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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는 변질된 만큼 버림을 받는다. 정태현 목사
한 여론 조사기관의 발표에 의하면 한국 기독교(개신교)에 대한 한국 국민의 신뢰지수가 18.4%라 한다. 우리가 껍데기 외식종교로 무시해온 천주교는 35.5%, 믿음의 대상도 없는 우상 종교로 밖에 보지 않는 불교는 31.1%인데 이 어찌된 일인가? 절대의 진리, 영생의 생명을 소유한 기독교, 신앙을 생명보다 귀중한 것으로 여겨온 기독교인으로서의 긍지는 끝도 없이 추락해 버린다. 참으로 한심스럽다 못해 개탄스럽고 참을 수 없는 절망적 모멸감과 자괴감마저 밀려온다. 왠지 모를 분이 끌어 아무나 붙잡고 땅을 치며 그것이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이것이 현실이며 이것은 한국 교회가 자초한 것이다. 이것은 한국교회와 성도들이 국민들에게 버림을 받은 것이기도 하며 더더욱 하나님께도 버림을 받고 있다는 슬픔의 일이기도 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라. 지난 세기 후반부터 한국의 교회를 통해서 와 닿는 국민들의 단상은 여지없이 타락한 기독교일 뿐이다. 물량주의에 빠진 교회, 과도한 헌금에 기업화된 교회, 개 교회 주의의 자유를 남용한 사이비 종말론 등의 극성과 교회 세습, 비이성적 전도와 맹신적 종교운동 그리고 물질적 착복과 성적인 타락에까지 눈먼 일부 교회 지도자들의 그림자가 너무도 크다. 유일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받들고 최선의 삶을 위한 절대 진리의 종교라 하면서도 어느 하나 실존하신 하나님과 아름다운 진리와의 관계에서 와 닿는 단상이 없다. 이것이 한국교회의 진솔한 현실이다. 거기다 더 더욱 큰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이 바른 것인지 찾고 분별할 능력과 의지도 없이 혼돈의 종교 생활에 무디고 무감각하게 길들여진 많은 교회 지도자들과 지금 당장 오직 내 교회만 안전하게 지키면 된다는 이기적 맹신적 종교 운동에만 열심인 교회 지도자들이 널려 있으니 더욱 더 문제이다.
지난 날 앞섰던 서구 교회들이 쓸쓸히 비어지고 뼈대만 앙상한 유물로 남아 아쉬운 역사 속으로 몰락해 버린 환영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는데 이 일을 어찌할까? 실낱같은 부흥의 소망을 붙잡고 오늘의 때를 기다리고 반만년의 역사를 지켜온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도 결국 하나님은 스치는 그림자만을 남기시고 말아야 하는 것인가? 우리 대한의 땅 위에 절대 지존하신 하나님의 영원한 처소로서 그 걸음을 붙잡아 두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한 나라를 인류 위에 일으켜 세울 수는 없단 말인가? 우리의 구세주 그리스도께서도 그의 나라를 주시고자 그처럼 안타까워하셨는데 왜 우리 대한의 민족이 그의 나라를 받아서는 아니 되는가?
방법은 오직 하나님께 있다. 그 방법을 놓고 어떤 이들은 기독 신앙의 외적인 수단과 방법의 잘못을 바꾸자고 말한다. 교회를 개혁하여 윤리와 질서를 찾고 제도를 고치면 된다고 외치고 있는데 그 수단과 방법만을 고치는 것은 껍데기만 다시 포장해 보자는 얄팍한 속임수가 아닐까? 그것으로 약간의 인정을 회복해 볼 수는 있겠지만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누릴 수 있는 대안은 아니다. 또 그렇게 해서 설령 새로운 질서와 제도를 정비했다 한들 껍데기만 그럴듯한 천주교와 무엇이 다르겠으며 유일체제를 가진 천주교를 앞설 수 있겠는가? 어떤 이들은 그러니까 우리는 천주교에 없는 더더욱 뜨거운 말씀과 기도와 전도에 매진하는 것이 옳다고 외치는데 말씀만을 위한 말씀, 기도만을 위한 기도, 전도만을 위한 전도는 또 다른 미혹이며 무지한 맹신을 낳는다.
방법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주시고자하신 기독 신앙의 본질을 찾는 것이다. 그렇다고 교리와 신학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제는 제발 교리와 신학으로부터의 자유를 찾고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루터의 종교 개혁의 최고의 공로가 무엇이었는가? 교리가 아니라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건만 종교개혁의 전통을 잇는다면서 또다시 교리를 뒤집어쓰고만 과오를 계속하지 말아야 한다. 분명하게 말하면 현대 개신교의 교리의 핵심은 천주교의 것을 개혁적인 입장에서 수정을 가한 것이 아닌가? 그리고 신학 또한 천주교의 것들을 빌려 오고 종교개혁자들의 주장을 개혁과 성경적인 입장에서 정비하면서 만들어진 것으로 오늘날엔 그것이 또 다른 올무가 되어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또 다른 뜻있는 어떤 이들은 초대교회로 돌아가야만 된다고 하는데 그것만으로도 부족하다. 교회만을 위한 교회는 아무리 다듬어도 소용이 없다. 중요한 것은 초대 교회가 아니라 초대 교회의 생명인 기독교의 본질이다. 기독교의 본질을 갖지 못한 초대 교회 운동은 허울만 좋은 또 다른 종교운동이 되고 만다.
가장 중요한 것은 본질이다. 그리고 기독교의 가장 기본적인 본질은 복음이며 복음은 그리스도의 비밀이다. 그리스도의 의미를 잘 아는 것이 복음을 아는 것으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언약과 선지자들의 예언을 이루신 메시아이시다. 하나님은 낙원을 잃어버리고 멸망할 인간을 위하여 믿음의 선진들을 세상에 나게 하시고 그들과 약속하셨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라. 메시아가 오시어서 그의 나라를 세우실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때가 되어 그 하나님의 언약대로 메시아가 그의 나라를 가지고 오셨다는 소식이 복음이다.
다음으로 중요한 본질은 믿음이다. 믿음은 복음을 믿는 것이다. 그리고 바른 복음을 믿는 자들은 당연히 주가 가지고 오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찾고 구하는 것이며 그 나라를 찾은 이들이 다음 세계에서 오는 영원한 천국의 백성이기도 하다. 그런데 바른 복음을 모르면서도 믿는다하고, 또 복음의 일부 변증만을 붙잡고 믿어라 믿는다 하며 구원이라고 외치고, 또 성경을 팔고 주의 이름만 팔아서 무조건 믿는다고만 하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어리석음이 오늘날 대부분의 세계 교회의 일이 아닌가? 그러다 보니 실로 기독교라는 배가 산으로 가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불구하고 교회 지도자들이라는 이들이 안일하게 교단만을 배경삼고서 우리가, 우리 교회가 개혁된 교회, 바른 정통의 교회라며 안주하고 있으니 하나님의 노하심과 심판이 두렵지도 아니한가? 오늘날 한국 교회에는 그 하나님의 노하심과 심판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특히 앞장섰던 교회의 지도자들이 한국 교회가 변질된 만큼 버림을 받은 것임을 알고, 하루 빨리 한국교회에 복음을 회복하고 믿음을 회복하도록 일으켜 세워서 땅 끝까지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하는 일에 매진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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