 젊은 전사가 탄생한 것을 축하하는 축제가 함께 열렸다.
부족원들의 천막 사이 넓은 자리에서 거대한 화톳불이 피워지고 붉은 불길이 넘실거리며 크게 타오를때 부족원들이 모두 모여 그 주위에 둥그렇게 앉았다. 키노는 부족원들 사이에 에르메스를 데리고 와서 적당히 자리 잡았다.
여행자인 키노와 새로운 전사인 울댄스를 환영하는 뜻에서 부족내의 '전사'들이 화톳불 주위를 돌며 전통적인 춤을 추었다. 흔들리는 불꽃과 일렁이는 그림자에 어울리는 춤사위가 키노와 에르메스 앞에서 선보여졌다.
무슨 의미인지는 쉽게 이해되지 않았으나 그들의 열정과 호기로움에 키노는 춤을 구경하는데 몰입했다. 한참 보고 있을때에 울댄스-이제는 '늑대어금니'라는칭호로 불리는 젊은 전사-가 어느새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울댄스는 앉으면서 키노에게 훈제된 고기 덩어리가 올려진 접시와 진해보이는 차 한잔을 권했다. 키노는 그것들을 받았다. 울댄스는 그런 키노를 바라보면서 조용히 말을 걸었다.
"내가 이렇게 빨리 '전사'가 될 수 있었을 줄은 나도 몰랐어."
"그래? 어째서?"
키노가 아니라 에르메스가 재빨리 대답했다.
"사실 의식을행하는 것은 적어도 나보다 2~3살은 더 먹고 나서 하는게 관례였어. 그러니까 내가 이 나이때에 의식을 치뤘다는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야."
"오호..그런데 어쨌건 의식은 잘 치뤘잖아?"
이번에도 에르메스가 말했다. 울댄스는 머리를 좌우로 흔들면서 대답했다.
"우리 부족은 전통과 관례를 아주 중요시하고 있어. 내가 사냥에 성공했을지라도 경험 부족이라느니 증거 부족이라느니 이유를 갖다붙여서 족장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전사가 될수 없는 거야. 그래서 우리 부족의 분위기 때문에라도 나는 전사가 되지 못할것 같았는데."
"그럼에도 전사가 되고 싶어한 이유는 뭐지?"
이번에는 에르메스 대신 키노가 되물었다.
"우리 부족의 규율상 오로지 '전사'의 칭호를 받은 사람만이 자기만의 가축을 가질 수 있고 자기만의 천막을 가질 수 있고 결혼을 할 수 있고 자식을 낳을 수 있어. '전사'가 되지 않는 이상은 아무런 힘도 없고 무엇도 가질 수가 없지."
"전사가 되어서 제대로 된 한 인간으로 인정받고 싶었던 모양이네."
에르메스가 딱 잘라서 말했다.
"아니야. 전사가 되는게 끝이 아니야."
울댄스는 단호하게 말했다.
"전사가 되는 것은 단지 첫번째 단계일뿐이야. 나는 전사가 되어서...그래. 내 부모님들처럼. 위대한 전사셨던 아버님과 어머님의 뒤를 따르고 싶어. 아버님의 칭호는 '사자심' 어머님의 칭호는 '호랑이눈'이었지. 그 칭호 그대로 이 황야에서 가장 사납고 거칠며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맹수들을 물리치셨어. 내 어린 시절 기억속에 남아있는 부모님은 누구보다도 강하고 거대해보였지. 하지만 부모님은 이웃 부족들과 전투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하셨어. 아버님도..어머님도.."
"..........."
"그래서 나는 전사가 되어서..부모님처럼 되고 싶어. 아니! 부모님을 뛰어넘고 싶어! 부모님처럼 죽지는 않을꺼야! 지금의 이 부족은 작고 가진것도 없지만 내가 용감하게 앞장서서 다른 부족들을 물리칠꺼야. 그리고 언젠가 대족장의 자리에서서 다른 부족들을 굴복시키고 우리 부족을 누구보다도 강대한 부족이 되도록 이끌어 나갈꺼야. 전사로써 인정받은 것은 이제 시작일 뿐이야. 지금까지의 나는..단지 부모잃은 애송이라서 모두에게 무시받는 존재였지만. 두고 봐..모든 게 달라질꺼니까."
"그렇군. 이제야 알겠다."
"부모님을 뛰어넘는 것이라..."
키노는 잠시 운을 띄며 무언가 생각에 빠졌다. 그런 키노에게 이번에는 울댄스가 질문을 던졌다.
"키노는 어째서 여행을 하고 있는 거지? 나처럼 부모님을 따라가고 싶은건가? 아니면 부모님과는 정반대의 길을 가고 싶은건가?"
"아니, 그저. 나는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있는 것 뿐이야. 여행을 하고 싶을 뿐이고."
울댄스는 키노의 대답에 웃으면서 다시 물었다.
"하고 싶은 것을 하는게 당연하잖아. 내 말은 하고 싶은 것을 함으로써 무엇을 얻고자 하는거냐 이거지. 키노는 여행을 하면서 어떤게 좋은 거지?"
"....설명하기는 까다롭지만. 새로운 것을 본다. 못 먹어본 것을 맛본다. 매일 다른 곳에서 아침을 맞는다. 이런게 좋아서 인것 같아."
"새로운 것. 이라 항상 변화를 겪는 걸 좋아하는 건가."
"글쎄. 좀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항상 변화하는 것을 보면서 나 자신을 거기에 비춰보인다고 해야할까. 가끔가다 내 자신이 너무 한심스러워질때, 바보 같다고 여길때, 이기적인 인간이라고 생각될때, 그럴때마다 다른 나라에서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의 다른 풍경들이 너무나 아름답게 여겨져. 소중하게 여겨져. 분명히 그런 것 때문에 나는 여행을 계속 하고 있어."
"흠...."
울댄스는 뭔가 생각하는 듯 하다가 머리를 긁적이면서 말했다.
"잘 모르겠군. 하지만 왠지 멋진 이유인것 같아. 그럼 지금의 이곳도 아름답게 보이는거야?"
"그래. 어느 다른 곳에 비해서 전혀 모자람 없이 아름다워."
"우리들은 이곳에서 태어나서 이곳에서 살아가다 이곳에서 죽어가기 때문에 평생 이 황야에서 나갈 일이 없어. 우리의 삶을 보내는 이곳을 아름답다고 말하지만 정말 아름다운 것인지 아니면 이곳밖에는 없으니까 아름답다고 하는 건지는 모르지. 하지만 키노 같은 여행자가 그렇게 말해주니 정말로 아름다운 것 같아. 고마워."
"후...나같은 모토라도는 풍경 같은 건 신경안써. 나에게 아름다운 건 달리기 좋게 넓고 포장된 길이 깔려 있는 곳을 말하는 거야."
가끔가다 에르메스의 뾰로통한 한 마디와 함께 키노와 울댄스는 오랫동안 대화를 나눴다.
커다랗게 타오르던 화톳불이 마침내 그 기세가 껶여지고 춤추던 전사들도 더 이상 없을때 축제는 끝을 맞이했다. 밤하늘에 뜬 달도 꺾여져 갈때가 되어서야 키노와 에르메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잠자리가 마련된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잠자리에 들기전 마지막으로 패스에이더를 점검하던 키노는 갑자기 짐꾸러미를 뒤적이더니 언제나 가지고 다니는 휴대식량을 꺼냈다.
"왜그래 키노, 배고파?"
에르메스가 묻자 키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저녁에 먹었던 게 생각보다 부족하네."
"이 부족 사람들 아주 현명해. 키노의 먹성을 눈치채고 일부러 적게 주다니."
휴대 식량 몇 조각을 삼키던 키노는 에르메스의 연료통을 슬쩍 걷어차주었다.
"아아. 너무하네."
에르메스의 볼멘 소리를 뒤로 하고 키노는 잠자리에 들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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