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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자세한 설정을 아..
그럼 본명은 뭔가요?...
성능이 별로여서 다행일..
아무래도 중의법인듯 하..
굉장히 주관적이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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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4/02/27
 




어느덧 한달이 지나갔다. 처음 일주일간은 말도 거의 하지 않으려 하고 감정도 드러내지 않았던 이나샤는 활발하고(또한 정신없는) 이니드와 같이 지내는 동안 차츰차츰 말수도 늘어나고 웃는 일도 잦아졌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자신과 자신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있었다.

이 주일 전에는 돈도 내지 않고 얹혀서 사는 게 싫다면서 이나샤가 떠나랴고 하자 이니드는 방세를 받는 대신 자신의 단골 주점에 종업원으로 일 해달라고 제안했다. 주점 주인은 일손은 필요 없다고 했지만 이니드는 이나샤를 반 강제로 취직시켜 버렸다.

“혼자 해도 충분하다니까 왜 그래?”

“분명히 전에 말하기로는 이나샤가 여기서 일해도 괜찮다고 했잖아요?”

“그걸 기억하고 있었냐!”

“어쨌건 보수는 적당히 주면 되요. 어차피 나도 방세는 조금만 받을 거니까.”

“휴... 지극 정성을 들이는구나. 걔가 떠나는게 그렇게 싫냐?”

“쉽게 자기 이야기를 안 하니까. 더 궁금해지는걸요.”

이렇게 해서 이나샤는 파트 타임으로 남자의 주점에서 보조를 맡게 되었다.
이래저래 일하기 시작한지 2주일 쯤 지나고 나니, 주점 종업원 일도 어느 정도 능숙해지고 별 다른 실수 없이 잘 해내가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의외로 아주 절도 있게 잘하고 있었다.

“다만 어딘지 모르게 맥이 빠지고 힘이 없어 보여. 처음 봤을 때부터 그랬는데, 뭔가 심각하게 마음의 상처를 받고 방황하고 있는 상태가 아닐까?”

주점 주인이 오늘도 자기 가게에 찾아와서 저녁 식사를 하는 이니드에게 그렇게 말했다.

“확실히 그런 것 같네요. 그런데 그에 비해서 평소 행동은 언제나 격식 있고 자세가 바로 잡혀 있는 걸 보니까 예전에 있던 나라에서는 군인이나 경찰 신분이 아니었을까요?”

이니드가 남자의 의견에 대답했다.

“음, 그럴지도.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입고 있던 옷은 제복 같은 느낌이 들었어. 그렇다면 조직적인 단체 생활 중에 무슨 일 때문에 충격을 받고 나라를 떠난 것일까?”

“가장 흔하면서도 중요한 이유로 꼽힐 수 있는 건 ‘사랑하는 사람’ 에게서 버림 받은 것이겠죠.”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영원히 없어져 버렸다거나.”

그 두명이 그렇게 소곤소곤 이야기하고 있을 때 홀에서 손님들의 주문을 받던 이나샤가 카운터로 돌아왔다. 이나샤가 가까이 오자 점장과 이니드는 아무 얘기도 안했다는 듯이 입을 다물었다. 이나샤는 손님의 주문이 적혀진 쪽지를 점장에게 건네면서 말했다.

“마스터, 스타우트 맥주 1파인트와 감자 튀김 1인분 주문 들어왔습니다.”

“응 알았어. 10분 만 기다려달라고 해.”

카운터에 배치된 의자에 앉아서 와인을 마시던 이니드가 ‘마스터’라는 단어를 듣고는 사래 걸린 듯 마구 기침을 했다.

“콜록..! 켁! ‘마스터’라니? 호칭이 뭐 그래요? 느낌이 이상하잖아?”

“왜, 그럼 ‘주인님’이라고 부르게 할까?”

“점장님이라고 부르면 되잖아요!”

“마스터라는 단어에 가게 주인이라는 뜻도 들어갔으니 상관없어.”

뻔뻔하게 받아치는 점장의 말에 이니드는 더 이상 말문을 열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서 손님들도 서서히 줄어들고 밤이 깊어갈 무렵, 이니드는 카운터 자리에서 일어났다. 와인을 마신탓에 술기운이 살짝 오른 듯, 약간 비틀거렸다.

“아, 잘 먹고 잘 마셨다. 그럼 ‘마스터’ 아저씨. 저 집에 가요. 내일 봐요~이나샤 나 먼저 집에 가서 잘게~”

“이니드! 돈은 내고 가!”

“외상으로 달아둬요, 거참~ 한두번 해보나.”

“자꾸 그러면 너 네 집 털어간다?”

“아 참 너무하시네.”

이니드는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어서 한참 꼼지락거리더니 지갑을 꺼내 그 안에 있던 지폐 여러장을 점장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런데 그 액수가 식사 값, 술 값을 합친 것 치고는 꽤 많아보였다.

“외상 갚는 거예요.”

“웬일이냐? 네가 외상을 다 갚고? 어디 보자......전부 다 갚는 거냐?”

“어제 원고료 다 받았거든요. 뭐 많이 받은 것도 아니지만.”

“굳이 한꺼번에 무리해서 갚을 필요는 없잖아. 천천히 조금씩 갚아도 되는데.”

그러면서 남자는 지폐 몇장을 이니드에게 돌려주려고 했다.
이니드는 그걸 받지 않고 그대로 주점 밖으로 나가면서 중얼거렸다.

“아저씬 사람이 너무 좋아. 외상 탕감 해준게 벌써 몇 번인지 기억도 못하시지...그렇게 착해빠져선 안되는데.”

남자는 이니드가 나간 문을 빤히 쳐다보다가 문득 혼잣말을 했다.

“너도 마찬가지야. 이래저래 똑같구나.”







이니드가 나간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손님 2명이 주점 안으로 들어왔다. 점장이 보기에 한 눈에도 여행자 인 것을 눈치 챌 수 있었다. 활동하기에 편한 겉옷이지만 조금 낡고 흙먼지가 묻어 있었다. 한 명은 남자이고 한 명은 여자인데 둘 다 청년에서 장년으로 넘어 갈 듯한 연령대 였다. 남자는 겉보기에도 건장한 체격에 다부진 인상을 가지고 있었으며 눈에는 검은색으로 유리알이 코팅된 안경을 끼고 있었다. 여자는 남자와 대조적으로 다소곳한 분위기에 연약해 보이는 체구였다.

‘오랜만에 보는 여행자 손님이군. 그런데 부부사이인가? 그렇지는 않은 것 같은데..특이하군.’

그 두 명은 적당한 자리를 찾다가 이니드가 앉았던 카운터 자리 옆를 차지했다.

아직 식사를 하지 안했던 것인지 고기 요리와 채소 요리, 주류 등 여러 가지 식사용 메뉴를 주문했다. 주문한 식사를 기다리면서 두 명의 남녀 여행자는 이제 막 입국한 듯 이 나라에 대한 감상을 말하기 시작했다.


“저기 말이야. 꽤 오랫동안 여행을 했는데 바닷가의 나라는 별로 못 봤잖아. 그런데 여긴 참 아름다워. 나라도 크고, 지금까지 봤던 바닷가의 나라중에서 가장 낭만적인 것 같아!”

조금 들떠서 말하는 여자와는 달리 남자는 상당히 차분했다.

“음, 그래. 당신 말대로 멋진 나라군.”

여자의 말에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는 것 이외에는 남자는 그다지 입을 열지 않았다.

“분명히 이렇게 멋진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심성이 착할 거야. 이 나라에서라면 내가 하고자 하는 게 잘 되지 않을까?”

여자가 행복한 듯 한껏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랬으면 좋겠네. 이 나라 사람들은 당신 말대로 선할 것 같아.”

“내일이 정말 기대되. 어떤 말을 해야 할까? 어떻게 이야기해야 잘 알아줄까?”

본의아니게 그들의 대화 내용을 듣고 있던 점장은 여행자들이 주문한 음식를 그들에게 내어주면서 슬쩍 대화에 끼여 들었다.

“예, 이 나라는 정말 멋진 나라죠. 하지만 멋진 나라라고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 꼭 착한 것만은 아니랍니다.”

자기들끼리의 대화에 열중하고 있던 여자는 불쑥 끼여든 점장에 살짝 인상을 찌푸리면서 대꾸했다.

“무슨 말씀이시죠?”

“말 그대로 나라 안에 사는 사람들 중에는 착한 사람뿐만 아니라 나쁜 사람도 많다는 거죠. 이 나라는 겉보기에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나라지만 암암리에 해적들을 지원하고 있답니다. 경쟁국들을 공격하기 위해서 말이죠.”

여자는 점장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해적이라면 배를 타고 다니면서 사람들을 습격하고 재물을 마구 빼앗은 악당들 말이지요?”

“예. 바로 그거랍니다. 그래서 이 나라엔 전직 해적, 현직 해적들이 자기 신분을 감춘 채 이곳저곳에서 활보하고 있습니다. 공공연한 비밀이죠.”

“보기보단 나쁜 나라군요.”

묵묵히 앉아만 있던 남자가 한 마디 했다. 여자는 잠깐 인상을 쓰며 생각에 잠겼다가 문득 갑자기 즐거운 듯이 말했다.

“오히려 잘됐어요! 나쁜 부분이 있어야 그것을 바로 잡는데 의미가 있는거죠! 당장 내일 아침 해가 뜨자마자 이 나라의 정부를 찾아가서 해적을 지원하는 폭력적인 일 따위는 멈추라고 설득해야 겠어요!”

느닷없는 여자의 말에 점장은 당황했지만 남자는 언제나 겪는 일 인양 전혀 놀라지 않고 그런 여자를 단지 바라만 보고 있었다.

“어디로 가야 정부기관을 찾을 수 있나요? 자세하게 알려주세요. 이번에는 며칠이 걸리더라도 꼭 이 나라에 사랑과 평화의 마음을 전파하고야 말겠어요!”

“사랑과...평화의...마음???”

“정부 기관은 어디 있죠? 없으면 그 비슷한 곳이라고 알려줘요!”

“그거야. 이 나라의 중심부에 가면 쉽게 찾을 수는 있지만 들어가는 것이 가능할지도 의문스럽고 정부 기관의 높으신 분들이 손님의 주장을 순순히 들어줄지는...”

여자는 더더욱 의욕이 넘치는 목소리로 희열에 가득 차서 외쳤다. 연약해보이는 겉모습에 어디서 저런 힘이 나오나 신기할 정도였다.

“그러니까 더더욱 시도해봐야 아는 거 아니겠어요? 남을 해치는 폭력은 나쁜 것이고 사랑과 평화는 좋은 것이라는 대 진리를 부정할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지금 제 옆에 앉아있는 제 친구도 패스에이더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절대로 어떤 경우에도 남을 해치는데 사용한 일이 없어요. 왜냐하면 폭력적인 방법은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이 아니라는 것을 저를 통해서 깨달았기 때문에 가능했죠.
아주 오래전에 만났던 한 여행자도 제 뜻에 따라주기로 했었죠. 그 여행자는 저를 만나기 전까지는 사람들을 많이 해쳤다고 하지만 제가 사랑과 평화의 마음을 전파한 덕에 더 이상 패스에이더로 사람을 해치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었어요. 그 이후로 그 여행자를 만난 일은 없지만 그도 분명 제 친구처럼 더 이상 아무도 다치게 하지 않고 있을 거예요.“

여자는 점점 흥분의 열기에 차서 때로는 어법도 틀려가며 빠른 어조로 계속 말했다.

“이렇게 한명, 두 명 폭력 포기하게 되면 마치 남들에게 퍼지는 열병처럼 그게 점점 널리 퍼져서 다들 폭력을 쓰지 않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다들 폭력을 쓰지 않게 되면 더 이상 패스에이더 같이 사람 죽이는 물건 따위는 아무 필요가 없게 될 것이에요. 패스에이더를 버리게 되면 무의미한 사람이 죽는 일은 없어질 것이고 이제 온 세상에 사랑과 평화가 가득차서 모두들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되는 거예요. 어때요 멋진 생각이죠? 그렇죠?”

여자의 주장에 점장은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네. 뭐 그렇죠. 맞는 말입니다. 맞아요.”

여자는 하도 급하게 말했던 탓인지 숨을 골라가며 자기 앞에 놓여있던 음료수를 마셨다. 그런 그녀에게 끝까지 그녀의 웅변을 경청했던 남자가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그래 당신 말대로 내일 아침, 이른 시간에 이 나라의 정부 기관을 찾아가 보자. 찾아가서 같이 최대한 설득하도록 노력해보자. 노력한다면 당신 뜻대로 이루어질 거야.”

“응. 고마워. 언제나 곁에 있어줘서.”

“자 음식 식겠다. 어서 먹을까.”

“잠깐만...너무 흥분했나봐. 얼굴이 화끈거려. 먼저 먹고 있어 좀 식히고 올게.”

여자는 그렇게 말하고 잠깐 자리에서 일어섰다. 여자가 자리를 뜨고 나자 남자는 자기 앞에 놓여진 음식을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 남자 둘만이 마주 있게 되자 점장은 스스럼 없이 남자에게 물어봤다.

“여행을 시작한지 얼마나 되셨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글쎄요. 한 10년쯤 된 것 같군요.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10년 좀 넘는 것 같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말입니다.”

점장은 약간 뜸을 들인뒤 좀 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도 한동안 여행을 해본 적이 있는데 10년 넘게 여행을 하면서 아무도 남을 해치지 않게 했다는 게 믿겨지지 않는군요.”

남자는 점장의 말에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겉옷을 들춰서 그 안을 살짝 보여줬다. 남자가 펼쳐보인 옷 안쪽에는 45구경 자동식 패스에이더 2자루가 홀스터에 꽃혀있었다. 그러면서 남자는 말했다.

“그걸 믿는 사람은 세상에서 그녀밖에 없을 겁니다.”

점장은 남자가 보여준 2자루의 패스에이더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소음기를 장착할 수 있도록 개조된 타잎 이군요. 조용히 처리할 수 있도록.”

“예. 그렇죠.”

“10년이 넘도록 저 분 모르게 지켜내셨다니. 진심으로 그녀를 사랑하시는 것 같습니다.”

감탄섞인 어조로 점장이 말했다. 남자는 점장의 말에 잔잔한 눈웃음을 지었다.

“꿈을 위해 살아가는 그녀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저는 행복합니다. 비록 허황되고 불가능한 꿈일지라도 그것을 향해 달려가는 그녀를 지킬 수 있다면. 언젠가는 이 모든게 끝이 나리라는 것을 알고도 저는 전 세계와도 맞설 수 있습니다. 그녀가 언제까지라도 제 마음을 알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남자는 말끝을 흐리면서 글라스 잔을 단숨에 비웠다.

“손님이 바라시는 대로 되기를 빕니다....만. 내일 ‘설득’은 좀 자제해 주십시오. 그건 아무래도 무리죠.”

“하하. 그 정도는 압니다. 그냥 말로 시도해야죠. 어차피 나라 안에서는 큰 위험을 없을 테니 패스에이더를 난사할 일은 없을 겁니다.”

“앞으로도 무사히 여행하시길.”

점장은 비워진 글라스 잔을 다시 채웠다.
그때 여자가 다시 돌아와서 자리에 앉았다. 점장과 남자는 마치 아무 이야기도 안했던 것처럼 서로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여자가 자신의 음식을 먹는 동안 남자는 앞으로의 여행 계획이나 내일 날씨 같은 가벼운 이야기꺼리로 정답게 대화를 나누었다.

밤이 더욱 깊어져 가면서 주점안의 손님들도 거의 다 떠나고 활기차던 가게도 점차 조용해져가자 남자와 여자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여자가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 사이 남자가 주문했던 식사 비용을 내려고 자신의 주머니를 뒤지자 그의 안색이 갑자기 흙빛이 되면서 당혹스러워 했다.

“이런! 돈이 들어있는 지갑을 호텔에 놓고 나왔군!”

“저런. 당신 답지 않게.”

남자는 당황하는 와중에도 점장에게 정중하게 말했다.

“이거 미안하게 됐습니다. 호텔이 이 근처이니 빨리 갔다오면 5분내로 돌아 올 수 있습니다. 절대로 도망치려는 게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럴수도 있지요. 천천히 다녀오세요.”

여자도 한 마디 거들었다.

“그래요. 제가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테니 어서 갔다 와요.”

“정말 미안합니다. 빨리 돌아오도록 하지요.”

남자는 연신 사과를 하며 재빨리 주점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의 빠른 발자국 소리가 점점 멀어져 갔다. 남자가 나가고 난 뒤에 여자는 자신이 앉았던 의자에 다시 돌아왔다.
점장은 카운터의 술병 진열대에서 와인 한병을 꺼내서 글라스 잔에 따랐다. 그리고 그것을 여자 앞에 내려놓았다.

“이건?”

“서비스입니다. 돈은 받지 않을테니 걱정 말고 드세요.”

“고마워요. 잘 마시도록 할께요.”

여자는 점장에게 웃어보이며 글라스 잔을 들었다. 글라스 잔에 있는 붉은 빛의 와인을 한 모금 마신 뒤 그녀는 잔 안을 유심히 지켜보다가 카운터 위에 살짝 내려놓았다. 여자는 생각에 잠긴 얼굴로 앉아있다가 갑자기 조용한 목소리로 점장에게 말했다.

“그는 정말 바보같군요.”

여자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점장은 어리둥절한 표정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예? 실례지만. 무슨 말씀이신지.”

“그는 정말 바보라구요.”

“.....”

“바보가 아니고서야 저 같은 정신나간 짓을 하는 여자가 뭐가 좋다고 10년 넘게 따라다니는 것인지.”

“...저기..”

점장은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 주저했다.

“그는 말이죠. 나를 지키기 위해서 지금껏 많은 사람들을 해치고 다녔어요. 온갖 더러운 짓도 거리낌 없이 했죠. 오로지 나를 위해서말이에요. 내가 무사할 수 만 있다면 혼자서 온 세상을 적으로 돌리고도 남을 사람이에요. 그는.”

“....”

“언젠가는 나를 덮치려고 몰래 뒤쫓아오던 열명이 넘는 남자들을 저 몰래 혼자서 모조리 죽여버린 적이 있었죠. 나중에야 그가 내 뜻에 따라주는 척 하면서 사실은 사람을 해치면서 여행을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여자는 낮은 한숨을 쉬며 계속 말했다.

“그 사실을 처음 알았을대는 무척이나 실망하고 또 화가 났어요. 그가 나의 뜻을 겉으로 흘려들으면서 저를 조롱하는 듯 했어요. 너무 실망한 나머지 여행을 그만둘려고 까지 마음먹었었죠. 하지만 차츰 시간이 지나고 내가 이루고자 하는 뜻이 사실은 헛되고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그가 하는 행동을 이해할수 있게 되었어요.”

“그는 이룰 수 없는 목표를 위해서 미친듯이 달려가는 제가 그렇게 좋은 거예요. 단지 그 모습이 너무 좋아서 그의 신념과는 정 반대의 길을 가는 저를 위해 모든 것을 걸고 싸우고 있어요. 10년이 넘는 세월동안...정말 바보같죠? 좋으면 좋다고 솔직하게 표현하면 되는데 그러지도 않고 그저 이런 저를 지켜주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하고 있어요. 언제나 행복해요.”

“그럼...”

점장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당신은 모든 것을 이미 알고 있었으면서도 그를 위해서 일부러 당신의 뜻을 포기하지 않는 척하고 있다는 겁니까.”

“예. 사실은 당신들이 하던 이야기도 듣고 있었어요. 그가 아직 사실을 모른다는 게 기쁘네요. 만약 그가 내 꿈을 포기했다는 것을 눈치챈다면, 내가 낙담했으리라는 생각에 몹시 괴로워하겠지요. 그가 괴로워한다면 저도 슬플꺼에요. 어차피 이제는 되든 안되든 상관없는 헛된 꿈이지만 지금껏 저를 위해 함께 해준 그를 위해서라도. 적어도 그의 앞에서는 꿈을 위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줄 꺼에요. 저는 혼자가 아니니까요. 같이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여자는 거기까지 말한뒤 글라스 잔에 남겨있던 와인을 모두 마셨다. 빈 글라스 잔을 내려놓으면서 점장에게 말했다.

“우리가 나눈 대화에 대해서는 그에게 비밀로 해주세요. 꼭이요.”

“물론이죠. 부디 모든 게 잘되기를 바랍니다.”

그때 마침 남자가 헐레벌떡 뛰어들어왔다. 전속력으로 달려온 듯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많이 기다렸지? 미안해.”

“괜찮아. 덕분에 서비스도 받았는걸.”

“정말 미안하게 됐습니다. 여기 식사비 받으세요.”

남자가 점장에게 돈을 건넸다. 점장은 그걸 받으면서 부드럽게 말했다.

“미안해 하실 것 없습니다. 누구나 그럴 수 있는걸요.”

남자와 여자는 웃으면서 다정한 모습으로 나란히 주점 밖으로 걸어나갔다. 받은 돈의 액수를 확인하던 점장은 원래 식사비보다 더 많은 돈을 받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죄송합니다만 이 가게에서는 팁은 안받습니다..?”

하지만 그 말에 대답해줄 사람들은 이미 밖으로 사라진 뒤였다.
점장은 가볍게 한숨쉬며 중얼거렸다.

“이런 이런. 언제까지라도 무사하시고 행복하시길.”






어느덧 주점안에 남은 손님은 없고 폐점시간이 되자 점장과 이나샤는 산더미 같이 쌓인 설거지와 음식물 찌꺼기가 굴러다니는 테이블과 흘린 술로 끈적해진 카운터와 가게 바닥을 열심히 쓸고 닦고 치웠다.

묵묵히 청소에 열중하고 있던 이나샤에게 점장이 가벼운 투로 말을 걸었다.

“이나샤? 오늘 꽤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말이야.”

“어떤 이야기인데요. 마스터?”

“혼자가 아니기 때문에 살아갈 수 있는 어떤 커플의 이야기. 어때 흥미있지 않아?”

“글쎄요. 이니드 언니가 좋아할 것 같네요.”

이나샤는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그래도 점장은 차가운 반응에 굴하지 않고 계속 이야기했다.

“어쨌건 들어봐, 어떤 여행자 남녀 한쌍이 10년이 넘도록 여행을 같이 다니고 있는데 말이지. 남자와 여자는 완전히 반대되는 신념을 가지고 있어..그런데....”

점장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동안 이나샤는 듣는지 마는지 계속 청소에만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렇게 그 날의 하루도 끝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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