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종때 저술한 동국여지승람 불우조를 보면 실상사의 부속사찰로 원수사, 장계사, 백장사가 기록되어 있어 이 세 사찰은 실상사의 말사였던 것이 명확하다. 침허조사가 중창할 때에 이르러 원수사는 폐사되었고, 백장사에 속한 8개 말사와 실상사에 속하였던 9개 말사가 남아있었다. 즉 침허조사의 중창 후에는 내원, 정각암, 이명전, 남대암, 조계암, 양수암, 보명암, 세전암, 상암, 금당, 백련암, 수성대, 일출암, 봉계암, 양직암, 장계사, 백장암 등이 있었다.위의 암자 가운데 백장암, 약수암, 서진암(세전암)이 현존하고 있다. 백장암은 실상사에서 남원 인월 방향 국도로 3킬로미터정도 가다가 백장휴게소가 있는 매동마을에서 우측 산도로 1킬로미터 정도 올라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언제 창건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원래는 백장사였다고 한다. 1679년(숙종 5)에 화재를 당하자 대중이, 백장사는 10년 동안에 두 번이나 화재가 일어났고 장소도 협소하니까 실상사 옛터에다 재건하자고 하였다. 따라서 백장사 터에 몇 간의 작은 건물을 지어 백장암이라 하였다.1868년(고종 5) 10월에 제3차 화재를 당하였고, 그 다음해에는 운월대사가 아래에 있던 터에서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1901년(광무 4)에 제4차 화재를 당하였고, 다음 해에 남호대사가 완봉, 환월, 월허, 영담 등과 협력하여 다시 세웠다. 이 백장암은 목조 맞배지붕으로 된 광명전과 선실이 있고, 광명전 위에 문수전이 있다. 이 광명전은 1910년에 건립되었으며, 선실은 1972년에 지옹선사가 증축하였다. 백장암에는 국보 제10호인 백장암 3층석탑, 보물 제40호 백장암 석등, 조선시대 부도군 등이 있으며, 관련 유물로는 보물 제420호 백장사 만력12년명 은입사향로가 있다. 백장암 삼층석탑 이 탑은 백장암 경내에 있는 통일신라 시대의 석탑으로 국보 제10호이다. 현재의 백장암 남쪽 아래 경작지에 남아 있어 석탑 바로 뒤에 서 있는 석등과 함께 원위치로 생각된다. 그 북쪽에 법당터로 추정되는 건물지가 뚜렷한 점으로 보아 본래는 백장암이 이 곳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1층 탑신 각 면에는 사천왕상과 신장상 2구씩을, 2층 탑신 각 면에는 주악천인상 2구씩을, 3층의 각 면에는 1구씩의 천인좌상을 새기고 있다. 이 석탑은 기단부의 구조와 각 부의 장식적인 조각에서 특이한 수법을 보여주는 것으로, 신라하대에 유행한 불국사의 다보탑과 같은 이형석탑의 하나이다. 각부의 구조가 특이할 뿐만 아니라 탑신부의 탑신과 옥개석 밑에 조각이 가득히 있어 더욱 더 주목된다. 백장암 석등 이 석등은 백장암 경내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보물 제40호이다. 연화대석 위에 간주를 세우고 그 위에 다시 연화대석을 놓았으며, 상륜부는 도난을 당해 현재 그 원형을 찾을 길이 없다.이 석등에서 특이한 것은 앙련의 윗부분에 난간을 표현한 점이다. 이처럼 앙련대석에 난간을 둘러 장식한 것은 석등으로는 유일한 예이다.화사석은 8각으로 4면에만 직사각형의 불을 켜는 구멍(화창)이 있으며 다른 4면은 아무런 조각이 없다. 화창구에는 창문을 고정시키기 위한 못구멍이 있는데, 이것은 실상사 경내에 있는 석등과 같은 형식이다.








삼장산 영원사
영원사는 불타기 전만해도 백 칸이 넘는 이홉 채의 건물로 웅장한 모습이었다. 이 사찰은 신라 때 영원대사가 창건한 뒤로 수 많은 고승 선객들이 수행했다. 그 가운데는 서산, 청매, 사명, 지안 스님들이 수행 했다.영원사는 영원대사가 청건할 때 얽힌 일화부터 예사롭지가 않다. 영원스님은 입산한 지 얼마 안 돼 현재의 영원사 부근에 토굴을 파고 8년을 계속 참선 수도를 하였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깨우침을 얻지 못해 수도처를 다른 곳으로 옮기려고 나섰다. 그가 산길을 터벅터벅 걸어내려오다 보니 한 노인니 물도 없는 산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고기 낚는 시늉을 하고 있지 않는가. 이를 이상히 여긴 영원스님이 가까이 다가가니 노인이 혼잣 소리로 말했다." 여기서 8년을 살며 낚시질을 했는데, 2년만 더 있으면 큰 고기가 낚일 것 이다. " 그리고는 노인이 표현히 사라졌다. 젊은 영원스님은 노인의 말에 깨달은바가 있어 다시 토굴로 돌아가 2년을 더 수도 정진한 끝에 마침내 득도하여 영원사를 세우게 되었다. 영원스님의 하산길을 막고 깨달음을 주었던 그 노인은 다름아닌 문수대성 이었을 것이라고 후세 스님들은 믿고 있다.영원사는 유서 깊은 사찰과는 달리 재난 탓인지 경내에 청매스님의 '방광사리탑'만 있고, 등 너머 산마루에 조실스님들의 부도와 각운대사의 필단사리 3층 석탑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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