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n Anfang an lieben manche Schwester immer Ihre Brüder... Patriarchat und Christentum hatten sie schon tabuisiert und zwar dämonIsiert, ohne die vernünftige Erklärung noch eine Hölle zu ergänzen.
향린공동체 주일 강단교류
제 물
창세기 22, 6 - 12 ; 로마서 12, 1 - 2
김 경 호 목사
오 늘 본문은 “너희 몸을 산제물로 드려라. 이것이 여러분이 드릴 합당한 예배”라고 한다. 여기서 예배라고 번역된 말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제사’라는 말을 그대로 사용했다. 이것은 번제물로 짐승이나 곡식을 드리는 거룩한 의식을 말한다. 엄격하게 구별된 장소, 구별된 시간에 드리는 것이 제사이다.
그 러나 바울은 ‘산제물로 드리라’고 하여 희생제사가 드려지는 그 거룩한 곳을 일상의 거리, 저잣거리로 바꾸어 놓는다. 그리고 우리의 삶 전체를 제사로 드리라고 한다. 거룩한 장소를 해체해 버리지만 우리에게 오히려 힘들다. 제물을 한 번 드리고 내 의무를 다했다고 하면 좋겠다. 아니 우리 몸을 한 번에 제물로 드리는 것도 그것이 비록 자기 목숨이라고 하더라도 오히려 쉬울지 모른다. 그러나 산제사로 드리라는 것은 매일 매일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하나님께 드려라. 우리의 일상을 그대로 드리라는 말이다.
또 한 바울은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고전 6:19)이라고 한다. 바울은 사도들을 기둥들이라고 한다. 보이는 성전이, 성전이 아니라 사람들이 바로 그 기둥(갈라 2:9)이고 성전이라고 한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내가 성전을 사흘 만에 짓겠다고 하신 말씀(요한 2:19)을 그대로 계승한다.
바 울은 보이는 건물을 보이는 교회라고 하지 않는다. 참 교회는 무엇인가? 참 교회는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 그들이 모여서 하는 일이 바로 교회이다. 여기에 바로 놀라운 반전이 있다. 성과 속을 뒤집는 반전이 있다. 우리의 일상이 바로, 우리들의 삶이 바로 교회이고 거룩이고 예배라는 것이다.
르 네 지라르는 『폭력과 성스러움』(대우 학술총서 59, 1993, 민음사 간)에서 인간이 가진 폭력성은 직접 표현되지 않고 언제나 희생물을 찾는다고 했다. 인간의 복수가 복수를 낳고 서로 보복을 하고자 하는 욕망이 겉잡을 수 없게 되어 서로 공멸의 위기를 느끼게 될 때, 인간을 희생제물을 찾는 다고 했다. 그는 인간의 폭력이 가장 승화된 형태, 집단이 가진 폭력을 외적으로 돌리는 것이 제물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보상으로 그 제물에게는 가장 거룩하고 성스러운 찬사를 돌린다. 지라르는 모든 성스러움 가운데는 폭력이 있다고 했다. 자기들에게 다가 오는 폭력을 외부의 희생양에게 돌리는 것이 성스러움이다. 제물 외에는 모두가 찬성하는 만장일치의 폭력성이 제물의 또 다른 모습이라고 한다. 예수도 그렇게 희생된 제물이지만 그의 제자들이 그 죽음의 억울함을 밝히고 죽음의 의미를 새롭게 한 것이다.
오 늘이 바로 용산 참사 300일을 맞이하는 날이다. 우리시대의 제물은 용산에서 희생되신 분들이다. 그들은 분명 정권의 희생양이었다. 건설 정권은 초기에 반드시 철거민들을 길들여야 했다. 앞으로도 다가올 많은 재개발 사건, 건설 현장에 걸림돌(?)이 되는 세입자, 철거민, 점유자들의 기를 꺾어 놓고 길들이기 위한 표본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대화하자고 올라간 사람들을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죽음에 몰아 넣었다. 불과 40명의 사람을 진압하기 위해 1만 2천명의 경찰이 동원되고, 그리고 경찰특공대 등이 투입되어 인명을 희생하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경찰로서 지켜야할 안전수칙이나 매뉴얼을 지키지 않았다. 현장에 투입된 경찰들이 옥탑에 신나가 있는 위험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지도 못한 채 무리한 진압을 시도했다. 그런데도 수사는 오로지 ‘발화의 원인 화염병’이라는 전제 아래서 진행되었다. 불이 어디서 붙었는가하는 물리적 문제가 아니라 그런 위험한 상황을 누가 만들었나, 시민이 다섯씩이나 죽은 상황을 누가 밀어 붙였는가가 당연한 문제의 초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도 화염병을 목격한 사람이 없다. 처음에 “철거민들이 던진 화염병이 원인이라”고 증언한 경찰이 재판정에서는 말을 바꿨다. ‘자신이 흥분해서 미운 마음에 그렇게 말한 것이고 사실은 화염병을 직접 보지 못했다.’고 증언을 뒤집었다.
그 러나 부장판사 한양석은 용산 재판에서 정당하지 못한 판결을 내렸다. 그는 숨겨진 3천쪽 없이 판결했다. 판사가 자료를 제출하라고 검사에게 요구했으나 검사가 묵살 하였다. 그러나 그는 검사에게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않고, 검찰이 제시하는 자료만으로 판결했다. 적어도 그가 그 재판기록을 받았어야지 형식상 정당한 판결이 되는 것이다. 검찰을 압수수색하거나, 그것이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우면 자료를 제출할 때까지 재판을 연기하면 된다. 피의자들은 무작정 구속할 수 없으니 당연히 모두 보석으로 석방하면 된다. 그래도 자료를 제출하지 않으면 공소시효 이후까지 재판을 연기해야 판사로서 정당하게 할 일을 다한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한양석의 판결은 “아들이 아버지를 희생시켰다”는 말이 안되는 살인죄를 뒤집어 씌웠다. 무리하게 판결을 하더라도 적어도 살인죄만은 뺐어야 했다. 한양석은 자기의 욕망을 위해 그 희생자들을 두 번 죽인 것이다.
우 리가 용산의 희생자들을 열사라고 부르고 그들을 거룩한 희생양이라고 말하는 것도 하나의 폭력일 수 있다. 가족 들은 사실 ‘열사’라는 말을 잘 쓰지 않는다. 정부가 용산의 희생자들을 모든 세입자, 철거민을 길들이기 위한 희생물로 삼았다면, 거기서 투쟁하는 사람들이 단지 돌아가신 분들이 인간적으로 불쌍해서 300일이 되도록 투쟁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이것은 이들의 희생이 모든 서민들과 철거민들의 권리를 위한 죽음이 되기 위한 싸움이다. 이들의 희생이 정부가 몰고 가는 대로 도심의 테러리스트들의 마땅한 죽음이냐? 그냥 실수로 인한 해프닝성의 죽음이냐? 아니면 이 땅의 모든 철거민, 서민들을 위한 죽음이냐를 판가름하기 위한 싸움이다. 이것은 거룩함을 얻기 위한 투쟁이다. 이러한 투쟁은 종교적이며, 우리 사회에서 성스러움을 지켜가기 위한 투쟁이다.
르네 지라르가 거룩함, 성스러움은 살아남은 자들이 자기 안전을 위한 폭력이라고 했는데 아마 그가 한국과 같은 상황, 용산과 같은 현장에서 사유했다면 또 다른 거룩함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을 것이다.
이 번 재판으로 용산에서 희생되신 분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더욱 큰 뜻을 두고 계시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판사의 판결이 우리가 기대하는 바대로 되었다면 이들의 희생은 철거민을 위한 희생이 되었겠지만 이제 용산 참사는 한양석 판사의 판결로 인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 받는다. 용산 참사는 정부, 지방자치 단체, 건설사, 경찰, 용역, 검찰, 판사 등 거대한 부정의 연결고리의 산물이다. 개발이라는 미명아래서 인권을 무시하고, 협박하고, 강제철거하고, 그들을 삶의 벼랑으로 내몰고 죽이는 그러고도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안하는 파렴치한 권력의 마수를 드러내 보이는 사건이다. 이제 용산 참사를 하나님께서는 이 나라 역사 전체를 새롭게 하시는 도구로 삼으시고, 보다 큰 역사의 몫으로 쓰시려 한다는 하나님의 의지를 느끼게 된다. 하나님께서 분명 용산의 희생자들을 보다 거룩한 제물로 삼으시려나 보다. 만약 그 연결고리 중에 어느 하나라도 제대로 된 사람이 있다면 이 거대한 부정의 고리가 줄줄이 밝혀 질 텐데...... 의인 10명이 없어 망하고 만 도성 소돔과 고모라가 생각이 난다.
필 자가 송파에서 빈민 운동을 할 때, 마침 비닐하우스에 불이 나서 사람들이 거리로 내 앉게 되자 급한 대로 종교, 사회 각 계층에 호소해서 이들을 위한 구제를 시도했다. 처음에는 빈민들이 아마 저 목사가 이런 저런 것을 얻어 오면서 구전이 많이 생기나 보다고 여긴 모양이다. 그러나 일체 필자의 손을 거치지 않고 직접 주민들 대표에게 물자가 건네지는 것을 보고 그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보다. 그러더니 어느 날 이들이 내게 말했다. “목사님, 이 지역에 출마하실 때, 우리 2천명 주민들이 백방으로 뛰겠습니다. 출마만 하십시오.” 아마 출마를 목적으로 호의를 베푸는 것으로 여겼나 보다. 그래서 “저는 목사입니다. 정치할 의사도 없고 앞으로도 그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우리 사회는 무언가 주고받는 것이 명백해야 편안하다. 그런 계산이 나오지 않으면, ‘왜 저 사람이 내게 호의를 베푸는가?’가 계속 불안하다.
안 병무 선생님께서는 이성의 세계는 주고 받기(give and take)가 명확한 ‘선물’의 세계이지만 신앙의 세계는 그것을 넘어서는 ‘제물’의 세계라고 하셨다. 신앙은 그 빤 한 계산의 세계를 넘어설 때부터 시작된다. 제물은 그것을 통한 어떤 대가나 결과를 전제하지 않는다(안병무, ‘제물-십자가의 의미’, 『구걸하는 초월자』75). 그것은 그 자체로 새창조의 사건이며 행위이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쳤다. 그러나 만약 그가 보다 큰 축복을 전제로 바쳤다면 벌써 제물이 되지 않는다. 그냥 아무 전제 없이 바칠 뿐이다. 히 11장에 “아브라함은 죽여도 살릴 수 있는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 브라함이 금방 하나님께서 살리실 줄 알고 쉽게 죽일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세상에서 그런 역사는 없다. 하나님이 살리시지만 언제 살리실 줄 모른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은 죽음이다. 언제 살리실지 모르는 그 불확실한 진실에 몸을 맡기는 것이 믿음이다.
멀 리보고, 아니 어떤 댓가도 계산하지 않고, 그 결과는 하나님의 몫으로 돌리고, 지금 손해나는 그 길로 가는 것, 하나뿐이 남지 않은 그 제물을 드리는 것이야 말로 믿음의 길이다. 제물은 꼭 하나 뿐이 남지 않은 것을 바칠 때, 제물로서의 가치가 있다. 사렙다 과부의 모자가 굶주리다가 남은 밀가루와 기름으로 마지막 식사를 하고 생을 마감하려는 순간 엘리야가 나타나 먹을 것을 달라고 한다. 그것을 드리는 믿음이야 말로 제물을 드리는 믿음이다. 미리 다 안전망을 확보하고, 계산하고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남은 하나를 기꺼이 드릴 수 있는 행위가 제물을 바치는 행위이다. 믿음이 아니고는 어찌 그런 길로 갈 수 있겠는가?
이 것은 기존의 질서가 아닌 오직 새로운 현실을 보는 것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이다.”(히브 11:1). 내가 하나님께 계산하고 나가면 나 보다 훨씬 뛰어나신 하나님께서 나의 얕은 속셈을 보시고 마음이 움직이시겠는가? 아무 전제 없이 그분께 나아가는 것은 제물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단지 바라는 것을 현실로 사는 것, 그것은 오직 믿음으로만 볼 수 있는 새 현실이다. 내가 나를 드려야 그 사건 안에서 하나님도 자신을 드러내신다.
아 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사건 이후에 이미 아브라함은 이전의 아브라함이 아니고, 이삭도 옛날 이삭이 아니다. 물론 그들에게 나타나시는 하나님도 이전의 하나님이 아니다. 그들과 상식적인 관계가 아니라 특별한 관계를 맺으시는 하나님이 되시는 것이다. 그들은 이미 하나님 안에 불 같이 단련한 새사람이 된 것이다.
십 자가 없이는 예수도 예수가 아니다. 십자가 사건이 있어야 예수가 되는 것이다. 희생물이 나의 안전, 집단의 안전을 위해서 남을 희생 시키는 제물을 찾는 것이라면, 르네 지라르의 말대로 그 희생이 집단의 폭력이라면, 예수의 십자가는 스스로 그 십자가를 지고 희생제물이 되신 것이다. 희생의 또 다른 패러다임이 존재한다. 그것은 참다운 제물의 길이다.
하 나님께서 그 안에서 전혀 다른 새 역사를 일으키시는 뜻이 있는 것이다. 제물이 된다는 것은 자신이 원해서 되었든지, 타인의 폭력에 의해서든지 마찬가지이다. 한 제물에 가해진 폭력의 구조를 폭로하고 그 죽음의 의미를 밝혀내는 것이야 말로 거룩함을 찾는 것이며, 우리의 일상에서 거룩함을 만들고, 우리의 매일의 삶에서 산제사를 드리는 행위이다.
Nach dem Umzug hatte ich ganz an die starke Erkältung gelitten.
Seit einer Woche lange wußte ich gar nichts
von deiner leisere Stimme im Herbst und
deiner reiferes Angesichts mitten der bunten, nässigen Blätter,
sondern nur ich träumte von euren Gelassenheiten innerhalb
dieser einsamerern Jarhreszeit
Wo willst du jetzt hin, denn? Es ist zu spät zu verreisen,
am Herbstabend hockt man sich im Stuhl der Erinnerungen.
Es scheint sich alles vorbei zu sein,
dass ihr euch im letzten Sommertage lange wüten zu erergen
wir unterhalten uns über diese Quale der Nirvana
neben einer jungen Baumzweige
und es pflegt zu erleuchtern
wie eine glimmernde Lampe am Meers miteinander im Auge und
die reicht schon am Anfang September
Es ist ganz kurz, alle unseres Lebenswellen sind vergeht wie ein regnerlischer Wind im Frühherbst,
Ciao,
mein kleiner Prinz,
...
Mio
amore bis zum Ende!
2007년 10월 4일 남북의 수뇌가 평양에서 발표한 역사적인 10.4선언 2돌을 맞이하여 7백만 해외동포들 에게 호소합니다.
10.4선언은 6.15 공동선언의 고수와 실천을 목적으로 남과 북은 우리민족끼리 정신에 따라 통일문제를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며 민족의 존엄과 이익을 중시하고 모든 것을 이에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습니다.
10.4 선언이 발표되자 민족의 화합과 통일은 이제 먼 거리가 아닌 바로 우리는 앞에 도달 하였음을
실감하였고 갈라진 조국의 현실을 생각할 때 마다 항상 아픔이 되어 살수밖에 없었던 우리들에게
하나된 새 나라의 모습을 그려보는 기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남측에 새 정부가 들어서자 6,15 와 10,4서언에 대한 다른 입장과 정책으로 인하여 그 동안 쌓아온 교류와 협력이 중지되고 남북관계는 냉각되어 다시금 대결과 불신의 시대로 돌아 가지 않을까 하는 불안 하였습니다.
다행이 김정일국방위원장이 클린턴 미국 전 대통령과 현정은 현대아산회장을 평양에서 만남으로 조미간의 대화가 재개되었으며 개성공단사업이 정상적으로 가동되고 금강산 관광도 다시 시작될 전망이며 흩어진 가족 재 상봉이 추석을 눈앞에 두고 금강산에 열리고 있습니다.
61여 년 동안 생사도 모르고 살다 생애의 끝에 겨우 해어진 가족을 눈물의 만남을 보며 누가 왜 무엇 때문에 이 말도 되지 않는 이별의 고통을 일생 동안 않고 살아 갈 수 밖에 없도록 강요했는가? 치솟은 분노를 느끼게 합니다.
동포여러분! 분단은 이와 같이 비인간적인 인권 유린이며 죄악입니다.
우리 민족에게 쒸어진 이 고통의 멍에를 벗기고 갈라진 조국을 통일시키기 위해, 더 이상 남이다 북이다 가르지 말고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를 위하여, 외세에게 국제공조를 구하기 전에 우리민족끼리의 6.15정신과 10.4선언선언을 고수 실천하는 것이 절실합니다.
세계 방방곡곡에 흩어져 사는 7백만 해외동포들이 단결하여 민족의 화해와 단결 민족통일을 위한 길에 나선다면 그 누구도 우리의 이 정의로운 요구를 막을 자 없으며 그 어느 누구도 과거와 같이 우리를 간섭하고 지배하며 분열시키려는 음모를 꾸밀 수 없을 것입니다.
해외동포들이 단결하여 6.15공동선언 10.4선을 을 고수하고 실천하는데 앞장서 주시기를 호소합니다
2009년 9월 29일 6.15 공동선언실천 유럽지역위원회
10.4선언 2돌을 맞이한 한(조선)반도의 오늘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라는 우리네 옛 속담이 있다. 아니 21세기에 들어선 요즈음 시대에는 ‘5년이면 강산이 변하고 10년이면 세상이 변한다’ 라는 말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런데 2009년 10월 현재 한(조선)반도에서의 남북(북남)관계와 우리민족의 통일문제는 어떻게 되었는가.?
2000년 역사적인 6.15공동선언 발표 후 우리민족은 옛 속담이 틀리고 현 속담이 맞다라는 것을 피부로 절감하였다. 얼어붙었던 남북(북남)관계가 얼음녹듯이 풀리며 다방면에 걸쳐정부와 민간 차원의 교류와 협력이 확대되었으며 6.15공동선언 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 한(조선)반도전역에서 연이어 벌어져 우리는 물론 전세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이명박정권으로 인해 빛을 바랜 '10.4선언 2주년'
며칠후면 2007년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고 노무현 전대통령이 평양에서 합의한 10.4선언 발표 2돌을 맞이한다. 10.4선언 발표후 2년 사이에 남측에서는 정치사회적으로 큰 변화가 있었다. 그런데 왠 일인지 6.15공동선언의 구체적인 실천계획서인 10.4선언이 발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네 강산도 더 변하고 세상도 통일에 성큼 다가설 만큼 많이 바뀌어야 할 판에 오히려 세상이 꺼꾸로 돌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것도 무려 30-40년이나 후퇴한 1970년대로 말이다.
실로 ‘정권이 바뀌니 세상(?)이 묘하게 바뀌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명박정권 2년동안 남북(북남)관계와 우리민족의 통일문제는 과거시대로 회귀하였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최근2년간에 걸친 이명박정권 집권기간이 “하루가 1년처럼, 1년이 꼭 10년같다”는 말로 힘들었던 남측 국민들과 우리민족이 겪어야 했던 고초와 답답함을 표현하기도 한다.
6.15공동선언과 10.4선언 이행여부는 우리민족에 있어 '천국과 지옥 사이'
그렇다면 만약 이명박정권이 남측에 들어서지 않았거나 아니면 이명박정권이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제대로 이행했다면 우리민족이 살고있는한(조선)반도는 어떻게 바뀌었을지 현재의 상황과 비교해 한번 상상해보자.
2000년 6.15공동선언이 우리민족에 있어 통일의 이정표라면, 2007년 10.4선언은 통일의 구체적인 실천계획표였다. 10.4선언에서는 한(조선)반도의 평화체제 구축과 관련된 내용과 더불어 6.15공동선언의 기본정신인 우리민족끼리 정신에 따라 모든 남북(북남)문제를 자주적이고 평화적으로 해결하자는 내용이 함축되어 있다.
남북(북남)공동의 번영과 평화를 구축하기 위한 세부적인 항목들로는 예를 들면 3자 내지 4자 정상간의 한(조선)반도 종전선언 이라든지, 서해상의 특별평화협력지대 설치, 통일에 장애가 되는 법과 제도장치들의 개선,개성공단 활성화와 금강산, 백두산관광 등 각 방면의 교류와 협력을 촉진하고 확대시키는 내용들이 구체적으로 수페이지가 넘도록 적시되어 있다.
2년동안 이러한 10.4선언이 충실히 이행되었더라면 서해상의 평화가 정착되었을 것은 물론이고 최근 한동안 막혀있었던 개성공단사업이 날개를 단 듯 민족의 균형적인 경제발전과 공동번영에 기여하며 활성화되었을 것이다. 또 아직도 차단되어 있는 금강산 관광의 확대와 함께 백두산관광사업도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어 이산가족은 물론 우리민족 구성원 모두가 통일이 가져다 줄 기쁜 선물을 기대하고 즐기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남북(북남)간의 화해와 협력, 교류접촉이 활발하게 진행되어 민족의 단합에 기여하고 통일이 먼 미래가 아닌 가까운 현실로 다가섰을 것이다.
이와 함께 당국자간의 남북(북남)관계가 순풍을 단 듯 항해하였을 것은 물론이고 우리민족의 통일바람이 모아져 지리하게 끌어온 북미관계도 관계정상화의 방향에서 한(조선)반도의 진정한 비핵화를 촉진시키는 역할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런데 한(조선)반도와 우리민족에 닥친 지금의 현실은 어떠한가.
남측에 이명박정권이 들어서면서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부정하고 차단봉을 내리며 오히려 같은 동족인 북을 향해 '비핵개방3000' 이니 하면서 말만 바꾼 '상생공영정책' 이니 뭐니 하면서 선핵포기와 흡수통일만을 공공연히 외쳐대며 미국과 한미합동군사훈련에 더욱 열을 올렸다. 입장바꾸어서 만일 북측에서 남측사람들을 보고 자본주의를 포기하면 3000달러 주겠다 거나 흡수통일 하겠다거나 또는 다른 나라와 북이 합동으로 남을 향한 공격적인 군사훈련을 한다고 했을 때 이명박정부는 어떻게 대응했을까?
또한 이명박정권은 대북적대정책의 근본적인 전환과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의 이행을 요구하는 남측의 통일민주인사와 진보개혁세력들의 정당한 활동을 국가보안법으로 탄압함은 물론이고 지난 2000년 이후 6.15 민족공동위의 활동도 불온시하고 불법으로 취급하였다. 그러다 보니 개성공단사업은 물론 금강산 관광도 완전 중단되고 서해상에는 군사적 충돌가능성이 높아 졌으며 남북(북남)민간교류가 위축되고 정부당국자간의 대화가 막혀버리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실제로 남북(북남)관계가 차단되어 있던 2년동안 개성공단 중단은 물론 여러 방면에서 경제적으로 남이나 북이나 엄청난 재정적 손실을 가져왔다는 지표와 분석도 나와있다. 수치로 계산되는 경제적 손실외에도 무형의 정치사회적 비용까지 감안하면 우리민족의 통일문제가 먼 남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나와 우리네 먹고사는 생활문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중요한 사안이라는 것이 확인된다
지금 남측에서는 많은 국민들이 6.15공동선언의 주역인 고 김대중 전대통령과 10.4선언의 주인공인 고 노무현 전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현실에 빗대어 지금의 이명박대통령이 얼마나 남북(북남)간의 합의한 선언들을 무시하고 반민족 반통일적인 정책으로 일관했는지 새삼 그 심각성을 느끼며 안타까워 하고 있다.
이처럼 이명박정권 2년은남북(북남)관계에 있어 지옥과 같았다라는 말이 등장할 정도로 남측발 한(조선)반도에 불어닥친 반통일바람은 우리민족에게 많은 걱정과 근심, 고통을 안겨 주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북미관계와 함께 남북(북남)관계에서도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고 있다.
미국 오바마대통령의 특사로 클린턴 전 미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국방위원장과 회담을 가진 후 지난 8월에는 현대그룹 현정은회장 일행이 평양을 방문하였으며,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와 관련하여 북측에서 특사조의방문단을 서울에 파견함으로써 극도로 경색되였던 남북(북남)관계에 전환의 돌파구가 열렸다.
또 8월말 금강산에서 남북(북남)적십자회담이 진행되어 추석(10월 3일)을 앞두고 약 2년만에 남북(북남)의 흩어진 가족, 친척들간의 상봉이 이루어졌다. 또한 이제까지 제한되고 있었던 군사분계선통행이 원상회복되고 남북(북남)경제협력협의사무소가 재가동된 것을 비롯하여 개성공업지구가 활성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들은 민족문제는 그 주인인 민족 스스로의 결심에 따라 해결하려는 북측의 결단이 가져온 것으로 해석된다. 온 겨레는 그에 따라 연이어 취해지고있는 획기적인조치들을 환영하고 있으며 남북(북남)관계발전에 큰 기대와 관심을 표시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지난 9월 4~5일 중국 심양에서 예정되어있었던 6.15공동선언실천 북측위원회와 남측위원회의 실무접촉이 중지되는 비정상적인 사태가 빚어졌다. 남측당국은 남측 실무회담 참가자의 일부 성원들의 신청수리를 거부함으로써 사실상 접촉을 불허하였다.이로인해 10.4선언발표 2돌행사는 남, 북, 해외가 따로따로 가져야 되는 상황이다. 또한 현정은회장의 방북성과물인 금강산관광재개건도 이명박 정부가 사실상 허용하지 않음으로서 지연되고 있다. 이런 일련의 사태들은 고조되는 남북(북남)화해와 협력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던 것이다.
얼마전 9월에는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 뉴욕을 방문한 남측의 이명박대통령이 이른바 '그랜드 바겐(Grand Bargain-큰 거래/ 일괄협상)'을 제안해 미국은 물론 기존 6자회담 참가국들로부터 웃음거리가 되었다. 그랜드 바겐의 뜻이 결국 원 샷 딜을 하자는 것인데 모순되게 북의 무조건적인 6자회담 복귀와 선핵포기를 강조했기 때문이었다. 이 제안은 결국 기존 이명박정권의 '비핵개방3000' 으로 대표되는 선핵포기를 버리지 못한 포장만 바꾼 고장난 레코드판을 다시 듣게 만드는 비현실적인 제안이라고 많은 이들이 폄하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어떤 사람은 지금 이명박정권에 필요한 것은 '그랜드 바겐'가 아닌 '그랜드 유턴'이라고 비꼬기도 하였다.
일본 동경에서 '6.15공동선언, 10.4선언고수실천 해외동포대회' 개최
이처럼 한(조선)반도의 현 정세는 남북(북남)관계발전에서 열어진 새로운 전기를 온 겨레의 거족적인 통일열망과 활동으로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의 이행을 위한 확고한 국면으로 전환시킬 것을 요구하고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10월 16일 일본 동경에서 10.4선언 2돌을 맞아 개최되는 해외동포대회는 현시기에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는 해외동포들과 통일운동단체들, 인사들이 집결하여 성황리에 개최될 것으로 예상되어민족의 관심과 기대가 더욱 쏠리고 있다.
이미 지난 6월 15일에 발표된 6.15공동선언실천 남, 북, 해외측위원회 공동호소문은 6.15공동선언이 발표된 6월 15일부터 10.4선언이 채택된 10월 4일까지를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이행을 위한 운동기간》으로 정하고 남, 북, 해외에서 다양한 대중운동을 벌릴 것을 호소하였다.
이에 따라 유럽에서는 6.15유럽지역위원회 주관으로 6.15공동선언 9돌 유럽동포통일대회를 베를린에서 성과적으로 개최한 데 이어 독일을 중심으로 유럽전역에서 약 1,000여명에 달하는 유럽동포들의 통일기연서를 받았다. 아울러 일본을 비롯한 다른 해외 각 지역위원회에서도《6.15공동선언, 10.4선언고수실천 통일기연서운동》을 활발히 벌여왔으며 지금 마지막 박차를 가하고있다.
현재 진행되고있는 통일기연서운동을 더욱 힘있게 벌이고 10.4선언 2돌에 즈음하여 다양한 기념행사를 동포들이 사는 곳곳에서 조직하여이번 《6.15공동선언, 10.4선언고수실천 해외동포대회》를 성황리에 개최함으로써 통일과 민족단합의 기운을 크게 고조시키는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통일은 스스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오직 우리민족의 염원을 모은 활동을 통해서만 성취할 수있다. 통일의 주체는 남과 북, 그리고 우리 해외동포들이다. 특히 남북(북남)관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 시기는 해외동포들의 역할과 단결이 더욱 요구되고 있다.
내일이면 민족의 명절인 추석 한가위다. 해외에 나와 살고있는 동포들에게 추석은 언제나 그렇듯 고향생각과 부모님 생각으로 조국에 대한 그리움이 깊어지는 시기이다. 한(조선)반도의 우리민족이 돌아가야 할 고향은 바로 통일된 조국땅이다. 통일된 조국땅을 그리기위해 지금 해외동포들이 한결같이 나서야 할 실천활동은 바로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의 이행을 촉구하는 운동을 단합해 벌이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 해외동포들앞에 제기된 10.4선언 2돌이 가지는 의미이다.
Nur im Herbst hat man irgendeinen Umzug gemacht.
...
Plötzlich erinnere ich mich an Euch,
die ich Ende dem Herbst verlassen musste.
Und der Herbst vergeht schnell vor uns
wie deine bilnde Liebe
Ich sorge mich um disen Herbst und
vermisse ihn sehr sogar.
Er kommt wieder zurück in diesem Jahr,
er ist da
ganz nah,
eben vor deinem Auge
...
Morgen mitternacht soll es sich ohne irgendwelchen Spur verschwinden
als der Nordwind sich so in der Winter zu uns weht.